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어와 더불어 그 집단정체성 지탱의 중요한 도구다. 역사가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역사가가 어느 시대 특정 사안에 대해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서술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역사라는 시‧공간 속의 흔적들이 너무 넘쳐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안목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또한 ‘Now here is God’을 ‘No where is God’로 오기‧오독함으로써 유신론자가 절대무신론자로 바뀌는가 하면, 학생 시절 통지표에 적힌 담임교사의 의견 한마디를 부모가 다르게 이해함도 다반사로 경험했을 듯하다. 역사가의 안목이 획일화될 수 없음도 암시해 주는 사례다.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이 역사인식과 직결되기에, 그 주관적이고 애매한 용어와 치열히 싸워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된다. 그러므로 건강한 역사가의 눈은 ‘주인으로 보는 눈[主視眼]’, ‘슬기로 보는 눈[慧視眼]’, 그리고 ‘바로 보는 눈[正視眼]’이 우선적이다.
역사는 남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노예의 눈으로는 주인의 역사를 만들 수 없고, 주인의 눈에서는 노예의 역사가 나올 수 없다. 역사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과거는 남을 위한 변명으로 덧칠된 역사였다. 중화사관에 함몰되어 중국의 아바타로 천여 년을 허덕였다. 그것을 재활용하여 등장하는 것이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이다. 노예의 집단 속에 주인만 바뀐 꼴이다. 해방 이후 역사의식의 왜곡 역시 그 경험과 무관치 않다. ‘주시안(主視眼)’을 잃어버린 아픔을 곱씹게 된다.
언제부턴가 소외와 위축의 역사로 흘러온 것도 우리의 역사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서의 수난과 더불어 우리 정체성의 쇠퇴와 맞물린다. 탄압 속에 사라진 서적도 대부분이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다. 남아서 천대받는 서적도 하나같이 그 부류의 서책이다. 뒤집힌 세상을 선택한 우리의 업보다. 정사(正邪)가 전도(顚倒)되고 주객(主客)이 역전된 삶이 우리의 역사적 삶이다. ‘혜시안(慧視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과학성이니 합리성이니 보편성이니 하는 허울 속에, 우리의 ‘정시안(正視眼)’을 잃어버린 경험도 꽤나 오래되었다. 전통사회에서는 중국적인 것이 과학적‧합리적‧보편적인 가치요, 근대 이후로는 제국주의적 잣대가 바로 그러한 가치였다. 우리는 늘 변두리 의식 속에서 빌붙어 사는 것에 익숙해져 왔다. 바로 보아야 할 역사의 눈 역시 사팔뜨기[斜視眼]가 된 원인이다.
역사가는 과거를 향한 건강한 예언자여야 한다. 그가 주인 됨을 버리면 기준과 척도를 잴 수 없다. 그가 슬기를 잃어버리면 구차함과 억측이 진실을 가리게 된다. 그의 시각이 바로 봄을 망각케 되면 가식과 협잡으로 사실을 정관(正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역사학계에서의 역사인식이란 그저 의미 없는 구호일 뿐이다.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틀에서 찍어내는 듯한 붕어빵 역사학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 관련 학과를 가진 국내 유수의 대학들의 역사인식이 모두 동일하다는 점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사료 해석이나 관점에 추호의 간극이 없다. 정설이니 통설이니 하는 궤변으로 역사인식의 다양성을 원천봉쇄하였다. 따라서 배출되는 학자들 모두 하나같이 같은 금형기계로 찍어낸 듯한 로봇 학자들이다. 그러니 학파도 없고 학풍도 없다. 당연히 다양한 학설이 공존하기 힘들다.
그 붕어빵 틀에서 벗어나는 가치(역사인식)는 이물질로 매도된다. 그들이 말하는 유사사학이니 위서론이니 하는 일방적 공격이 그것이다. 왠지 이러한 이물질론(異物質論)도 무척이나 익숙하다. 중화론적 가치 시대에 황탄한 서술, 사문난적 등으로 몰려 함몰된 반중화적 역사인식이 그것이다. 일제식민지시대에는 유사사학으로 몰려 난도질 당한 민족주의 역사인식의 경험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이유는 간단하다. 주변의 가치가 끼면 그들의 붕어빵 틀(기득권 학설)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인식이 가치의 영역이고 보면, 스스로 몰가치의 역사학을 자인해 온 꼴이다. 우리 역사학이 가치 학문이 아닌 공산품(工産品)의 역사학으로 몰락한 배경도 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에서 특정 사서를 지목한 것도 흥미롭거니와, 그것이 제도권 사학에서 홀대받는 서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기다렸다는 듯 세상이 난리가 났다. 기득권 학계뿐만 아니라 여‧야나 보수‧진보할 것 없이 똘똘 뭉쳐 한목소리로 부르짖었다.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외침이다. 오랜만에 보는 단합된 모습에 가슴 뭉클할 정도였다.
