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세대 북한영화 연구자 이명자는 2004년 발표한「<민족과 운명> ‘로동계급 편’, 플래시백과 역사재현」이라는 논문과 그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판된 『북한 영화와 근대성』(역락, 2005)에서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앞서 <민족과 운명>을 분석한 남쪽 연구자들의 글과 마찬가지로 그의 주관적 분석이 자료의 객관성을 크게 뛰어 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민족과 운명> 총 62편 가운데 북에서 그 기둥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로동계급편>(1994~1998, 11부작)과 그 외 <나의 아버지>(1996) 등 몇 편의 영화들을 분석하면서 탈냉전시대를 맞이하는 북의 변화를 연구하였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은 그 동안 계급 차별을 통한 통제의 사회였는데, 위기에 처한 1990년대 이후는 체제 위기에 대응하여 내부 통합을 유도하는 광폭정치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영화 속에서는 지난 시절 적대계급으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끌어들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제는 지난 시기와 달리 혈연적 대가족은 해체되고 있다.

셋째, 이러한 혈육으로서의 가족 해체는 이종인물, 이종집단 간의 새로운 가족 만들기로 나타난다. 이러한 것들은 영화 속에서 결손가정의 아동들을 양자로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그의 연구결론을 글 속에서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명자는 <로동계급편> 속의 다기 다양한 인물들, 즉 도시출신의 젊은 지식인(한송옥: 리경희 분), 포로수용소 귀환병(진응산: 리지영 분), 일제시대 때 제강소 사장인 일본인의 수양딸(사옥비: 문정애 분) 등을 “이전에 적대계급으로 규정하던 인물”로 전제한다.

그리고 이들을 쇠물집안인 노동계급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영화 내용에 대하여 북이 이제 국가적 위기 속에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부의 통합을 강조하기 위하여 노동계급과 차별되는 이종집단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또 이러한 연구결과는 단지 <로동계급편>에서만 검증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할아버지>(1994), <나의 아버지>(1996) 등 1990년대 중반 이후 영화 속에서 쉽게 확인된다며, 이러한 이종 집단의 결합은 이제 김정일 시대의 새로운 추세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여 “김정일 시기는 가족해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김정일 을 중심으로 다시 체제 통합에 나서야하듯이 혈육으로서의 가족해체는 이종인물, 이종집단 간의 새로운 가족만들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의아버지>에서도 부모를 모두 잃은 어린 남매 효정과 은정에게 그곳 당비서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며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시킨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로동계급편>이나 <나의 아버지>에서와 같이 “유훈통치기에 제작된 영화 가운데 특별히 결손가정과 이종집단 간의 새로운 가족만들기는 중요한 소재로 떠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연구 결과로 그는 그 동안 “수령제가 추구했던 근대화가 순수한혈통을 얻기 위해 배제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것과 달리 이질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라고 한다.

그는 위와 같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북한영화들을 분석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북은 “그 동안 계급차별이 중요한 사회통제의 구실을 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모든 계급을 감싸 안아 이끌겠다는 광폭정치”는 “북한사회가 처한 어려움으로 인해 내부 통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러한 북의 현실이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종집단의 결합과 통합이란 개인 가족적 이기심을 넘어서려는 사회주의 집단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자 체제의 분열에 맞서는 김정일 체제의 응전수단”이라고 결론 내린다.

▲ 예술영화 <로동계급편>(1995~1998: 11부작) : 쇠물집안 강태관(유원준 분)의 집에서 대가족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자료사진-유영호]

▲ 예술영화 <나의 아버지>(1996) : 고아가된 은정을 당 비서(서경섭 분)가 학교 숙제도 검사해주는 등 친아버지처럼 돌봐주는 모습. 확인서에 “아버지 보았음”이라고 써주자 은정은 “비서아저씨, 오늘부터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아요?”라고 물으며 친부모를 만난 듯 기뻐한다. [자료사진-유영호]

▲ 예술영화 <우리 할아버지>(1994) : 여행길에서 만난 두 처녀, 총각이 늙은 자신(박민 분)에게 친자식처럼 신경 써주고 생일까지 챙겨주는 고마움에 “남남이 따로 없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감격해 하는 모습. [자료사진-유영호]

필자는 위와 같은 그의 분석을 보면서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위의 분석에서 이명자는 북의 변화를 읽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편이 훨씬 올바른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필자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를 살펴보자. 이번 글에서는 이명자의 세 가지 주장 가운데 첫 번째 것에 대하여서만 검토하여 보기로 한다.

