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한국 학교의 예체능 수업

▲다양한 그림. [사진-이하영]
기억해 보면, 한국 학교에서의 예체능 수업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미술실이나 음악실이 따로 없었음은 물론, 피아노도 각 학년에 한 대 밖에 없었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리코더도 곧잘 연주했지만 하모니카, 멜로디언, 리듬악기처럼 몇 번 쓰고 처박아 둘 것들을 계속 사야 하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크레파스와 물감과 붓 같은 것을 들고 다녀야 하고(스웨덴은 학교에서 모든 학용품과 준비물을 챙겨 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수깡이며 지점토며 색종이를 계속 사들여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미술 수업을 싫어했다. 내 침대 아래에는 언제나 쓰다 남은 미술 재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걸핏하면 ‘과학 상상화 그리기’를 시켰는데, 공상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몇 년 동안 똑같은 그림을 색깔과 구성만 조금씩 바꿔서 그렸다. 그러고도 공상 과학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체육수업 역시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땡볕에 운동장에 나가서 달리기를 하는 것은 고문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체육 수업이 다른 수업들 중간에 끼어 있어서, 모두가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머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했던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학생이었다면 이런 불평불만은 쏙 들어갔을 것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예체능 과목이 그리워질 만큼 공부에 시달려야 했을 테니 말이다.

스웨덴 학교의 성적 평가 방식

스웨덴 학교는 성적을 평가하는 방식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학교를 졸업하려면 스웨덴어․영어․수학은 반드시 기본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어 점수가 미술 점수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MVG, VG, G, IG 라는 네 가지의 성적밖에 없고, 수학을 MVG를 맞건 체육을 MVG로 맞건 계산되는 점수는 똑같다.

결국 주요 과목들에서 만점을 받아도, 예체능 과목을 소홀히 했다가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과목 성적을 유지하기도 바쁘니, 예체능은 그냥 살살 넘기면 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최근에 이런 느슨한(?) 성적 시스템을 바꾸려는 조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예체능의 비중이 그리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은 미술실이며 음악실에 투자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창의적인 흉내 내기 미술 수업

▲ 미술실. [사진-이하영]
내가 학교에 입학한 얼마 후, 잉겔라는 예체능 수업을 듣고 싶은 사람을 모집했다.
음악, 미술, 체육처럼 평범한 것부터 요리, 목공, 재봉 등 별의별 과목이 다 있었다.
나는 냉큼 미술과 음악을 신청했다.
Sofielunds Skolan 일반 교실(스웨덴어로 수업을 하는)에 등교하는 스웨덴 아이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 엘레인과 미술실을 방문 했을 때는 조금 황당했었다.
상당히 넓은 교실 곳곳에 물감이며 지점토며 심지어는 도자기를 빙빙 돌려가며 굽는 도구까지 있었지만, 정작 학생들은 교실 안이 아니라 복도 한쪽 구석에 종이를 깔아 놓고 그림에 색을 입히고 있었다.
확대 출력된 명화를 옆에 두고 눈금을 그리는 것을 보니 모작을 하는 것 같았지만 웬걸? 완성된 작품을 보니 모작이 아니라 창작이었다.

▲창의적인 모나리자 그림1.  [사진-이하영]
▲창의적인 모나리자 그림2.  [사진-이하영]
왜 창작이라고 했는지는 사진만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습게도 창작 모나리자들은 눈썹 없는 미녀가 아니라 눈썹 없는 호머 심슨이 되어 있었고, 하나같이 일반적으로는 생각 할 수 없는 그림들이 미술실 주변 복도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한 모나리자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봤다면 기겁을 했겠지만, 적어도 내가 ‘과학 상상화’라고 그린 열댓 장의 똑같은 그림보다는 더 재미있어 보였다.
미술 선생님인 세실리아는 작업 중인 학생들을 돕느라 우리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적당한 크기로 오려진 천과 연필, 패러디 할 수 있는 그림이 가득 담긴 통을 앞에 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엘레인은 어슴푸레한 실루엣만 보이는 야자수를 택했다.
어릴 때부터 신화, 동화, 민화, 공상과학소설을 무차별적으로 읽어 댔던 나는 그 많은 사진과 명화들을 뒤지다가 아주 익숙한 그림을 찾아냈다.
숲속에서 뛰어 노는 님프들을 그린 그리스 명화였다.

