▲지난 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에서 열린 공군 지휘관들의 전투비행기술 경기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전용기로 도착한 후 리설주 부인과 함께 내려와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지난 5월 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에서 열린 공군 지휘관들의 전투비행기술 경기대회를 관람했다. 북한 <로동신문>은 김 제1위원장이 리설주 부인 등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관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를 관람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김 제1위원장 부부가 전용기에서 내리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전용기에서 내린 김 제1위원장 부부는 비행장 트랩 앞에 늘어선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김 제1위원장이 전용기를 이용한 장면이나 의장대를 사열한 장면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용기 이용 첫 공개

북한은 4월 1일에도 김 제1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에 참가한 연합부대 지휘관들을 격려하기 위해 삼지연 비행장에 도착한 뒤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공개했으나 당시 비행기는 전용기가 아닌 고려항공 여객기였다. 이에 앞서 김 제1위원장은 3월 15일 경비행기를 이용해 원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는 비행기가 아닌 전용열차를 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59년 당시 김일성 수상의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순방과 1966년 인도네시아 방문 때 비행기를 이용해 동행했지만 그 후에는 해외 방문이나 국내 현지지도 때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낭설까지 나돌았다. 이와 관련 한 탈북자는 “1970년대 초 평양공항에서 폭파사고가 난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최고지도자의 비행기 사용이 금지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최고지도자의 비행기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동수단 측면에서 현지지도의 형식이 바뀐 것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용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김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북한 권력체제가 공고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지만 기동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성향이 반영된 측면이 더 강한 것 같다.

김정은 시대에 사전예고 없이 불시에 이뤄지는 현지지도가 늘어난 것도 주목되는 현상이다. 지난 1월 중순에도 김 제1위원장은 인민군 항공륙전병(공수부대) 구분대들의 야간훈련을 불시에 현지지도 했다. 1월 20일자 <로동신문>은 “각 군종.병종 부대의 야간 실전능력을 대단히 중시하는 최고사령관(김정은) 동지는 항공육전병 구분대들이 야간전에 대처할 수 있게 준비되였는가를 검열하고자 불의에(불시에) 야간훈련을 조직하고 검열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취임 직후부터 불시에 현지시찰

김 제1위원장의 불시 현지지도는 2012년 4월 공식 취임한 직후부터 이뤄졌다.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예정에 없던 막사를 방문해 부대지휘관을 당황하게 했다거나 지방 현지지도 가는 도중에 민가를 불시에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이러한 사례는 북한의 언론보도에서도 확인된다.

북한 언론은 김 제1위원장이 2012년 8월 17일 사전 예고 없이 서해 최전방 장재도 방어대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일주일 뒤인 8월 2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제1위원장이 동부전선에 있는 인민군 제4302군부대 산하 ‘감나무 중대’(여성포중대)를 시찰한 자리에서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에 갔는가?”라고 질문했다고 보도해 당시 방문이 예고되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보다 앞서 이뤄진 2012년 7월 4일 김 제1위원장의 평양국제공항 현지지도도 불시에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차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한 재미교포는 2012년 7월 1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7월 7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중국행 여객기를 기다리던 중 항공사 직원에게서 ‘김 1위원장이 4일 공항을 불시 방문해 공항 관계자들이 크게 긴장했다’고 전해들었다”며 “김 1위원장의 순안공항 방문때 사전 무통보, 교통 무통제, 느슨한 경호 등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북한의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전문가들은 김 제1위원장이 불시 방문을 통해 북한 사회에 기강을 잡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김 제1위원장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형식주의와 관료주의 척결을 위해 불시에 ‘현장’을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는 구체적 현실과 인민의 지향을 반영한 정책과 방침들을 구상하고 작성하기 위해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있다. 이는 당 관료와 기관 간부들의 형식주의나 관료주의를 척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80년 9월 21일에 한 연설에서 현지지도의 목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던 어느 나라 사람이 나에게 왜 지방에 자주 현지지도 하러 다니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사회주의사회에서 관료주의가 나타나면 자본주의사회의 관료주의보다 더 무섭다, 자본주의사회는 사적 소유에 기초한 사회인 것만큼 정부에서 아무리 관료주의를 부려도 개인기업가들은 자기들에게 리득이 있으면 움직이고 리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관료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회주의사회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조직화 된 사회이기 때문에 우에서 한 사람이 지휘를 잘못하면 큰 편향을 범할 수 있다, 나는 군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에 맞게 사업하기 위하여 늘 아래에 내려간다고 말하여 주었습니다.… 당이 군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관료주의적으로 내리먹이면 좌우경적 편향을 범하기 마련입니다.”

