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기회가 닿아 제주도에 며칠 갔었습니다. 한 겨울, 발이 푹푹 빠질 만큼 눈이 많이 쌓인 한라산에 오르는 재미도 좋았고 한적한 바닷가를 거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여러 제주 특산 음식을 먹고 온 것입니다.
제주는 육지와 떨어진 땅이기 때문에 해안지방의 음식들과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음식들이 많은데요, 이들이 제주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 같아 먹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음식은 ‘몸국’입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오일장날이어서 시장에 갔는데요, 식당마다 있던 메뉴입니다. 나름 음식에 관심이 많은 저도 몸이 무엇인지 몰라 과연 입에 맞을까 하면서 조심스럽게 시켰는데요, 된장 국물로 만든 육개장에 각종 나물 대신 해조류가 잔뜩 들어간 맛이라고 하면 좀 전달이 될까요?
제주에서는 모자반을 ‘몸’이라고도 하고 ‘몰망’ 이라고 한다는데요, 된장에 무쳐 먹거나 신김치에 버무려서 먹기도 했지만, 푹 삶은 돼지고기와 내장, 순대까지 삶아낸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몸국을 많이 먹었습니다.
모자반을 잔뜩 넣으면 돼지고기의 느끼함이 줄어들고 독특한 맛이 우러나는데 혼례와 상례 등 제주의 집안행사에는 지금도 빠지지 않고 만들었던 행사전용 음식이라고 합니다.
돼지고기와 뼈는 물론이고 내장과 순대까지 삶아낸 국물을 버리지 않고 육수로 사용하는데, 삶아진 육수에 겨울동안 채취해서 말려 놓았던 모자반을 찬물에 불려서 염분이 제거되도록 잘 빨고 촘촘히 칼질해 넣고 다시 끓여 만듭니다. 국물이 너무 맑을 경우에는 메밀가루를 풀어 넣어 약간 걸쭉한 상태로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몸국이 제주도에서도 전통음식점에 가야 맛을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잔칫집에 가면 큰 가마솥에 한가득 불을 때고 마당 귀퉁이에서 끓여서 오시는 손님들에게 접대하곤 했답니다. 특히, 제주에서는 산후에 산모에게 미역국 대신 먹인다고도 합니다.
이런 몸국은 집에서 끓인 것보다 잔칫날 대형 가마솥에서 장작불을 지펴서 끓인 잔칫집 몸국을 최고로 친다는데요, 고기를 아주 오랫동안 고아 육수를 냈고 또 여럿이 함께 왁자지껄하면서 먹는 음식이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 몸국에는 가슴 아픈 유래가 담겨져 있는데요, 제주도에서 잔치를 하면 돼지고기로 국을 끓였는데 처음 끓인 국은 고기가 많고 국물도 맑은 국으로, 이는 지체 높은 상전들이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밥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국과 고기는 모자라는데 나머지 사람들의 배는 아직 고프니 거기 남은 국물과 고기 몇 점에다가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자반을 넣고 또 포만감을 높이기 위해 메밀가루를 넣어 다시 끓였는데, 이것이 바로 몸국이라고 합니다. 척박한 땅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갔던 제주 서민들의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라고 합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지만 몸국의 기능성은 무척이나 뛰어난데요, 몸국에 사용되는 모자반은 지방을 흡수하고 칼슘 등 무기질과 비타민, 아미노산을 풍부히 함유하고 있어 훌륭한 음식재료로 이용되는 가운데 최근 몸국에 들어가는 모자반류 해초가 주름진 피부를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재)제주하이테크산업진흥원은 한 화장품 업체와 공동으로 지식경제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지원하는 지역연계 기술개발 사업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1년여의 연구개발끝에 몸국에 이용되는 해조류가 주름진 피부를 탱탱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사람의 피부는 콜라겐이 많으면 탱탱해지고 콜라겐을 분해하는 효소인 콜라게네이즈가 많으면 반대로 주름이 생긴다는 사실 아래 콜라겐 생성을 증가시킬 경우 주름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입니다.
제주하이테크산업진흥원 현창구 박사는 “몸국을 끓일 때 이용되는 모자반은 피부를 탱탱하게 유지시켜주는 콜라겐의 합성을 효과적으로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인체세포에 독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중장년층의 주름진 피부를 개선하는데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성염증을 억제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제주도하이테크산업진흥원과 제주대 등이 미 워싱턴주립대 연구진에게 의뢰한 동물실험 결과 모자반에서 추출한 씨놀이라는 성분이 만성염증을 60~80% 억제하고 혈관 노화 및 신장조직 파괴 현상을 약 70% 감소시켰으며 지방간 및 췌장조직 파괴를 75~80%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연구결과들을 기반으로 모자반은 향후 차세대 노화방지 및 만성염증 예방 물질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제주는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섬 전체가 관광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육지와는 또 다른 고유한 음식문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저가 항공도 있고 많은 분들이 제주 관광을 떠나시는데요, 제주에 가시면 꼭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몸국, 고기국수(민족음식이야기 221 참조) 등을 맛보시면서 제주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