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저 여자는 누군데?"

▲ 비요른 안데르센이 타지오로 출연했을 당시 모습. [자료사진-이하영]
한 때 한국의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던 스웨덴 소년이 한 명 있다.
사실 그 '소년'은 이미 할아버지임에도, 사람들은 영화에 나온 그의 소년 시절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 메신저의 사진에 올라 있었던 그 ‘소년’을 본 아빠의 질문,
“저 여자는 누군데?”
아빠의 착각은 사진을 보면 이해될 것이다.

기네스북에 오른 미소년 비요른 안드레센(Björn Andresen).
나 역시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비요른의 사진을 보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심심할 때마다 사진을 찾아보고, 그가 출연한 영화도 빠짐없이 봤으니 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스웨덴 배우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감독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Morte A Venezia), 예술과 아름다움을 심오하게(?) 다룬 이 70년대 영화가 비요른 안드레센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비요른은 영화에서 폴란드의 귀공자 '타지오(Tadzio)'의 역할을 맡고 있다.
타지오는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나이 든 예술가인 아센바흐가 한 눈에 사랑(?)에 빠져 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은 이 역할에 어울리는 소년을 찾기 위해 전 유럽을 여행하며 오디션을 열었다.
비요른을 본 비스콘티 감독은, 영화 원작의 타지오에 비해 비요른이 나이도 많고 키도 훨씬 컸기 때문에 캐스팅 여부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요른의 금발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에 반한(?) 비스콘티 감독은 타지오의 역할을 비요른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우습게도 이 '타지오'에 열광한 것은 오히려 아시아 쪽 관객들이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초콜릿 CF를 찍고 개인 앨범을 내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여성 팬들은 당시에도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배용준을 보러 한국으로 몰려오듯이, 비요른을 따라 스웨덴으로 왔다는 등 비하인드 스토리 역시 무궁무진하다.

음악선생님 비요른 안데르센

▲ 밖에서 본 영화관 모습. [사진-이하영]
원래 비요른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몇 편에 출연한 이후에는 스크린을 떠나 스톡홀름에서 음악 선생님이 되었다.
‘베니스의 죽음’을 촬영한 다음에는 온갖 악성 루머(비행기 사고로 사망, 동성연애 등)에 시달리고 첫째 아들을 잃기까지 했지만, 지금은 아내와 딸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과(부모님은 이혼하고 어머니는 자살한 후 할머니 밑에서 자람) 너무 잘생겨서 피곤한 소년기를 보낸 비요른으로서는, 오히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평화로운 여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비요른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듯이, 나도 타지오의 사진을 본 뒤에는 '이런 얼굴로 평범한 삶을 살 수가 없지'라고 생각했었다.
일본의 유명 순정만화 주인공의 모델이 되었다는 외모이니 오죽하랴.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배우와 영화감독

▲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 특별 판매전. [사진-이하영]
비요른 안드레센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스웨덴에는 의외로 세계적인 감독과 배우들이 많다.
잉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참 졸리는 영화만 만든 감독이다.
그것은 비스콘티 감독도 마찬가지다.
사실 ‘베니스의 죽음’도 타지오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보지 못했을 정도로 지루했다.
하지만 많은 영화 매니아들은 베르히만 감독을 '영화에 철학을 심은 감독'이라고 평한다.
그는 1918년, 스톡홀름 북쪽 지역인 웁살라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뒤 '화니와 알렉산더'를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영화를 제작했다.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스웨덴식 발음으로는 잉그리드 베르히만인 이 여배우는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배우였다.
그녀는 ‘잔 다르크’ ‘아나스타샤’ ‘오리엔트 특급 열차 살인사건’ ‘카사블랑카’ ‘지킬 박사와 하이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제목쯤은 한 두 번씩 들어봤을 명작 영화들에 출연했다.

▲ 스웨덴 극장 내부. [사진-이하영]
버그만은 베니스 영화제와 칸 영화제 등의 수상경력이 있는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를 보고는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로셀리니에게 언제든지 출연할 의사가 있다는 편지를 보냈다.
양쪽 다 배우자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들을 낳고 멕시코로 도망쳐 버렸다.
쌍둥이 남매 이사벨라와 잉그리드를 낳기까지 했으나, 미국 정부는 버그만과 로셀리니 감독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멕시코에 간 사람들의 결혼을 미국이 왜 무효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버그만은 다른 연극 제작자와 재혼한 후 곧 이혼하고, 자신의 생일인 8월 29일 숨을 거뒀다.
버그만과 로셀리니의 딸 이사벨라 로셀리니 역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역시 스웨덴 출신이다.
‘안나 카레니나’ ‘마타 하리’ ‘춘희’ ‘두 얼굴의 여인’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렇게 유명한 감독과 영화배우를 많이 배출했지만, 스웨덴의 영화관 시설은 한국이나 미국에 비하면 너무 불편하다.
DVD를 사거나 빌리는 가격도 적지 않게 비싸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북유럽에서도 볼 수 있는 한국영화

▲ DVD 판매대에 진열돼 있는 '디 워'. [사진-이하영]
이제 북유럽에서도 한국의 영화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유명했던 영화의 DVD는 백화점이나 편의점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여배우 문소리는 14회 스톡홀름 국제영화제에서 ‘바람난 가족’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5회 스톡홀름 국제영화제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가 관객상을 수상했다.
어떤 사람은 영화관에서 ‘친절한 금자씨’(내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를 봤다고 해서 몹시 신기했던 적도 있었다.