국책 역사기관들의 반응은 더더욱 가관이다. 뱁새 눈으로 분위기만 살피던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3대 기관들이 그 분위기에 힘을 얻었다는 듯 환단고기는 위서론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은 그 사서의 진위를 가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의 붕어빵적 역사인식에 대한 변화를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한 상식적 제안이었다. 말귀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새길 수 있는 언설임에도, 본질을 빗겨 난 위서 타령으로 다시금 공박한 것이다.
마치 대통령이 ‘환빠(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세력)’나 ‘국뽕(국수적 태도에 대한 비아냥)’의 우두머리인 양 몰아세우며, 그들의 서술권력으로서의 위세를 마음껏 휘둘러댔다. 여‧야를 넘어서, 좌‧우를 넘어서 드러난 현상임에 더더욱 슬프다.
문득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의 역사인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은식은 ‘역사의식에서 발생하는 동력’을 독립운동으로 규정한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역사인식은 곧 독립운동의 당위이자 국가 존립의 근거였다.
일제는 박은식의 이러한 역사인식을 ‘헛되이 독립국 시절의 옛꿈에 연연케 하는 폐단이 있다’, ‘진상을 구명하지 않고 함부로 망설(妄說)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공박하였다. 그들이 총독부 내에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조선사 날조를 서두른 배경이다.
박은식은 환단고기를 접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기존의 국내외 문헌을 토대로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을 추구하였다. 우리의 정체성에 눈을 돌리고, 우리의 고토를 아우른 남북조사관을 전개한 인물이다. 기자중심의 삼한정통론을 공박하며 단군중심의 부여정통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임시정부 국무령(당시의 내각 수반)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역사인식 역시 대동소이하다. 그는 우리의 활동 무대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만주라는 것과 한사군 역시 그곳에 있었다는 인식을 보였다. 또한 기자 중심이 아닌 단군을 정통으로 하는 부여정통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그 역시 환단고기와 무관하다.
새삼 궁금해진다. 우리의 국사박멸을 획책했던 일제가 왜 삼국사기,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 실학 사서 등, 수많은 유교사서들을 남겨두었을까. 삼국유사와 같은 불교사서를 온존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서책들 역시 우리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 유‧불사관으로 환작(幻作)된 의도된 사서들이다.
일제는 이러한 사서들과 그들의 역사서를 토대로 조선의 영구지배를 위한 식민지역사학의 얼개를 엮었다. 물론 그 연역의 정점에는 ‘조선의 노예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꼭지점을 이룬다. 이러한 의도로 조작‧편찬된 것이 조선사 37권이다. 불행한 것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지금껏 이 틀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국몽이 대중화주의의 실천임을 모르는 이 없을 듯하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한반도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대유적(代喩的) 수사(修辭)임은 삼척동자도 헤아릴 수 있다. 이런 판국에 중국의 동북공정을 공박하고,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누가 누구를 힐난할 것인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모든 탓은 우리에게 있다.
건강한 역사인식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공산품의 역사학에서는 주변의 가치관이나 학제 간의 연구가 용납되지 않는다. 복제되는 역사학은 이미 학문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가 숨 쉬는 역사학,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역사학이다.
대한민국헌법 제66조 74조는 대통령의 의무를 규정한 조항이다. 명시되지는 않았어도 그 바탕에는 우리의 정체성 보전이 근간일 듯하다.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 역시 정치적 레토릭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 우리의 역사를 변명해 볼 인식을 위해 고민해 보라는 충고는 아닐까.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오랜 기간 대학에서 대종교독립운동사와 국학 이론을 강의하였다.
주요 저술로는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국학과 민족주의』(공저, 2019), 『배달의 역사, 새 길을 열다』(공동편역, 2020),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그 삶과 사상』(2021), 『임오교변』(공저, 2022), 『무원 김교헌의 생애와 역사인식』(2023), 『대종교항일투쟁인물사전』(2024) 외 다수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통일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