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에스토니아의 슬픈 역사

▲ 탈린의 올드 타운 입구. [사진-이하영]

유럽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어디일까?
모든 유럽 국가와 비교해 보지는 못했으나, 핀란드와 에스토니아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소련과 미합중국의 쌈박질 속에서 거저 얻다시피 한 성과라고 평가절하 했지만 세계 최대의 휴대폰 회사인 노키아를 키워낸 저력의 나라가 핀란드이다.
한국처럼 늘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시달리며 지배를 받았고, 독립한 지 백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한국이 발전한 과정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에스토니아 역시 핀란드와 비슷하게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살아왔으면서도, 자신의 말과 글을 지키면서 기어이 독립을 쟁취해낸 것이 한국과 비슷하다.
두 나라 중에서 특히 에스토니아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점들이 상당히 많다.
흔히 발트 제국(Baltic States)이라고 불리는 세 나라(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Estonia)는 한국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국가일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오래 전부터 독일, 스웨덴, 덴마크, 러시아 등으로부터 지배를 받아왔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과의 악연은 지긋지긋할 정도였는데, 이는 1991년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소련이 거기에 동의한 것이 단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소련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치사한 나라였다는 말이 되겠다.
1228년 에스토니아의 대부분은 독일 기사단이나 리보니안 연방(Livonian Confederation) 에 합병되어 1562년까지 지배가 이어졌다.
그 후 에스토니아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게 된다.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와의 유쾌하지 못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은, 스웨덴이 1721년 제정 러시아에게 에스토니아를 양보하면서부터였다.
1918년 에스토니아의 독립이 이슈화 된 이후, 에스토니아 독립전쟁(Estonian War of Independence)이 발발했다.
1917년 10월 혁명이 발생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당시의 러시아 상황은, 황제를 따르는 군대와 민간인들의 집합인 백위군과 공산주의자들인 적색군 사이에서 벌어진 적백내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 에스토니아 전통 의상. [사진-이하영]
1920년 2월 2일, 소련은 일천오백만 루블을 보상하는 조건으로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영토를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타르투 조약(Treaty of Tartu)을 체결했다.
하지만 소련은 이 때 약속한 것들 중 몇 가지를 지키지 않았다.
그 중 한 가지는 에스토니아 두 번째 도시 타르투(Tartu)에 있는 타르투 대학의 박물관 소장품들을 오늘날까지도 반환하지 않고 있는 것인데, 이 부분은 프랑스가 ‘떼제베’를 팔아먹기 위해 한국에서 약탈해 간 문화재를 반환하겠다고 사기를 치고 나서 아직까지 되돌려 주지 않는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물론 소련이 지키지 않은 가장 중요한 약속은, 바로 에스토니아의 영토를 영구적으로 포기하겠다는 대목이었다.
제 2 차 세계대전이 시작 된 뒤 에스토니아는 또다시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이는 많은 나라를 분노케 했다고 한다).
이어서 나치의 지배를 받았으며, 1944년부터는 다시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런 일련의 끔찍한 전쟁(피지배)들에서 에스토니아는 전체 인구의 25%를 잃었다.
이는 소련에 의해 카자흐스탄이나 시베리아 등지로 강제 이송된 사람들을 포함한 수치이긴 하나 정말 대단한 숫자이다.
강제 이주 역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송된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한민족들의 수난과 너무나 비슷하다.
에스토니아는 1991년 8월 20일,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던 소련이 붕괴한 영향을 받아(틈을 타?) 독립을 선언했다.
또한 이웃 나라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군중들이 집결해 노래 한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은 스웨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다.
같은 해 9월 17일 에스토니아는 UN에 가입했고, 2004년 5월 1일에는 EU에 가입했다.
오늘날 에스토니아는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UNFCCC(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규약)에도 참여하여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탈린 관광 출발

▲탈린의 컬러풀한 트램. [사진-이하영]

