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이 걷힐 날에 ②


지상 남북서신교환

=답장은 없으련만=

 

이북에 두고 온 누이 순환에게

                 한치  한 O환

 

「와싱턴」보다 먼 그 고향을

<혈육의 정을 막을 자는 없다>

 

순환아! 너와 헤어진지도 그럭저럭 십이년 - 아득한 세월이 흘러갔구나. 그동안 서로 생사조차 모르고서 답답했겠나, 이 고통은 너와 나만이 홀로 겪는 고통도 쓰라림도 아니오. 온 민족이 크나 적으나 다 같이 겪고 있는 고통이기에 다소 자위가 된다고나 할까.

그 자위가 결코 일시적인 효능은 있을는지 몰라도 너와 나를 언제까지나 만족시켜 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그것마저도 어쩐지 무의미해지고 공연히 초조감과 무엇인가 잃은 것을 도로 찾고 싶은 심정만이 온통 가슴속을 꽉 채우고 있다.

전쟁이란 광풍이 분간 없이 사람들의 정신을 휩쓸고 있을 때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바랐더냐? 증오, 불신, 잔인, 인간의 비인간화, 야만, 질병, 기아 - 이 일련의 제 악덕이 사실상 서로 자기를 정당화하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미화하여 끝없는 파멸로 제정신 없이 끌려들어가지 않았더냐?

아! 연병장과 신무기시험장으로 밖에는 되지 않았던 이 땅 위의 백성의 운명이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도 변함이 없는지? 너나 나나 곰곰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순환아! 같은 땅위에 살고 있을 네가 「런던」이나 「와싱턴」보다도 멀고 먼 아니 저 월세계나 딴 유성에 사는 사람만 같은 착각이 십이년 동안 내 머릿속을 온통 차지해 왔었단다.

오빠가 무슨 호사한 생활이라도 하기 때문에 어머니나 널 잊은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는 거리 감각이란 것도 냉전의 괴물 앞에서는 이렇게 기능상실을 하게 되는가 보다.

그리고 그 착각이 어느새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것인 양 우리는 여겨왔으니 민족의 비극이 이에서 더한 것이 어디 또 있겠니?

그러기 때문에 네가 사는 고장에서는 「모스크바」가 서울보다 더 가깝게 보이고 이 고장에서는 「와싱턴」이 고향보다도 더 가깝게 보이게끔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너나 나나 다 불쌍하고 가엾은 혈육이니 말이다.

너는 내말을 이상하게 여길는지 모르나 누가 만일 「와싱턴」보다 고향이 가깝다고 주장하고 또 여러 사람에게 선전한다면 우선 이 고장에서는 「용공분자」란 혐의가 그늘처럼 따라다니게 마련이고 그곳에서 「모스크바」보다 서울이 가깝다고 하면 「용공분자」의 혐의가 붙을 것이다.

순환아! 있는 사실을 엄격히 객관하고 인식하는 데는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방향감각도 거리감각도 다 함께 상실한지 이미 오래된 우리의 정신이 자기규준을 시급히 찾아야겠다. 살아남으려 할 때에 외부적 규준에만 자기를 맡긴다면 그 착각은 기어이 정당화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역사와 문명의 변두리에서 살아야 할 것이고 영원히 남을 위해 종노릇할 것 밖에는 더 길이 없겠기에 말이다.

오빠라 해서 네가 나를 닮아야 한다고 억지를 쓰는 것은 아니다 네가 어떻게 배워왔으며 그 배운 것을 통해서 세상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네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건 어쨌든 간에 네가 내 사랑하는 동생이요. 내가 네 오빠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사상과 주의 이전에 혈육의 정이라는 본능적인 감정을 죄악이라 하여 막으려는 자가 있다면 나는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한사코 저항하련다.

순환아!

내가 만약에 너를 미워하고 해치고자 한다면 너도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너도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자기방어를 할 것이다. 그럴 때 그 광경이야말로 처참을 지나 실로 한심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을게다.

