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의 통일운동사'가 지난 5월2일자 이후 두 주를 건너 뛰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4월11일 서울구치소에서 전주교도소로 이감된 이래 달라진 옥중 환경에서 교도소의 편지 '검열'이 심해지는 통에 원고 반출이 2주일이나 지연되었고 또 53번째 글 「대중문화와 통일운동」이 반출 과정에서 유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원고 「(54) 민족에 대하여 2」는 지난 2005년 1월31일자 「(39) 민족에 대하여」와 연동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 편집자 주
|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전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5년 4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민경우 전 처장의 새로운 주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3가 99 전북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전주교도소'이며 수인번호는 2500번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마르크스는 인류역사를 원시공산제-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사회주의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의 잣대는 물론 계급관계이다. 그러면 인류역사를 민족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구분하면 어떻게 될까?
필자는 '씨족.부족-민족과 초민족적 제국-근대적인 민족국가'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래에서는 각각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글의 성격상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토가 중요해 보인다. 필자의 역사지식이 짧은 관계로 무리한 작업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문제제기 수준에서나마 논의를 진전시켜 보겠다. 본 글은 본 연재물 「민족에 대하여-(39)」와 연동해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① 씨족.부족단계
20만 년 전쯤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생 인류가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들은 자연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세계의 일정 지역에 정착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는 각기 독특한 문명과 문화를 가진 단위로 구분되었다.
유럽역사의 초기 국면을 대표하는 켈트인, 중국의 황화 문명과 구별되어 만주와 한반도 나아가 산동반도 일대에 널리 분포했던 동이족,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 대륙의 아프리카 제 부족, 서유럽 백인들의 침략 이전 아메리카 대륙의 주역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 등이 그들이다.
인류 역사가 몇 개의 커다란 단위로 구분되었지만 각각의 커다란 단위는 대단히 작은 씨족.부족으로 세분되어 있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아마존 밀림의 오지, 남북극의 혹한 지대에는 인류 역사의 초기 국면을 대표하는 소(小) 부족 사회가 여전히 남아 있고, 최근에는 TV등을 통해 그들의 풍습을 볼 수 있다. 이들 소 부족 사회의 규모는 작게는 수십 명에 불과하고 이들의 생활 영역은 마을 단위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단계의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 작은 규모의 씨족.부족 사회, 그리고 이를 큰 규모로 묶었던 켈트인, 동이족,l 아메리카 원주민 따위의 거대한 세력권(문명권과 구분되는 의미로 썼다)은 각기 독특한 풍습과 혈연적 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풍습과 혈연을 달리하는 씨.부족, 거대 세력권은 훗날 민족과 문명으로 발전한다.
둘째, 이 단계의 사상 체계는 원시 신앙이다. 모든 사물.자연에 정령이 들어있다는 애니미즘, 특정 동물을 씨족.부족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는 토테미즘, 제사와 신과의 교접을 주관하는 특별한 존재인 샤먼(무당) 등이 이 시기와 관련될 것이다.
셋째, 씨족.부족 내부의 권력 구조는 족장, 추장 등으로 불리는 부족장 중심의 평등한 사회였다. 이 시기의 족장은 왕정.제정에서의 왕.황제와 같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씨족.부족 사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과 같은 존재였고 씨족.부족 내부의 역관계도 평등했다.
넷째, 이 단계에서는 자연 환경에 의한 구속력이 컸고 극도의 분산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수렵.채집 생활에서 정착한 원시 인간 집단은 정착한 지역의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생활을 영위했다. 자연 환경을 거슬러 인간의 힘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자연 환경을 인공적으로 개선하려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와 같은 수준.한계를 반영하여 거대한 세력권을 비슷하게 묶어 두었던 언어와 풍습도 내부로 들어가면 또 수많은 소단위로 분할되었고 그들이 믿고 의지했던 신앙 또한 제각각이거나 자연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것에 가까웠다. 또 당시로 보면 인구 밀도 자체가 너무 낮았다.
