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통일연대 전 사무처장)
본 글에서는 독도 문제를 다룬 ‘좌파’ 인사들의 글을 소개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해 보겠다.
먼저 소개할 글은 4월 26일 프레시안에 실린 황준호 기자의 글이다. 황준호 기자는 4.25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담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먼저 4.25 특별담화의 핵심은 “영토(독도) 문제와 과거사 문제의 통합 대응”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는 과거 과거사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영토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자세와는 다른 태도인데 이번 담화의 특징은 대통령이 앞장 서서 영토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결합시켰다는 점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의 자세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일본내 양심적 시민세력의 입지가 극도로 축소되는 반면 보수우파의 위상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황준호 기자는 익명을 요구한 한 한일관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일본 내의 합리적인 세력들은 과거에도 한국과 중국이 영토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었다”며 “영토와 역사를 엮으면 모든 문제가 국가간 문제로 치환되어 문제해결이 어렵게 된다.” 즉 영토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결합시키면 “과거사 문제에서조차 양심세력들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게 되어 지금껏 쌓아 왔던 연대의 틀이 위협받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둘째, 첫째와 같이 되어 독도 문제가 국가와 국가간의 힘 대결로 나아간다면 한국과 일본의 국력에 비추어 한국이 얻을 게 별로 없고 국제사회의 영향력에 있어 우리가 일본을 누르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독도를 두고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된다면, 한미일 공조를 정치ㆍ안보에서 경제 분야로까지 끌어올려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또다시 '중재'를 명분으로 나설 게 뻔하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번 담화가 한일간의 모순을 극대화시켜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고 쓰고 있다.
위 황준호 기자의 글과 같은 논리는 다른 ‘좌파’ 인사들의 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가 한나라당 지도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주최한 독도 관련 만찬 자리에 불참한 것을 두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비판한 것을 두고 “진부하고도 지극히 표피적인 수준의 '민주-반민주', '민족-반민족' 대립구도를 내세워 당장의 국민 여론에 편승하려는 강 전 장관의 태도”를 선거용 민족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프레시안 4.19자 임경구 기자의 글)
또한 희망사회당은 4월 19일자 논평에서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독도가 누구의 땅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독도를 계기로 정치적 군사적 분쟁을 야기하는 한일 양국 정부의 불순한 태도다”라고 쓴 뒤 “독도의 가장 근원적인 소유는 한국 사람이고 일본 사람이고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살아갈 환경과 자원을 무한히 제공하는 독도에게 있다”며 “서로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해왔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독도 인근 청정 수역의 평화와 자연친화적인 보존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자.
첫째, 근대사회의 기본 원리에 관한 것이다.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의 근원은 국민국가이다. 국민국가는 이전 시기 왕조국가와 구별된다. 왕조국가는 국가 자체가 절대군주 또는 가문의 일종의 사유물이었다. 따라서 왕조국가의 영토나 영토에 살고 있는 신민(臣民)들도 양도.양수의 대상이었고 왕조국가를 정당화하는 기제는 주로 종교이거나 혈통이었다.
국민국가는 그것이 시민적이든 권위적이든 간에 일정한 영토와 국민구성원의 존재를 기본으로 국민국가의 주권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것이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든 다민족국가이든 민족 또는 민족주의, 단일한 역사와 전통 등을 통해 국민적 일체성을 획득한다.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의 진원지인 국민국가가 위와 같은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족.국가.영토.주권 따위는 근대국민국가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객관적 요소이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형성해야 하는 조건에서 또 세계화된 인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국가를 규정하는 여러 기제들, 가령 민족.국가.영토.주권 따위의 근원적이며 강력한 힘이 만들어 내는 이러저러한 폐해들을 지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버젓이 있는 것을 그것도 다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객관적 실체를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것처럼 관념적이고 어리석은 태도는 없다.
황준호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가 일본 시민사회 진영을 위축시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것은 나름대로 좋다. 그러나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영토와 영토가 맞부딪히는 공간에서 일본의 시민사회 진영이 발휘할 영향력은 크지 않다(냉정히 말한다면 유력한 변수가 아니다). 필자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운동의 역할을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옳든 그르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를 애써 무시하고 그것이 선하고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비중이 약한 존재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려는 관점과 태도이다. 우리 사회의 일부 좌파 또는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만연해 있다.
희망사회당의 생각도 유사하다. 독도가 한국의 땅도 아니고 일본의 땅도 아닌 “괭이 갈매기의 땅”이라는 주장은 근대 사회의 구성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생각이다. 터놓고 말하면 독도를 부정하는 순간 한국 사회의 어떤 정치세력도 존립할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도 비슷할 것이다. 독도라는 얼마 되지도 않는 영토의 존재 또한 국민국가로 편제된 현 사회에서는 정치적 대격변을 일으킬 뇌관이다. 이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둘째는 영토와 과거사와의 관계 문제이다.
필자는 황준호 기자의 말처럼 영토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해야 할 사안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남중국해를 둘러 싼 섬(심지어는 섬이라고도 볼 수 없는 산호초 따위)의 영유권을 두고 벌이는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중일 사이의 과거 역사와는 별 상관이 없는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한편, 만주 일대와 관련된 문제는 과거사와 영토문제가 결합되어 있지만 분리시켜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고조선-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하고 이를 민족사의 자랑스러운 과거로 자리매김하려는 생각과 만주 일대를 우리의 영토로 귀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만주 일대를 우리 영토로 귀속시키려면 중국과 전쟁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독도와 과거사 문제는 어떤 관련을 갖고 있을까?
독도는 일제 침략의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그 이후 우리 민족의 독립과 통일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독도는 우리가 현재적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할 민족사와 독도라는 영토 주권이 밀접히 결합된 존재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 우리당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역사바로세우기(김영삼), 신한일관계(김대중), 과거청산에는 적극적이면서도 일본의 우경화에는 소극적이었던 초기 노무현 정부의 태도 등을 문제삼아야 한다. 신주류세력은 현실의 영토주권 문제를 애매하게 처리하는 대신 과거 역사 청산에만 제한적인 차원에서 열을 올렸는데 이러한 태도가 현재 일본 보수세력의 도발을 낳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독도의 영토 주권을 일제 침략사로부터 도출한 노무현 대통령의 글은 때늦기는 했지만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위와 같은 자세를 수미일관하게 확고히 견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정작 우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러한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황준호, 임경구, 희망사회당의 글은 독도와 과거 역사와의 상관관계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라서가 아니라 광주항쟁이라는 피맺힌 역사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고 울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신기원을 열었던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해보자. 독도가 그저 한일 지배층들의 탐욕스러운 욕구가 빚어낸 그저 그런 동해의 한 섬에 불과하단 말인가?
끝으로 몇 마디 덧붙이겠다.
위 3가지 글 모두 객관적인 시각에 글을 쓰기보다는 독도에 담긴 압도적인 국민 여론, 그리고 그 여론이 다분히 민족, 민족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위의 글들은 독도라는 쟁점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소개하려는 의도보다는 민족, 민족주의라는 성향을 비판하려는 데 초점이 있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 위의 글들은 기사라기보다는 논설이나 주장이다. 이러한 시도는 때때로 이상한 결론, 주장과 연결되기도 한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장에 객관 사실을 맞추는 것인데 황준호 기자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독도를 두고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된다면, 한미일 공조를 정치ㆍ안보에서 경제 분야로까지 끌어올려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또다시 '중재'를 명분으로 나설 게 뻔하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번 담화가 한일간의 모순을 극대화시켜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 기자명 민경우
- 입력 2006.05.03 16:50
- 수정 2013.05.1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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