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그린 [포의풍류도]는 손바닥만 한 그림이다.
작은 화폭에 즉흥적으로 쓱쓱 그렸다. 화제로 쓴 글씨도 거친 편이다. 풍속화나 신선도를 그려낼 수 있는 필력의 김홍도에게 이 정도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림에는 선비가 비파를 타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배경이 생략되어 공간을 가늠하지 어렵지만 버선을 신지 않은 걸로 봐서는 실내가 분명하다. 선비 주변에는 붓, 벼루, 서책, 생황, 도자기, 파초, 호로병, 중국 고대청동기 고(觚), 사인검 따위가 표현되어 있다. 심지어는 청동기 안에 영지와 산호도 보인다.
이러한 소품들은 모두 선비의 풍모나 가치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작품의 제목이 [포의풍류도]이다.
포의(布衣)은 백의(白衣)와 비슷한 말로 벼슬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 그림의 왼쪽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서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시나 읊조리며 지내리라.’
선비가 벼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조선의 선비는 정치인이다. 동시에 시인이고 화가이며 철학자, 지식인, 행정가이다.
이런 선비가 벼슬을 마다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또한 벼슬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벼슬을 하지 않겠다는 진짜 의미는 그림 속의 다양한 사물에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의 사물을 분류해보면 이렇다.
일단 글을 읽고 쓰는 문방구가 있다. 서책, 벼루, 붓, 두루마리 종이가 그것이다.
선비의 풍류를 드러내는 장치에는 비파, 생황, 파초, 호리병, 도자기, 청동기가 있다.
사인검은 무인(武人)이나 권력이 아니라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뜻한다.
그림 속의 사물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문방구는 학문을 뜻하고 사인검, 파초, 생황, 비파는 학문적 신념에 대한 지조와 절개이다.
벼슬과 정치를 하지 않는 선비가 굳이 이런 사물을 곁에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말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는 게 맞다.
제목과는 달리 그림 속의 주인공은 벼슬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냥 관직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벼슬, 관직, 정치를 바라고 있다.
학문적 가치가 올곧이 구현되는 그런 이상적인 정치를 바라는 것이다. 벼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는 벼슬,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반어적인 표현이다.
청동기 안에 꽂혀 있는 영지와 산호는 이상세계의 상징물이다. 주로 [십장생도]에 표현되어 있는 영물(靈物)이다.
선비들은 유학적 이상세계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다른 나라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상세계를 이 땅에 구현하는 사람은 정치인, 즉 선비들이다. 조선시대의 백성은 정치의 수혜자였지 주체가 아니었다.
선비들은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실천방안으로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내세웠다.
예법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지성이자 형식이다. 또한 자발적 청빈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부정부패를 원초적으로 차단하는 자기 절제이다.
이런 가치에 따라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않거나 부당한 권력과 재물을 극도로 경계했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고 규정하여 사회적 응징을 가했고 인격적 파산을 선고했다.
풍류를 흔히 한량들이 기생을 끼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부분일 뿐이다.
풍류는 고통의 미학적 승화이다.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부당한 권력이나 재물을 가진 사람들의 끊임없는 공격과 모함을 견뎌내야 한다. 무엇보다 원초적 욕망이 만들어내는 안락과 유혹의 손길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확고한 사상과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선비들은 이러한 부당한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벗어나 신념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고 아름다운 그림과 시(詩)로 표현했다.
이것을 풍류, 혹은 유유자적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수묵화나 문인화는 거의 대부분이 이런 풍류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반복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말이자 동시에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평론가는 이 그림의 주인공을 김홍도 자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보통 이렇게 인물이 들어가는 그림은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가 대부분이다. ‘고사인물도’는 본받을 만한 인물을 소재로 선택하여 주인공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포의풍류도’의 인물은 고사의 인물도 아니고 구체적인 이름도 없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김홍도가 선비의 풍모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엄연한 중인 신분이다. 그 당시 중인들은 스스로를 조직하여 정치세력으로 발전해 가는 문화가 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선비든, 중인이든 간에 [포의풍류도]는 정치와 관직의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는 그림인 것은 틀림없다.
이 그림은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풍류를 알아야 하고 풍류를 모르는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비들이 고통스러운 풍류를 즐겼던 이유는 명쾌하다.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