② 민족.초민족적 제국
씨.부족, 거대 세력권은 두 방향에서 통합과 수렴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씨.부족의 내부로부터의 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거대 세력권이 인류 문명을 크게 구획하는 몇 개의 문명권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의 결산이 기원 전후하여 출현한 네 개의 거대한 고대 제국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로마제국, 지금의 이란 지역을 석권했던 페르시아 제국, 중국의 진한과 수당제국,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굽타제국 등이다.
소단위로 분산되었던 씨.부족 사회는 점차 규모가 커지고 주변 씨.부족과의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민족으로 발전해 간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씨.부족이 역사에서 사라졌고 또 일부는 여전히 먼 옛날의 생활방식대로 살고 있다. 아프리카, 아마존 등의 원시부족의 생활상은 그대로 발달된 민족의 과거상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평등했던 씨.부족 내부, 씨.부족간의 관계에서 우열이 엇갈리면서 권력 구조 또한 발전하고 그에 수반하여 사상체계도 변화한다. 이 시기의 발전을 이전 시기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권력.사상 등의 집중화가 이루어진다. 권력 구조는 부족장 중심의 평등사회에서 왕정.제정으로, 사상은 자연과 부족에 밀착된 토착 신앙에서 신화와 종교로 발전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씨.부족 중심의 평등 사회는 자연환경에 고착된 작은 규모의 인간 집단이다. 인구가 늘어나고 씨.부족간의 통합이 이루어지면 권력의 집중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제정의 분리, 왕.황제와 같은 세속적인 절대권력자의 등장, 관료 또는 귀족 계급의 등장, 전문 지식인의 출현 등이 동일한 맥락이다.
권력구조의 집중화와 함께 사상의 집중화 현상도 동시에 발생한다. 씨.부족 사회의 토착신앙은 씨.부족간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신화.종교 등의 보편 사상으로 발전하다. 신화.종교에서는 씨.부족 사회의 원시 신앙에서 볼 수 있는 낡은 잔재 즉 주변의 자연 자체를 소박하게 신성화하는 안목의 협소함, 고착성이 사라졌다. 사상.신성의 근원을 보다 거시적이고 먼 곳에 두어야 씨.부족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과정에서 씨.부족, 거대 세력권은 민족과 문명으로 발전했다.
가령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거대 세력권)은 다시 아파치족, 수우족 등 수다한 씨.부족 사회로 구분된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거대 세력권) 또한 유사하다. 이들 각각의 거대세력권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씨.부족은 조금씩 다른 크게 보면 유사하지만 심하게는 통역이 필요한 독자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수많은 토착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우수하고 지도적인 씨족.부족이 이를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지금의 민족언어, 건국 신화 등일 것이다. 씨.부족 사이에서 두루 통용되는 독자 언어와 건국 신화를 가지고 있다면 씨.부족 사회에 존재했던 자연에 고착된 낙후함이 해소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통합된 민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씨.부족, 민족간의 교류와 통합, 갈등과 전쟁 속에서보다 우세한 민족이 하나의 정치체제, 제국을 형성하고 그 내부에 다양한 부족.민족을 통합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위에서 언급한 고대 제국이다. 대체로 고대 제국이 포괄했던 영역을 문명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대 제국.문명과 그 하위에 존재했던 다양한 국가와 부족.민족을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는 종교와 신화, 문자와 언어이다. 종교와 문자는 대체로 제국.문명과 어울린다. 가령 중화 문명에서의 유교와 한자, 유럽 문명권의 기독교와 알파벳, 중근동의 이슬람과 아랍어 등이 그것이다.
반면 각각의 문명권내에 독자 민족.국가의 독자성, 특수성이 존재하는데 이를 대표하는 것이 신화와 언어이다. 크게 보면 동일한 중화 문명권에 있으면서도 중화민족과 우리 민족, 일본 민족의 언어는 확연히 다르다. 단 중화 문명의 영향으로 한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비슷한 차원에서 중화민족의 신화와 우리 민족의 신화가 뚜렷이 구분되면서도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과 같다.
