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자서전 ‘어떤 현대사’를 연재한다. 시기는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때까지로 안 선생이 겪었던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자서전을 통해 독자들은 해방과 전쟁 속에 부대낀 한 인간의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황, 특히 지역운동사를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1회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에 걸쳐 게재됐는데, 41회부터는 매주 토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안전신호로 존재를 인식이라

2월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체포와 변절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군당의 선은 확보하고 있었다. 지도원 동지는 군당으로부터 받은 과업이라면서 3일에 한번 씩 그 선을 점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군당 연락부의 레포로서 나에게 부북면당과 하남면당의 ‘트’의 안전을 확인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먼저 두 당의 연락 ‘트’에 가서 안전신호를 정하고 이를 내가 3일에 한번 씩 그 안전신호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선 점검을 하도록 했다. 정해진 날에 약속된 장소에, 약속된 안전신호가 없으면 사고로 인정하고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하여 포스트를 정하고 안전신호를 확정했다.
포스트는 부북면당은 삽개 「모렴당」의 솟을대문, 하남면당은 밀양수산 도로의 파서막 공굴다리 밑 공굴 기둥으로 하고,
안전신호는 △표로 하고, 사고발생은 ∇, ‘트’ 폐쇄는 ×, 접선은 ○인데 그 옆에다 날짜와 시간을, 예컨대 5/15로 쓰기로 했다. 이는 5일 15시에 이 포스트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약속을 2월 중순의 이른 날에 부북면당의 연락‘트’에서 토론해서 정했고, 이를 하남면당 연락‘트’로부터 동의를 받아 확정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와는 서로 만나는 일 없이 내가 두 면당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그 산하의 각 읍•면당의 상황도 직접 만나지 않아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부지런히 쏘다니면서 상황을 파악하러 다녔고 그 결과를 지도원 동지에게 보고하였다.
하남면당 ‘트’의 피습으로 당책의 전사했음을 그 이튿날 오후에 면당의 연락‘트’에서 동산 어른으로부터 보고 받았고, 이어 군당 연락부로 보고할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이 과업을 2월 중순부터 3월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알려질까 염려되어 갈 때마다 복장을 바꾸기도 했고 될수록 얼굴이 알려지지 않도록 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보는 일을 피하고 먼 산을 보는 채 하면서 얼굴을 돌려버렸다.
탄압은 계속되었다. 탄압을 피해서 집을 떠난 사람들은, 그때만 해도 일가친척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걱정을 하던 시대여서 얼마동안은 그들에게 얹혀 지낼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귀한 손일지라도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경찰이나 우익청년들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숨겨준 일가친척도 화를 당하는 수가 있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피해있는 당자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결국 자수하게 되고 또 전향해서 동지를 불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도무지 수습할 방도가 없었다.
3월 하순의 어느 날, 하남면 파서교 밑에 있는 하남면 연락‘트’의 포스트에 갔다. 이때까지는 늘 △표만 있었는데 ○ 22/14라고 분필로 쓴 글씨가 있었다. 나는 그 옆에다 보았다는 신호로서 안전신호 △를 그려놓고 나왔다.
포스트의 신호를 따라 이틀 후 22일 오후 2시 정각에 파서교에서 만나기로 하고, 거기에서 20여 미타 떨어진 논둑길에 서 있었더니, 이미 이쪽을 알고 있는, 지팡이를 짚은 갓쓴 노인이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바로 동산 어른이었다. 동산 어른은 나를 지나 내가 지나다니던 은산이 들로 향해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아무 말 없이 그 뒤를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갔다.
종남산 남쪽의 여러 골짝물이 모여 이루는 좀 널찍한 시냇가 있고 거기에 돌무지로 만든 징검다리가 있어 내가 부북면 삽개에서 파서막으로 오고갈 때 늘 건너던 것이었다. 나도 뒤따라 건너자 동산 어른은 시냇가 펼쳐져 있는 잔디밭에 마치 다리쉼을 하는 양 앉았다.
나는 곁에 다가 가면서,
“어르신 은산이라는 동네가 이쪽이라는데 어딥니까?”
하고 보리밭을 매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물었다. 동산 어른도 근방에 일하는 농군이 들을 수 있도록 대답을 했다.
“총각, 은산이 동네로 가는 갑제. 은산이 뉘 집에 가는공?”
“예, 성만이댁에 갑니다.”
“나도 그 집은 아니지만 은산이로 가는 길인데 함께 가면 되겠구먼.”
“아이구, 어르신 고맙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자연스레 길가다가 생긴 동행인으로 되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그리고 나는 정식으로 안부 인사를 했고 동산 어른도 안부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동산 어른은 나를 만나자고 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산 어른은 하남면당이 당책 전사로 결딴이 나자 이제 자기는 면당과 군당의 연락‘트’를 지키는 일이 소용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면당의 핵심이 꾸려질 때까지는 그 연락‘트’가 소용없게 되었으니 나중에 소용될 때까지는 폐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제기하기 위하여 레포 동무인 나를 만나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 일단 문제 제기의 이유가 있다고 보고 지도원 동지를 통해 군당 조직부에 보고되도록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또 경찰이 자기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불안하다고 했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이미 조사를 받았는데 자기에게 아직 문제점을 제기해오지는 않지만, 좀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면 관심이 묽어져 조사받을 일이 안될 것 같아서이참에 안동 쪽의 일가들, 해방 후에 한번 지나가듯이 만난 일 밖에 없어서 거기에 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 조직에서 지금 내가 꼭 연락‘트’를 지킬 이유라고 없을 것 같아서 레포 동무에게 말하면, 동무가 잘 말씀드리리라 생각하고, 이참에 내일 그만 길 나설 작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별반 이의가 없었고 일단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으면 본인도 물론 지켜야 하지만관계가 있는 모든 분들이 지역적으로 또는 친분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힐 필요도 있기에 찬성한다고 동의했으며, 이는 안전상 하루빨리 실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동의를 했다.
