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 스웨덴 거리의 핫도그 판매 노점. [사진-이하영]
스웨덴에도 전통음식이 몇 가지 있지만, 먹어본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인색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먹거리는 정말 다양하고 풍부하다.

얼마 전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음식 맛이 형편없는 나라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 핀란드를 제외하면 영국이 유럽에서 가장 음식 맛이 없다”(British cuisine is the worst in the world after Finrand's)라고 망언을 하여, 2012년 올림픽 개최지가 런던이 선정되도록 일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졸지에 가장 음식 맛이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려 열받은 핀란드의 IOC 위원들이, 영국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다른 나라 IOC 위원들을 선동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프랑스 대통령의 망언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나, 솔직히 핀란드나 스웨덴이나 음식 맛이 없기로는 도토리 키재기다. 그렇지만 별 것 없는 스웨덴 먹거리 중에서도, 핫도그(korv)와 구디스(godis)라는 '국민 간식'이 두 가지 있다.

▲ 코르브라고 불리는 스웨덴 핫도그. [사진-이하영]
스웨덴에서는 핫도그보다 코르브라고 많이 부르는데, 중간이 갈라진 번(bun) 종류의 길쭉한 빵에 소시지를 하나 넣은 후, 각자의 취향에 맞춰 피클, 다진 양파, 치즈 따위를 토핑으로 얹고, 그 위에 케첩이나 머스터드를 뿌려 먹는다.

스웨덴에는 이런 핫도그를 파는 상점이나 노점상들이 많다.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괜찮을 간단한 음식에 왜 열광하는지 모르겠지만, 출출할 때 간식이나 점심 식사로 많이 사 먹는다.

개인적으로 핫도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두고두고 기억할 만큼 맛있는 핫도그를 먹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 부모님과 함께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했을 때였다.
머리가 두 번이나 잘리는 수난을 겪었던 인어동상을 구경하고 시내로 걸어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잠시 비를 피하고 가려던 우리들 눈에 띈 것은, 길모퉁이에 예쁘게 자리잡은 'Steff' 노점이었다.
인적이 거의 없었지만, 노점 안에는 핫도그를 먹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길에 서서 먹었던 그 핫도그는(김이 무럭무럭 나는) 정말 꿀맛이었다.

▲ '국민 간식' 구디스 매장. [사진-이하영]
▲ 이카의 규모에 따라 구디스 상자 수가 달라진다. [사진-이하영]
또다른 '국민 간식'은 구디스(godis)다.
구디스란 특정한 간식 브랜드가 아니라 사탕, 초콜릿, 캐러멜, 젤리 등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구디스는 손님이 직접 퍼 담을 수 있는 뷔페식 간식이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편의점이나 상점에 가 보면 위에 열거한 간식들이 가득 담긴 투명한 상자가 항상 자리 잡고 있다.
구디스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에는 수십 가지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의점에서는 열 개 내외의 상자를 준비해 놓는다.
구디스는 무게 단위로 판매 되는데, 손님이 직접 저울에 달아서 계산하는 경우도 있고, 직원이 대신해 주는 경우도 있다.

▲ 이카에 설치된 전자 저울. [사진-이하영]
예전에 한국의 놀이공원에서 멋모르고 구디스와 비슷한 사탕을 몇 개 샀다가, 저울에 달아 보니 가격이 너무 비싸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스웨덴의 구디스는 양심적이라 할 만큼 가격이 싸다.

내가 주로 구디스를 사는 곳은 스웨덴의 유명한 상점인 이카(ICA)다.
이카는 크게 세 종류로 분류 되는데, Nära, Kvantum, Maxi가 그것들이다.
Nära는 조금 큰 편의점, Kvantum은 동네마다 있는 한국의 슈퍼마켓, Maxi는 대형할인점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Kvantum에는 생필품이나 육류, 어패류, 애완동물 사료, 심지어는 DVD나 소형 가전제품까지 구비되어 있다.
그래서 Nära나 일반 편의점, 구멍가게보다는 훨씬 큰 구디스 코너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종종 반값 세일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나도 Kvantum을 자주 이용한다.