에스토니아는 지리상으로 스웨덴과 무척 가깝다.
스톡홀름에서 발트해를 가로질러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까지의 거리가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최북단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짧다.
지도상에서 스웨덴은 길고 좁은 모양을 띠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모양을 ‘긴 양말’이라고 표현한다.
양말만 좀 짧다 뿐이지, 심지어 국토의 조건조차 스웨덴과 에스토니아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가깝고 비슷한 점이 많다.
스톡홀름과 발트해 연안의 나라들로 운행되는 크루저는 노선이 아주 많은데, 그것은 단순히 관광 차원이 아니라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이 EU에 가입하면서 서로간의 왕래가 엄청나게 늘어난 덕분이다.
수레까지 동원하여 짐을 잔뜩 옮기는 보따리장수도 쉽게 눈에 뜨이니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장수와 다름이 없다.
EU 국가 간에는 관세가 없으며 출입국 심사를 하지 않는 관계로, 가격만 싸고 들고 올 힘만 있다면 무제한 사다 나를 수가 있다.
북유럽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친지나 주변 사람들이 놀러오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와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관광지로 많이 추천한다.
피요르드는 워낙 여정이 복잡하고 최소 3~4일은 구경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데다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가 무서워서 가기가 쉽지 않지만, 에스토니아나 헬싱키는 천혜의 절경을 구경시켜 주면서(스톡홀름 항구를 빠져 나가는 한 시간 정도의 경치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잠도 재워 주고 가격까지 비싸지 않은 크루저 덕에 많은 추천을 받는 것이다.
이번에 아빠가 모시고 온 손님들의 일정과, 새로운 학교 EdsbergSkolan으로 전학을 가기 전 이틀간의 공휴일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우리 가족들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관광을 떠나게 되었다.

먹으러 떠난 관광

▲전통의상을 입은 노점상. [사진-이하영]
우리 가족과 두 명의 손님들은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짐을 들고(지고?) 함께 집을 나섰다.
왕복 이틀 동안 배 안에서 먹을 음식들과, 날씨가 워낙 들쑥날쑥하여 겨울 외투까지 챙겨간 덕분이었다.
우리가 이틀 밤을 보내야 할 로만티카호는 헬싱키행 크루저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우리 가족이 선실 한 개를 쓰고, 한국에서 온 손님인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 주영이와 주영이의 어머니가 또 다른 선실을 썼다.
우리는 마치 먹으러 온 사람들처럼, 선실 안에서 지은 밥에다 고추장을 비벼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먹었냐고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선실에는 전기 콘센트가 몇 개씩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우리는 비장의 무기인 소형 전기밥솥을 들고 갔었다.
밥만 지어 먹었느냐?
어차피 밥과 김치 냄새로 배 안을 진동시킨 김에 컵라면도 먹었다.
컵라면은 어떻게 먹었냐고 궁금한 분들이 또 있을 것 같다.
짜잔!
전기주전자도 가져갔다.
밥솥과 전기주전자와 트렁크 두 개, 컵라면 한 박스, 쌀 한 봉지, 김치와 고추장을 포함한 각종 반찬통들과 과일, 외투와 카메라 가방에다 내가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까지 들고 갔으니 다시 생각해 봐도 미련하기 짝이 없는 출발이었다.
우리들끼리 심슨 가족과 비교하면서 배를 잡고 웃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 모습들이 짐작이 갈 것으로 믿는다.
유럽에는 물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현지인들도 가급적 사 먹는 것을 피한다.
우리도 유럽인들처럼 빵만 대충 먹어도 살 수 있다면 짐을 바리바리 이고 지고 여행을 떠나는 불상사가 없었겠지만, 고추장과 쌀밥 안 먹으면 힘을 내지 못하는 민족이니 어떡하랴?
돌아올 때는 컵라면 한 박스와 쌀 한 봉지를 거의 먹어치워서 짐이 많이 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의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올 때의 사단은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고풍스런 탈린의 올드 타운