셋째는 문명.종교가 갖는 보편적이면서도 타협적인 측면이다. 세계의 고등종교는 고대 제국-문명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고대제국은 자연에 고착된 씨.부족 사회가 오랜 기간의 통합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류 역사 발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원시신앙의 자연 고착성, 분산성을 털어내고 추상적이고 통합적인 사상체계를 구축하는데 이것이 곧 고등종교이다.
고등 종교의 출현은 두 가지 맥락을 위와 아래의 양 방향에서 통합한 것이다. 가령 로마제국, 페르시아 제국, 진한제국은 자신의 세력 범위 안에 있는 다양한 민족.부족의 토착신앙을 타파하고 제국의 통일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위로부터의 제국적 억압에 반대하는 피지배 민족.부족의 저항을 적절히 무마할 필요가 있었다. 민족.부족간의 맥락과 비슷한 차원에서 지배-피지배 집단 사이에도 유사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보편적이면서도, 상당히 타협적인 사상체계가 필요했는 바 이것이 곧 고등종교이다.
이 단계의 인류의 사상체계가 철학이 아니라 고등종교라는 양상을 띤 것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세계 유수의 고등 종교와 고급 철학은 대체로 B.C 6세기를 전후하여 동시에 출현한다. 유대교→기독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중국의 제자백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 등이 그것이다.
이중 고급 철학에 비해 고등 종교가 인류 역사를 석권한 이유는 고급철학이 인류격동기에 일부 지식인의 사유 체계였다면 고등 종교는 고대 제국 출현 과정의 피압박민족, 수탈 대중을 위무하는 대중적인 사유체계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가장 생활 윤리적 색채가 짙은 유가가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③ 근대 민족국가
인류 역사의 다음 단계는 근대 민족국가이다. 근대 민족국가의 특징은 고등 종교에 대비되는 세속적인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에 있다. 인류 역사를 민족적인 관점에서 개괄한다면 자유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 등도 모두 씨.부족 →민족과 초민족 제국에서 초민족적 제국이 갖고 있었던 사상체계인 고등 종교와 대비되는 민족주의와 결합된 세속 이데올로기이다.
민족주의는 크게 두 가지 계기를 통해 형성되었다. 하나는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이고 다른 하나는 비유럽 사회에서 제국주의 침략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민족주의 태동의 계기가 되었던 이 두 가지 유형에 대해 살펴보겠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류 역사를 씨.부족 → 민족.초민족적 제국 →근대 민족국가로 크게 구분했을 때 서유럽 사회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유럽문명의 뿌리가 된 로마제국이 출현할 당시 로마 북쪽은 종족.부족 중심의 게르만 사회였다. 5세기 중엽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12~3세기 부족(민족) 대이동이 끝나기 이전까지의 서유럽 사회는 게르만족, 바이킹족, 마자르족의 연쇄적인 이동과 정주, 약탈로 대단히 어수선한 상태였다.
서유럽 사회는 씨.부족 →초민족적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등종교인 기독교를 수용했지만 로마제국의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위 역사 단계에서 긴요한 권력의 집중화 현상이 누락되었다.
권력의 집중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씨.부족 →민족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언어의 통일성, 신화의 공유, 행정 지리적 구분 (씨.부족은 자연적 요소에 의해 지역이 구분되었다면 민족 단계에 있어서는 국가권력의 행정적 구분이 지역을 가르는 기준이다)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역사의 후진성으로 인해 서유럽 사회는 자본주의와 민족 형성, 민족주의 발생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중세 유럽의 경우 중화문명권의 중화제국과 같은 정치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은 다분히 껍데기에 불과했는데 서유럽 사회는 로마제국의 제국적 질서 중 종교만을 취했기 때문에 민족적 진화 과정이 느렸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중심은 있되 마땅히 있어야할 정치적 중심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신성로마제국). 정치적 중심이 부재했기 때문에 기독교로 통합된 제국적 질서의 곳곳에서 봉건왕정, 민간자본이 성장할 수 있었고 이들 봉건 왕정, 민간 자본이 민족주의의 깃발 아래 근대 민족국가 형성을 주도한 것이다.
