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80년대와 “고난의 행군”시기

1970년대까지 성장세를 지속하던 북한경제는 19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이후 북한경제의 어려움의 요인을 어디에서 찾는가는 북한경제의 인식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학계, 언론들은 대부분 북한경제가 ‘자체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침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 사회주의가 소련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다만 북한경제를 볼 때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북한의 경제침체와 미국의 대북군사압박의 상관관계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한 1953년 정전협정의 약속을 무시하였으며 1970년대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휴전선에서 계속된 미국의 군사적 압박은 북한으로 하여금 국방공업의 발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경제와 군사의 동시건설. 60년대 이후의 북한경제노선은 이렇게 보아야 한다. “경제와 군사의 병진노선”은 북한당국이 주장하는 ‘선군정치’를 통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북한당국의 경제-군사 병진노선에 의해 민간경제의 성장세는 조금씩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980년대 말에 본격화된 소련연방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의 붕괴는 북한을 더욱 곤경에 빠트렸다. 북한은 더 이상 과거 사회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방식의 무역을 할 수 없었다.

북한은 미국의 가중되는 군사-경제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본주의 진영과의 경제교류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경제교류의 본보기는 지난 1984년 합영법 제정을 들 수 있다. 국가적 당면 목표인 경제의 새로운 도약에 국력을 집중하기 위해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중국식 개방과 유사하지만 외국기술을 받아들이더라도 북한식의 독특한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바탕 위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북한식 개방정책의 핵심이다. 이러한 전략이 일차적으로 추진된 곳은 나진-선봉지역이었다. 북한은 1991년 12월,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의 연해주 지방과 많은 인적자원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만주일대를 후배지로 하면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도 마주하고 있는 해륙연계의 관문에 놓여있는 나진-선봉지구를 경제특구로 지정하였다. 1998년까지의 나진-선봉 특구에서는 중국․홍콩․일본 등으로부터 약 8억 달러의 외자유치 계약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 시기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 정도 외자규모를 가지고 나진-선봉 경제특구가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진-선봉 자유무역지구는 앞으로 대대적으로 개발하여 원래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개방을 수용하는 북한식 개방의 첫 시도인 나진-선봉 특구는 이후 북한이 신의주 특구, 개성공단 등을 추진하는데 많은 교훈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 90년대 제기되었던 북한식량난. 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은 기본적으로 전기와 식량 등의 공급부족에서 오는 난관이었다. [자료사진 - 곽동기]
그러던 중 1995년과 1996년에 북한지역 전체에 걸쳐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홍수는 북한경제를 더욱 힘든 상황으로 내몰았다. 2년간의 수해로 인해 북한의 대다수 농경지는 유실되어 식량난이 발생하였고 탄광시설은 침수되어 석탄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렇게 되자 석탄을 원료로 가동되는 화력발전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전력과 석탄의 부족을 야기시켜 전반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들 에너지 시설의 가동률 저하는 북한산업 전반의 침체를 가져왔으며 북한경제의 경색국면은 더욱 심각해져 갔다. 이러한 90년대 중반기를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라 일컫는다.

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은 본질적으로 식량과 전기의 공급난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북한은 전력문제를 해결할 3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강의 흐름을 변경시키는 대규모 수로공사를 통해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유역변경식 대형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며 둘째로 지역의 특색에 맞는 중소형 발전소를 널리 보급하여 각 지역마다 전기의 자급자족을 이루고 마지막으로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는 대형발전소를 새로 건설하기 보다는 기존 발전소의 설비를 보수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중소형발전소의 건설은 수량이 풍부한 중소하천과 관개수로가 많고 산악지형이 많아 강 흐름의 높이 차가 큰 북한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사례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1998년 한해 약 5000여개의 중소형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였으며 이 중 자강도에서만 97년과 98년, 44000kw의 발전용량을 건설하여 전기를 자체로 해결하였다고 한다.

북한당국은 자강도에서의 이러한 성과를 “강계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북한 사회에 널리 선전하였다. 전력 등의 산업핵심부문을 비롯한 각계의 노력에 힘입어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였음을 선언하고 1998년에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목표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2000-오늘날)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2002년도에 신의주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경제협력에 나서면서 개성공단을 비롯한 각종 협력사업을 추진하였다. 개성공단은 남북경제협력방식으로 북한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단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남측 사업자가 공단개발은 물론 각종 기반시설(용수, 전력, 통신, 에너지 등)을 건설하고, 남측이 임명한 이사장이 공단을 실질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방식이다. 개성공단의 개발은 한국 투자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개성공단을 두고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은 2005년 핵보유선언에 이어 2006년 10월 9일, 지하핵시험에 성공하면서 핵을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인정받았고 2009년 5월 25일에는 두 번째 지하핵시험을 단행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의 대열에 진입하였다. 또한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광명성 1호라는 인공위성을 발사한 데 이어 2009년 4월 5일에는 1998년보다 훨씬 계량된 형태의 “은하2호” 추진체를 발사하여 인공위성 “광명성2호”를 우주로 진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경제는 1999년 이래 2005년까지 7년 연속 (+) 성장세를 기록하였으며 2005년 북한 경제는 실질 GDP 기준 3.8%의 성장세를 보여 성장 폭도 2003년의 1.8%보다, 2004년의 2.2%보다 더 확대되었다고 한다.

<표> 북한의 산업별 성장률

(단위 : %)

 

북 한

’05

’06

’07

’08

’09

농 림 어 업

5.0

-2.6

-9.4

8.0

-1.0

광 공 업

4.4

0.9

0.7

2.5

-2.3

광 업

3.5

1.9

0.4

2.4

-0.9

제 조 업

4.9

0.4

0.8

2.6

-3.0

(경 공 업)

( 3.9)

(-0.6)

(-1.7)

(1.3)

(-2.1)

(중화학공업)

( 5.4)

( 1.1)

( 2.3)

(3.2)

(-3.5)

전 기 가 스 수 도 업

4.4

2.7

4.8

6.0

0.0

건 설 업

6.1

-11.5

-1.5

1.1

0.8

서 비 스 업

1.3

1.1

1.7

0.7

0.1

(정 부)

( 0.6)

( 0.8)

( 1.8)

(1.8)

(0.3)

(기 타)

( 2.9)

( 1.8)

( 1.5)

(1.7)

(-0.8)

국 내 총 생 산 (GDP)

3.8

-1.1

-2.3

3.1

-0.9

출처 : 한국은행 “북한경제성장률 추정결과”, 2005-2009


그러나 2008년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한미공조에 기초한 대북압박정책을 구사하고 있어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협력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 있다. 한국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북한경제는 2006년과 2007년, 2009년에 (-) 성장을 면치 못하였는데 주로 한국은행 측은 농림어업 작황이 줄어든 해에 GDP 수치도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

90년대 이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북한경제는 이명박 정부 집권으로 다시금 난관이 예상되지만 북한당국의 주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북한은 2009년에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단행하면서 경제전반이 정상궤도를 찾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2010년 신년공동사설에는 이례적으로 “인민생활의 결정적 전환”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남북 사이에 정반대의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결속지점으로 삼은 10월 10일 당창건 기념일이 이제 지났다. 북한경제는 과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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