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이번 글에서는 톺아보기 (12)에서 예고한 대로 북이 추구하는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립경제는 주체노선의 기본'

자력갱생(自力更生)은 말 그대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북은 자력갱생이 '주체노선'을 추진했던 김일성 집권기부터 이어진 자신들의 "전통"으로서, 정치·경제·국방·외교 등 국가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의 선전화(조선중앙통신, 2019.6.1.)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의 선전화(조선중앙통신, 2019.6.1.)

북은 자기 힘으로 먹고살 수 있어야 자주적인 정치, 국방, 외교도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에서 자력갱생, 즉 자립경제가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북이 지향하는 자립경제는 원료·연료·설비를 국산화하고, 에너지와 식량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기본적으로 국내 생산으로 충족할 수 있는 경제를 말한다. 따라서 자립경제를 하려면 북은 자체 역량으로 무수히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난제 해결에 과학기술 필수

그런데 이 과제 중에는 노동력을 많이 투입하고 긴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 고난도 과제도 많다. 예를 들어 철강을 생산할 때 100% 수입해야 하는 코크스가 아니라, 그보다 열량이 낮은 국내 무연탄을 연료로 써야 한다(주체철). 

각종 화학제품이나 비료를 생산할 때도 역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 사용을 최소화하고 국내산 석탄을 원료로 삼아야 한다(석탄화학). 또 국토의 75%가 산지이고 남쪽보다 훨씬 추운 자연조건 속에서 식량을 자급할 만큼 농업을 고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위와 같은 어려운 과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북은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시도하고 있다. 역으로 과학기술도 자력갱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논문으로만 남거나 그럴싸한 시제품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라, 설비·자재·원료·연료의 국산화, 에너지와 식량 자급, 인민소비품의 자체 생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관련 선전화(조선중앙통신, 2018.5.16.)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관련 선전화(조선중앙통신, 2018.5.16.)

자립적 발전 ≠ 고립적 발전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자력갱생을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말이 외국의 기술을 거부하는 고립적 발전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북은 해외 선진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발전 속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이전해줄 가능성이 있는 외국 기업에게 특혜를 제공해서라도 합영·합작을 하려 했고, 최신 국제표준과 거기에 담긴 최신 과학기술 성과를 경제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려 하고 있다. 다만 외국 기술의 모방이 아니라 그것을 북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북의 헌법에도 "국가는 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고 선진 과학기술 적극 받아들이며"라고 나란히 적어 놓았다(2019년 개정헌법 기준 제50조).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의 성과들

그러면 북이 추구하는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시도는 잘 진행되고 있을까? 북의 공식 발표나 보도, 북과 자주 접촉하고 방문했던 외부 인사들의 관찰과 증언, 전문가들의 연구 등을 종합하면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은 다양한 성과를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100% 국내산 무연탄만을 이용한 철강 생산에 성공했다고 하고, 벼 강화재배 방법과 같은 선진농법을 완성해서 곡물 생산량을 많이 늘렸고, 흑연·아연 등 북에 풍부한 광물을 이용해서 천연 흑연솔·금속 산화물 피뢰기·능동형 전기보일러 등 여러 가지 부품과 설비를 개발했다고 알려졌다. 

뇌 CT나 실시간 PCR과 같은 첨단 의료장비도 자체 역량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황해북도 지능제품제작소가 개발한 능동형 전기보일러(서광, 2020.5.13.). 기존 보일러보다 전력 소비를 30-40% 줄인다고 한다.
황해북도 지능제품제작소가 개발한 능동형 전기보일러(서광, 2020.5.13.). 기존 보일러보다 전력 소비를 30-40% 줄인다고 한다.
김책공대 전자공학부가 개발한 나선형 뇌 CT (조선의 오늘, 2015.12.18.)
김책공대 전자공학부가 개발한 나선형 뇌 CT (조선의 오늘, 2015.12.18.)

아직도 쌓여있는 과제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100% 국내산 무연탄을 이용한 철강 생산, 즉 100% 주체철 생산공정을 만든 건 사실이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높지 않다. 

그래서 주체철의 생산량은 적고 품질은 낮은 에너지 소비는 많다고 북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70년 가까이 주체철 개발을 시도해왔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석유화학 대신 석탄에서 탄소를 뽑고 그걸 합성해서 다양한 화학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탄소하나화학공업 건설도 지난 수년 동안 집중적으로 시도해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북은 2022년 탄소하나화학공업의 첫 공정인 메탄올 대량 생산공정의 시운전을 목표로 했지만, 2023년 4월까지도 시운전에 돌입했다는 기사는 없다. 