따라서 서유럽 사회는 다분히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근대 민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민족, 민족주의를 폄하.상대화하는 이론체계는 서유럽 사회의 민족 형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다. 반면 동아시아는 민족이 먼저 형성되고 유럽 사회의 동아시아 침략을 계기로 민족주의가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비유럽 사회는 유럽 제국의 침략으로 민족주의(민족이 아니라)가 출현했다. 민족주의는 언어와 혈통을 같이하는 인간 집단+그것을 가능케 했던 정치사회적인 통합력의 산물이다. 이런 유형의 민족주의의 전형은 동아시아이다. 중화문명권의 특징은 제국적 질서 특히 정치사회적 통합력이 강했기 때문에 민족적 발전 과정이 빨랐다.
중화문명권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를 고찰하면 먼 옛날 황화유역의 한(漢)족과 동이족이 경합하다가 진한-수당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고조선.고구려가 동북아시아의 문명적 패권을 두고 각축했다. 고구려가 당에 패배하면서 한반도는 중화 문명권의 제국적 질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남북국-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언어의 독자성, 독자적인 건국 신화의 공유, 중국과 구별되는 풍습 등으로 민족적 독자성은 뚜렷했다.
근대 이전의 관점에서 보면 서유럽 문명권은 인구, 과학기술, 생산력 등에서 중화문명권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양자가 역전된 것은 1750~1800년의 어느 시점 즈음일 것이다. 이것은 민족의 발전사의 견지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럽 문명은 로마제국(기독교+제국) →게르만 부족사회+기독교로 발전한 것이다.
전근대사회에서 역량을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정치적 통합력의 유무는 발전의 수준을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였다. 게르만 부족사회가 중화제국을 상대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1750~1800년의 어느 무렵인데 이 시기에 상황을 역전시켰던 힘은 봉건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의 시민 혁명, 봉건 왕정의 힘이 취약했던 영국의 민간 자본가들이다.
생산력의 관점에서 보면 서유럽 중에서도 봉건 왕정의 힘이 더욱 약했던 영국에서 민간자본의 성장을 가로막는 봉건적 저항이 약했기 때문에 민간 자본이 중심이 된 진취적인 산업기술적 혁신이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근대 이전 사회가 대단히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발전의 시기였다면 근대 사회는 빠르고 질적인 발전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 발전 속도의 차이가 후발주자였던 유럽이 비유럽사회를 삽시간에 제압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유럽의 생산력 발전의 속도가 엄청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민족주의로 무장한 동아시아의 민중을 이길 수 없었다. 민족주의는 전근대사회, 본 글의 분류에 따르면 민족.초민족 제국의 시대에 민중을 감싸고 있었던 낡은 종교적.생활윤리적 잔재를 걷어내고 민중과 효과적으로 결합했다.
제국주의 침략이 가속화됨에 따라 민족주의의 담지자는 ‘봉건 특권층-근대적 관료.지식인-민중’으로 발전해 간다. 우여곡절을 거듭하고 반제투쟁의 주도권이 바뀌었음에도 반제투쟁을 마지막까지 강인하게 주도했던 것은 다름아닌 민중적 민족주의였다.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최강의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사회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라는 본질 위에 존재하는 일종의 외피였다. 제국주의 침략이 가속화되면서 민족주의의 주도권이 점차 민중으로 넘어가면서 반제, 민족주의 또한 사회주의와 강하게 결합되었다.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위와 같은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1960년대 베트남이다.
1970년대를 경계로 사회주의라는 외피를 쓴 동아시아 민족주의가 분화하는데 하나는 중국, 베트남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북이다. 전자는 일단 민족적 독립을 이룩한 뒤 자본주의를 차용하는 양상이고 북은 민족주의 위에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경우이다. [보론참조]
아주 넓게 보면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폴 등도 동아시아 민족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1750~1800년대에 유럽에 넘겨주었던 주도권을 최근 동아시아 사회가 찾아오고 있는 점이다. 이는 동아시아 사회의 잠재력이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에서 발원된 민족주의의 또 다른 유형은 이슬람 사회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인류 문명의 발원지이다. 민족적으로 보면 셈족과 햄족인데 이는 유럽의 켈트인, 만주.한반도의 동이족과 같이 넓은 지역에 극히 인구 밀도가 적은 상태로 존재했던 민족의 원형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지역은 고대 사회의 어느 지역보다 인종.씨족.부족간의 교류와 통합, 전쟁과 복속이 활발했다. 중근동 사회는 B.C 6세기 페르시아 제국으로 일단 수렴되었지만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으로 문명.민족적 독자성보다는 혼융적.초민족적 성격이 강했다.
