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프로젝트 테마 학습


▲ 현장 학습 출발. [사진-이하영]
새로운 학교에서는 색다른 테마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톡홀름 테마(Stockholms Tema)라고 하여, 몇 주에 걸쳐 스톡홀름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역사와 지리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얼마 전에 SofielundsSkolan에서도 스톡홀름 시내를 방문하여 수업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목표가 조금 더 큰 프로젝트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장학습 당일, 일바는 다른 곳에 사는 아빠를 만나러 간다고 오지 않았다.
집합 장소인 국기게양대 앞에 가 보니, 걱정했던 것처럼 나를 알아보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 멀뚱멀뚱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7학년이 다 지나가 버린 뒤라서(스웨덴의 학기는 한국과 반대이다) 친한 친구들과 끼리끼리 모여서 노는 탓이겠지만, 갑자기 외톨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날씬하고 예쁜 친구 일바. [사진-이하영]
처음 등교한 날에도 아이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일부러 피했었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대화를 빠르게 하고 줄임말을 많이 써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일바는 스웨덴 사람들도 알아듣기 힘들 만큼 빠르게 말한다).

MP3로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여자 아이 두 명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안토넬라(Antonella)와 마리아(Maria)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아랍계 여자아이는 자신들이 사촌 지간이고, 모두 스웨덴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마리아는 나처럼 스웨덴어 2(Svenska som andra språk: 제 2 외국어로서의 스웨덴어)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반가웠다.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Danderyd 역으로 가는 버스 안은 현장 학습을 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북적대고 소란스러웠지만, 손님들은 유쾌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 감라스탄에서 우연히 목격한 광경. [사진-이하영]
이번 현장학습은 스톡홀름 중앙역이 아니라 감라스탄(스톡홀름의 유명한 관광지이며, 인근에 왕궁과 국회의사당, 노벨 박물관 등이 모여 있다) 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함께 간 영어 선생님 카이사는 왕궁과 교회를 보기 위해서 그 곳에 내렸다고 설명해 주었다. 감라스탄은 탈린의 올드타운보다 길이 좁아도(전부 골목길이다) 조금 더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중세 시대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듯이 위생 관념이 엉망이라 악취가 코를 찔렀다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하다.

▲ 노벨박물관 앞. [사진-이하영]
가장 먼저 간 곳은 Stortorget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광장과, 왕궁 근처에 위치한Storkyrkan(큰 교회?)이었다. 이곳은 얼마 전에도 FBK(내가 다니던 예전 반)와 함께 온 적이 있기도 했지만, 바로 전 날 스톡홀름의 역사에 관한 글을 학교에서 읽었기 때문에 유명한 그림이나 동상을 보면 누구에게라도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내가 Storkyrkan에서 가장 좋아하는 ‘성 조지’의 동상(Sankt Görans staty; Saint. George’s statue)에는 아주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옛날 어느 나라를 지나가던 용사 성 조지가 아주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새끼 양 몇 마리와 함께 울고 있는 여자였다. 진부하게도 그 여자는 이 나라의 공주님이었단다. 모범적인 용사였던 성 조지는 공주님이 우는 이유를 물었고, 그녀는 이 나라를 괴롭히는 사악한 용이 제물로 요구했던 어린 양들이 다 떨어지자 제비뽑기 결과 자신이 제물로 바쳐졌다고 대답했다(현명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동양의 용과 심심하면 사람들을 괴롭히는 서양의 용과의 차이는 상당히 흥미롭다). 전 세계의 용감한 기사들이 모두 그러하듯, 성 조지는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출했다.

실제로 용을 무찌르거나 공주를 구출하지는 않았지만, 성 조지는 실존하던 인물이었고, 용을 무찌르는 대신 스페인 등지에서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그는 그것 때문에 목이 잘려서 죽었다. 스웨덴에는 성 조지를 기리는 기념일이 있다(이는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나 전설과는 다르게, 성 조지 동상의 제작자인 Bernt Nothe가 의미한 바는 조금 다르다.

