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연재를 마치며

이번 연재를 끝으로, 학업과 매주 글쓰기를 같이 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경험도 없는 제 글을 연재하게 해 준 통일뉴스에 감사드리고, 통일뉴스에 연재를 한 것이 더없는 영광이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로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했고, 통일뉴스 독자님들께서도 어린 제게 과분한 격려와 관심 보여 주셔서 뭐라고 감사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으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도움을 주신 통일뉴스와 통일뉴스 독자님들께 보답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저를 통일뉴스에서 연재할 수 있도록 추천을 해 주신 김양희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앞으로는 스웨덴을 포함한 외국 언론의 기사 중에서, 남북한과 관련된 기사를 중심으로 가능한 객관적인 번역 기사를 보내 드리면서 실질적인 통신원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번역 실력이 완벽하지는 못하고, 전문기자가 아니다보니 부족한 점이 많아도 통일뉴스와 독자님들께서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능한 원문을 같이 보내고 원문을 살리려고 노력하겠지만, 경우에 따라 제 판단이나 생각도 덧붙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 드리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통일뉴스와 독자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 이하영

공부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긴 스웨덴 수업

▲각종대회및 응시 등 학교의 행사를 알리는 게시판. [사진-이하영]
우리 학교는 일반적인 스웨덴 학교의 기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시험도, 숙제도 흔치 않으며 7학년의 경우에는 시험이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일주일에 시험을 두 개 이상 치르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는 것을 명시해 두고 있다. 이 지역 중학교 중에서는 그나마 공부를 많이 하는 곳이라는데, 대체 어딜 봐서 그렇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조금 과장하면 공부하는 시간이 쉬는 시간보다 더 짧은 것 같다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과목도 몇 개 되지 않는다. 필수 과목인 스웨덴어·영어·수학을 제외하면 SO(사회과학, 역사, 종교 등)와 NO(화학, 물리, 생물 등)·예체능 정도인데, 그 과목들 중 여태까지 숙제를 받아 본 것은 영어와 종교, 물리 정도에 불과하다. SO와 NO는 한 학기에 단 한 개의 과목만을 공부하기 때문에 사회와 역사와 종교를 한꺼번에 배우는 일은 없다. 딱히 붙잡고 공부해야 하는 과목은 기껏해야 서너 개 정도일까?

하지만 가끔 학생들의 골머리를 썩게 만드는 숙제를 내 줄 때도 있다. 평소에 숙제가 거의 없기 때문인지 한 번 내 줄 때는 아예 작심을 하고 본전을 뽑으려고 든다.

예를 들어 전학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영어 시간에 받은 숙제는 나만의 추리소설을 써 오라는 것이었다. 일바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은 울상을 지었지만, 나는 이 숙제를 일종의 기회로 여겼다. 우리 학교에는 영어특별반과 체육특별반이 있는데(그래서 우리 학교에는 목발을 짚고 다니는 애들이 많다), 영어특별반의 경우에는 일부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나는 그 반에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7학년부터 원서를 넣어야 하는 규칙이 있어 학기말에 전학을 간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숙제를 열심히 해서 탁월한 작품을 제출하면 선생님이 기특하게 여겨 추천을 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제대로 숙제를 해 보기로 결심했다.

기간은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겨우 3일이었다. 영어 선생님인 엘리자베스가 교정을 해 주면 좋았겠지만, 엘리자베스는 매주 월요일에 오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내 힘으로만 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야 했다.

숙제 - 나만의 영어 추리소설 쓰기

▲ 졸업생들이 만든 작품.[사진-이하영]
종이 대신 노트북을 앞에 두고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세상의 모든 추리소설 작가들이 정말 존경스럽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다.

나는 무작정 플롯을 짜기 시작했다. 내가 여자니까 주인공은 표현하는 것이 쉬울 여자로, 내가 가보지 못한 장소에 관해 쓸 수는 없으니 배경은 학교, 일어난 사건은 가장 흔한 살인, 살인의 이유는 당연히 불타는 복수심으로 정했다. 눈에 보이는 이야기를 만족스러울 만큼 이리저리 꼬고, 일반적인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판단이 가능할 트릭도 넣었다. 영어로 소설을 쓰는 법은 한국어와 매우 달라서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써 보니 의외로 간단했다. 문법이나 맞춤법은 오히려 영어가 한국어보다 백배는 쉽다. 잘 모를 때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영어책을 옆에 두고 비슷한 상황을 찾아서 흉내 냈다.