▲노천카페에서 햇빛을 즐기는 유럽 관광객들. [사진-이하영]

다음 날 오전 9시 30분에 로만티카호는 정확히 탈린에 도착했다.
항구에 내린 직후의 감상은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헬싱키보다 조금 더 황량했다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척에 있는 나라이면서도 스웨덴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국에서 유행했을 것 같은 촌스런 옷을 파는 가게들이 쉽게 눈에 띄었고, 주위에는 많은 여행객들로 어수선했으며, 기대했던 예쁜 건물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안내소에서 받아 온 지도를 펼치니, 탈린에 가면 꼭 가봐야 한다고 인터넷에서 적지 않게 봐왔던 익숙한 이름 ‘Old Town’이 눈에 들어왔다.
올드 타운은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여서, 내리자마자 시가 전차(트램)나 버스를 타 보려고 했던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스톡홀름에는 다른 북유럽 국가에 비해 트램을 보기가 힘들다.
딱 한 개의 노선만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탈린의 트램은 여러 가지 특이한 색깔로 칠해져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조금 걸어가니 교회로 보이는 뾰족 지붕과 오래 된 건물들이 빌딩들 너머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새로 지은 빌딩들 사이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이질적이었다.
스톡홀름은 새로운 건물과 오래된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어서 익숙해지면 이상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지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건물과 몇 백 년이 된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우리 학교 건물만 해도 구관은 100년 전, 신관은 6년 전에 지어졌지만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탈린의 올드 타운은 그 경계선이 너무 명확해서인지, 마치 옛날 마을을 뚝 떼어다가 현대의 도시에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스톡홀름에도 이와 비슷한 명물 감라 스탄(Gamla Stan; 스웨덴어로 오래된 지역이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탈린의 ‘Old Town’이 훨씬 크고 구경하기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같이 오래 되고 낡았으면서도 우아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사이로, 갑자기 넓은 길이 나타나면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관광객들이 마술처럼 나타났다.

▲ 엘비스 프레슬리 포즈를 익살스럽게 잡아 준 노천카페의 아저씨. [사진-이하영]

길게 늘어서 있는 꽃집들과 노천카페에서는 향기로운 꽃내음과 커피향이 코끝에 기분 좋게 맴돌았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길거리에는 작은 노점상들이 나와 있었고, 거기에서 팔고 있는 계피와 아몬드를 즉석으로 볶은 것은 비싸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올드 타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또 한 가지는 수많은 호박 가게이다.
물론 먹는 호박(pumpkin)이 아닌 광물 호박(amber)으로, 올드 타운에서는 가는 곳마다 호박으로 만든 장신구를 파는 곳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읽은 책에서는 탈린이 매우 추운 나라로 묘사되어 있었지만 외투를 가지고 온 의미가 없을 만큼 날씨는 따뜻했다.
그런데도 팔고 있는 옷들은 하나같이 털로 만든 데다, 심지어는 반팔 상의마저 털로 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항구에서부터 봤던 커다란 교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옆에는 스톡홀름의 Stortorget(‘큰 광장’,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즉위 이후 스웨덴 귀족들의 목을 닥치는 대로 쳤던 곳)가 무색할 정도로 커다란 광장이 있었다.
뻥 뚫려 있는 광장 주변에는 크고 작은 노천카페와 식당들이 모여 있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던 우리 일행은 주변을 조금 둘러 본 뒤 점심을 먹기로 합의했다.
광장에 오기 전에 보아 뒀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레스토랑은 1층과 지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내가 본 레스토랑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멋진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기에 파스타 종류를 생각하고 있던 우리들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이 나열된 메뉴가 나오자 창피함을 무릅쓰고 식당을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항상 그래 왔듯이 악역은 내가 도맡아서 해야 했고, 그 날도 아빠 엄마가 떠밀어서 무섭게 생긴 여직원에게 그냥 나가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한 것은 나였다,
그 다음 ‘선택’은 선택을 당한 것이었다.

