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전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5년 4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민경우 전 처장의 새로운 주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3가 99 전북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전주교도소'이며 수인번호는 2500번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인간은 자신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비추어 사물을 보게 된다. 이 때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고차원적인 무엇일 수도 있고 단순한 희망 사항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인식에서 주관적 측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이른 바 ‘북핵 문제’ 또한 그러한 데, 북핵을 둘러 싼 객관적 진실보다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희망 또는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의지나 당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본 글에서는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개혁세력 일부가 강조하는 「관점」중 몇 가지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① 어떤 지점에서 북핵을 볼 것인가?
북이 군사비를 본격 확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이다. 여기에는 1958년 전술 핵의 한국 배치, 한미일 동맹체제 강화 조짐이 하나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60년대 북의 군사정책은 4대 노선에 집약되어 있다. 4대 노선이란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현대화, 전군의 간부화이다.
4대 군사노선의 특징은 정규군+인민전쟁 전략을 결합한 총력전 태세라는 점이다. 아마도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전국토를 대상으로, 전민이 동원된, 국가의 모든 역량이 집중된 형태의 전쟁을 고려했을 것이다.
4대 군사노선은 대단히 “호전적인”듯이 보이지만 “수세적이고 전통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수세적이라 함은 미국이 어떻게 했을 때 어떻게 한다는 식의 발상이 숨어있는 점이고 전통적이라 함은 재래식 전쟁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고 있는 점이다.
즉 핵과 미사일과 같은 전략 무기에 대한 구상이 빠져있다.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해야 하고 전략무기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조건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수세적이고 전통적인 외양을 갖고 있었지만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발상 또한 뚜렷했다. 상당한 규모의 정규군을 유지하고 전민을 무장시키며 국토 전역을 갱도화하는 전략은 전통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북의 군사전략의 공격성을 잘 보여주는 요소는 “선제성”이다. 대규모의 특수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거나 전진배치 전략이 이와 관련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쟁의 양상은 그야말로 초, 분 단위로 결정될 가능성이 큰데 이는 북미 모두의 군사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경우 북의 지도부, 전략무기(핵, 미사일 기지), 전방 배치된 대포 등에 대한 전격적인 공습을 단행할 것이고 북 또한 미군의 증원 병력 배치 이전에 군사행동을 시작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태도와 관점이 위협적일 것이다.
1970년대가 되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된다. 핵, 미사일 개발은 미소간의 전략무기 경쟁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미.소 모두 동맹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시점에서 진행된 만큼 소련의 제어를 거스르며 진행되었다. 북의 미사일 개발 역사에서 1973년 4차 중동전의 대가로 이집트로부터 도입한 미사일이 미사일개발의 시원이 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당시로 보면 미.소 냉전 시기였기 때문에 소련의 이해를 거스르는 북의 기도가 부각되지 않았고 기술개발의 속도도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70년대 핵, 미사일 개발 시도는 북핵의 본질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후술하겠지만 북핵이란 에너지 자원과 같은 경제적 목표, 북미 관계 개선과 같은 정치 협상을 위한 “무엇”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북핵을 둘러 싼 논쟁이 가장 활발했던 때는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 위기 무렵이었다. 당시 북핵을 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원자력 에너지를 개발하려는 북의 경제적 의도에 대해 미국이 이를 인위적으로 부풀려 정치군사적 문제로 부각시켰다는 시각과 냉전 해체 이후 고립무원에 빠진 북이 핵을 고리로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추구하려 했다는 시각이다.
전자와 같은 시각은 2002년 이후의 2차 북핵 위기 초반에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사라졌다. 위와 같은 “낭만적이고 순진한” 발상은 시간이 흘러 상황이 명백해지면서 사라졌지만 그러한 생각을 배태시켰던 관점은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이런 관점은 북핵을 북과 미국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로 보기보다는 미국이 무엇을 하면 북은 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관계로 본다. 또한 미국에 대한 정서적 반감을 배경으로 하되 사물을 보는 “입각점”이 남에 있었기 때문에 북에서 발원한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의도는 대체로 무시되었다. 상황을 이렇게 보면 상황을 악화시키는 미국도 문제지만 “남”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북의 강경대응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과 생각은 남의 일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세력을 주체로 놓고 전개된 것으로 북미 격돌이 점차 첨예화되면서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 애초부터 북미공방이라는 양 주체를 정점으로 사물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0년대 초반, 북의 핵 개발의 목표에 관한 논쟁은 「경제적 목적」인가 「안전보장」인가에 있었다. 2002년 2차 북핵 위기 이후에는 상황이 명백해지면서 「경제적 목적」이라는 주장은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한 발상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것은 북핵이 안전보장을 위한 정치협상용이라는 시각이다.
