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2월 17일 남북물류포럼이 주최한 조찬간담회에서 방홍국 연변주정부 서울대표처 처장은 북-중경협에 대해 설명하면서 중국에서 라선특별시에 20억 달러(약 2조 2,3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주장하였다. 북한이 20억달러에 달하는 외자를 유치한다는 내용이다.

방홍국 처장은 중국이 장춘-훈춘 고속도로를 개통한 데 이어 254억원을 투자해 나진까지 이르는 원정리-나진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미 중국 촹리그룹이 임대 운용하고 있는 나진3호 부두는 중국이 제3국을 이용해 국내무역을 처음으로 허용한 것으로 1만 톤급 선박이 훈춘의 석탄을 상해로 실어나르고 있다. 3호 부두 설비에 중국은 44억원을 투자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실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20억달러 유치설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북한의 20억 달러 투자유치설은 신통히도 1년 전의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을 떠올리게 한다.

1년 전, 대풍그룹을 아십니까?

2010년 3월 3일, 대풍그룹의 박철수 총재는 문화방송과 단독인터뷰를 갖고 북한이 앞으로 10년간 4,000억 달러(당시 환율로 480조 원)의 외자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혀 세간에 충격을 준 바 있다. 박철수 총재의 주장은 향후 5년간 1,200억 달러를 유치, 북한의 기간산업을 확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5년간 2,800억 달러를 유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대풍그룹이 대규모의 외국자본을 유치하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유치실적이 없는 점을 두고 반북단체의 공격이 활발하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1년 1월 11일, 대풍그룹이 외자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뚜렷한 실적을 거둔 것이 전혀 없다며 대풍그룹은 외자유치 기관으로서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2010년 3월초의 박철수 총재의 발표 이후, 한반도는 천안함 정국을 겪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3월 26일에 침몰한 천안함을 두고 이명박 정부는 5월 24일, 북한의 소행이라 주장하며 북한을 대대적으로 규탄하였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010년 6월 18일, 일본 <교도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북한에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지 다양한 선택들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전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금융(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었고, 지금도 북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해 금융제재를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미국의 금융제재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미국이 천안함 문제를 두고 유엔차원의 제재결의를 추진했지만 결의안은 커녕 의장성명에서도 “북한”을 적시하는데 실패하였다. 이런 마당에 미국이 독자적으로 대북제재에 나서는 것은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부를 것이기에 결국 미국의 대북금융제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선박에 대한 금융제재가 가능하다”, “북한과 거래한 은행에 대한 제재를 검토”한다며 온갖 ‘말의 제재’를 총동원하였다. 한마디로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북한, 외자유치 실적을 보여주나

북한의 20억 달러 외자 유치는 대풍그룹의 외자유치 전략이 실패로 무산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런가,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관할 아래 운영되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모든 외자유치를 대풍그룹 박철수 총재에게만 맡겨놓을 이유가 없다. 대풍그룹의 이사회는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국방위, 내각, 재정성, 노동당 유관부서, 조선아태평화위가 참여하고 있다. 대풍그룹은 조선노동당의 지휘관할에 속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북한체제에서 외자유치는 대풍그룹이 아니라 사실상 조선노동당이 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언론의 보도행태를 보다보면 마치도 북한이 자본주의 사회인양 묘사하는 착각에 빠져들기 쉽다. 변모된 평양시의 모습을 두고도 언론은 “평양의 일부 특권층의 모습”이라며 북한의 빈부격차가 심각하다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지난 90년대, 언론은 사회주의를 놓고 “사유재산이 전무하며 밥숟가락도 공동관할하는 극단적 평등체제”라고 하며 “사회주의에서 가난은 숙명”이라 공격하지 않았던가.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 20년 사이에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인지 보는 이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북한의 외자유치도 마찬가지이다. 반북단체들은 마치도 대풍그룹이 외국자본을 유치하려다 부도처리되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서 북한의 외자유치가 파탄난 것처럼 공격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기업이 밟는 절차이다. 사회주의 기업의 운영은 전혀 다르다. 서울지하철을 철도청이 아니라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담당한다고 해서 철도청이 망해서 퇴출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시장을 개방한 중국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북한은 모든 기업을 철저하게 조선노동당이 관할하고 있다. 만일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의 눈을 피해 기업을 독자운영할 수 있다면 이것은 북한사회 내에 자본가계급이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북한에 자본주의가 파생되고 있다는 특종 중의 특종이 되고 만다.

파탄 난 미국의 대북제재

북한의 20억 달러 외자 유치는 미국의 대북제재가 총체적으로 파탄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금융제재를 거론하며 “최고의 실적”이리고 추켜세웠던 2005년의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제재 당시에 동결시킨 자금이 2,500만 달러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북한은 중국과 20억 달러의 유치계약을 체결한다니, 미국이 동결시킨 자금의 80배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북한과 20억 달러의 투자약정을 체결하면서도 북한과 국경 간 무역만은 규제에 나설 것이라 볼 이유도 없다. 중국은 북-중 교역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석유를 비롯한 각종 경공업 수입 원료들은 이제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공급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미국의 대북제재는 빈껍데기만 남아 향후 북-미 협상 국면에서 미국대표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족쇄로 전락할 수 있다. 대북제재가 실제로 북한을 막는 효과를 보지도 못하면서 향후 북한대표들에 의해 대북적대정책의 증거들로 제시되며 “그동안의 제재로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1월말, 북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미국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조-미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하였다고 한다. 북한의 북-미 협상요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협상요구를 외면할 방법은 사실상 북한당국이 저절로 무너지던가 아니면 전면전이 일어나는가의 두 가지밖에 없다.

20억 달러 돈폭탄이 떨어지는 마당에 제재로 버티는 ‘전략적 인내’는 이제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빈껍데기만 남은 대북제재 정책을 근본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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