(1) 광폭정치에 대한 오해

먼저, 북에서 그 동안의 ‘계급차별을 통한 통제사회’에서 현재는 광폭정치로 ‘적대적 계급’을 껴안고 있다는 이명자의 주장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북에서 <로동계급편>은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기둥작품이며, 그 종자는 “그 어떤 파철도 전기로에 들어 가면 붉은 쇠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인간도 로동계급 속에 들어 가면 그 모양 외에 달리 될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하여 로동계급이 나라의 맏아들로서 씨암탉구실을 하면 그 아무리 복잡한 계층의 인간도 그에 용해되여 김일성민족의 한 성원으로 될 수 있다는 쇠물철학”이다(「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로동계급편에 깃든 불멸의 향도」, 『조선문학예술년감』, 1999).

따라서 이 영화는 전후 복구 및 천리마대고조기라는 시대배경 속에서 반혁명, 반민족사대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집단이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혁명계급 즉 노동계급으로 새롭게태어나는 과정을 형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자가 주장하듯이 지난 시대에는 “계급차별을 통한 통제의 사회”였는데,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북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 ‘응전수단’으로 ‘이종집단의 결합과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핵심적인 논제일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른다면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기점으로 1994년 이전에는 “수령제가 추구했던 근대화가 순수한 혈통을 얻기 위해 배제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1994년 이후에는 “모든 계급을 감싸 안아 이끌겠다는 광폭정치”를 통하여 “북한사회가 처한 어려움으로 인해 내부 통합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대조를 이루어야 된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 이같은 논지를 그 이전의 영화들을 통해 확인해보기로 하자.

참고로 필자는 많은 북한영화를 접하면서 느낀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영화의 제작 시기나 주제를 떠나 거의 모든 영화 속에서 관철되고 있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의 하나는 북의 헌법 63조에 규정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것, 즉 ‘개인주의’에 반대되는 ‘집단주의’였으며, 다른 하나는 ‘광폭정치’라는 문구였다. 이 두 가지가 마치 북한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여기서는 두 번째 ‘광폭정치’로 표현되는 북의 군중노선은 <로동계급편> 총 11부작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즉 북은 정치노선에서 그러하듯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도 그 제작시기를 막론하고 반민족 사대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다기 다양한 인간집단을 포용하며 그들을 노동계급의 정신으로 각성, 개조시켜 함께 나아간다는 이야기가 그 주요 내용을 이룬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는 <로동계급편>도 역시 “전후복구건설시기, 천리마대고조시기의 강선제강소를 생활무대로 하고 용해공 가정인 강태관 일가를 인간관계의 축으로 하여 각이한 생활경위를 가진 사람들이 로동계급 모양으로 개조되여 나가는 과정을 예술적으로 그리고 있다”.(『조선중앙년감』, 1995)

그런데 이러한 군중노선의 문제는 단지 최근에 이르러 주요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광폭정치’라는 것이 김정일 위원장의 ‘새로운’ 정치노선이 아니라, 그 전부터 북쪽 사회를 관통해 오고 있는 군중노선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광폭정치가 김일성 주석의 인덕정치의 다른 표현에 불과함을 자신의 논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1994)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마련하여주신 인덕정치의 빛나는 전통을 끊임없이 계승발전 시켜나가고 있다. 우리 당의 인덕정치는 각계각층의 인민들에게 차별없이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는 폭넓은 사랑과 믿음의 정치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당의 인덕정치를 광폭정치라고 한다. 우리 당의 인덕정치는 매 사람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책임지고 이끌어주는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의 정치이다. 우리 당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교양개조하여 옳은 길로 이끌어주어 사회정치적 생명을 끝까지 빛내여 나가도록 보살펴주고 있다."

이러한 인덕정치, 즉 광폭정치를 우리는 지난날의 영화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이명자의 글에서 ‘적대적 계급’으로 분류된 부류의 사람들(도시출신의 젊은 지식인 한송옥, 포로수용소 귀환병 진응산, 일제시대 때 제강소사장인 일본인의 수양딸 사옥비등)을 <로동계급편> 이전의 많은 영화에서도 혁명의 대열에 함께 하도록 이끌고, 결국 그러한 교양.개조 속에서 그들도 혁명의 노정에 함께 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었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아래 표와 같다. 

< 비적대적 계급을 포용하는 내용의 영화들>

영화제목

제작년도

내용

연풍호
(전후편)

1972

1948년 시작된 대규모 농촌수리화 사업인 연풍호건설을 극화한 것. 여기서 기술자인 현석은 일제 때 대지주의 아들 민광렬과 잠시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어서 주인공 영근의 오해를 받지만 결국 당은 그를 끌어안아 영근은 건설소장으로, 현석은 기사로서 연풍호 건설을 주도적으로 해내는 역할을 한다.