헬레니즘 문화의 개인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중근동 사회는 인류 역사의 가장 뿌리가 깊은 선진 지역이었지만 민족과 초민족적 제국을 출현시킬 상대적 고립성(?).독자성보다는 개방성.보편성이 강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AD 7세기 출현한 고등종교가 이슬람이다.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 사회에서 출현했다. 이슬람이 낙후한 부족사회를 뿌리로 하여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 안에 사하라사막 이북 아프리카 지역에서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페르시아 제국 와해 이후 정치적 공백 상태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중근동 사회에 폭넓게 존재했던 개방적.혼융적.보편적 사상 토대가 이슬람의 빠른 확산에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중근동의 역사를 민족 발전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 이전과 이후라는 명확한 단층선이 존재한다.
이슬람 이후의 과정을 본 글의 시대구분 씨족.부족→민족.초민족 제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초민족적 제국을 지탱하는 이슬람과 코란의 언어 아랍어(주1)가 상황을 주도하고 민족적 요소의 성장은 지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이슬람은 여타의 종교에 비해 민중의 생활 영역을 보다 근본적이고 깊숙이 장악하고 있었다.
덕분에 유럽의 침공이 시작되고 오스만 터키, 무굴제국, 페르시아의 사파위 왕조 등 이슬람 사회의 초민족적 제국이 사라졌을 때 이를 반전.복원할 민족적 토대는 지극히 취약했다. 우랄 알타이어계의 투르크계 왕조 오스만 터키는 1차 대전 이후 오스만 터키가 붕괴되자 케말파샤의 지휘 아래 현대적인 터키 공화국(1921)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스만 터키는 중근동 대부분의 지역을 잃었다. 인도유럽어족의 페르시아의 사파위 왕조는 지금의 이란으로 재편되었다.
과거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던 중근동 지역, 지금의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은 유서깊은 인류 문명의 발원지이지만 근대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정치적 공백상태였다.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등을 가르는 국경선은 아프리카와 유사하게 영.불의 침략 과정에서 제국주의자들이 그어놓은 임의적 경계선에 가까웠다.
이집트의 나세르, 시리아.이라크의 바트당은 중근동 아랍지역을 무대로 범아랍국가를 창설하려는 근대적 시도였지만 민족적 토대가 빈약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민족주의를 근대화 노선과 결합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좌절하면서 등장한 것이 이슬람원리주의이다. 이슬람원리주의는 민족주의를 전근대적인 이념과 결합시키려는 복고적 경향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의 침략을 통해 민족주의가 출현한 두 번째 유형은 다시 유럽 침략 이전 민족적 뿌리가 강했던 동아시아와 민족적 토대가 약했던 이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독립국가+근대화를 발전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지만 후자는 독립국가에 수반되어 나타나야 할 근대화가 민족적 잠재력의 취약으로 전근대적인 요소인 종교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것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 중남미 대륙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는 1960년대 대거 독립했고 중남미 대륙은 19세기 초반 국민국가가 출현하였다. 아프리카의 경우 민족사의 발전 과정이 씨족.부족 단계에 있었고 독립국가의 국경선 또한 유럽 침략 과정에서 임의적으로 그어진 것이다.
따라서 1960~70년대 주권국가를 수립한다는 세계사적인 여망에 따라 독립하기는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역량이 부재한 관계로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반동화 과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대륙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중남미대륙의 경우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원주민 운동이 부활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의 침략으로 절멸된 민족을 관념적으로 부활시키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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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사회주의를 제국주의의 봉쇄와 침략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인 체제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와 같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체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봉쇄와 침략이라는 특수한 조건하에서만 형성.존재하는 별종의 사회라는 것이다. 와다하루키, 에릭 홉스봅 등 저명한 학자들의 문헌에서 이런 류의 주장을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판단의 타당성보다는 그러한 해석에 담겨 있는 몇 가지 착안점에 주목하여 동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해 평가해 보겠다.