위 사례들 외에도 북은 경제의 많은 부분에서 국산화, 자립에 성공하지 못했다.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북이 '과학기술이 실질적인 경제발전을 이끌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계속 강조

그래도 북은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계속 시도한다고 한다. 70년이 다 되도록 성공하지 못한 '주체철의 기술적 완성'은 여전히 금속공업의 첫째 과제이고, 기계·전력·경공업 등 경제 모든 부문에서 국산화를 더욱 진전시켜서 수입제품에 의존하려는 "수입병"을 뿌리 뽑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성공하지 못했고, 미래의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한 이런 시도를 계속하는 북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성' 기준으로는 굉장히 불합리해 보인다. 

하지만 북은 수십 년에 걸친 경험을 통해서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신념화했다. 특히 김일성 집권기인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 사이의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였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과학기술 + 자력갱생'은 역사적 경험의 산물

북은 1957년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시작했는데, 당시 북과 갈등을 빚고 있던 소련이 원래 약속했던 원조를 5개년 계획 시작 직전에 크게 줄였다. 

북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자 큰 위기였기 때문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5개년 계획 수행에 동원했다. 과학기술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과 연구소에 있던 과학자 대다수가 생산현장으로 나가야 했다. 

1956년 여름 소련 순방 중 현지 방송에 출연한 김일성 수상(왼쪽에서 두 번째). (『조로친선의 위대한 련대기』(2022)). 순방 목적은 5개년 계획에 투입할 원조의 확대였지만, 소련은 반대로 원조를 줄여버렸다.
1956년 여름 소련 순방 중 현지 방송에 출연한 김일성 수상(왼쪽에서 두 번째). (『조로친선의 위대한 련대기』(2022)). 순방 목적은 5개년 계획에 투입할 원조의 확대였지만, 소련은 반대로 원조를 줄여버렸다.

결과적으로 당시 북은 5개년 계획의 목표를 2년 반 만에 달성했을 정도로 고도성장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내산 석탄과 석회석을 이용한 합성섬유, 이른바 "비날론"의 공업화, 또 당시 북 공업 수준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트랙터와 화물차의 자체 생산을 포함해서 다양한 연구개발 성과와 수많은 기술혁신이 도출됐다. (당시 북의 상황과 과학기술 성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강호제, 『북한 과학기술 형성사 Ⅰ』 (선인, 2007)에 나와 있다.) 

1950년대 말 북이 자체 제작한 '천리마' 트랙터(로동신문, 2020.1.10.)
1950년대 말 북이 자체 제작한 '천리마' 트랙터(로동신문, 2020.1.10.)

'과학기술 발전시키면 자력갱생 가능' 확신

김일성 수상을 필두로 한 당시의 북 지도부는 위와 같은 성과를 보고 '소련 등 외부 도움이 없어도 자체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잘 활용하면 자립경제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이후 북은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북의 입장에서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의 필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높아졌다. 북의 대외환경이 계속 나빠져서 외부 기술과 자본을 들여오기도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련 붕괴, 김일성 주석 사망, 대홍수로 인한 극심한 경제난을 연이어 겪은 1990년대에는 과학기술 발전이 체제의 생존을 좌우하는 사활적인 문제가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0년대 말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천명한 건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상황이 강제한 면도 있어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은 위와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북의 핵심 국정 기조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자의 반 타의 반, 또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할 만하다. 

김정은 집권기만 한정해도 보아도, 2019년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소위 "하노이 노딜" 한 달 반 뒤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자력으로 부흥의 길을 열어가자고 강조했다. 

2018년의 대화 국면 속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절실하게 바랐지만("집착"), 하노이 노딜을 겪으면서 제재 해제 또는 완화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한 뒤 자력갱생 기조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 더해 북은 2020년 코로나19에 대응해 자체 봉쇄를 하면서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정신은 자력갱생, 무기는 과학기술"이라는 구호도 만들었다. 

'북이 성공할까, 실패할까?'

이상은 필자가 강연, 인터뷰 등에서 항상 해온 내용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북한이 그런 시도에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가?' 하는 질문도 자주 받았다. 가끔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답을 바라고 반복적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점쟁이가 아니라서 단언할 수는 없고, 다만 쉽지는 않을 것' 정도로만 답을 했다. 그리고 '북은 자신들의 수십 년 경험의 귀결이자 현 상황에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시도를 계속할 것이고, 따라서 북의 현재를 이해하고 그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과학기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박사.

대학에서 미생물학, 대학원에서 북한 과학사를 전공했고,

북의 과학기술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의 '과학기술 강국' 구상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2018) 등이 있고,

공저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선택―10년의 변화 10개의 키워드』(블루앤노트, 2022), 『김정은의 전략과 북한』(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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