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스웨덴 언론에도 한국의 촛불시위 보도

100,000명이 미국산 쇠고기에 반대해 행진

토요일(5월 30일-편집자 주), 100,000명으로 추산되는 시위대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16차선 도로를 따라 행진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한 번 한국에서 팔리는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은 2003년, 미합중국에서 광우병이 기정사실화되기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였다. 토요일에 이루어진 시위는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을 시작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결의안에 반대하는 일주일간의 시위가 절정에 달한 날이었다. 결의안은 수입을 재개하기 위하여 이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12월 선거에서 기록적인 득표수로 당선되었지만, 자국민의 광우병에 관한 공포를 과소평가 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위대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는 시민들의 분노를 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8-05-31
Svenska dagbladet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했지만,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 식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은 외국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당신의 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냐고 물었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당신의 나라는 민주국가냐고 물었을 때, 국민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민주국가라고 대답하고 싶다. 당신의 나라는 분단이 되었냐고 물었을 때, 비록 지금은 갈라져 있지만 평화통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쓴다고 대답하고 싶다. 당신 나라의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냐고 물었을 때, 그 분은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힘쓰는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그런 질문에 긍정적으로만 대답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왜일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대한민국을 ‘My beautiful homeland Korea’라고 칭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제까지 ‘나는 한국인이야!’라고 당당하게 받아쳐왔는데...

▲ 스웨덴 신문의 '미 쇠고기 촛불' 기사.[자료-이하영]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와 실질적인 국력에 비해, 그런 사실이 외국 사람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미국인은 대체적으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분할 줄 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스웨덴에서는 아시아인들을 모두 뭉뚱그려버린다.

그 중에서 한국은 반쪽으로 뚝 갈라진 콩알보다 작은 반도 국가이고, 북쪽은 핵무기 만드는 나쁜 나라, 남쪽은 가끔씩 백화점과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 한복판의 문화재가 불타버리는 괴상한 나라라는 정도의 인식이 전부이다. 딱 그 정도일 뿐더러, 그 정도조차도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름도 생소한 나라의 사정에 별 관심을 쏟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나는 내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 중국인 일본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한국인이야!’라고 당당하게 받아쳐왔다.

이번 광우병 사태와 촛불 집회로 대한민국이 얼마나 더 유명해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시위와 시위 진압이 이 상태로 유지되고 예상하지 못한(또는 충분히 예상되는) 불상사라도 발생하여 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된다면 내 소개에 몇 줄이 더 추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가끔씩 백화점과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 한복판의 문화재가 불타서, 기사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불쌍한 전 세계 언론기관과 기자들을 도와주는 인도적인 나라입니다. 시내 한 복판에서 10만 명이 불을 밝혀 시위를 하기 때문에 야경이 아름답고, 그런 시민들을 방패로 후려치고 발로 짓밟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당당한 경찰들만 있는 나라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분노한 까닭은 

나는 광우병에 관한 것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밖에 모르고, FTA 체결을 포함하여 광우병이 우려되는 소를 수입하는 일로 인해 대한민국이 어떤 이득을 얻게 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인 데다, 미합중국이 팔아먹지 못해 저리 안달이니 엄청난 국가적 이권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위에 참여한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도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변형 프라이온이라거나 30개월 어쩌고저쩌고 어려운 말 들먹이지 않아도,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미합중국과 비열한 거래를 했다는 것 정도는 바보가 아니면 알 수 있다.

광우병의 우려도 심각한 문제겠지만 미합중국에 질질 끌려 다닌다는 굴욕감과 함께, 미합중국 앞에만 서면 슬슬 기는 우리 대통령과 정부의 당당하지 못한 모습들이 학생들을 더 분노케 하는 것 같다.

집에 불이 났다는 것은 온갖 논리적 근거를 들면서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호들갑 떨며 말해주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10만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서, 무장한 전투경찰이며 특공대에게 비무장으로 저항하는 이유가 단지 광우병 때문일까? 광우병 사태는 수많은 계기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정부는 내 의지와 주관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표현하며 살고 싶다는 너무나 당연한 중·고등학생들의 요구를 비난하기만 했다. 학생들이 공부나 할 것이지 왜 나와서 쓸 데 없는 짓 하냐고, 거기서 더 하면 내신 떨어트리겠다고, 그러니까 당장 집에 돌아가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그 정도의 협박으로 돌아갈 학생들이라면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운하건, 의료보험이건, 수도 민영화건, 광우병이건 오로지 자신의 목숨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을 뿐인 것이다. 학생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이런 일련의 상황을 만든 모든 사태들은 뒷구멍에 숨어 있는 ‘그들’이 원해서 발생한 것이지, 대다수의 국민과 학생들이 원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일까?

지금의 나에게 한국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돌아갈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고향땅일 뿐이다. 나는 직접적으로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또한 직접적으로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끼칠 수도 없다. 기껏해야 한국에서 자신의 나라와,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뿐이다. 제발 이번에는 어떠한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고, 방패로 사람들을 때리지 말라고, 군홧발로 짓밟지 말라고…….

정부가 국민을 해치지 않게 해달라고 바래야하는 내 처지가 한심하다. 인터넷 생중계로 그 아비규환을 보고 있자니, 정말 남이 볼까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대체 어떤 상황이어야 무장한(방패와 군화가 사람 잡을 무기라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알았다) 경찰 여러 명이, 비무장인데다 저항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여성 한 명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아 바닥에 팽개치고 군홧발로 짓밟을 수 있을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지만, 그 여성의 머리를 짓밟는 군홧발에는 살의가 담겨 있었다. 촛불로 전투경찰을 지져 죽이거나 태워 죽이겠다고 덤비지도 않았을 텐데 왜 그래야만 했을까? 대체 어떤 변명이 그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권투경기에서도 등을 보이면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수건을 던지면 그것으로 경기를 끝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중재해 줄 심판조차 없을뿐더러, 여차하면 심판조차 두들겨 팰 기세이니 답답한 일이다. 등을 보이며 저항을 포기한 채 피하는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구타당하다 못해 도망가는 비무장 시민을 쫓아가서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것이 경찰이란 사람들이 할 일인가?

넓은 의미에서 시민을 구타하는 경찰이나, 맞아서 다치는 시민이나 모두 피해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일까?

내가 내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고, 사회 시간에 분쟁에 관한 이야기만 나와도(한국의 일이 주제로 오를까봐) 마음을 졸여야 하는 이런 유쾌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 것은 누구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가해자는 지금 광화문에서 물세례를 받고 군홧발에 짓밟히는 사람들 중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지구본을 돌려야만 보이는 먼 나라에서, 시위 현장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제 마음의 후원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스톡홀름에서 이하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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