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평화3000’은 주요 대북 협력사업 중의 하나인 장충성당에 있는 콩우유공장을 현장방문했으며, 아울러 평양시내-백두산-묘향산을 참관하였다.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면서 느낀 방북기를 일기식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김 기자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평양일기를 작성한 적이 있기에 이번 방북기 제목은 구별을 위해 ‘김양희 기자의 다시 쓰는 평양일기’로 한다. / 편집자 주

북녘에서 무상의료를 받다

▲ 양각도호텔에서의 환송만찬 주탁. [사진-김양희 객원기자]

저녁에는 양각도호텔에서 북녘의 환송만찬이 이어졌다.

환영만찬과 마찬가지로 자리 잡은 일행은 3박 4일이라는 일정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안타까워하며 만찬을 즐겼다. 일부는 잠은 남녘에 가서도 얼마든지 잘 수 있으니 오늘은 밤새도록 점도 자지 말고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함께 자리하고 있는 이들과 친구를 삼기로 하기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이후 술도 한 잔 하기로 했다.

▲ 북측의 다양한 술 종류. [사진-김양희 객원기자]

청포창탕, 조기은지구이, 돼지세겹살사과즙구이, 소갈비고추장즙찜, 숭어완자탕 등 음식이 이어지던 중 급한 연락을 받았다. 같이 방을 쓰고 있는 정은미 박사의 호출이었다.

정 박사는 백두산을 다녀온 뒤, 탈이나 오후 일정도 함께 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다행히 친선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찾아와 살펴보고 약을 처방해줘 몸이 많이 괜찮아졌지만 좀 더 쉬고 싶다고 해 환송만찬 대신 방에서 쉬고 있던 터였다.

친선병원은 북녘 병원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의 전용 병원으로 환자가 되어서는 외국인이 되는 것이다. 북녘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무상의료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특히 ‘주민영양’이라고 해 주민들의 생활 특성, 노동 형태, 생리적 특성 따위를 고려해 영양 상태는 물론이고 과거 병력까지 기록해 둬 병원을 찾을 시 이전 어떤 병력을 갖고 있었는지 참고를 해서 치료토록 한다고 한다.

남녘에서는 의료보험의 민영화 추진으로 돈이 없으면 정말 죽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실제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한 미국의 보험 가입자들이 겪고 있는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 다큐영화 ‘식코’를 보더라도 무상의료 보장이 돼 있는 쿠바에서는 몇 달라 하지도 않는 약이 미국에서는 수백 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하고, 당장 손가락이 다쳐도 돈이 없으면 갖고 있는 돈 만큼에 걸 맞는 손가락만을 붙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는 “북녘의 무상의료 진료 광경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좋겠다”고 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동안 북녘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방에 올라가보니 정 박사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아까 식당에 내려가기 전만해도 괜찮다 했었는데 순간 급격히 열이 올랐는지 몸은 불덩이처럼 뜨겁고 자꾸 목이 마르다고 했다. 그녀는 열이 너무 높이 올라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였다.

급한 대로 찬물로 수건을 적셔 몸을 닦아주고 열이 내리길 기다렸다. 사실 이런 일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무척이나 당황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미 주문해 놓은 죽이 올라왔고 곧이어 북측 의사와 간호사, 장윤철 안내원이 찾아왔다.

북녘의 의사는 고려의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 남녘의 진료와는 조금 다르게 진맥도 짚어보고 여러 정황을 고려 한 뒤 침을 놓기도 하며 약을 쓴다.

깊어가는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

▲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알리는 포스터. [사진-김양희 객원기자]

오늘은 평양일정이라 숙소에 남아있었지만 내일은 바로 묘향산으로 떠나기 때문에 어서 몸을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다. 정 박사만 남겨두고 묘향산에 갔다가 나중에 순안공항에서 만나는 것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알아서 그런지 북녘의 의사 선생은 세심히 살피고는 간호사에게 강도가 높은 약과 함께 주사를 주라고 처방을 했다.

익살스러운 장윤철 안내원과는 장난도 많이 치고 농담을 주고받던 사이라 이전엔 얼굴만 봐도 서로 웃곤 했지만 사안이 워낙 심각하다보니 그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이런 우리의 근심을 눈치 챘는지 의사 선생은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으니 차차 나아질 것이다”며 “환자가 쉴 수 있도록 나가자”고 했다. 내겐 “양각도호텔에 묵고 있으니 혹시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지면 새벽에라도 바로 연락을 하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땀으로 침대보가 모두 젖었으니 호텔로비에 연락을 해 교체를 해주라고 했다.

침대보를 교체하기 위해 온 봉사원들은 “아니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봅니다”라고 환자를 확인하고는 “조심히 빨리 해치우자”며 숨까지 죽여가면서 재빨리 갈아주었다.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일행들과 거하게 술 한 잔 하자고 약속을 했지만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정 박사의 곁에 있기로 했다. 다행히 정 박사는 주사를 맞고는 열이 조금씩 떨어지고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일행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회전전망칸 식당에 있으니 혹시 괜찮으면 잠깐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도 정 박사의 상태는 상당히 호전되어 “한숨 푹 자면 나을 것 같다”며 내게 “다녀오라” 했다. 나는 혹시 몸이 좋지 않으면 바로 회전전망칸으로 호출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술자리로 갔다.

이미 일행은 앞서 술자리가 있었던 터라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아이들마냥 내게 이전 술자리에서 꽃 같은 북측 봉사원 동무들과 사진을 함께 찍어 나눠줬다고 자랑을 했다.

재미없는 농담에도 웃어주는 북녘 봉사원 동무들과 가차 없이 까칠한 나를 비교해 가며 “북측 봉사원 동무들과 함께 했을 때는 꿈같았는데 김 기자가 오니까 현실이 됐다”며 “술 맛 떨어지게 하는데 선수”란다.