지금의 내 심정은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어머니와 너를 보고픈 일념뿐이다. 네 손으로 틀림없이 네가 쓴 육필의 편지와 가족의 사진을 내 눈앞에 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써도 내 염세병과 편두통도 거의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오면 봄대로 겨울이 오면 겨울대로 계절마다 맺혀져 있는 오만가지 추억들 - 옛 벗들, 고향의 풍물들이 날이 갈수록 더욱더 그리워진다. 「회향병」이란 말도 있지만 이제 정녕 고향을 생각하면 병든 사람모양 온 몸이 아파오기까지 한다.

편지도 물산도 사람도 왕래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용공」이며 「반동」이라면 우리는 동포끼리 어느 세월에나 만날 수 있을 것이냐 말이다.

순환아! 너는 이 편지 내용에 불만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오빠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고 또 무슨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지 궁금할 점이 한둘이 아닐 텐데도 나는 통 그런 말은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네가 꼭 알고 싶다면 몇 줄 쓰겠다만 처음엔 멀쩡한 걸인 그 다음은 품팔이꾼 부두하역 노동자 어떻게 어떻게 간신히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거친 후 다시 실업자로 죽 지내오다가 지금은 정치운동이라는 걸 하고 있단다.

이리하여 이십대로부터 삼십대에 걸친 십여년 동안을 나는 줄곧 이 사회의 잍바닥에서 생멸하는 온갖 사상을 다 구경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또한 교훈도 많이 얻었다하겠다.

오빠도 별로 편안한 생활은 못해왔지만 너와 어머니의 그간의 고생은 어떠할까?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순환아! 지나간 우울한 과거를 너나 나나 이젠 다 잊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 희망과 광명만을 이야기하고 싶구나.

너도 인젠 삼십이 넘었겠구나. 이렇게 독자하면서 소녀 때의 네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통일의 그날이 하루바삐 와서 어머니랑 너랑 다 같이 옛과 다름없이 살아보고 싶구나! 그날은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니 아무쪼록 몸조심하고 탈 없기를 바란다.(독자⋅서울시 종로2가 거주)

38선이 걷힐 날에 ②

38선이 걷힐 날에 ② [민족일보 이미지]

38線이 걷힐 날에 ②

 

紙上 南北書信交換

=答狀은 없으련만=

 

以北에 두고 온 누이 順煥에게

                 韓致  韓O煥

 

「와싱턴」보다 먼 그 故鄕을

<血肉의 情을 막을 者는 없다>

 

順煥아! 너와 헤어진지도 그럭저럭 十二年 - 아득한 세월이 흘러 갔구나. 그동안 서로 生死조차 모르고서 답답했겠나 이 고통은 너와 나만이 홀로 겪는 苦痛도 쓰라림도 아니오. 온 民族이 크나 적으나 다같이 겪고 있는 苦痛이기에 多少 自慰가 된다고나 할까.

그 自慰가 決코 一時的인 效能은 있을는지 몰라도 너와 나를 언제까지나 滿足시켜 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그것마저도 어쩐지 無意味해지고 공연히 초조감과 무엇인가 잃은 것을 도로 찾고 싶은 心情만이 온통 가슴속을 꽉 채우고 있다.

戰爭이란 狂風이 분간 없이 사람들의 정신을 휩쓸고 있을 때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바랐더냐? 憎惡, 不信, 殘忍, 人間의 非人間化, 野蠻, 疾病, 饑餓 - 이 一聯의 諸惡德이 事實上 서로 自己를 正當化하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美化하여 끝없는 破滅로 제정신 없이 끌려들어가지 않았더냐?

아! 練兵場과 新武器試驗場으로 밖에는 되지 않았던 이 땅 위의 百姓의 運命이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도 變함이 없는지? 너나 나나 곰곰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順煥아! 같은 땅위에 살고 있을 네가 「런던」이나 「와싱턴」보다도 멀고 먼 아니 저 月世界나 딴 遊星에 사는 사람만 같은 錯覺이 十二年동안 내 머릿속을 온통 차지해 왔었단다.

오빠가 무슨 호사한 生活이라도 하기 때문에 어머니나 널 잊은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는 距離感覺이란 것도 冷戰의 怪物앞에서는 이렇게 機能喪失을 하게 되는가 보다.

그리고 그 錯覺이 어느새 當然하고도 正常的인 것인 양 우리는 여겨왔으니 民族의 悲劇이 이에서 더한 것이 어디 또 있겠니?