말에 올라탄 채 악룡을 꿰뚫는 성 조지는 스웨덴의 왕이었던 스텐 스투레를, 악룡은 스텐 스투레와의 전쟁에서 패했던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1세를, 구출을 기다리는 공주는 스웨덴을 의미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Stadshuset(시청)의 지붕과 감라스탄의 Köpmangatan에는 성 조지 동상의 복제품이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Tipspromenad(질문지를 들고 해답을 찾아 돌아다니는 수업)

▲ 열심히 주어진 문제를 푸는 아이들. [사진-이하영]
교회를 방문한 뒤, 우리 반의 아이들은 세 명에서 네 명 정도로 조를 짜서 Tipspromenad(질문지를 들고 해답을 찾아 돌아다니는 수업)를 했다. 나와 같은 조는 안토넬라와 마리아였다.

예전 학교에서 숲으로 현장 학습을 갔을 때는 꼬마아이들도 풀 수 있도록 아주 쉬운 문제들만 있었고, 눈에 잘 띄는 표지판만 보고 따라가면 됐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선생님은 각 조당 지도 한 장과 문제지를 하나씩 주었고, 우리는 감라스탄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답을 찾아야 했다.

왕족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이라거나 성 조지 동상의 제작자 같은 경우에는 직접 가지 않아도 맞출 수 있는 쉬운 문제였지만, 나머지 문제들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어떤 거리에는 이런 사연이 얽혀 있는데, 이 거리의 몇 번지를 찾아 가서 그 손잡이를 찾아보아라. 손잡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거나, ‘1250년 스톡홀름의 피바다는 Stortorget 옆의 좁은 길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길목에 서 있는 어떤 집에서는 귀족들의 목을 치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는데, 창문 주위의 장식들은 사실 그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모두 몇 개의 머리를 의미하는가?’ 따위의 질문이었다.
심지어 지도를 들고 10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내 스웨덴어가 능숙하지 않아서인지, 안토넬라와 마리아는 내가 하는 말을 쉽사리 믿지 않았다. 교회 안의 제단이 흑단과 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을 때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내가 몇 번이나 장담을 했는데도, 두 명은 여행자 안내서까지 확인해 보고서야 답을 써 넣었다.

▲ 왕궁 앞. 왼쪽에 멀리는 보이는 건물이 국립박물관이다. [사진-이하영]
▲ 왕궁 근위병. [사진-이하영]
그 날이 마침 스웨덴 국왕의 생일이라 왕궁 옆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국왕이 직접 나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 같았다. 나는 매년 돌아오는 국왕의 생일 같은 것은 집어 치우고 하던 일이나 계속 하자고 했지만, 안토넬라와 마리아는 차라리 학교 공부 따위를 집어 치우고 행사나 보자고 난리였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아무도 안 하는데 왜 우리만 해야 해?’였다. 학교 공부에 소홀한 것이야 대부분 스웨덴 학생들의 공통점이지만, 그래도 얼떨떨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7학년은 성적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일바는 영어 시험을 치면서 ‘성적 안 받으니까 그냥 장난 같은 거야.’ 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감옥 호텔에서의 점심 식사

Tipspromenad가 끝나고 집합장소에 모두가 모이자, 카이사(여자 선생님이다)와 올레(남자 선생님이다)는 우리를 지하철역으로 안내했다. 올레는 점심을 감옥에서 먹는다고 했다.
 