첫파견원

1976

해방 직후, 일제 시대 때 기사활동을 했던 인텔리 설계사 이명세에 대하여 좌경세력들이 그를 배척하고자 하는 것을 중앙당 파견원의 믿음과 신뢰로 설계사 이명세도 함께 공장 건설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내용을 형상화.

시련의 해

1977

반동세력들이 개인농 지주를 혁명세력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고,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그 지주를 농업협동조합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혁명과정에 함께 가는 것으로 형상화.

초행길
(전후편)

1980

해방 정국 속에서 남쪽으로 넘어간 임영식기사와 대지주의 딸과 약혼한 류현수기사, 산업국 부국장 리병찬 등 식민지 시대 인텔리들과 양말공장 사장 양심적 기업인 등을 포용하며 새 조국건설에 함께 나가는 내용을 형상화.

조선의 별
(10부작)

1980
~1987

총 10부작의 전편에 걸쳐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김혁의 애인 설은주는 도시 인텔리출신일 뿐만 아니라 종파(화요파)분자의 여동생인데 결국 만주로 와서 항일혁명에 함께 하며 그러한 혁명활동의 과정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형상화.

언제나 한마음
(3부작)

1982
~1985

1950년대 전후 복구의 시기에 낙원공장에서 굴착기를 생산하는데 있어 직장장은 소 자산계급인 철공소 주인과 사돈을 맺고 철공소 주인도 점차 혁명적 의식을 깨우치게 하고, 철공소 주인 역시 그 뒤 굴착기 생산을 좌절시키려는 적들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형상.

한 지대장의 이야기
(2부작)

1983

1930년 전후를 배경으로 항일혁명가 허철만과 심혜영(민족주의자 심일로의 딸)의 사랑과 그 속에서 심혜영이 혁명의 대열로 함께하게 하는 이야기.

봄날의 눈석이
(2부작)

1985

가난한 총련계 남수와 대 기업가 민단계의 딸 영아의 혼사일로 이야기는 전개되며, 그 혼사는 영아의 외삼촌의 반대로 파경에 이르지만 결국 영아의 아버지인 박영철이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양가는 혼사를 치르는 이야기.

새 정권의 탄생
(2부작)

1986

항일운동 당시 옥수평 유격구에서 지주출신의 도유사를 출신성분을 문제삼아 내 쫓으려는 좌익세력에 대항하여 항일유격대 출신 최춘혁이 그 지주집을 지켜주는 내용을 형상화.

위대한 품
(2부작)

1986

우익 민족주의 대표주자인 김구가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으며, 북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활동 등을 그리며 조국분단에 맞서는 좌우익의 결합을 형상화.

보증
(2부작)

1987

책임비서인 박신혁이 가정주위환경과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한 원석해, 허진성을 당적으로 보증하고 그들의 건강과 자녀들의 앞날까지 돌봐주는 이야기로 북의 군중로선을 가장 확실하게 드려다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려명
(전후편)

1987

김일성 주석의 부친인 김형직의 삶을 그린 영화로, 영화 속에서 일제 헌병보좌관인 홍종우의 도움을 받는 장면을 통해 조선인이 일제기관에 복무하면서도 독립을 위해서 그의 애국적 양심을 발휘할 수 있는 장면을 형상화.

민족의 태양
(5부작)

1987
~1991

일제시대 대지주였던 김정부를 통하여 그가 지주임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애국세력이라면 그러한 사람들도 혁명의 대열에 함께 가야 한다는 것과 그를 반혁명 세력으로 바라보는 일부 편협한 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내용.


이러한 분석에 따를 때 최근에 이르러 다기 다양한 군중을 하나로 통합하는 내용의 영화가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분석하는 이명자의 글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주요 분석 대상 자료로 삼은 <로동계급편>의 시대배경이 전후 천리마시기였던 것처럼 북한영화에서 통상 항일혁명시기에서 전후 복구까지를 그 시대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이명자는 자신의 글에서 ‘지난 시절에는 계급차별을 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였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계급차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북한영화 속에서 계급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명자가 이야기하는 그런 ‘어설픈 적대계급’이 아닌, 그야말로 ‘진짜 적대계급’인 ‘사대매국세력’과 ‘철천지 원쑤’들에 대한 정책일 뿐이다. 이러한 것은 북의 경우 영화 속에서도 조선노동당의 '통일전선전술'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명자의 글에서는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귀환병 진응산과 도시 인텔리 처녀 한송옥 같은 인물들을 ‘이전에는 적대계급으로 규정했었다’고 하는데 필자는 이러한 출신성분의 사람들을 적대계급으로 설정한 경우를 적어도 북한영화 속에서는 ‘단 한편’도 본 적이 없다.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영화에서 적대계급을 가르는 기준은 그 출신성분이라기 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사상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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