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간첩죄명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올해 5월 24일 1심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3년 실형을 선고 받고 이어 10월 28일자로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현재 서울구치소(186번)에 수감 중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동북아시아에서 과거 역사를 둘러 싼 각축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왜곡, 남에서의 과거사 논쟁 등이 그것이다.
과거 역사를 둘러 싼 논쟁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과거 역사 자체와 연관된 학술적 측면과 과거 역사를 고리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측면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후자이다.
현실의 갈등과 각축이 있기 때문에 과거 역사가 불거지는 것이지 현실 문제가 결합되지 않으면 과거 역사 문제는 역사학자들 사이의 학술적 논쟁에 그칠 뿐 대중적.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 논쟁 또한 동북아시아의 정치 지형이 변화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역사 논쟁을 둘러 싼 동북아시아의 각축을 주로 현실 정치의 측면에서 다루어 보겠다.
① 중국의 동북공정
중국의 동북공정 특히 고구려 역사 문제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동북 3성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탈중(脫中)경향’을 사전에 억제하려는 조치라고 판단하는 것, 둘째는 북의 붕괴를 가상하여 북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위의 두 가지 측면을 특별하게 구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측면은 상호 혼용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다분히 대립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아래에서는 위의 두 가지 요소 각각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분석해 보겠다.
다민족국가인 중국에게 티벳, 위구르, 조선족 등 이민족의 움직임은 정치.사회적 안정을 실현하는데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다. 만약 중국의 동북 공정이 조선족의 탈중(脫中)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예비적 조치라면 그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서론에서 말했듯이 본 글에서는 고구려 역사를 객관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역사적.학술적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구려 역사.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이 실제로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만약 중국의 목표가 중국의 정치.사회적 안정을 위해 조선족을 통제하려는 사전 조치와 같은 것이라면 남북은 학술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야한다. 학술적 차원의 문제는 계속 다루어가되 이를 섣불리 정치 쟁점화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슷한 문제가 간도 영유권 문제이다. 간도 영유권을 둘러 싼 제반 문제를 학술적으로 제기하여 일제의 만행, 만주를 누볐던 선조들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문제와 현 시점에서 간도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국의 의도가 조선족을 통제하기 위한 수성적(守城的)인 데 중심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학술적.역사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를 구분해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의 경제 성장을 위한 내외적인 안정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는 미국의 대중 압박이 일본과 대만을 고리로 현실화되는 상황 또는 빈부격차확대, 이민족의 이탈 움직임 등과 같은 내부 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북의 붕괴나 핵개발은 예측불허의 난전을 촉발하여 중국의 안정을 파괴할 수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피해야 할 변화이다. 그런데 북핵문제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북의 붕괴를 가상한 역사논쟁을 촉발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판단이다.
비슷한 차원에서 남은 중국의 유력한 경제 파트너이며 미국의 압박을 견제할 주요한 완충 국가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향후 미국과의 대결이 대만 또는 미일 동맹이 중국을 겨냥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견되는 조건에서 남과 대립하는 정책은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의 입장이 위와 같았기 때문에 동북공정.고구려 문제가 남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자 2004년 8월 중국지도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던 것이다.
동북공정과 고구려 역사 문제를 둘러 싼 의미있는 전선은 정작 국내에서 발생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고구려 역사 논쟁의 최대 수혜자는 조선.동아 등 보수 우익이었다.
2002년, 2003년 시점에서 보면 민족 문제의 화두는 주로 여중생 사망,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형성되었다. 반면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심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가 확산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전자는 현실 의제와 밀착된 중요한 문제라면 고구려 역사 문제는 (중국이 북 점령.진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과거 역사 문제였다.
반면 양자는 모두 공고한 정치사회적 의식에 기초하고 있기보다는 다분히 감성적인 색채를 갖고 있었다. 2002, 2003년 시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한미동맹 강화론이 약화되고 미국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확산됨과 동시에 미.중 사이의 등거리 개념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고구려 역사 문제가 터지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확산되었고 여기서 형성된 대중 경계심은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나는 북 붕괴론이라는 변형된 반북 논리의 확산, 다른 하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필요론의 등장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미.중 등거리론이 대중 경계심과 미국 역할론으로 대체된 것이다. 덕분에 북핵, 미군기지 재편 등 중요한 민족적 의제가 대두되었던 시점에 한국 민중의 정서는 현실 정치문제와 밀착되지 못하고 과거 역사 문제에 묶여 교란.정체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작동했을 것으로 본다. 민족주의가 위력적인 만큼 그것을 효과적으로 집중시키기 위한 섬세한 판단이 중요해 보인다.