아름다운 님프들의 머리에 닭 벼슬을 달아 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리기 시작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엘레인이 그림을 완성하고 자랑스러워 할 때까지, 나는 님프의 발 위치를 찾지 못해 끙끙대야 했다.
그것이 내 마지막 미술수업이었다.

음악선생님이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보 정명훈

▲ 정명훈의 사진이 걸려 있는 음악실. [사진-이하영]
그에 비하면 음악 수업은 아주 순조로웠다. 아직 스웨덴어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 태생의 음악 선생님 샬롯과는 의사소통이 자유로워 좋았다.
샬롯 이외에도 나이가 좀 많은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지휘자 정명훈이 프랑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음악실의 사진을 너무 좋아한다고 해서 더더욱 맘에 들었다.

재료들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다 아프던 미술실에 비해 음악실은 아주 깔끔했고, 피아노는 물론 드럼까지 있었다.
벽에 있는 큰 창문과,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장에 뚫려 있는 창문 역시 마음에 들었다.
바로 옆방의 소음이 조금도 들리지 않게 방음 처리가 되어 있다는 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도 꽤나 오랫동안 피아노를 쳐 왔지만, 그 어떤 학원도 방음장치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는 한 방에 세 명의 학생이 몰려 앉아 각자 다른 곡을 두들기기도 했다.

▲ 음악실의 드럼. [사진-이하영]
내가 들었던 수업은 키보드와 기타 연주법, 그리고 기본적인 코드 보는 법이었다.
건반이나 현이 있는 악기라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연주하는 것도 좋아하는 내게는 무척이나 신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연주하는 곡들도 잘 알려진 팝송이어서 다들 편안하게 연주했다.
처음으로 만져 보는 기타 덕분에 엄지손가락에는 물집이 생겼지만, 몇 년 만의 즐거운 음악 수업이라 아픈 줄도 몰랐다.

꼭 해 보고 싶은 목공 수업

▲ 목공실 수업 장면. [사진-이하영]
또 다른 과목 중 한 가지인 목공 수업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몹시 흥미로웠다.
어떤 수업인지 보기 위해 몇 명의 남자아이들과 함께 구 건물의 목공실로 향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얼마 전에 지은 신관과 오래된 건물인 구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반은 신관 중에서도 가장 끝부분에 있어 구관으로는 어지간해서 갈 일이 없었다.
목공실에 도착하여 커다란 캐비닛 위에 빼곡히 놓여 있는 나무로 만든 작품들을 보니 더더욱 목공 수업을 받고 싶어졌다.

그 작품들을 만든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과 선생님 한 분은 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본격적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원래 견학이 약속되어 있었던 것은 우리 반 남자아이 네 명뿐이었고, 나는 억지를 써서 따라 온 것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목공실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안쪽을 흘깃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목공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모든 연장들이 대충 시간만 때우는 학교 수업 수준이 아닌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망치로 못을 박고 톱질을 하면서 다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손가락이 생명인 바이올린이며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나로서는 목공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 정말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 문제였다. 그 자리에서 조금만 더 어슬렁거리면, 나를 쳐다보는 선생님의 표정으로 미루어 전기톱으로 나무판자를 톱질해 보겠냐는 제의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켜만 준다면 전봇대를 칼로 베어내라고 해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더 중요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계속 하기 위해서 꾹 참기로 했다.

