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한반도에 운명의 해(年)가 다가온 느낌이다. 올해 2026년이 그렇다. 왜 운명의 해인가? 5년 넘게 한반도 정세가 교착상태를 넘어 동면상태에 있었는데 올해부터 일말의 변화가 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뭔가 꿈틀거릴 것 같은 기대감 말이다. 단순한 ‘기대감’마저 절체절명의 ‘운명’으로 치부될 정도로 지금 한반도 상황이 처절하기 때문이다.
2025년엔 대북대화 필요조건인 ‘이재명-트럼프’ 조합 출범해
지난해 2025년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반도 정세의 주요 축인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미동조차 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과 미국에서 북한과 대화를 바라는 정부가 들어섰다는 점이다. 민족화해 노선에 서 있는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부터 대북 우호조치와 함께 대화를 추구했다.
한반도 정세에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은 더 극성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부터 대통령 당선과 집권 후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물량적 구애(求愛)를 폈다. 그 절정은 경주 에이펙(APEC) 회담 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길에 올라 경주로 향하면서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 부르고, 나아가 ‘김정은이 만나고 싶어 하면 한국에 있을 것’이라며 APEC 일정을 연장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북측은 이미 답을 내놨다. 김 위원장은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한국과는 절연, 미국과는 조건부 만남’을 밝혔다. 한국과는 2023년 말에 선언한 ‘두 개 국가’의 연장선에 있고 미국과는 ‘비핵화 포기’ 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미국’ 분리 전략이다. ‘하나의 민족’인 남측에게는 철저히 배제전략을 쓰고 ‘철천지 원쑤’인 미국에게는 조건부 대화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해로 다가온 2026년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위한 기회의 해로 만들 수 있는가? 기회의 해로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기대를 할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기대의 근거는 2025년에 한쪽이 진영을 갖췄다는 점이다. 지난해 ‘이재명-트럼프’ 조합이 출범하면서 북측과 대화를 위한 필요조건이 갖춰졌다. 이제 대화를 위한 충분조건은 김정은 위원장이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2026년에는 북측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충분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살아있는 북한의 ‘대화 이니셔티브’
2026년에 들어서자마자 남측의 대북 구애가 눈부시다.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아침 ‘신년사’를 통해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북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이다”고 언명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일 통일부 시무식에서 “이재명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존중하며 북측이 말하는 도이췰란드(독일)식 체제 통일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모두 미국측과 북측을 향한 맞춤형 언사들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계기적이기는 하지만 발동이 걸리면 김 위원장을 향해 언제고 무차별적으로 추파를 던질 것이다.
북한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충분조건은 미국의 경우 ‘북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남측의 경우는 북측에 ‘두 개 국가’의 이유가 된 헌법 3조 영토조항을 폐기하는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여기에다 북측이 지적한 대로 남측이 “모든 분야가 미국화된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이며 철저히 이질화된 타국”이기에 미국으로부터 ‘자주성’을 회복하라는 것이 추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핵보유국’을 뜻하는 ‘뉴클리어 파워’라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비핵화’라는 잠금장치는 자연스럽게 해제가 된다. 대화 ‘조건’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측이 헌법 3조 폐기와 대미 자주성 회복, 이 두 가지를 당장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너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남북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대화가 반드시 전제조건이 해결돼야만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해답은 북측에 있다.
북한의 오래된 관행과 문법에 따르면, 북미대화든 남북대화든 결정은 북측이 한다. 북측이 대외관계를 재개할 결정을 해야지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북측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누구든 북측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내봤자 헛수고란 얘기다. 80년에 걸친 남북관계사와 북미관계사가 그렇지만, 특히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더욱 그랬다. 북측은 대외관계를 끊고 미국에 ‘정면돌파’전을 펼쳤다. 이러는 과정에 2023년 말 남북관계에서 ‘두 개 국가’론이 더해졌다. 미국이든 남측이든 대화가 더 어렵게 된 이유다.
북측은 매사에 이니셔티브를 중히 여긴다. 대외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북측은 대외관계를 하나의 ‘전투’로 인식한다. 전투를 개시하자면 이니셔티브를 선점해야 한다. 이는 북측의 뿌리인 항일무장투쟁 과정에서부터 싹텄다. 독립을 위해 부족한 무장력으로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와 싸우자니 유격전을 해야 했고, 유격전에서 최고 덕목은 이니셔티브를 쥐는 일이다. 북측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협상을 하다가도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판을 깨는 것은 다반사다. 북측에 있어 이니셔티브는 생사의 분기점이다. 북한의 ‘대화 이니셔티브’는 여전히 살아있다.
기회의 창, 북 9차 당대회와 4월 미중 정상회담
북측이 무언가를 할 경우 조짐이 있다. 중대한 일이면 더욱 그렇다. 기회의 해로 만들어야 할 2026년에 북측이 대외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바로미터가 있다. 올해 기회의 창 두 개가 엿보인다. 하나는 1월 중에 곧 개최될 노동당 9차 대회이고, 다른 하나는 4월에 개최될 예정인 미국-중국 정상회담이다. 전자에서 북측은 남측과 미국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던질 공산이 있고, 후자에서는 미국이 중국에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메시지를 건넬 경우 북한이 보일 반응이다.
만약 성사된다면 대화의 흐름은 ‘선 북미회담, 후 남북회담’ 순으로 될 것이다. 남북회담이 먼저든 나중이든 열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북미회담이 먼저 개최된다면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피스메이커, 이재명-페이스메이커’ 역할분담을 제시한 것은 ‘선 북미회담, 후 남북회담’을 내다본 전략적 판단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에 나설 충분조건은 분위기 조성이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겐 그 기회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기를 앙망(仰望)하듯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중국을 방문하면 시진핑 주석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 회심의 대북 제안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빈 방문으로 중국을 향했다. 이 대통령은 방중 첫 일정으로 재중 한국인 300여 명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은 우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도 더 없이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는 5일에 있을 ‘이재명-시진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가 주요 의제로 설정될 것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한국 정부의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덧붙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각각 중국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한다면 한반도에서 뭔가 꿈틀거릴 수 있다. 올해는 기대감이 싹트는 운명의 해다. 2026년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위한 기회의 해로 만들자.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