② 일본의 과거사 문제
㉠ 북일간의 각축
일본 과거사 문제의 최대 격전지는 북일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다. 북일은 멀리는 2차대전 이후 가깝게는 90년대 탈냉전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싸우고 있다.
북의 원칙은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반성이다. 2002년 9.17 북일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은 이것을 받아냈다. 65년 한일협정과정에서 남이 과거사 문제를 애매하게 처리한 것과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임하는 철학과 관점부터가 달랐다. 이런 점이 북 체제의 강점이다.
반면 북은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북의 입장이 워낙 확고했던 만큼 일본이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애매하고 불투명한 처리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원칙적인 문제이지만 보기에 따라 형식적인 문제일 수도 있었다.
실제적인 쟁점은 북미 대치가 계속되는 조건에서 북은 북일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대북 압박을 중화하고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인도적 지원이 긴요했고 일본은 과거사 반성은 어쩔 수 없지만 형식적인 문제로 돌리고 미국의 대북압박에 편승하여 시간을 끌거나 실리를 챙기고자 했던 것이다.
북미 사이에 형성된 전략적 대치 지점에서 북일 수교는 북과 주범인 미국이 아닌 종범인 일본과의 문제였으므로 북미 대치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상황은 북에게 불리했다. (반대로 북미 대치가 해소되면 북에게 유리해진다.)
2002년 9.17 북일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납치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한 점은 북일 사이의 위와 같은 역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납치 문제로만 본다면 북이 반성하고 사과할 문제이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자체와 함께 그러한 쟁점들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북일 관계가 선의의 관계이고 북일 수교가 호혜적인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졌다면 일본의 과거 침략 문제도, 북의 납치 문제도 그에 맞게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은 납치 문제를 과거사를 청산하는 입장에서 제기했다기보다는 북일 관계를 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수세에 처한 조건에서 이를 반전시키는 특단의 조치로 직접 수습에 나섰고 고이즈미 총리 또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보수반동파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북일 관계에서 발생한 불행했던 어떤 사건이 아니라 현재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위해 반북 정서와 분위기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북의 최고 지도부가 직접 사과하고 보수우익 성향의 고이즈미 총리가 이를 수용했음에도 보다 우익적인(보수우익보다 우익적인 집단의 성향은 무엇인가?) 세력의 선동에 의해 북일 관계는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 중일간의 각축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와 교과서 왜곡 등이 계속되자 중국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있다. 이 또한 과거 역사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일 동맹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거나 중국 압박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미.중 관계는 9.11 이후 해빙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은 미일 동맹의 주범인 미국대신 종범인 일본을 타켓으로 미일 동맹 강화 움직임에 대한 우회적인 경계에 나선 것이다. 최근 중.일관계가 악화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정상회담을 거부하면서까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의 고리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중국과 노골적으로 적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북을 상대로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일 정부뿐만 아니라 중.일의 일반 대중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이다. 98년 DJ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 정부는 줄곧 일본의 과거사 왜곡 문제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러했기 때문에 북일 사이에 피를 튀기는 살벌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정작 남은 남의 일인 듯 넘어갈 수 있었고 중일 사이에 미일 동맹과 중국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와 직결된 파워게임에서도 한발 벗어나 있을 수 있었다.
이른바 한류열풍이 일본에서 확산될 수 있었던 것도 한국 정부의 이러한 너그러운(?) 양보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과거사를 묻어 두겠다던 노무현 정부는 2005년 3.1 기념사에서 「배상」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문제를 환기시켰다.
배상이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음을 전제로 이를 보상한다는 의미로 현재 상황에서 보면 정당하지만 너무 앞서 나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중국 정부가 즉각 환영하고 미.일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단순한 과거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예민한 정치적 쟁점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를 없는 것처럼 치부해 왔을 뿐이다.
㉢ 남 내부의 각축
남 내부에서는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과거사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열린 우리당은 현실의 일본 문제는 덮어두고 과거의 일본 문제 그것도 일본과 연관된 국내 문제만 다루자고 주장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과거의 일본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과 관련된 과거의 역사 문제(간도, 고구려사)까지 쟁점을 확대하고 그 중 국내 문제는 덮어 두자고 말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과거 역사를 다루는 방향은 과거 역사를 학술적 차원에서 다루는 것과 이를 매개로 정치적 방향과 접목시키는 길 두 가지가 있다. 아래에서는 후자의 관점에서 전자의 문제를 검토해 보겠다.
