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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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한 스웨덴의 숲

현장 체험 학습이라고는 하지만 소풍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소풍을 가기에는 추운 날씨라, 선생님들은 며칠 전부터 ‘반드시 따뜻한 옷을 입고 모자와 장갑을 준비하세요!’라고 강조했다.
북쪽 나라 스웨덴의 겨울은 매섭게 추울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날씨가 따뜻했다.
그 날도 날씨가 따뜻해서 평소와 다름없는 가벼운 복장에, 얇디얇은 스니커즈만 신고 집을 나섰다.
Vaxmora Skogen은 강인지, 호수인지, 바다인지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물과(스톡홀름은 그런 곳이 많다), 키 큰 나무들로 우거진 숲이 맞닿아 있었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쳐 주택가에 내리자, 그림처럼 예쁜 집들 사이로 숲의 입구가 보였다,
한국에 많이 있는 동네 근린공원처럼 이름만 숲이 아니라,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토끼와 같은 산짐승들이 뛰어 노는 진짜 숲이었다.
숲 안을 가로질러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물줄기와 맞은편의 육지가 보였다.
남자애들은 그 위에 기어 올라가 사진을 찍고 소리를 지르는 등 난리 법석을 떨었다.
우거진 숲 속은 나무가 많아서인지 공기도 맑고 풀 내음도 좋았다.
스톡홀름 외곽 쪽으로 나가면 곰이나 늑대가 나오는 숲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잉겔라 선생님이 말했다.
“위험하지 않나요?”
“전혀 위험하지 않아. 바보 같은 사람들이 동물들을 해코지 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동물들 쪽에서 피해가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한국의 숲에서는 산짐승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스웨덴의 숲이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하는 묘한 기분이었다.
못 말리는 촐랑이

공터 중간에 통나무 벤치가 있고, 그 옆에는 모닥불을 피울 수 있도록 큰 돌들이 놓여있었다.
1800년대부터 사람이 살다가 지금은 빈집이라는 붉은색 오두막(스웨덴 전통 집 색깔)이 한쪽 구석에 있어 분위기는 더 신비로웠다.
잉겔라가 축구공과 원반을 던져주자 남자애들은 가방을 내팽개치고 강아지들마냥 그것들을 쫓았다.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던 일부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은 벤치에 둘러앉았다.
잉겔라 선생님이 배낭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럼 숲에 들어가서 장작을 구해 오자.”
캠프파이어라면 당연히 준비된 나무를 넣고 버너로 불을 붙이는 줄 알았는데, 잉겔라와 촐랑이 보그단은 숲 안쪽으로 들어가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쪼개진 나무 장작들을 잔뜩 들고 왔다.

잉겔라는 나무 장작을 잘 쌓아 올리고 그 안쪽에 나뭇가지를 넣었다.
그런 후에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꺼내 나무 장작을 잘게 쪼개기 시작했다.
모닥불 피우는 것을 자주 해 봤는지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오옷!(촐랑이 보그단의 말투) 저도 할래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서바이벌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어요.”
보그단은 별명답게 촐랑대며 잉겔라에게 나이프를 건네받아 나무 쪼개기를 흉내 냈다.
추위에 벌벌 떨며 보그단이 한참을 낑낑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짜증난 목소리로 핀잔을 주었더니 보그단은 발끈하여 고함을 질렀다.
“그 프로그램은 진짜로 일반인들을 위해…… 이이익! 숲에서 이이익! 살아 남는 법을…….”
내가 “그러기도 하겠다”라고 빈정대기도 했지만, 모두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테냐?’ 라는 눈빛으로 노려보자 보그단은 풀 죽은 표정으로 잉겔라에게 장작을 넘겼다.
그리고는 구석에서 ‘혹시란 게 있잖아(There's always 'maybe'in our lives……)’라고 중얼거리며 작대기로 땅을 긁기 시작했다.
보그단을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위로하려고 “힘 내!(Cheer up!) 불 붙으면 소시지 구워먹자”고 말했더니, 그 말 한 마디에 보그단은 원래대로 돌아와서 린다에게 “소시지! 소시지!”를 외치며 촐랑거렸다.
정말 못 말리는 촐랑이다.
불은 쉽게 붙지 않았다.
잉겔라가 종이 없이 불을 붙이겠다고 성냥과 씨름했지만, 나뭇가지는 도통 불이 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추위에 떨던 꼬맹이들까지 장작에 달라붙어 열심히 불을 붙이려 애쓴 덕에, 마침내 잉겔라가 작은 불씨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자 꼬맹이들은 신문이나 휴대용 방석을 들고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붙었다! 아싸!”
몇 번의 실패 끝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자 다들 만세삼창을 불렀다.
구경만 하고 있어서 조금 미안했지만, 나와 감제 역시 만세삼창을 부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연기 때문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퍽이나 우스웠을 것이다.
정말 즐거웠던 몇 년 만의 ‘유치한’ 놀이