그러기 때문에 네가 사는 고장에서는 「모스크바」가 서울보다 더 가깝게 보이고 이 고장에서는 「와싱턴」이 고향보다도 더 가깝게 보이게끔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너나 나나 다 불쌍하고 가엾은 혈육이니 말이다.

너는 내말을 異常하게 여길는지 모르나 누가 萬一 「와싱턴」보다 故鄕이 가깝다고 主張하고 또 여러 사람에게 宣傳한다면 우선 이 고장에서는 「容共分子」란 嫌疑가 그늘처럼 따라다니게 마련이고 그곳에서 「모스크바」보다 서울이 가깝다고 하면 「容共分子」의 嫌疑가 붙을 것이다.

順煥아! 있는 事實을 엄격히 客觀하고 認識하는데는 매우 큰 勇氣가 必要하다. 方向感覺도 距離感覺도 다 함께 喪失한지 이미 오래된 우리의 精神이 自己規準을 時急히 찾아야겠다. 살아남으려 할 때에 外部的 規準에만 自己를 맡긴다면 그 錯覺은 기어이 正當化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歷史와 文明의 변두리에서 살아야 할 것이고 永遠히 남을 위해 종노릇할 것 밖에는 더 길이 없겠기에 말이다.

오빠라 해서 네가 나를 닮아야 한다고 억지를 쓰는 것은 아니다 네가 어떻게 배워왔으며 그 배운 것을 통해서 세상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네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건 어쨌든 간에 네가 내 사랑하는 동생이요. 내가 네 오빠임에는 틀림없다는 事實은 중요한 것이다. 思想과 主義 以前에 血肉의 情이라는 本能的인 感情을 罪惡이라하여 막으려는 者가 있다면 나는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한사코 抵抗하련다.

順煥아!

내가 만약에 너를 미워하고 해치고자 한다면 너도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理由야 어쨌든 너도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自己防禦를 할 것이다. 그럴 때 그 光景이야말로 悽慘을 지나 실로 寒心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을게다.

지금의 내 心情은 아무 理由없이 그저 어머니와 너를 보고픈 一念뿐이다. 네 손으로 틀림없이 네가 쓴 肉筆의 便紙와 家族의 寫眞을 내 눈앞에 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써도 내 厭世病과 偏頭痛도 거의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오면 봄대로 겨울이 오면 겨울대로 계절마다 맺혀져 있는 오만가지 追憶들 - 옛 벗들, 故鄕의 風物들이 날이 갈수록 더욱더 그리워진다. 「懷鄕病」이란 말도 있지만 이제 정녕 고향을 생각하면 病든 사람모양 온 몸이 아파오기까지 한다.

便紙도 物産도 사람도 往來해서는 안 된다는 理由가 「容共」이며 「反動」이라면 우리는 同胞끼리 어느 세월에나 만날 수 있을 것이냐 말이다.

順煥아! 너는 이 便紙 內容에 不滿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오빠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고 또 무슨 일을 해서 生計를 維持하는지 궁금할 點이 한둘이 아닐 텐데도 나는 통 그런 말은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네가 꼭 알고 싶다면 몇 줄 쓰겠다만 처음엔 멀쩡한 乞人 그 다음은 품팔이꾼 埠頭荷役 노동자 어떻게 어떻게 간신히 大學을 나오고 大學院을 거친 후 다시 失業者로 죽 지내오다가 지금은 政治運動이라는 걸 하고 있단다.

이리하여 二十代로부터 三十代에 걸친 十餘年동안을 나는 줄곧 이 사회의 잍바닥에서 生滅하는 온갖 事象을 다 구경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또한 교훈도 많이 얻었다하겠다.

오빠도 別로 편안한 생활은 못해왔지만 너와 어머니의 그간의 苦生은 어떠할까?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順煥아! 지나간 우울한 過去를 너나 나나 이젠 다 잊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 希望과 光明만을 이야기하고 싶구나.

너도 인젠 三十이 넘었겠구나. 이렇게 獨自하면서 少女때의 네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統一의 그날이 하루바삐 와서 어머니랑 너랑 다 같이 옛과 다름없이 살아보고 싶구나! 그날은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니 아무쪼록 몸조심하고 탈 없기를 바란다.(讀者⋅서울市 鐘路二街 居住)

[민족일보] 1961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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