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통일연대 전 사무처장)
북의 사회주의는 자주성을 유난히 중시한다.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모든 사상에는 사회역사적인 맥락과 실체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북이 강조하는 자주성의 사회역사적 실체는 무엇일까?
서유럽에서 시작된 근대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민족국가 내부를 <노-자>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갈라놓았다. 자본주의가 팽창하여 서방세계가 비(非)서방세계를 침략할 당시 비서방세계는 대부분 자본주의가 미발전한 농업공동체였다. 서방세계의 침탈이 가속화됨에 따라 비서방세계는 서방과 유착된 부분과 토착 부분으로 양분되는데 이때 토착 부분이 내건 구호가 전통, 독립, 자주, 주권 등이었다.
북의 경우 전통적인 농업공동체를 서방세계가 침략하는 속도에 맞게 분해시키기보다는 이를 결속하여 서방세계로부터 ‘자주’ 하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레닌의 경우 러시아의 농민공동체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분해될 운명이었다면 북의 입장에서는 농민은 항일운동의 주력이었다. 따라서 북의 입장에서 보면 자주성의 사회역사적 실체는 민족과 민중이다.
문제의 핵심은 민족과 민중이 서방세계로부터 ‘자주하는 것’과 ‘현대적인 것’을 양립시킬 수 있는가이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일찍이 찾아보기 어려운 거대한 생산성을 보여 주었는데 이는 <노-자> 관계로 분화되면서 출현한 자본가 계급이 생산성 향상을 주도한 것이다.
서방세계의 침략에 맞선 초기적 대응, 가령 전통 지주계급이 주도하는 반제 투쟁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비서방세계가 서방세계에 맞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 계급이 출현하고, 민족주의를 동원하면서 이들이 민족과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전통사회의 농민을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방세계가 농민층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생산성 향상의 경로(달리 표현하면 현대화)를 밟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중국, 베트남, 북 등이 보여준 새로운 역사 발전의 길은 서방세계가 걸었던 현대화의 길, 즉 <전통사회 - 계급분화 - 자본가 계급을 중심으로 한 현대화>가 아닌 새로운 길 <전통사회 - 계급분화를 거치지 않은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방식의 현대화>을 의미한다.
위의 노선은 대체로 1960년대까지는 성공하는 듯 보였다. 2차 대전 이후 서방 세계로부터 독립한 제 3세계는 대부분 사회주의 또는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선호했고 나름대로 인상적인 발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자본주의 세계가 사회주의 또는 제3세계를 현대적인 측면에서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사회주의 또는 제3세계는 여러 갈래로 분화하기 시작하는데 소련 유형처럼 아예 자본주의로 바뀐 경우가 있고 중국, 베트남처럼 정치적으로는 ‘자주’ 하되 서방세계의 현대적인 요소 즉 자본주의의 생산성을 수용한 경우도 있다. 북의 경우에는 정치적으로 ‘자주’ 하면서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현대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송두율 교수는 그의 여러 저작에서 북의 이러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철학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하이테크 시대에 맞게 개조하는 것이고, 중국에 있어서 개혁은 현대화를 위한 모택동 사상의 계승과 혁신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주체철학은 자주성의 시대의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차이에서도 현시대를 보는 소련, 중국, 북한의 시각의 차이는 드러난다. 즉 ‘낙후한가, 그렇지 않으면 현대적인가’라는 가치체계보다는 ‘예속이냐, 그렇지 않으면 자주냐’하는 가치체계가 북한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소련과 중국』, 한길사, 284쪽에서)
송두율 교수의 위의 문제의식은 1970년대 이후 최근의 어느 시점까지 남북 또는 제3세계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소련 및 사회주의 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도 북은 민족자주를 견지하고 있다. 문제는 자주성의 견지가 현대적 기술과 지식의 원천인 서방세계와의 단절을 가져옴으로써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70년대 어느 시점부터 최근 어느 시점까지 자주성과 현대성이 양립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반면 같은 시기 남은 대외적 자주성보다는 서방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데 주력했고 사회주의나 제3세계의 일반적인 경향도 자주적인 것보다는 생산적인 것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렇다고 북이 자주성을 중시하지만 현대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에 민감하고 대외 무역관계를 중시하는 최근의 경향은 북 나름의 방식을 통해 현대화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 북의 이러한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 최근 들어 상황이 다시 복잡해지고 있다. 중남미에서의 자원 민족주의의 발흥이나 중동아랍의 이슬람 회귀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중남미의 경우 천연자원을 보다 현대적인 외국자본에 위탁하여 개발하기보다는 낙후하지만 자신이 개발하는 것이 보다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듯 하고, 중동아랍의 경우에도 근대적 서구 이념보다는 전통적인 중동아랍의 이슬람이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서방세계의 약탈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세계가 가지고 있었던 현대성은 애초부터 비서방세계를 현대적으로 개조하는 측면과 비서방세계를 약탈하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세계 역사를 거시적인 맥락에서 보면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에는 약탈성이 중심이었다면 1945~70년대 중반 무렵까지는 현대적인 요소가 부각되었다. 1970년대 중반 어느 시점부터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약탈적인 요소가 강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제3세계에서 다시금 이에 저항하는 요소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 기자명 민경우
- 입력 2006.06.07 11:40
- 수정 2013.05.12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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