옷을 얇게 입어 뼈가 시리도록 추운 데다, 바람도 거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얼어 죽을 만큼 낮았다.
모닥불 옆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불꽃 옆에 붙어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더니, 모니카 선생님이 “햇빛 아래에서 축구라도 하면 좀 괜찮아질 텐데”라고 걱정스레 말을 했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완전히 얼어버린 발 때문에 한 걸음도 내딛기가 힘들어, 다시 모닥불 근처로 가서 운동화와 양말을 벗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가까이로 발을 뻗고, 운동화를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돌 위에다가 얹어놓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애들이 ‘배가 많이 고픈가 봐. 자기 신발을 굽고 있어!’라며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비주얼은 좀 나빴겠지만, 분명 효과가 있었다.
발이 녹자 움직이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나는 발이 또 얼어버리기 전에 미사(콩고 출신 선생님)와 레일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린 아이들 반을 맡고 있는 두 분은, 몸을 덥히기 위해 꼬맹이들과 열심히 체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몸이 식을까 봐 그 우스꽝스러운 동작들을 열심히 따라 했다.
그 때 사바가 오두막 뒤의 숲에서 뭔가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고 소리쳐 불렀다.
잉겔라를 주축으로 열 명 가까이 되는 애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들 나무 한 그루씩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무 여러 그루가 서 있는 공터의 중간에는 한 남자 아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서 있었다.
나무에 붙어 있던 사바가 잽싸게 다른 남자애와 자리를 바꾸자 술래인 소년이 얼른 몸을 틀어 사바를 잡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숫자가 좀 많다는 것을 빼고는 어릴 때 한국에서 하던 놀이와 똑같았던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 때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기둥 네 개짜리 쉼터에서 비슷한 놀이를 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앉아 계시면, 비어있는 곳을 찾을 때까지 아파트 단지를 온통 뒤지기도 했다.
나이가 좀 먹은 다음에야 유치하다고 ‘얼음땡’이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그만뒀지만 새삼스럽게 그 때가 그리워졌다.
당시에는 학원을 대여섯 개씩 다니는 애들도 잘 없었고, PC방에서 죽치고 있을 나이도 아니어서 다들 모이기만 하면 저녁이 되도록 뛰어 놀곤 했다.
따로 도구 같은 것이 없어도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놀이가 무궁무진 했었는데…….
엄마들이 화를 내며 놀이터로 우릴 찾으러 올 때마다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나도 할래!”
몇 년 만의 ‘유치한’ 놀이는 정말 즐거웠다.
모닥불에 굽는 소시지 삼매경

