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자연환경, 육지와 떨어진 외딴 섬이라는 이유로 제주도는 음식마저 육지와 다른 문화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제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사시사철 다양한 해산물과 어패류, 해조류를 이용한 음식을 주로 먹었습니다. 또한 화산 폭발로 인해 물이 고이지 않는 사질토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논농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쌀이 귀해 보리, 조, 수수, 콩, 팥, 밀 등 다양한 잡곡류를 계절별로 다양하게 활용했습니다.
기후적으로는 겨울에도 늘 상온을 유지해온 탓에 채소를 생식하는 쌈밥 형태의 음식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으며, 신선한 재료를 쉽게 공급 받아 저장 식품의 필요성이 적었으므로 저장 식품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치와 자리돔 등이 언제나 풍부해 젓갈로 담아 육지의 쌈장처럼 활용했습니다.
또 제주도는 ‘절 오백 당 오백’이라 할 정도로 불교와 민간신앙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종교 의식에 이용할 음식을 필요로 해 떡이 다양하게 발달했지만 쌀이 가장 귀했으므로 쌀로 떡을 다 만들지 못하였고 메밀이나 조를 이용해 떡을 만들곤 했습니다.
국가에 진상해야하는 품목과 수량이 많아 제주에서는 여성들이 집안 살림은 물론 농사, 물질 등 여러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제주도 사람들은 음식을 맛보다는 다음 일을 하기 위해 열량을 축적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 조리법이 매우 간편하고 국이 발달했습니다.
제주도는 워낙에 신선한 재료가 많아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자 단순한 조리법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제주도 여인들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제대로 잘 차려 먹지 못하는 이유와도 결부됩니다.
이는 다른 지방과 달리 제주 음식엔 국이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국 종류가 많은 것과도 일맥상통하는데요, 끓인 콩국, 모자반에 돼지고기국, 미역 넣은 생선국, 호박에 칼치국, 밀가루를 뿌린 호박잎국, 풋배추 된장국, 뜨물에 무우국 등 그 종류도 참 다양해 육지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국들이 많습니다. 반찬보다 경비가 적게 들고 양이 많은 국은 밥과 함께 바로 훌훌 먹을 수 있어 식사시간을 단축해 재빨리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주며, 거친 잡곡으로 이루어진 주식을 부드럽게 넘기는데 좋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노동을 위해 간편하게 먹는 음식문화는 또한 낭푼밥이나 돔베고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제주도의 식탁에는 밥그릇이 필요 없습니다. 대충 끓여진 보리밥을 그대로 둥근 양푼에 퍼서 상위에 놓고 식구 수대로 국그릇과 수저만 놓으면 끝인데요, 낭푼밥(양푼밥)으로 이름 붙은 이 밥은 저마다 자기 앞부분부터 파먹기 시작하면 나중에 남는 밥은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끼니때 먹도록 합니다. 어느 집을 막론하고 양푼에 퍼서 상에 내놓고 하루 내내 상보를 덮어놓으면 식구 중 누구나 끼니때 수저 하나만 들고 와 먹었습니다.
반찬이 적어 한 보시기 밖에 안 될 때는 밥그릇 한 가운데를 조금 파서 보시기를 꼭 박아놓고 같이 떠먹기도 하는데요, 아무리 부잣집이라도 마찬가지이고 손님이 오더라도 상관없이 수저만 하나 더 놓고 먹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낭푼밥은 거의 사라졌는데요, 바쁜 제주여성들의 특징을 그대로 담은 제주의 음식 중 아직까지 남은 것으로 돔베고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도 방언으로 도마에서 썰어서 먹는다 해 돔베고기라고 불렀습니다.
돔베고기는 몸국이나 성게국 등과 함께 경조사 등의 잔칫날 손님들에게 자주 대접되는 음식중 하나였는데요, 잔치가 있거나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푹 삶아서 그냥 돔베에서 숭숭 썰어 소금에 찍어 먹던 그대로 먹는 것입니다.
돔베고기는 물질하는 해녀들이 시간이 없어 번듯한 그릇에 음식을 차려먹지 못하고 도마 위에서 고기를 썰고 바로 그 도마에 고기를 담아 먹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보쌈과 비슷한 형태이긴 한데 돔베고기는 더 오래 삶아 기름기가 더욱 많이 빠져 고기가 매우 쫄깃쫄깃 합니다.

육지에서는 수육을 많이 먹지만 제주도에서는 돔베고기를 많이 먹는데요, 새우젓보다는 멜젓(멜은 멸치의 제주 사투리로 멸치로 만든 젓갈)이나 자리젓에 먹으면 흑돼지 특유의 향과 함께 어우러져 그 맛이 배가 됩니다.
제주산 흑돼지에 마늘을 듬뿍 넣어 푹 삶은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채로 돔베 위에 올려놓고 먹기 좋을 만큼 살집이 잡힐 만큼 두툼한 크기로 썰어 먹는 돔베고기는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별미입니다. 특히 푹 삶아서 기름기를 쫙 뺏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제주에 갔을 땐 돔베고기와 함께 돔베오징어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돔베에 돼지고기를 올렸느냐 오징어를 올렸느냐에 따라 돔베고기도 되고 돔베오징어도 됩니다.
우리 흔히 제주도 여성들이 강인하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강인해야할 수밖에 없고 또 강인해지기 위해 음식까지도 간편히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 역사가 참 많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거친 역사를 힘차게 살아낸 제주 여성들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