목공이나 기술 같은 과목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스웨덴은 인건비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변기가 막혔다거나 하수도 파이프가 막혔다는 이유로 사람을 부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파트도 별로 다르지 않지만, 특히나 개인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어지간한 집수리를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스웨덴의 유명한 체인 중 'Clas Ohlsson' 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야말로 당장 집을 지을 수도 있을 만한 물건들이 다 구비되어 있는 매우 큰 상점이다.
철물점은 못과 전구, 자전거 자물쇠 등이 있는 조그만 가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유니폼까지 맞춰 입은 점원들을 보니 조금 우스웠다.
게다가 '철물점'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참 신기했다.
조그만 꼬맹이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까지 다들 무시무시한 연장 같은 것을 바구니에 담아 돌아다니고 있어서, 퓨즈 하나 못 찾아서 헤매고 있던 나는 별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집도 자기가 직접 짓는 사람들인데 퓨즈 하나 모르겠냐. 아무나 잡고 물어 보자.”
엄마의 짐작대로 목재를 고르고 있던 두 남자는 능숙하게 퓨즈를 골라 줬다.

학교 수업(목공, 재봉 등) 제대로 안 받으면 살아가기 힘든 스웨덴

▲초등학교 저학년이 그린 미술실의 정말 재미있는 그림. [사진-이하영]
이처럼 자기가 모든 것을 고쳐야 되는 사회에서의 목공 수업과 재봉 수업은 실질적인 수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인지 옷 수선 같은 것을 해 주는 가게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아빠가 처음 스웨덴 출장을 왔을 때, 양복 단추가 떨어져서 옷 수선 해 주는 집을 찾아 스톡홀름 시내를 다 헤매고 다닌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스웨덴은 전등 하나부터, 심지어는 변기나 욕조까지 자신이 직접 설치하고 꾸미는 집이 정말 많다.

성적에 적극 반영 되는 예체능도 그렇지만 기술 같은 경우에는 참 고민스럽다.
스웨덴어로 수업을 받아야 될 학교에서 미리 기술 과목을 몇 번 들었던 보그단은 돌아오자마자 불평불만을 쏟아 놓았다.
"내가 무슨 수로 내 방의 움직이는 모형을 만들어?"
그 말을 듣고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미국에서도 과학 교과서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예 책 전체를 통째로 외워서 시험을 치른 적이 있다. 그래서 기술이건 과학이건 그런 식으로 조금(?)만 고생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암기나 머릿속에 든 지식으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방의 움직이는 모형이라니?
나는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건전지를 연결해서 전구에 불이 켜지게 하는 데도 몇 달이 걸린 기계치다.
공부를 많이 안 시키는 관계로, 한국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스웨덴 학교를 만만하게 봐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들기 시작한다.

조금만 참고 견뎌서 우리가 좋은 세상 만들자

▲ 믿어지지 않겠지만 수업 중인 내 친구들. [사진-이하영]
지금은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이 틀에 박힌 교육을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어나 수학 시간을 빼먹고 톱질을 하러 나갈 여유도 없거니와, 톱질 따위를 시켰다가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목수 만들려고 하느냐는 부모님들의 항의를 감당하고 싶은 선생님도 없을 것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교육이 좋다고 허구한 날 방송국에서 촬영해 가고 신문기사에 나와도 한국 학교가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 친구들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여전히 밤 열두시까지 학원에 있어야 하며, 여전히 선생님과 부모님들로부터 들볶이고 있다.
창의력이 경쟁력이라고 백번 떠들어 대는 것보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동기를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아빠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 준 컴퓨터 마우스와 지퍼, 성냥 등의 스웨덴 발명품들도 창의력 교육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들이 공장에서 찍혀 나온 인형처럼 똑 같은 것도 아니고, 다들 다른 개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살려주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전부 일류대학을 가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나머지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일류대학을 가지 못하면 마치 인생이 끝장날 것처럼 을러대는 학교와 가정의 분위기에서 잘나지 못한(또는 잘난 부모를 만나지 못한) 학생들의 눈물과 절망, 가슴 속의 상처는 누가 치료해 줄 것인지 어른들께 묻고 싶다.

한국 학생들도 대학 가는 것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공부와 인생의 목표를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을 느끼고, 자기 손으로 의자와 책상도 만들어 보면서 선생님과 허물없이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나도 더 이상 구구절절이 스웨덴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