작지 않은 규모의 슈퍼마켓에 구디스만 사러 들어오는 손님은 없는 법이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계산대에서 일일이 무게를 달기가 불편하니까 손님들이 직접 저울에 구디스 봉투를 올려놓고 가격표를 뽑아 붙이게 되어 있다.
한국의 과일, 야채 코너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전자저울이다.

일반 손님의 경우에는 계산대 직원이 구디스의 무게를 대충이나마 달아 보고, 내용물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구디스가 아닌 다른 종류의 뷔페식 견과류, 과자 등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견과류의 경우에는 구디스보다 가격이 배는 비싸다.

▲ 이카에서 사용되는 '휴대용 셀프 스캐너'. [사진-이하영]
하지만 스웨덴에서 사용하는 '셀프 스캐닝 시스템'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디넘버(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를 제출해야 가입이 가능한 이카의 멤버십 회원은 셀프 스캐닝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발급 받고, 휴대용 스캐너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휴대용 스캐너로 구매하는 물건의 바코드를 찍으면 가격이 자동 등록되어, 카운터에서 계산할 때 휴대용 스캐너만 넘겨주면 된다.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시스템이다.
손님들은 긴 줄에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직원들은 팔 빠져라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하지 않아도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게다가 일부 상품들은 셀프 스캐너 회원만이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어, 가입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느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유용한 시스템을 악용하는 비양심적인 사람들도 있다.
구디스를 많이 담은 뒤, 적은 가격이 등록된 바코드를 붙여 스캔하고 유유히 카운터를 지나는 것이다.
구입한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속이기가 쉽다.
카트 안에 수북이 쌓인 물건을 뒤져가면서 확인하는 열성적인 계산원도 없거니와(스웨덴 계산원은 전부 앉아 있다), 줄을 잔뜩 서 있는 계산대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카운터의 경보 장치는 물건이 찍히지 않았을 경우에만 작동하므로 적발할 수 있는 방법도 사실상 없다.

구디스를 마구 퍼 담은 뒤, 매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몰래 다 집어먹고 봉투만 버리고 가는 '단순무식 증거인멸형'에 비하면, 기계를 이용한 지능적 범죄이므로 죄질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 핫도그 판매 노점. [사진-이하영]
10대 청소년들은 더 대담무쌍하다.
얼마 전에는, 내 눈 앞에서 저울 눈금을 속이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바로 앞에서 봉투를 들고 쳐다보고 있는데도, 저울 눈금을 속여 태연히 카운터로 향했다.
그들 중 한 명의 엄마가 카운터 직원이 아닌 다음에야 속이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들에게는 '어떤 점원은 무게를 확인하지 않는다'와 같은 정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빠는 나한테 구박을 받으면서도 이카에 가면 항상 구디스 중 하나를 그냥 집어 드신다.
'일단 맛을 봐야 사지!'라고 늘 주장하지만, 직원이 직접 맛 보라고 주지 않는 이상 그것도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이 글을 아빠가 본다면, 다음부터는 봉투째 들고 쇼핑하면서 다 먹어 버리지 않을까 갑자기 걱정이 된다.

이런 사실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스웨덴의 구디스 상점들이 '셀프'제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일일이 직원들이 무게를 달아 주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스웨덴은 인건비가 매우 비싸서 가급적 사람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합리적인(?) 이유인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정직하리라 믿으니까 양심에 맡긴다는 인간적인 이유인지…….
하지만 나는 후자의 이유라고 믿는다.

▲ 스웨덴 이카에서도 삼양라면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이하영]
스웨덴 사람들은 검소하고 청렴하다.
사실 북유럽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소함의 도가 지나쳐, 가끔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북유럽은 한국보다 국민 소득이 훨씬 높고 잘 산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국 사람들의 씀씀이를 속속들이 본다면... 아마도 스웨덴 사람들은 까무러칠 것이다.

스웨덴의 부모님들은 아들 딸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자기 자식들의 음식값만 계산해 준다.
'스웨덴 친구들이 한국인 친구와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국 부모님들이 무조건 돈을 다 내 주기 때문이래!'라고 투덜거리는 한국인 친구도 있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하지만, 부부가 식사를 하고 따로 계산하는 이 곳에서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돈 씀씀이만 보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드는 내가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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