북핵이 안전보장을 위한 정치협상용이라는 시각 자체는 별 하자가 없다. 문제는 그러한 주장이 정치협상이 실패했을 경우 실제 군사적 용도와 목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은연중에 봉쇄하고 있는 점이다. 여전히 “남”에서 무언가를 할테니 “북”은 제발 가만있으라는 식인데 사물을 보는 관점과 태도가 1990년대 초반 북핵이 원자력 에너지 개발이라고 본 시각과 동일하다.
1960년대 4대 군사노선, 1970년대 핵개발 시도에 담긴 공세적 의도를 명확히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북핵을 둘러 싼 북미간의 오랜 갈등은 북을 미국 중심의 핵독점 체제에 묶어두려는 미국과 이를 거부하고 핵, 미사일 개발을 통해 자주하려는 북과의 대단히 이념적인(정치외교적 문제를 뛰어 넘는) 대결이 된다.
1990년대 초반 북은 핵을 개발할 의사도, 의지도 없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미국을 속이기 위한 “기만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보면 상황은 「핵 보유국으로서의 북」과 「핵 포기-북미관계개선」이라는 두 갈래의 갈림길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핵이 안전보장을 뛰어넘는 이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설사 문제가 「핵 포기-북미관계개선」이라는 형태로 마무리되더라도 다음 단계의 공방이 남아 있다는 점이고 전자의 가능성 즉 「핵 보유국으로서의 북」이라는 갈래길이 유력한 하나의 선택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2002년 10월 이후 2차 북핵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검토의 여지가 있다. 2차 북핵 위기가 촉발된 것은 켈리 차관보가 방북시에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이다. 북이 실제로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새로운 핵프로그램을 추진했는가하는 부분은 알 수 없다. 이는 2차 북핵 위기가 해소되어야 윤곽이 잡힐 것이다.
문제는 관점과 태도인데 북은 “평화애호적”이고 남북관계는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이를 가로막기 위해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제기하면서 난관을 조성했다고만 보는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정세를 보는 인식의 한 측면이다.
인식의 또 다른 측면은 북으로부터 발원한 진실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미국이 북미 제네바 합의 이행을 거부하는 그 순간에도 북은 북미제네바 합의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는 발상과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합의 정신일 수는 있어도 국가와 국가 사이의 행동규범일 수 없다. 그리고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북미 사이의 핵 갈등은 “공정한” 국제규범을 지키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을 적대하고 압살하려는 적대국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북은 북미제네바 합의가 흔들리는 순간 다른 카드를 준비했을 것이다. 북미 갈등은 이념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북의 이런 태도는 2차 북핵 위기가 해소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말 그대로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끝까지 간다” 이다.
따라서 고농축우라늄의 진실은 미국의 대북 압박의 수단일 수도 있고(실제로는 없는데 미국이 의도적으로 부풀린) 북의 새로운 차원의 대미 압박 수단일 수도 있다.(실제로는 있는데 미국이 별반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은) 그리고 그 해결은 진실이 무엇이었는가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북미공방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있다.
② 전쟁과 평화
전쟁의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북이 ‘반미’하려는 분명한 정치적 의사를 가지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 개발 수준이 초기 단계에 있을 때이다. 반미하려는 정치적 의사가 없다면 미국이 전쟁할 이유가 적을 것이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면 전쟁의 긴박성은 다소 떨어진다.
따라서 한반도의 경우 1990년대 초반이 가장 위험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어떨까? 현재는 정도는 알 수 없지만 이미 핵을 가지고 있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 핵이 정확히 어느 수준이고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식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상황이 긴박한 이유는 2003년 3월의 이라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라크의 경우 세계열강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사공격을 통해 상황을 해결하려 했던 미국의 의지 즉 반전평화와 국제연대의 문제였다면, 현 상황은 북핵이 손 쓸 사이 없이 커져있음에도 객관적으로는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난감한 미국의 처지 즉 한미동맹의 위기였다. 전쟁과 평화라는 외양은 비슷했지만 정세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이 또한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이를 둘러 싼 당사자 사이의 역관계를 통해 재구성되어야 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북미간에 놓인 역관계가 위와 같았기 때문에 남에서 평화를 둘러 싼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래에서는 2003년 이라크 파병과 북핵문제를 둘러 싼 공방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2003년 3월 2차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그 해 가을 미국이 한국군 파병을 요청할 당시 남의 민족민주 세력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그 기간 동안은 사라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협이 참으로 목전의 문제라고 한다면 당시 노무현 정부의 선택처럼 이라크에 파병하는 대가로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남의 진보개혁 세력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이 목전에 있다고 하면서 정작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파병반대 투쟁에 역량을 집중했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하려면 이라크에서의 전쟁과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공히 문제라는 근본적 시각에 서거나, 이라크에 파병하는 동력이 곧바로 미국의 대북 공격과 일치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어야했다.