애들이 하나 둘씩 소리를 지르며 모닥불 쪽으로 달려갔다.
감기가 걸려 코가 막힌 탓에 느끼지를 못했지만, 모닥불 쪽에서는 소시지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기고 있었을 것이다.
벤치에 앉은 아이들도 있고, 서 있거나 쪼그려 앉은 채 모두들 소시지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기다란 나무 작대기의 겉껍질을 벗기고, 끝 부분을 뾰족하게 깎은 후 각자 가지고 온 소시지를 꽂아 모닥불에 구웠다.
빙글빙글 돌려가며 요령 있게 구워야 노릇노릇 맛있게 되는데, 다들 떠들다가 한쪽 부분을 새까맣게 태우고는 했다.
나는 린다 선생님이 소풍의 준비물에 대해 설명할 때, 엘리자베스와 수업을 한다고 직접 소시지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두를 포용하는 천사 린다 선생님은, 내게 자신이 가져 온 소시지를 나누어 주었다.
소시지는 우습게도 닭고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야지 다들 먹을 수 있잖아요?”
린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종교 문제로(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 때문에), 학교에서도 급식에 따로 양고기를 준비하는 등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나 역시 소시지의 한 면을 태워버렸지만, 빵에 끼우고 케첩과 머스터드 소스를 발라 먹는 맛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록산나는 팔뚝만한 소시지를 챙겨 와서, 10분 이상을 애들이 교대로 굽는 것을 도와주고서야 먹을 수 있었다.
얼음 깨기 장난
“하이용! 얼음 깨러 가자!”
소시지가 다 떨어져서 빵만 씹고 있는 내게 보그단이 소리쳤다.
에드워드와 로베르트, 사바의 ‘드림팀’은 손에 나뭇가지를 하나씩 들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보그단과 티격태격한 터라 같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얼어 있는 강이 너무 보고 싶어 소시지를 굽던 나뭇가지를 들고 보그단을 따라 나섰다.
숲을 가로질러 나오니 멋진 경관이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과(스웨덴은 북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산이 거의 없다), 가장자리에만 물이 흐르고 중간은 꽁꽁 얼어버린 강, 그 맞은편에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나무와 집들…….
수전증 걸린 것처럼 늘 흔들리는 내 실력으로는 사진을 찍기가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마치 동화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면 이해가 될까?
우리는 들판을 쭉 가로질러 물가로 갔다.
나와 보그단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굵은 나뭇가지들을 긁어모았다.
메마른 풀로 덮여 있는 그 곳엔, 돌멩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그단은 강가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옆에 버티고 서서 나뭇가지를 휙 던졌다.
나뭇가지는 얼음을 깨기는커녕, 힘 없이 미끄러져 얼음이 끝나는 지점에서 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폼이 멋지다. 보그단 왕자님.”
“진짜?”
이죽거리는 내 말을 진짜로 믿는지 보그단은 순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생긴 것과 달리 ‘맹’하기로는 올림픽 금메달감이다.
“비켜봐, 이걸로 해보자.”
거듭되는 실패에 실망하고 있던 우리들은, 잠시 어딘가로 사라졌던 로베르트가 다시 나타나자 기겁을 했다.
로베르트는 뉘 집 기둥뿌리를 뽑아왔는지 거대한 나무를 짊어지고 있었다.
로베르트는 땅을 단단히 딛고, 온 몸을 뒤로 쭉 뺐다가 앞으로 튕겨내듯 던졌다.
그 와중에 에드워드가 로베르트의 목덜미를 붙잡지 않았다면 분명 얼음에 코를 박았을 것이다.
하지만 로베르토는 성공했다.
얼음이 아무리 두꺼워도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에는 소용이 없었는지, 어떤 집의 기둥뿌리(?)는 얼음 한 가운데에 불쑥 솟아난 것처럼 푹 박혀버리고 말았다.
보물 퀴즈