하지만 3일 동안 추리소설 한 편을 다 쓴다는 것은 역시 무리한 계획이었다. 나는 3일 내내 밤낮 글쓰기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것도 마지막 날은 한밤중에 쓰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갈 시간이 될 때까지 한 잠도 잘 수가 없었다. 그 고통의 결과는 A4 용지 27장의 빽빽한 글이었다.

반쯤 졸면서 첫 수업을 마치고 학교 도서관에서 프린트를 했다. 도서관의 컴퓨터와 복사기는 학교 공부와 관련되어 있다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드디어 영어 시간이 되고, 가장 먼저 숙제를 넘긴 나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은 ‘참 잘했어요!’였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그들은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특히 내 앞에 앉아있는 덩치 큰 남자아이 호아칸은 대놓고 ‘너 뭐냐?’라고 묻기도 했다. 뭐긴 뭐야? 인간이지. 미친소일까봐서?

한 가지 의외였던 것은, 나를 제외하고는 숙제를 제시간에 제출한 것이 단 네 명 뿐이라는 것이다. 선생님 역시 별로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왠지 열성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린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스승이라기보다는 친구라는 느낌이 더 드는 스웨덴 선생님들

▲ 학생들이 만든 작품.[사진-이하영]
하지만 나의 ‘숙제 홀릭’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의 SO 과목은 종교였는데, 시험이 끝나자마자 굉장한 숙제가 주어졌다. 현재 배우고 있는 성경과 유대교에 관해 직접 자신만의 ‘예수 그리스도의 책’을 만들라는 것이다.

숙제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세하게 써 놓은 안내서도 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 중 하나였다. 안내서의 마지막에는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라.’라는 문장이 써져 있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즉 나는 이 모든 내용을 3개 국어, 한국어·스웨덴어·영어로 쓸 예정이었다.

어쨌든 무엇을 하라는 제한은 없었다.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만 들어간다면 두루마리 화장지에다가 숙제를 하건, 100장짜리 논문을 쓰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스웨덴 학교가 정말 좋다. ‘원고지 몇 장’처럼 틀에 박힌 것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인 나로서는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일단 스웨덴어로 된 성경을 빌려와서 신약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다음에는 목차를 작성하고, 주요 도시와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를 그렸다. 전체적인 테마는 ‘책’이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익숙한 주제이기도 하고, 목차를 정리하고 서문을 쓰는 등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물론 할 일도 그만큼 많았다. 특히 중요한 단어에 주석을 달고 자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SO의 선생님은 내 mentor(실질적인 의미의 담임, 부모님이나 학생과의 상담을 맡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생님)인 이다(Ida)여서, 훌륭한 학생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적지 않았다. 나는 스웨덴에 온 이후로 또래 친구들보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스웨덴의 선생님들은 스승이라기보다는 친구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만큼 직접 부딪혀 보면 나쁘지가 않다. 학생이 일방적으로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다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확실하다.

스웨덴의 시험 문제는 단답형이 아닌 서술형

나는 우리 학교의 수학 겸 NO 선생님인 망누스(Magnus)의 수업을 좋아한다. 속사포처럼 말하는데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가끔 던지는 농담도 배꼽이 빠지게 우습다. 가르치는 과목이 아이들의 혐오 1, 2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그다지 인기 있는 선생님은 아닌 것 같지만, 설명을 아주 쉽게 하는 점이 좋았다. 특히 한국 학원에서 배우면서 그냥 외우고 지나갔던 함수식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예로 들어 하는 설명은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내가 속한 7B반은 이번 학기에 물리를 배우고 있다. 이 과목의 숙제는 교과서의 페이지를 읽고 분석을 해 오는 것인데, 종이에 써 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머릿속에 넣어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다음 시간에 läxföhör이라는 일종의 쪽지시험을 친다. 질문은 서너 개 정도이고 시험이라는 부담은 전혀 없다. 애초에 시험이라고는 해도 7학년까지는 성적표도 없으니 걱정할 아이들도 없기는 할 것 같다.