시민단체나 급진적인 좌파 조직의 시각은 전자와 유사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든,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든, 「평화」라고 하는 절대적 가치에 위반하는 문제이므로 반대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이러한 관점은 도덕적일 수는 있어도 대중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느끼는 이라크와 한반도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라크에 파병하게 되면 남에서 보수 극우세력을 강화시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키울 것이라는 생각은 만약 한나라당의 보수강경파가 집권하고 있었다면 논리적으로 성립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조건에서라면 다소 무리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보수강경파가 파병에 적극적이었던 주된 이유도 한미동맹의 공고한 유지에 있었다.
국민 대중은 대부분 이라크에 대한 파병과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라크 파병 반대투쟁의 동력은 대체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것은 애초에 그렇게 될 사안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주장했던 관점과 태도이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으로서의 성격과 미국의 부당한 압력과 이에 굴복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규탄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전자는 반전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에 전세계 민중과 함께 참여하는 국제연대운동이었고 후자는 미국과 한국의 정권 및 양자 사이의 관계를 문제삼았던 것이다.
이라크 전쟁과 한반도 평화가 관련된 지점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 평화와 직접 관련되어 있었다기보다는 한미동맹을 타격하여 장기적으로 한반도 정세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라크 파병 반대와 한반도 평화를 직접 연계시킨 논리는 과도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논리를 배태시킨 관점인데, 다음의 두 가지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라크든 한반도든 평화로워야 한다는 평화를 절대화 또는 어떤 지역, 누구의 평화인가를 묻지 않는 평화 지상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를 북미간의 역관계로 보지 않고 미국을 중심으로(미국에 적대적인 정서를 가지고) “남”이라는 위치에 서서보고 있는 점이다.
두 번째에 대해서만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1998년 하반기 정세는 첨예한 전쟁 위기가 아니라 북미간 타협과 협상의 시기였다. 운동적 관점에서 5027-98 따위의 호전적인 정책을 문제 삼는 것은 옳지만 실제 그런 관점에서 전략.전술을 수립했다면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상황을 전쟁 전야의 긴박한 국면이라면 그에 걸맞는 비상한 대책이 준비되어야 했고 북미간 타협과 협상의 국면이라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예비하는 또 다른 차원의 대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라크와 한반도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하는 논리적인 판단과 함께 중요한 것은 대중의식의 발전과정이다.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 위기 당시 남의 국민은 대체로 북미의 중간 지점에 있거나 미국에 보다 가까운 어딘가에 있었다. 1994년 6월 전쟁 위협이 고조되자 강남을 중심으로 사재기 열풍이 일었다. 북미의 중간 지점에 있던 의식 상태에서 전쟁이라는 문제가 주어질 때 “이탈, 탈출”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는 전쟁에 대한 체감 정도가 현격히 낮은데 이는 1990년대 초반에 비해 대중 의식이 북-미 사이에서 보다 북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쪽에 보다 가까운 의식으로 북미 공방을 볼 경우 북핵이 실제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즉 북핵의 공격 방향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현재의 위기가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전쟁 발발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미국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는 정치적 위기이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벌어진 거리만큼 긴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친미적인 세력일수록 현재 상황을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는 현상과 동일하다.
즉 사람들은 평화가 어떤 것인가 하는 논리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북과 미국 중 누가 우리 편인가하는 주체의 관점을 먼저 취하고 그에 기초하여 평화의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대중 의식의 관점에서 「평화(평화가 정치적인 색채가 있다면 화해.용서 등으로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당파적이고 주체적인 문제이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민 대중은 평화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나쁜 놈은 때려잡아야 한다는 것이 보다 상식적인 발상이다. 따라서 평화보다 중요하고 선차적인 것은 누가 나쁜 놈인가 하는 가치판단이다. 「누가 나쁜 놈인가」에 대한 판단에 기초하여 평화, 갈등, 전쟁에 대한 입장도 다르게 된다.
1994년 6월에 있었던 일시적인 공황 상태는 누가 우리 편인가에 대한 인식이 막연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전쟁이라는 너무나 큰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누가」에 대한 입장이 빠진다면 대중의 입장에서는 관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의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북미간의 대결이 격화될수록 남은 어중간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균형추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평화에 대한 호소보다는 평화를 깨뜨리는 자가 누구인가 또는 「누가 나쁜 놈인가」에 대한 판단이 확실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화에 대한 막연한 호소는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