“동산 어르신의 입장을 저의 지도원 동지를 통해 군당 조직에 잘 전달되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은 어르신에게 쏠리고 있는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비상선을 하나 정해놓고 내일이라도 출발하시도록,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일단 하남면당과, 거기에 선이 연결되어 있는 초동면, 상남면, 삼랑진읍 4개의 읍면당이 동면상태로 들 수 있도록 했다.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이 길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동산 어른에게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 하남면당의 문제는 다원 아지트에 돌아와 하남면당과 그와 연결된 4개 읍•면당의 입장을 지도원 동지에게 보고했다.
다음으로 부북면당의 삽개 연락‘트’로 길을 잡았다. 은산동네 앞들까지 오는 동안 동산 어른과의 토론은 끝나고 결말을 내자, 나는 오른 편에 빤히 보이는 갓골 동네를 향해 논두렁길을 잡고 걸었다. 갓골동네 뒤 산으로 올라 능선에 올라서니 낙엽수의 가지에 더러 눈이 트기 시작하고 여린 싹이 보이고 있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예림재」의 팔작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멀리에는 「모렴당」의 솟을대문이 희부연 안개에 그 아래가 잠겨있었다.
걸음을 성큼성큼 걸어서 「모렴당」 솟을 대문 오른편 문기둥의 아래에 흰 분필로 △의 기호가 적혀있다. 이상 없다는 신호다. 그 기호를 곁눈으로 힐끗 보고 그 걸음으로 내려갔다. 연락‘트’의 집으로 가면서 사립문을 지날 때 또한 곁눈질로 보았더니 안전신호의 요롱이 문짝 기둥에 걸려있다. 지금이라도 ‘지렁지렁’ 소리가 곧장 들리는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오후 5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3.1절 전후에서 3.1절을 기해서 무장습격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경찰과 우익폭력테러단체가 이제는 지겨운지 그 경비•검문이 좀 뜸해졌다. 그래도 「송징이」 다리의 검문소는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보고 감내를 다리에서 븍쪽으로 강둑을 따라 올라가서 오례 들 건너 쪽에서 감내를 건넜다. 오례들을 질러 지동 앞들로 해서 교동 앞으로 나와 범북고개를 넘었다.
그리고서 산외면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긴늪 다리를 건넜는데 다리 양쪽에서 민보단이 번으로 나와 있는데 지나가는 나를 한번 힐끗 보기만했고, 입을 생긴 대로 다 벌려 하품을 길게 하고 못 본채 했다. 나는 한쪽 손을 들고 아는 채를 하고 그냥 다리를 건넜다. 다리의 산외면 쪽은 초소막에 들어가 있는지 코빼기도 안 내고 그냥 막에 들어박혀있었다.
그길로 곧장 다원으로 들어왔고 아지트에 들어온 다음 석유램프에 불을 켜 등불을 문 쪽에 걸어두고 바깥에서 불빛이 잘 보이도록 해두었다. 지도원 동지에게 내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좀 지나자 지도원 동지가 나의 ‘트’에 들어오셨다.
“동무, 잘 다녀왔소. 수고 했소.”
“예, 지도원 동지.”
하고 인사를 마치고 먼저 하남면당의 상황을 보고하고 동산 어른이 제가하시는 하남면당의 연락‘트’를 당분간 폐쇄하자는 제기와 동산 어른이 자기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안동으로 해서 한 바퀴 돌고 오겠다는 의견에 대한 비준을 요구한다는 말과, 내가 좋은 제안이라 하고, 지금 집중되고 있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는 빨리 실행하는 것이 좋겠고 찬성했다는 것도 보고 드렸다.
이에 대해 지도원 동지는 나에게 동의해주시면서,
“덕출이 동무, 잘 처리했소. 적의 눈길이 쏠릴 때는 일단 피하는 것이 좋소. 지금 하남면당은 당책이 전사해서 다시 핵심을 꾸리자면 시간도 있어야 하고, 이참에 저들이 보기에 아무 것도 없다는 듯 위장해두는 쪽이 나을 것이요. 내가 이 문제를 군당조직에 보고하겠소.”
그리고 부북면당의 포스트에는 안전신호가 있어서 그냥 지내왔다고 하고 일간 ‘트지기’ 월산 어른을 만나서 밀양읍당의 형편을 알아보려고 한다고 곁들여 보고했다.
객관적 상황에 따라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당의 역량이 현저히 줄어든 것만은 속일 수는 없었다. 우선 당장 하남면당이 틀어쥐고 특색 있게 사업을 잘하고 있던 하남면, 상남면, 초동면, 삼랑진읍, 이 4개 읍•면당이 당분간 문을 닫는 꼴이 되어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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