영화는 아니지만 이라크에서 온 달함이 한국 드라마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점심시간에 갑자기 “킴, 킴”하면서 뭐라고 열심히 설명하는데,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린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달함이 한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나라에서 TV로 봤는지, 아니면 인터넷으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랍어로 더빙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게다가 달함은 그 드라마가 참 재미있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한국 드라마 빼면 도무지 신날 것이 없는 엘레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나는 엘레인을 만나면서 진심으로 한국 드라마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통해야지...).

▲ '괴물' DVD도 팔고 있다. 한글이 있어 우스웠다. [사진-이하영]
삼성과 LG의 휴대폰이나 MP3 플레이어, 노트북 등은 스웨덴에서도 정말 유명하다.
내가 사용하는 휴대폰만 해도 삼성 제품이고, 친구들도 삼성 제품을 애용한다.
알란이 생일 선물로 받았다는 노트북 역시 한국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내가 갖고 싶어 했던 MP3 플레이어가 지하철 광고란에 붙어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전자제품 뿐만 아니라 한국 자동차 역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참 많은 사람들이 현대에서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우리 아파트 건물에도 현대 자동차 판매점이 있다.
한국 상품이 많이 팔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일본 상품으로 종종 착각하는 것은 정말 기분 나쁜 일이다.

한국을 잘 모르는 스웨덴 사람들

아직까지 북유럽에서는 한국이나 한국 문화에 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길을 걷다 보면, 스웨덴 사람들이 손을 모으면서 “니 하오!” 하고 지나갈 때가 있다.
처음에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했지만, “곤니찌와!”, “한국인이예요”, “싸우쓰 코레아? 거긴 어디죠?”, “중국과 일본 근처에 있는 반도예요”, “그럼 그게 그거네요”라는 똑같은 패턴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이제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럼 댁들도 똑같은 북유럽이니까 핀란드며 덴마크며 노르웨이며 다를 것이 하나도 없겠네요!” 라고 쏘아붙이던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아시아의 대표선수라고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을 무조건 ‘사무라이’ ‘닌자’ ‘게이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왜 한국에 대해서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 반의 에드워드가 “하용! 태권도! 무서워, 때리지 마!”라고 할 때, 태권도를 알고 있어 반갑기도 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모두 비장의 무술을 수련한 무서운 가족들 쯤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별로 유쾌하지가 않았다.
삼성은 알고 현대는 알아도 한국은 모르는 사람들...

▲ 영화관 외부. [사진-이하영]
사실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이 반으로 똑 갈라진 매력 없는 아시아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면 시간 약속 잘 안 지키는 공부벌레, 일벌레들만 가득한 콩알만한 분단국가 정도라고 느끼는 것일까?
가끔 굉장한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의외였다.
한국에도 컴퓨터가 있냐고 물을 때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한국이 어딘가요?”라는 반문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쪽 한국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슴 한 쪽이 쿵쿵 내려앉는 것 같다.
거기에 “남쪽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 내 자신이 참 서럽기도 하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들이 “그럼 너네 나라 북쪽에는 뭐가 있는데?”라고 물을 때면 설명하느라 진이 다 빠진다.
단순히 '치고 박고 싸우다가 갈라지고 땡' 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영화관 내의 간식 판매대. [사진-이하영]

한국의 문화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 것이 정말 많은데, 외국인들이 그런 부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어쩌면 그런 것을 외국인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은 의지가 없는데, 외국인들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나라 문화를 알고 싶어 할까?
삼성 광고판 옆에 코리아라고 써 놓고 싶지 않다면(삼성이 한국 회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한국 상품을 엄청나게 팔고 있는 회사들에서도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악기를 연주하는 UCC 동영상을 보고, “저거 재패니즈? 차이니즈?”라며 아시아 국가 이름을 하나하나 대면서도 '코리아'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중국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라고 묻는 것에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것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 코리언이다.

(이번 연재9가 하루 늦게 게재된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필자 이하영 학생이 스웨덴에서 학교를 전학하는 관계로 인해 연재가 한 번 쉬게 됩니다. 이 점도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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