▲ 호객행위를 하는 남성. [사진-이하영]

호객꾼에게 호객행위를 당했다는 의미이다.
감동적일 만큼 순진하게 생긴 젊은 남녀는, 정중하고도 진지하게 자기네 레스토랑이 얼마나 음식이 맛있고 우아하며 가격까지 싼가에 대해 우리를 설득했다.
그 설득에 넘어가서 들어간 레스토랑은 독특한 원탁 식탁과 함께 음식도 괜찮았지만, 물 인심이 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 언제나 살인적인 물 값을 치러야 한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물 값뿐만 아니라 자릿세도 내야하고, 자릿세 내기 싫으면 서서 먹어야 하니 참으로 살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야 묻지 않아도 컵에 물을 가득 따라 주고, 스웨덴도 대체로 물은 공짜로 주는 나라(만약 공짜로 주지 않는다면 화장실 세면대에서 그냥 떠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이니 물 값을 낸다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건물들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간판과 그림들이었다.
간판 하나하나가 모두 달랐고, 모양 역시 독창적이고 특이했다.
어떤 카페는 나무 창문 전체를 여성의 그림으로 채워 놓기도 했다.

진정한 관광 기념품을 사다

▲ 기념품 가게의 아름다운 에스토니아 여성들. [사진-이하영]
출항 시각이 가까워 오자 기념품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가지 간단한 것을 구입하긴 했지만, 우리의 진정한 기념품(?)은 이런 자잘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항구로 걸어오는 도중 ICA와 비슷한 큰 규모의 슈퍼마켓에 들르게 되었다.
엄마와 아줌마는 야채 코너에서 배추의 가격표를 본 뒤 너무나 싼 가격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서 우리의 짐에는 배추 두 포기가 추가되었다.
스웨덴에서도 배추를 팔기 때문에 김치를 담가 먹지만, 배추의 가격은 기가 막히도록 비싸다.
거기 비하면 에스토니아의 배추는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었다.
그 외에도 치약·과자·음료수·사탕 등 에스토니아의 저렴한(?) 상품에 감탄한 우리들은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마구 주워 담았고, 마치 처음 이사 온 사람들 마냥 많은 짐을 들고 스톡홀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특히 주영이네 반 아이들에게 돌릴 선물을 고민하고 계시던 아줌마는, 에스토니아산 특별한 과자와 초콜릿의 가격이 너무 싸고 좋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그 결과물로 또다시 우리의 짐은 한 무더기 더 늘어나게 되었다.
아빠는 등에 메고 어깨에 걸고 양손에 들고 걸었고, 다들 끌고 밀고 지고 크루저로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전쟁통의 피난민을 보는 것 같아 우스웠다.
여자들이 마구 사대는 모습을 기가 막힌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던 아빠도 스웨덴에 비해 너무나 싼 가격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별다른 불평이 없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느라 전부 초죽음이 되어 크루저에 도착해 보니, 크루저 타는 바로 앞에 규모가 훨씬 큰 슈퍼마켓이 있었고, 슈퍼마켓 입구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크루저 안에까지 끌고 들어갈 수 있는 카트가 준비되어 있어서 모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동화 속 나라 같은 탈린의 올드 타운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북유럽의 베니스라는 스톡홀름에 익숙한 우리 가족도 탈린의 올드 타운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외세로부터 독립하여 유럽연합의 가장 모범적인 발전 모델의 하나로 불리는 에스토니아와 친절한 에스토니아 국민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스웨덴 이야기'가 최근 몇 회에 걸쳐 하루 이틀 늦게 연재된 점 양해를 구합니다.  '스웨덴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

<참고> 에스토니아의 역사

KYLLIKE SILLASTE의 Conquest and Survival: An Outline of Estonian History
영문, 스웨덴어 Wikipedia
http://nordicsite.com/esthist.html (Estlands Historia)
http://www.infoplease.com/ce6/world/A0858036.html (infoplease)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