▲ 감옥 호텔. [사진-이하영]
뜬금없이 무슨 감옥인가 싶었는데, 옛날에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돈을 주고 감옥에서 잠을 자려고 몇 달 전부터 예약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니, 참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분명히 감옥보다는 호텔에 가까운 곳이었다.
새파란 잔디가 깔려 있는 커다란 건물 바깥에는 나무며 꽃이 우거져 있었고, 아래쪽 강줄기를 따라 만들어 놓은 산책로에는 유모차를 끌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건물과 나무가 만들어 놓은 그늘의 벤치에서 도시락을 꺼내다 눈을 들어 보니, 여자아이들이 모두 잔디에 자리를 펼치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도시락을 꺼내 든 채 잠깐 망설이던 나는 그 쪽으로 가서 비집고 앉았다. 한낮의 햇빛은 너무 밝고 맑아 눈이 부시다 못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저기, 있잖아. 이렇게 햇빛 비치는 데 있으면 얼굴이 탈 텐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아이들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입을 모아 말했다.
"당연히 까매져야지. 그래야 예쁘잖아."
여름만 되면 온갖 미백 제품과 자외선 차단제가 쏟아져 나오는 한국에서 살다 온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정말 햇빛을 좋아한다.
며칠 뒤 학교에서 만난 일바는, 겨울이 되면 머리카락 색도 진해지고 피부도 창백해져서 너무 싫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역시 미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른 것일까?

내 젓가락질 실력은 상당히 형편없는 편이지만, 친구들은 젓가락으로 주먹밥을 집어 먹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펑크 소녀인 엘비라의 표현에 따르자면, ‘나뭇가지 두 개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하단다. 나는 쌀밥을 포크로 먹는 너희들이 더 이상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한국에서는 ‘~릉’에 갈 때마다 무덤으로 소풍 가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거라고 친구들과 시시덕대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스웨덴에서도 몇 번이나 묘지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이제는 감옥에서 점심까지 먹고 있으니, 한국이나 스웨덴이나 야외학습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춤추는 친구들. [사진-이하영]
▲ 친구들과의 게임도 즐거웠다. [사진-이하영]
밥을 먹는 도중, 두 명의 여자아이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음악을 틀고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옷이 짧아서 다 보이니까 제발 빙글빙글 돌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워낙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스웨덴 아이들이라 다시 한 번 꾹 참았다.
그늘에서 밥을 먹던 남자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자 다들 둘러 앉아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단체로 모이면 늘 하는 그런 게임이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감옥’은 안으로 들어가니 프런트도 있는 별 세 개짜리 호텔이었다. 우리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호텔(?) 안에 마련된 박물관을 구경했다. 내 스웨덴어의 한계를 깨닫는 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일이지만, 호텔 직원이 과장된 동작을 곁들여서 하는 말들을 알아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겨우 몇 단어를 듣고 전체적인 내용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던지는 농담에 친구들이 자지러질 때도 멀뚱히 서 있어야만 했던 나는, 책만 주구장창 읽기보다는 듣는 것을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지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감옥시설도 좋고, 죄수들에게도 관대한 나머지 세계의 모든 죄수들로부터(심지어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까지도)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는 스웨덴이지만 기록들을 읽어보니 소름이 끼쳤다. 손목과 발목이 먼저 잘리고, 사지가 잘리고 눈이 도려내지고 혀가 잘린 뒤에야 목이 잘린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다음에는 아예 글자들에 시선을 주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 새 학교의 체육수업. [사진-이하영]
돌아오는 길에는 부모님 서명을 받아 온 아이들만 시내에 남았고, 나머지는 선생님의 인솔 하에 솔렌투나로 돌아갔다. 한 남자아이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스톡홀름에 있었음에도, 서명을 받아 오지 못해서 솔렌투나까지 간 뒤 다시 스톡홀름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명을 받아오지 못 했으니 하늘이 무너져도 못 간다는 카이사의 반응은 거의 우습기까지 했지만, 수업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선생님 책임이 되니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 학교의 체육 선생님이었던 잉겔라 역시 헬멧을 안 쓰고 스케이트를 타다가 다치면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강조하곤 했었다.

이번 현장학습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글만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스톡홀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역사와 지리를 배우는 과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서울 테마’ 같은 것은 없었다). 자신의 나라와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배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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