첫째, 제국주의의 압도적인 힘이다. 스페인.포르투칼의 중남미 침략, 영국의 인도 침략, 일본의 조선 침략 등에서 제국주의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비교적 손쉽게” 식민지 강점에 성공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근대 이후 역사 발전의 속도가 이전 시기에 비해 대단히 빨랐고 역사발전의 속도가 빠른 시기에 약간의 지체 또한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둘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식민지의 잠재력을 남김없이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어지간한 수준의 저항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었는데, 덕분에 운동의 주도권은 시간이 갈수록 하층 민중으로, 이념적으로는 민중적 성격이 강한 좌파적 이론으로, 정치체제는 혁명적이고 전위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된 것이다.
셋째, 와다 하루키나 에릭 홉스봅의 경우 반제투쟁이 급진화 되어 가는 과정을 주로 사회주의 이념, 정치체제의 경직성에서 구했는데 필자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것은 민족주의이다. 중국.베트남 등이 반제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좌파적 이론이나 공산당과 같은 혁명 조직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중이 민족주의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넷째, 제국주의-식민지 관계가 1960~70년대를 기점으로 연성화하자 제국주의에 맞서 급진화 되었던 반제운동 또한 변화가 불가피했다. 이 변화는 다음의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 소련.동유럽 유형은 소련의 경우 인텔리와 선진 노동자들이 혁명이론(계급적 성격)을 통해 광범위한 민중적 참여 이전에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주체에 있어 농민이 배제되었고, 혁명이론에 있어 민족적 성격이 약했으며 대중운동에서 대중적 참여 정도가 부족했다. 동유럽도 유사한데 ㉠의 경우 60~70년대의 연성화 국면에서 정치사회적 통합력이 이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중국.베트남의 경우 ㉠과 달리 농민의 참여, 민족적 성격, 대중의 광범한 참여를 통해 제국주의를 몰아냈고 위의 연성화 국면에서도 정치적 통합력을 유지했다. ㉡의 경우 정치적 주도층이 연성화 국면에 맞게 체제의 연성화를 추진했다. ㉡이 보여주는 바는 민족주의라는 토대위에서 정치주도층의 의사대로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은 이념은 공히 선택 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
㉢ 북의 경우 1960~70년대 민족주의와 함께 기존의 사회주의 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끝으로 사회주의를 특수한 국면에서만 적용가능한 역사적 실체라고 한다면 그 시기에 사회주의를 배태시켰던 제국주의의 존재도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서 그저 우연히 나타났던 현상이란 뜻인가? 제국주의의 침략.봉쇄 등은 우연적 변종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존재하는 상수가 아닌가?
이는 선군정치에 대한 평가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소련의 경직된 정치체제를 낳았던 제국주의의 봉쇄가 우연적인 것이라면 선군정치와 같은 군사적이고 경직된 사회체제 또한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반면 소련의 경직성을 낳았던 제국주의가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선군정치 또한 나름의 필연성을 갖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우연과 실수, 착각에서 비롯된 미국의 본질과는 무관한 우연한 현상인가? 이거야말로 궤변이다.
또 와다 하루키나 에릭 홉스봅의 저작물에서는 주로 정치체제의 경직성에 주목할 뿐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듯 하다. 이러한 편향은 대부분의 좌파 이론가들이 보여주는 편향 즉 ‘민족주의란 그 자체로는 특별한 것이 아니거나 심지어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는 듯 하다.
필자가 보기에 민족주의는 전근대 사회에서의 종교적 열정에 버금가는 최강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렇지 않다면 베트남이 어떻게 미국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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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1) 일반적으로 민족을 가르는 핵심적인 기준의 하나가 언어이다. 그런데 아랍어는 민족보다는 코란의 언어로 이슬람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본 글의 문제의식에 비추어 보면 아랍어는 민족과 민족을 형성시킨 정치사회적 힘보다는 문명, 초민족적 제국과 결합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