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통일연대 전사무처장)


2004년 월간조선 9월호에는 배진영 기자가 쓴 “'민족'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쓰이고(惡用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장문의 특집기사가 실려 있다.(이 글은 월간조선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위 글에서 배진영 기자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가를 치밀하게 추적해 들어간다.

배진영 기자는 상당히 고생했을 법한 과정을 거쳐 “「네이션」의 번역어인 「民族」은 1880년대 후반 日本에서 등장했으나, 日本에서는 그다지 널리 쓰이지 않았던 탓에 우리나라로의 유입은 늦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國權이 日帝에 침탈되어 가던 1907년을 前後해 대한매일신보ㆍ皇城新聞 등 民族紙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 결론에 기초하여 배진영 기자가 주장하고 있는 바를 요약하면 민족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나온 것에 불과하고 그마저 혈연적ㆍ종족적 색채가 농후한 낙후한 개념인데 북과 남의 통일운동 진영이 말끝마다 민족자주 또는 민족공조를 들먹이며 민족을 절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족보다는 자유가 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쓰고 있다.

배진영 기자가 민족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추적하는 과정은 세밀하고 정교하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단어가 출현한 유래에 대한 배진영 기자의 결론 또한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작업을 하게 된 동기와 배경 그리고 그러한 결론이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대체로 1990년대 이전의 보수세력은 한미동맹을 절대화하기는 했지만 민족 개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90년대 초반 복거일ㆍ공병호씨 등 일부 극단적인 자유주의 세력이 민족 개념의 부정을 제창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보수세력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민족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개념이었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긴밀해지고 북핵위기가 전면화되면서부터이다.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은 남북을 포괄하는 민족공동체라는 발상과 사고를 확산시켰다. 이러한 발상과 인식은 보수세력이 금과옥조처럼 간주해왔던 대전제인 대한민국의 유일합법성이라는 신념과 충돌했다. 이와 함께 북핵위기가 전면화되고 반미 정서가 확산되면서 한미동맹이라는 가치체계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보수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비상사태였고 사상이론의 재구성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민족 개념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다. 보수세력의 민족 개념의 재정의 작업은 여러 갈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데 이를 간략히 개괄하면 배진영 기자의 분석처럼 민족이라는 단어자체가 20세기에 출현한 뿌리가 그다지 깊지 않은 단어라며 민족적 가치의 약화를 주장하는 경향 또는 아예 민족이란 ‘상상 또는 허구의 공동체’라며 민족 개념의 폐기를 주장하는 따위로 구분할 수 있다.(이 후자의 조류는 임지현, 권혁범씨와 같은 극단적인 자유주의 세력의 주장이기도 하다) 물론 위와 같은 주장을 기본으로 여러 다양한 변종들이 존재한다.

그러면 민족 개념에 대한 재정의 작업을 진행하는 정치적 목표는 무엇일까?

민족이 그다지 뿌리가 깊지 않은 어떤 시기에 만들어진 단어라면 그것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민족 대신에 한미동맹과 자유라는 새로운 가치로 대체하기 쉬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예 민족이 허구와 상상의 공동체라면 굳이 통일해야할 이유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 독립운동이니 친일이니 하는 논쟁 또한 무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민족 자체가 허구인데 그것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배진영 기자가 민족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추적하게 된 동기와 배경은 남북관계가 발전하면서 민족공동체라는 발상이 확산되고 과거 청산의 일환에서 친일파 문제가 새로이 제기되고 있는 조건에서 민족 개념의 약화 또는 폐기를 통해 이를 반박하려는 사상이론적 작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등 보수세력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모색 과정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실린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박지향 교수는 머리말에서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 그것은 자기 민족의 우월함을 주장하고 증명하기 위해 다른 민족들을 깍아내려야 하는데, 이 점에서 민족주의는 굳이 배타적일 필요가 없는 혈육이나 고향에 대한 애정과 구분된다”고 쓰고 있다.

민족주의가 본래부터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주장은 대단히 난폭한 생각이다. 민족은 본래부터 배타적인데 혈육이나 고향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이 차지하는 지위를 고려하면 박지향 교수의 주장은 균형감각을 잃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서두를 장식하는 이영훈 교수의 논문 「왜 다시 해방전후사인가」에는 “민족이란 역사가가 그 집단기억의 유래를 추구하는 다양한 층위의 인간집단 가운데 그저 한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수준의 역사에 비해(가령 인간 개체의 역사, 가족과 친족의 역사, 지방과 국가의 역사 등) 그 생겨난 시대를 한껏 잡아도 20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 역사적 유래가 가장 일천한 것인 민족일 바에야!”(밑줄 필자, 밑줄 친 부분을 배진영 기자의 글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물론 민족이라는 주제가 역사를 설명하는 중심 개념이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주장처럼 민족이라는 주제가 역사학에서 하찮은 문제라는 발상은 대단히 기이한 주장이다.

박지향 교수나 이영훈 교수의 글을 비롯하여 최근 보수세력이 이른바 사상전이라고 펼치는 여러 갈래의 주장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논리와 정서는 민족에 대한 부정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적대감이다. 배진영 기자의 글은 월간조선의 특집기사답게 그러한 논리와 정서에 근거를 제공하려는 기획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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