1973년 황해남도 은률광산을 현지지도 할 때도 김일성 주석은 이 광산에 대한 현지지도의 목적이 “일군들에게 보수주의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데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강물이 깊은가 얕은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하여 강물에 돌을 던져본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확한 현실 파악과 검열을 위한 현지지도

▲김정은 제1위원장은 원산 송도원국제소년야영소에 개선사업을 지시한 후 올해 4월 준공식을 앞두고 이곳을 현지지도했고, 5월 2일 열린 준공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사진은 준공식 모습. [캡쳐사진 - 노동신문]

이와 같이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대중과 유리될 수 있는 경향을 엄격히 경계하기 위한 것이므로 자연히 검열기능을 하기 마련이다. 현지에 가서 실정을 조사하지 않으면 하부단위에서 허위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현지지도를 통한 일상적 검열의 중요성을 절감케 하는 원인이 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사전 예고 없는 현지지도’도 정확한 현실 파악과 검열의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 제1위원장은 ‘본보기’ 창출이라는 현지지도의 전통적인 기능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는 한 단위에 대한 구체적 지도를 통하여 혁명과 건설에서 절박한 문제를 푸는 본보기를 창조하고 이를 일반화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반드시 중심고리를 찾아 한 단위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것을 일반화하여야 당 정책이 철저히 관철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이와 관련 김일성 주석은 1970년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 총화보고’에서 “당은 현지지도에서 반드시 중요한 한 고리를 뚫고 그 한 점에서 모범을 창조하였으며 거기에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과 교훈을 전반적으로 일반화하는 사업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일반적 지도와 개별적 지도를 결합시켰으며 지도에서 주관주의와 형식주의를 성과적으로 극복”하여 왔다고 평가한 바 있다. 북한이 지금도 당 사업의 전형으로 내세우는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등은 모두 이러한 모범화의 구체적 사례이다.

현지지도를 통해 창조되는 시범단위는 보통 “당과 수령이 의도하는 문제가 전형적으로, 집중적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다른 모든 단위들에서 거울로 삼고 받아들여야 할 모범이 담겨져 있는 곳”이 선정된다. 김 제1위원장도 지난해 마식령스키장을 건설하면서 ‘마식령 속도’란 구호를 전 사회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본보기 단위’ 창출을 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은 지도대상의 시작부터 준공에 이르는 모든 건설공정들을 점검하고 확인한다는 점이다. 취약계층을 위해 올해 새로 건설한 군 수산사업소가 대표적 사례다.

김 제1위원장은 올해 1월 초 제534군부대가 새로 건설한 수산물냉동시설을 시찰하면서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수산물을 공급하는 수산사업소를 군대에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 수산사업소의 위치와 설계 및 시공단위를 정해주고 자재와 설비보장, 어로공 모집 등의 대책을 세웠으며,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전까지 건설해 올해 가을 물고기 공급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다음 달 22일 그는 이 수산사업소 건설현장을 찾아 공사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4월 21일 완공된 ‘1월8일 수산사업소’를 다시 방문해 “착공 2개월만에 완공돼 조업을 앞둔 것은 놀라운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수산사업소는 4월 30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업식을 가졌다. 이처럼 김 제1위원장은 수산사업소 건설을 지시한 후 2차례나 이곳을 찾아 건설 전 과정에 관심을 보였다.

김일성 주석의 현지지도 스타일 계승

지난해 8월 두 차례나 현지지도를 통해 공사 현황을 점검한 ‘과학자 살림집’건설도 또 다른 사례일 것이다. 이와 관련 평양체육관 개건을 맡았던 김성남 대외건설지도국 당위원회 책임비서는 노동당 기관지 <근로자>(2013년 11호)에 기고한 글에서 “과학자살림집 건설장을 돌아보실 때에는 당중앙위원회와 내각에서 책임적인 일군들을 현장에 파견하여 건설정형을 알아보고 일, 주, 월별로 총화대책하여 미진되는 부분이 없게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류경원과 인민야외빙상장,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 새로 개건된 평양체육관을 비롯하여 모든 창조물들이 이렇게 태어났다”라고 주장했다.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초기에 자신의 정책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활발한 현지지도를 통한 ‘본보기’사업과 단위 마련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는 다른 국가에서도 관찰되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현장시찰에 비해 독특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현지지도는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북한의 정책적 내용, 최고지도자의 활동궤적과 통치스타일, 관심사항 등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평균 이틀에 한 차례 현지지도를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당중앙위원회에 배치되어 당 사업을 시작한 이후 정치활동 중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현지지도에 할애했다고 한다. 그만큼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수령’과 ‘인민대중’이 직접 만나는 지점이고, 정치리더십의 중요한 표현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현지지도는 북한의 정책방향을 읽는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스타일에 주목하는 이유다.

김일성 주석은 수시로, 불시에 현지지도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고, 방문지에서는 협의회를 열어 노동자, 농민들과 즉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치밀한 검열과 보고를 통해 사전에 상황파악을 한 후 현지지도 하는 자리에서 결론을 제시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런 측면에서 기동성과 실용성을 중요시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현지지도 방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는 김일성 주석의 스타일에 더 가까운 듯하다. 다만 ‘본보기’ 창출에서 군(軍)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측면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先軍)방식’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지난 2년간 현지지도를 통해 창출된 ‘본보기’사업들이 얼마만큼 빨리 전국적으로 일반화 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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