내참, 나도 약삭빠르고 닳고 닳은 남녘 청년들보다 순수하고 우직하며 자신감 넘치는 북녘 청년들이 훨씬 멋있거든요~

북녘 아가씨가 훨씬 예쁘다, 북녘 청년들이 멋지다 우겨가며 그렇게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가고 있다.

북측 인사와의 대화

2008. 9. 30

아침 6시, 일찍부터 의사 선생이 우리 방을 찾아왔다. 정 박사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의사 선생님은 또 다시 정 박사의 맥을 짚어보고는 주사와 약을 처방해줬다. 다행히 정 박사의 상태는 많이 좋아져 이날 일정을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묘향산 방문을 위해 버스에 오르자 일행 중 하나가 “안녕히 주무셨습네까?”하고 북녘 사투리를 썼다. 그러자 또 다른 이가 “이제는 모두 표준어를 쓰십네다”라고 해 한바탕 웃었다.

며칠 지났을 뿐인데 이제는 북녘 사투리가 익숙해지고 심지어 북녘 사투리로 시까지 지은 이도 있다고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해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 섞여 있어도 ‘피는 당긴다’더니, 해외여행 어디를 가도 이처럼 하루 이틀만에 적응하기 힘들 텐데 이곳은 낯선 지방 어느 도시를 간 것보다도 더 빨리, 도착하자마자 적응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반가워 얼싸 안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게 마련인데 하물며 헤어진 혈육을 만나면 그 애틋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까?

어제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이런 이유로 평양이건, 금강산이건, 개성이건 간에 직접 가서 북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진정 우리와 한민족이며 내 부모 형제, 내 누이 등 가족 같은 마음이 든다. 그러니 한 번 가서 만나면 두 번 가서 만나고 싶고 안보면 또 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 외국에 나가면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처럼 북녘에 오면 통일을 외치는 통일운동가가 된다.

정 박사의 상태를 계속 지켜보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 선생들이 우리 버스에 올랐다. 이들은 다른 버스를 타고 우리 일정 내내 함께 다녔었다고 한다. 정 박사 외에도 백두산의 일교차가 너무 큰데다 어제가 평양 마지막 밤이라고 한잔 하다 보니 감기몸살에 걸린 사람이 여럿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오늘 의사와 간호사 선생이 가장 바쁠 듯하다.

▲ 북측 안내원 김철웅 장충성당 신도회 부회장이 천지를 배경으로 서 있다. [사진-김양희 객원기자]

묘향산까지는 두 시간 정도 가는데 마침 내 곁에는 김철웅 장충성당 신도회 부회장이 앉았다. 김 부회장이 북녘 사람들의 대표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녘 사람들의 인식을 살짝 엿보고 싶었다.

“남녘 정세에 대해 잘 알고 계세요?”
“잘 알지! 리명박 대통령이 된 뒤 이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나본데 그 기간이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나를 알게 될 것이다.”

“장기적인 불황이 지속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당선이 됐으나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어려운 사람은 여전히 어려워요.”
“나는 정말 마음이 아픈 게 유럽이나 필리핀만 봐도 미군 주둔비를 받고 독일도 연간 몇 십억 달러씩 받는데 남녘은 군사기지도 내주면서 새롭게 장비를 교체해주는 등 오히려 주둔비를 바치고 있다. 폴란드에 미군이 주둔하고 미사일기지를 체코에 설치하는 것과 관련,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 하고 있어. 최근 그루지아 전쟁도 러시아의 미국에 대한 경고메세지일 것이다. 일본은 패전국인데도 미국에 주둔비를 바치나? 전승국은 북인데 오히려 남한만 주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미군 주둔비만 받아도 서민들의 생활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평소 남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미국 색을 많이 따라간다.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하고 미국과 친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해를 하긴 하지만 실제 미선이나 효순이처럼 당하면 모두 떨쳐 일어날 것이다.”

“북녘에서도 남녘의 열사님들을 잘 모신다고 들었어요.”
“북녘에서는 미선이와 효순이 등 남녘의 열사들을 존경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 학생등록을 하고 함께 공부하며 졸업을 하도록 했다. 이는 열사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남녘의 열사들은 물론 북녘의 학생들에게도 존경하는 열사와 함께 생활했다는 자긍심을 안겨준다.”

그는 계속 말했다.
“언어, 핏줄 등에 국경이 없는 것처럼 이념과 사상 등을 접하는 이들도 국경이 없다. 그런데 우리 수령님(김일성 주석)은 ‘역사의 주인이 되자’는 말처럼 사회주의를 조선사람 구미에 맞게 바꿔 조선의 운명을 개척하도록 해 칭송을 받는 것이다. 조선 사람이 조선옷을 입는 것처럼 혁명도 우리 민족에 맞게 바꾼 것이다.
그는 한참동안 해방 이후의 역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를 보고는 “김 기자는 몸 까기를 해야겠다”며 “튼튼한 몸은 나라의 보배”라고 말했다.

(헐~모야... 순간 당황했지만) “이래봬도 얼마나 튼튼한데요, 건강에는 문제없어요!”
“9월, 10월에는 인민들의 체력 검정을 하는 시기야. 나이 들수록 건강 자랑 말고 병 자랑을 해야 하는 법이지.”

“부인은 날씬한 미인이세요?”
“미를 추구하는 것은 모두 같지. 그렇지만 어느 정도 허용오차 범위 내에서 사는 것이지. 훤칠한 사람, 쭉 빠진 사람, 이목구비를 갖춘 사람 등 다양한데 우리 부인은 이목구비는 좀 빠지지만 100m 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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