린다에게 가보니, 린다는 15개의 칸이 그려져 있는 표와 연필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보그단과 로베르트는 그것을 들고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이 근처에 15개의 퀴즈가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으니까, 그걸 찾아서 퀴즈의 해답을 표시해 돌아오면 돼요.”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린다가 웃으며 말했다.
“상품도 있으니까 열심히 하세요.”
‘상품’에 눈이 먼 우리들은 열심히 퀴즈를 찾아 다녔다.
퀴즈는 출발지점에서 첫 번째부터 순서대로 찾으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퀴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황당했다.
힘들게 찾은 퀴즈에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주인공 공주 하나가 그려져 있었고, 이런 글이 써져 있었다.
‘이 공주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1. 오로라 2. 신데렐라 3. 에리얼’
동화나 만화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헷갈리는 퀴즈였다.
그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는지, 그 퀴즈 패널 앞에서는 여자애들 여럿이 싸워대고 있었다.
“에리얼이야!”
한 여자애가 말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느라 등교 때마다 만나는 아가피는 그 공주 그림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
“에리얼은 생선이야.”
생선이라니…….
아마 ‘인어’의 스웨덴어를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 같았고, 그 이야기에 우리 모두는 배를 잡고 웃었다.
결국 우리는 오로라의 이름을 써 넣고(난 끝까지 오로라가 무엇을 하는 여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퀴즈를 찾아 나섰다.
‘콜라 사탕’ 한 팩 안에 사탕이 15개가 들어 있는지 30개가 들어 있는지, 45개가 들어 있는지 묻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닥불이 있는 곳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이었는지 잉겔라가 뒤에서 따라오며 퀴즈 패널을 회수했다.
우리가 답을 알려달라고 애원해도 잉겔라는 “난 몰라”라는 말로 일관했다.
기다리고 있던 모니카에게 답지를 넘긴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주저앉았다.
몸이 식어 춥다고 생각할 무렵, 린다가 다가와서 조그만 봉투를 내밀었다.
투명한 봉투에 빨간 리본으로 주둥이가 묶여 있었고, 안에는 구디스가 담겨 있었다.
빨간 하트 꼬리표에는 손 글씨로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이번에도 린다가 내 이름을 호영이라고 썼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발렌타인 데이의 깜짝 선물이었다.
“수고했어요.”
적지 않은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쓰면서 포장을 한 정성과, 수고했다는 린다의 말이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나는 꽁꽁 언 손으로 애써 리본을 풀고 ‘춰어컬릿’과 ‘캐뤄멀’(요즘 유행하는 인수위풍 발음)을 꺼냈다.
달짝지근한 그것들은 꽁꽁 얼어 있었어도 눈물나게 맛있었다.
직접 불도 붙이고 음식도 만들어 먹은 정말 좋은 체험

소시지를 구워 먹은 나뭇가지에 빵 반죽을 쭉 늘여 돌돌 말고 구운 것이다.
껍질 부분이 노릇해질 만큼만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한 빵이 만들어졌다.
“다들 쓰레기를 남겨두면 안돼요! 나뭇가지는 한 쪽에 모으고 쓰레기는 봉투에 담으세요!”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하며 돌아갈 준비를 했다.
모닥불은 불씨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 물을 붓는 바람에, 연기가 확 올라와서 눈이 아파 한참을 고생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숲에서 나오는 도중, 한 남자아이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여 미사가 직접 업고 걸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없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야외에서 즐거움을 느껴본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캠프파이어라곤 해도 초등학교 수련회 때 봤을 뿐이고, 그것도 교관님들이 석유와 버너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우리는 멀건이 불 옆에 둘러 앉아, ‘부모님께 효도하자’라는 교관님들의 연설을 지루한 표정으로 들었을 뿐이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서 불도 붙이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정말 좋은 체험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위험하다고 손도 대지 못하게 할 불과 칼을 직접 만지게 하는 것은, 학생들이 다쳐도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립심을 키워주고 학생들을 신뢰하는 마음의 표시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숲도 마찬가지다.
도심에 아직 이런 숲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 같았으면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있는 이런 숲 따위는 싹 밀어버리고 건물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받았을 때 상쾌한 곳에 와서 뒹굴다 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또한 내 나이 또래의 한국친구들에게는 감히 하자고 물어보지도 못할만한 ‘유치한’ 놀이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최고로 유쾌한 일이었다.
비록 연기를 뒤집어 쓴 바람에 온 몸에서 훈제 프랑크 소시지 냄새가 폴폴 풍겼다고 해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