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많은 연구자들이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거의 예외 없이 ‘수령형상영화’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것을 언급하는 연구자 모두가 그것에 대하여 명확한 개념을 정의하지 않은 채 각자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여 자기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남쪽의 연구자들 사이에 하나로 통일된 ‘수령형상영화’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있는 꼴이다. 이에 ‘수령형상영화’에 대하여 그 개념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이곳에서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문학예술부문에서 ‘형상’이란 “인간과 생활을 사실 그대로 구체적으로 생동하게 그려낸 화폭”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상’의 개념에 따라 북에서는 ‘수령형상’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에서 로동계급의 위대한 수령의 영광찬란한 혁명활동력사와 숭고한 공산주의적 풍모를 형상하는 것(밑줄 필자)”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현재 남쪽 연구자들은 이러한 수령형상영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먼저, 이우영은 북의 문학예술정책의 변화를 연구하면서 북은 1967년 종파투쟁을 겪은 뒤 “1960년대 후반 이후 수령형상화 문학을 중시”하게 되었고, “영화부문에서는 「유격대 5형제」(1·2부 1968; 3부 1969)가 수령형상문학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로부터 시작한 “영화부문의 수령형상문학은 「이름없는 영웅들」(1979~1980) 20부작 그리고 1980년대의 「조선의 별」(1980~1989) 10부작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김일성 사후 북한의 문예정책은 이념을 중시하는 수령형상문학 시대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며 북의 문학예술정책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김정일 문예정책의 지속과 변화』, 민족통일연구원, 1997)

한편 이명자는 북한영화가 “1980년대 ‘숨은 영웅’을 강조하는 문예정책이 등장하면서 그 동안의 도식성과 상투성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수령형상 영화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대표적 수령형상화 영화인 ≪민족과 운명≫은 꾸준히 제작되고 인기를 끌었다”고 주장한다.(「김정일 시기 영화 창작방법에서의 수동적 혁명」, 『북한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다섯가지』, 정재형 편, 집문당, 2004)

그렇다면 이들이 언급하고 있는 수령형상영화는 과연 올바르게 개념 정의된 것이며, 또 그 흐름에 대한 연구결과는 맞는지 살펴보자.

먼저, 위에서 정의한 『문학예술사전』의 수령형상영화의 개념을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은 쉽게 말해서 ‘수령’ 즉 김일성 주석이 영화 속 인물로서 형상된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그들의 수령인 ‘김일성’ 역을 맡은 영화배우가 나와서 수령을 형상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북의 자료에서 인정하는 최초의 수령형상영화는 1977년에 제작된 예술영화 <누리에 붙는 불>이다. 이 영화는 김일성 주석의 삼촌 김형권이 주인공으로 설정된 것으로, 그가 만주에서 무장소조를 이끌고 국내 깊숙이 들어와 일제와 투쟁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형상한 것이다.

북은 이 영화가 수령형상영화의 첫 작품임을 『문학예술사전』에서 “우리 인민이 오래동안 그처럼 념원하여오던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형상창조문제를 빛나게 해결하는데 성공한 첫 작품(밑줄 필자)으로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예술영화 <누리에 붙는 불>(1977) : 최초의 수령형상영화로 위 사진은 만주에서 처음으로 조선인들의 ‘반일인민유격대’가 결성되었음을 선포하는 김일성의 모습. [자료사진-유영호]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위에서 이우영이 그 예시로 든 <유격대 5형제>와 <이름없는 영웅들>에서는 수령 즉, 김일성이란 인물이 영화 속에 전혀 형상되고 있지 못하다. 그저 배우들의 대사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만일 이러한 것도 수령형상영화라면 아마도 북한영화가 처음 시작된 1949년 <내고향>이래 현재까지 창작된 모든 영화가 수령형상영화가 될 것이다.

또 이명자의 분석도 역시 위와 같은 수령형상영화의 개념을 적용했을 때 그가 ‘대표적’인 수령형상영화라고 언급한 <민족과 운명> 역시 전혀 수령형상영화가 아닌 것이다. 현재 제작된 총 62부작에 이르는 <민족과 운명> 어디에도 수령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수령형상영화란 ‘영화 속에서 출연배우에 의하여 수령이 형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자 자신의 주관적 개념 규정으로 북한영화를 분석하는 경향은 더 이상 없어야 될 것이다.

학문세계에서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글자’는 같지만 그 개념이 서로 다르게 쓰여지고 있다면, 앞선 연구자의 성과물 위에 또 하나의 디딤돌을 올려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학문의 세계에서 그 발전이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라며 앞선 선행연구의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었던 아이작 뉴턴의 말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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