여러차례 지적했듯이 과거 문제는 현실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정치문제가 된다. 열린 우리당이 다루고자 하는 일본의 과거사와 연관된 국내 문제 즉 친일 문제, 한일협정 문제 등은 보수우익의 정치사회적 지반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이다.
문제는 그러한 싸움이 어떤 수준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가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수준보다는 방향이다.
65년 한일협정 과정에서 남은 일본의 과거 역사 전체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친일파→친미파로 변신하면서 친미.친일파가 한일협정을 주도했기 때문이고, 둘째 당시 한일협정이 민족정기를 수호한다는 목적 하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동북아 질서의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 개선을 목표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DJ-노무현 정부가 친일파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DJ-노무현 정부 또한 미국 주도의 한미일 동맹체제 내부에서 일본의 과거 역사 왜곡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주도하는 일본 과거사 청산은 한미동맹, 우호적 한일 관계라는 현실적 이해를 넘어 설 수 없다.
DJ-노무현 정부의 과거청산이란 한미일 동맹 체제라는 구조 자체는 그대로 두고 국내 집권 세력의 권력 구조에서 친일 색채를 탈각시키려는 시도이다.
DJ 정부 시절에는 이러한 수준의 미온적인 대처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이후 일본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과거사 왜곡을 고리로 한 일본의 군국주의화 움직임이 한계선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역사 왜곡이 아니라 독도 영유권까지 문제 삼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수세적이라면 일본의 역사 왜곡은 공세적이다. 한미일 동맹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과거 역사 문제를 다루고자하는 노무현 정부의 의도를 뛰어 넘는 수준에서 일본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 2005년 3.1절을 전후한 시기의 독도 문제였다. 일본 대사가 공개적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를 제기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3.1 기념사에서 「배상」문제를 언급했는데 과거사 문제를 덮어 두자고 했던 이전의 발언과 비교해 보면 다소 엉뚱한(?) 느낌을 주는 발언이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 문제는 과거 역사를 정직하게 보고 진심으로 반성할 것인가 하는 역사적 문제를 넘어 점차 강화되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화의 문화적 표현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가 북일 정상회담 결과를 파탄내고 영토 주권을 넘보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지탱시켰던 한미일 동맹 체제의 변화를 모색하는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는 수준에서만 본다면 광해군 정도의 기술적인 등거리 외교로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것이 국내에서 감성적인 반일 운동에 휩쌓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위력적인 길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간도 영유권, 중국의 고구려사 문제를 과장하며 열린우리당의 친일잔재 청산 문제를 희석.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관련된 역사 문제는 한반도로 팽창하기 위한 공세적 측면보다는 내부 안정을 도모하려는 수세적 측면이 주된 요소이다.
따라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되 역사 문제는 현실 정치와 분리된 역사적.학술적 문제로 다루는 것이 옳다. 나아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미.일 동맹의 강화 경향에 맞서는 외교적 카드로 중국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나라당의 의도는 중국과 연관된 역사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여 전선을 왜곡하려는 시도로 경계의 대상이다.
③ 통일 민족주의와 다극화
본 연재물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던 문제, 즉 동북아시아에 조성된 역학 관계를 다시금 정리해 보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본질적으로 사상 투쟁의 일환인 역사 해석과 민족 문제가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판별하는 잣대를 제시해 보겠다.
북핵 문제는 북이 주한미군 지위 조정을 핵심 목표로 전개하는 정치 공세이다. 이 과정에서 북은 동북아시아에 대해서는 비핵화와 다극화, 한반도와 남에 대해서는 선군정치와 민족공조,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 청산과 군국주의 반대를 내걸고 있다.
중.러가 비핵화.다극화의 기조에 동의하고 남에서 민족공조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면서 90년대 초반에 비해 북의 입지가 강화되었다. 단 일본의 경우 일본은 어떻게든 북과 사단을 만들어 군국주의의 빌미로 삼고자 하는 반면 북은 북미 전선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북일 관계에서 수세적인 입장에 몰렸다.