스웨덴의 시험 문제나 교과서의 문제 중 특이한 점 한 가지는, 하나같이 서술형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수학마저도 그렇다. ‘왜?’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단답형으로 대답 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나는 여태까지 본 시험에서 객관식을 본 적이 없다). 교과 과정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고 있어야 생각하고,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좋은 예로 종교 시험의 마지막 문제는 ‘왜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살 권리를 주장하는가? 종교적인 이유를 설명하라.’였다. 이 문제의 해답을 설명하려면 구약성서와 지리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냥 달달 외우는 것으로는 답을 내 놓을 수 없는 종류의 문제다. 물론 나처럼 스웨덴어가 부족한 학생들은 빙빙 돌려 설명할 수 있으니 시험지의 넓은 공간이 반가울 따름이다. 

내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 정말 좋은 숙제 

▲ 학생 휴게실내 영화관.[사진-이하영]
이런 스웨덴의 교육 방식은 두 번째 스톡홀름 테마 견학 다음 날의 ‘시험’에서도 드러난다. 시험이라기에 그 때 배우고 메모한 내용을 정리해서 제출하거나 필기시험일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우리들은 그 날 하루 종일 학급 앞에서 스톡홀름 주요 장소에 관한 발표를 준비했다.

아프다고 테마 견학에 빠졌던 두 남자아이는 결국 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일바만이 지하 교실의 컴퓨터를 차지하고 스톡홀름 시청에 관한 정보를 찾아야했다. 우리는 견학 당일 버스를 놓쳐서 시청을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찾아야했지만, 일바는 스톡홀름 토박이도 아니거니와 관심도 없었고, 나는 스톡홀름의 시청 꼭대기에 하나하나가 자동차 크기인 왕관 세 개가 달려있다는 것도 처음 안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내가 백과사전, 시청 홈페이지, 구글, 스웨덴어-영어 사전을 켜 놓고 열심히 정보를 찾으면 일바가 그것을 조리에 맞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니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들의 팀워크는 꽤나 좋은 편이었다.

마침내 발표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차례였다. 선생님들이 다 모여 있어서인지, 앞에 나온 남자아이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교실에 달려 있는 프로젝터와 컴퓨터,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서 꽤나 훌륭하게 발표를 끝마쳤다.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메모를 했다.

발표가 다 끝난 뒤에는 선생님들이 전체적인 평가와 조언, 개인적인 의견 등을 번갈아가며 말했다. 말을 할 때는 똑 부러지게 해라,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좋았다, 바닥만 쳐다보지 말고 관중을 보아라와 같은 내용이었다. 가장 마지막에는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술술 질문이 나오고 대답이 나오는 것을 보니 조금 신기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내 스웨덴어 회화는 부끄러운 수준이라 파워포인트는 내가 다루고 일바가 앞에서 발표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럭저럭 훌륭하게 시청에 관한 발표를 끝마치나 했지만 웬걸? 난데없는 벼락이 떨어졌다. 선생님이 스톡홀름 법원에 관한 발표는 왜 하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이다. 우리는 시청에 관한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법원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건성으로 휘갈긴 메모를 들고 뭇시선들 앞에 서게 되었다.

일바가 한 것처럼 준비가 된 발표도 아니었기 때문에 온 몸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고개를 들었고, 20쌍의 눈이 나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을 보자 숨이 막힐 것 같은 심정이었다.

최대한 어깨를 펴고 말을 또박또박 하려 노력하는 동안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선생님들은 내 스웨덴어를 칭찬했다(물론 아주 우스운 수준이었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내가 너무 선생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어쨌든 일바의 도움 없이 발표를 했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웠다.

숙제나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숙제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정해진 시간동안 억지로 끝내야 하는 지긋지긋한 골칫거리가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운 수준의 작은 성취감에 불과해도, 나로서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숙제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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