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물이나 키우다보면 애정을 갖고 가족처럼 지내지만 집에서 키우는 소와 돼지는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지낸 저 역시 매일 같이 밥을 줘서 키운 돼지에게 어디든 집 밖에만 나갔다 오면 잘 있었는지 물어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질병이 있어도 이런 가족 같은 동물들을, 심지어는 질병확산을 저지한다는 이유로 질병에 걸리지 않은 동물들까지도 위험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그저 죽여야 한다는 것이 과연 구제역의 예방대책으로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인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동물들의 권익은 사치겠지만... 그래도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소들의 경우 살처분 대상 수가 적지만 돼지들은 한 농가당 1000마리에서 1만 마리까지 사육할 정도로 많은 수라 살처분 대상 수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동물보호법 제11조에는 “축산물가공처리법이나 가축전염병예방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 가스법이나 전살법(전기충격에 의한 도살)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방법을 이용해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일일이 살처분 하지 못해 ‘고통 없이 죽을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생매장을 한다고 합니다.
또 구제역의 광풍으로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됐지만 누적된 피로로 인해 쓰러지고 소에 받혀 다치는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는 기사, 농장의 가축들이 살처분 대상이 되자 충격으로 자살기도를 했다는 농장주, 부모님들이 키우던 자식 같은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일지로 남긴 한 학생의 글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게다가 워낙에 많은 동물들이 죽어나가다 보니 더 이상 묻을 곳이 없다는 기사도 보입니다. 정말이지 구제역의 피해가 단순히 농가뿐 아니라 각 층에서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됨에 따라 정부는 지난 29일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범정부 통합 대응기구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를 구성해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중대본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14조에 따라 정부가 대규모 재난에 대한 관리를 총괄 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고자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는 기구로 지난해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릴 때 구성된 적이 있지만 가축 전염병으로 중대본이 꾸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늘 너무 늦게야 마련돼 뒷북행정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물론 이처럼 구제역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겨울철의 낮은 기온도 한 요인이지만 구제역 발생 직후 정부가 초동대응과 차단방역에 실패하고, 링 백신 접종도 때를 놓치면서 계속 대상 지역을 추가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특히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다고 하는데 방역당국이 구제역 발생 사실을 처음 발표하기 이전에도 의심신고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과 26일 안동 와룡면 최초 발생농가로부터 의심신고를 받았으나 간이 검사킷으로 검사한 결과, 음성 반응이 나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농장주가 28일 방역당국에 신고해 1주일간의 방역 차단 공백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경기도 역시 경기 연천·양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이동통제초소를 설치하지 않아 구제역 바이러스 확산을 부추겼다고 하는데요, 설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담당 공무원은 설치하면 민원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백신접종의 경우 청정지역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지킬 수 없어 수출 등에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고 해서 늦어졌지만 피해가 지속적으로 확산이 되면서 이미 피해지역만 소규모로 접종을 하는 링백신의 처방은 뒷북행정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경기도는 31일 파주 임진각에서 ‘통일염원 제야행사’를 열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통일염원 행사가 해마다 진행됐다는 점, 게다가 통일염원이라는 이름과 걸맞은 장소의 최적인 곳이 임진각이라는 점이라는 이유로 경기도가 행사 장소로 밀어붙이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구제역 전파 우려와 함께 공무원들의 행사동원 여력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는 파주시의 심정도 잘 알기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임진각은 구제역으로 가축을 살처분한 문산읍 마정리 농가에서 3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데다 제야행사에는 지난해 1만5000여명이 운집할 정도로 외부인사가 많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돼 구제역 전파가 우려됩니다. 행사를 취소할 경우 여러 문제들이 있고 피해가 크기도 하겠지만 가족 같은 동물들을 죽여야 할 일은 이제 그만 일어났으면 합니다.
이런 와중에 각종 모임 등으로 인해 식당의 최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구제역 발생으로 소와 돼지고기 관련 식당들의 매출이 15~50%까지 감소되고 있다고 해 축산농가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특히 우리 한우의 경우 청정브랜드의 대명사였는데 이런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로 인한 피해까지 따져보면 이번 구제역 파동으로 인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갑니다.
그러나 구제역은 광견병·탄저병·페스트 등과 같이 동물로부터 사람에게로 옮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전염될 확률이 없습니다.
또한 구제역에 걸린 소·돼지고기가 유통될 리 없기 때문에 사람이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설사 유통되더라도 도축 후 예냉과정에서 고기가 숙성되면 산도가 낮아져 구제역 바이러스도 자연히 사멸하게 된다고 합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섭씨 56도에서 30분, 76도에서 7초 이상 가열하면 파괴되는데 설령 구제역 감염 사실을 모르고 도축된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날것으로 섭취하더라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인체의 세포와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구제역에 걸릴 걱정은 전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정부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우리마저 소 잃고 울고 있는 축산 농가들을 두 번 세 번 울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 같은 가축들을 잃은 이들에게는 철저한 보상이 있어야 하겠고, 또 우리 소비자들도 구제역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육류 섭취를 멀리 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김양희 기자
tongil@tongi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