한편 한국 정부가 북일 대치에서 중립적인(또는 방관적인)입장에 선 반면 중국의 대북 지원이 강화되면서 경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북중관계 발전-남북관계 정체 또는 후퇴-북일 관계 악화라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남의 경우 미국에 보다 가까운 중간 어느 지점에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남이 갖고 있는 경제력에 비하면 능동적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데 이는 전통적인 한미일 동맹 체제에 포박되어 민족/다극화 개념을 수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와 더불어 동북아시아의 주된 동력은 미.일 동맹의 강화 추세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일본 보수우익 세력의 반동화 움직임이 신사참배.교과서 왜곡과 같은 역사 문제와 함께 독도 영유권 등 영토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북일 정상회담이 파탄났고 중.일간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움직임이 도를 넘어서면서(독도 영유권 발언) 남의 민족 감정과 충돌하면서 나타난 사건이 2005년 3.1 기념사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는 미일동맹의 강화 움직임에 대한 수세적인 내부 통제 수단쯤으로 보인다.,
남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 논쟁은 위와 같은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에 비추어 평가해야한다. 필자의 생각으로 핵심적인 잣대는 민족주의와 다극화이다.3) 민족주의란 물론 남북, 7천만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 민족주의이다.
민족주의와 함께 다극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남북을 아우르는 민족주의가 동북아시아의 공동 번영에 복무하는 기조와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역사 왜곡은 아직 다극화의 선을 넘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의 역사 왜곡은 동북아시아 제민족, 국가들의 공동 번영이라는 다극화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물론 다극화의 최대 적은 미국의 패권주의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한다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를 다극의 한 극으로 하향 조정하고 남북이 공조하되 중.일 특히 일본의 팽창 기도를 제어하는 방향에서 역사논쟁 등 제반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처리할 필요가 있다.
--------------
<주>
1)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는 『역사비평』 2004년 겨울호에 실린 논문, 「한국 언론의 동북공정 보도 비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위 논문의 일독을 권한다. 위 논문에 실린 흥미있는 여론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 2003년 1월 『중앙일보』여론조사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 정책 전면 재검토 11.8%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 정책 다변화 48.0%
㉡ 동북공정 이전 『동아일보』 여론조사
경제적으로 한국이 가장 중시해야 할 나라, 중국 61.6%, 미국 26.2%
외교안보측면에서 중국 중시 48.3%, 미국 중시 38.1%
㉢ 2004년 9.13 KBS 여론조사
외교안보 측면에서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할 나라 미국 58.6%, 중국 28.7%
㉠~㉢에서 보듯 동북공정을 전후한 시기 외교안보 측면에서 중국과 미국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되고 있다. 단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동북공정 이후에도 중국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동북공정 이전 일반인의 중국에 대한 호의적 정서가 확산될 무렵 이른바 정치권의 반응이다. 2004년 4월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셥에서 13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외교통상 상대국; 중국 63%, 미국 26%」 “이 결과에 대해 조선일보가 발표 당일, 동일한 설문조사”를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한 결과는 미국 63.9%, 중국 33.3%였다고 한다.
이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002~3년 중국 우호론, 미국 비판론이 확산되면서 일반인과 열린우리당 당선자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반면 전통적인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생각은 이전과 같았고 위 결과에 충격을 받은 보수우익 세력이 모종의 공세를 취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보수우익 세력의 외교 관점은 베스트셀러였던 『10년 후 한국』, 공병호, 해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공병호씨 주장의 요지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는 변하지 않을것이며 미국의 힘은 상당기간 유지될 것인데 중화민족주의가 부활, 팽창하고 있음으로 미국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보수우익세력의 사상공세가 여러 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민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민족해체론이 주류이다. 한국 보수진영의 마음의 고향은 역시 한미동맹이다. 그러나 위와 함께 중요한 것은 보수적.관념적 민족주의의 제창이다. 80~90년대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해 진행된 「다물」사상이나 지금의 간도 영유권 주장에도 이러한 발상이 숨어 있다. 보수적.관념적 민족주의는 사회 내부의 대립관계를 희석하고 공명정대한 국제관계 수립 모색을 왜곡하는 위험한 생각이다.
3) 민족주의와 함께 고려해야할 점은 민족주의가 민족 내부적으로는 진보적 측면과 민족 외부적으로는 다극화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극화의 경우 민족주의가 민족 외부로 지향할 때 견지해야할 원칙이면서 민족주의의 진보성 여부를 판별하는 지표이다. 남북이 하나의 민족으로 단결하자고 하는 의미는 여타 민족과 공존.공영하자는 의미와 쌍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민족주의가 다극화와 결합하지 않고 팽창적.패권적 색채를 띄는 것은 옳지 않다. 한편 민족주의의 외부적 요소를 다극화를 뛰어 넘는 근본적 수준에서 잡는 것 또한 문제이다. 가령 제도와 체제 문제를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공존하는 잣대로 삼게 되면 다극화 원리가 파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