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60~70년대의 자력갱생, 간고분투, 높은 창조력' 강조


"국가경제발전의 큰걸음을 내짚는 해"

북은 2022년 12월 26~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이하 "전원회의")를 진행했다. 여기서 북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2021~2025)의 3년 차인 2023년을 "국가경제발전의 큰걸음을 내짚는 해"로 규정하고 경제 전반의 생산 활성화, 8차 당 대회(2021.1.)에서 결정한 정비보강 계획의 기본적 종결을 경제의 중심 과업으로 결정했다. 

특히 경제 부문별 핵심 과제를 묶어 "12개 중요고지"라고 하면서 그 달성을 강조하고 있다. 12개 중요 고지는 알곡, 전력, 석탄, 압연강재, 유색금속, 질소비료, 시멘트, 통나무, 천, 수산물, 살림집, 철도화물수송량이다(북이 그 구체적인 목표치를 밝히지는 않았다). 
 

북의 "12개 고지 점령" 선전화(조선중앙통신, 2023.1.6.)
북의 "12개 고지 점령" 선전화(조선중앙통신, 2023.1.6.)

전원회의에서 북은 객관적 조건이 여전히 어렵고 더욱 악화된 상황에서 위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에 중요한 핵심 부문 노동자, 과학자, 기술자들이 '1960, 70년대의 투쟁정신과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022년 과학기술 성과 미흡' 평가

북은 2022년 과학기술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1년에 몇 건이라도 경제에 실제 기여할 수 있는 온전한 과학기술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때부터 예견되었다.

이후 2022년 말까지 로동신문에는 '과제의 100% 수행보다 한 건의 똑똑한 성과가 더 중요', '생산현장이 환영하는 연구 수행'을 강조하는 기사가 계속 실렸다. 

전원회의에 대한 보도에서는 과학기술의 부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2023년 1월 4일자 로동신문은 2022년 과학기술계에 '여러 핑계를 대면서 연구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곳들이 있었고, 이쯤 하면 됐다고 허풍을 치면서 실적을 과장한 곳도 적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1월 9일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2022년에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실질적으로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뚜렷한 과학기술 성과가 적었다'고 평가했다. '이러저러한 성과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끌지는 못했다'고 한 8차 당 대회의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과학기술 중시, 과학기술 선행 여전히 강조

하지만 북은 올해도 과학기술을 강조하고 있다. 생산을 늘리고, 인민 생활을 개선하고, 경제의 자립적 토대를 정비보강 하기 위해 모든 부문과 단위가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과학기술을 앞세워야 한다고 촉구한다(로동신문, 2023.1.11.). 인민들을 향해서도 '누구나 과학기술을 잘 아는 기술형 인간, 지식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독려한다(로동신문, 2023.1.24.). 

이는 북이 제재와 봉쇄가 계속되고 내부의 여러 불합리한 요소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북의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기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룬다). 최근에는 객관적 환경이 계속 불리해져서 "과학의 중요성이 최대로 부각"되었다고 하면서, 과학기술의 힘으로 객관적 조건을 유리하게 바꾸고, 나아가 지배해야 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로동신문, 2023.1.9., 2.11. 등). 

과학기술 예산 확대는 어려운 상황

북이 객관적 조건의 불리함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북의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가가 과학기술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다.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2021년부터 북의 국가 예산 증가율이 1%대였고, 심지어 과학기술 예산은 2년 연속 동결이나 다름없는 0.7% 증가에 그쳤다. 

김정은 집권기 북의 연도별 예산 증가율(지출계획 기준)
김정은 집권기 북의 연도별 예산 증가율(지출계획 기준)

이런 상황에서 북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나마 있는 연구개발 역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과학자・기술자・생산현장에 대한 지도와 통제를 강화해야 하고, 과학자・기술자・생산현장은 국가가 중시하는 과제 해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북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1960, 70년대를 소환하고 있다. 

왜 1960, 70년대인가? 

1962년 북은 북-소 갈등, 중-소 갈등, 5.16 군사쿠데타와 한미일 삼각동맹 현실화 등 높아진 안보 위기에 대응해서 "경제에 일부 지장이 있더라도 국방력을 먼저 강화"하기로 하고 경제와 국방의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이 때문에 국방공업에 대한 투자가 크게 확대되었고, 그만큼 민간경제에 대한 투자자는 줄어들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북-중 관계마저 악화되어 국방비가 국가 예산의 30%까지 폭증했다. 

북은 위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1960, 70년대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당시 북의 생산현장과 과학기술계는 전기기관차・비날론 공업화・3천 톤 프레스・20미터 대형선반 등 다양한 설비와 기계, 생산공정을 자체 역량으로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전년 대비 곡물 생산이 1967년 16%, 1968년에는 11% 상승했고, 1970년대 10년 동안 공업생산이 연평균 16% 가까이 높아지는 등 고도성장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 한 세기가 걸렸던 공업화를 14년 만에 해냈다는 것이 북의 주장이다. 

북의 비날론 기념우표 (한겨레온, 2020.6.21.)
북의 비날론 기념우표 (한겨레온, 2020.6.21.)

마침 필자는 1960-70년대 북의 발전전략과 과학기술 정책으로 박사논문("북한의 기술혁명론: 1960-70년대 사상혁명과 기술혁명의 병행"(2015))을 썼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위와 같은 북의 주장은 당시 북 경제와 과학기술계 내에 존재했던 많은 문제를 배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북은 경제발전 7개년 계획의 목표를 애초 계획보다 3년 연장한 1970년에서야 달성했다. 병진노선으로 인한 국가의 지원 부진, 자립노선에 대한 과학기술계 내부의 동요 등으로 인해 과학기술 발전 속도도 북 지도부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1960년대 초 북이 제작한 3천 톤 프레스(로동신문, 2021.3.17.)
1960년대 초 북이 제작한 3천 톤 프레스(로동신문, 2021.3.17.)

하지만 1960-70년대의 북이 현재의 북 당국이 볼 때 '본받자'고 하면서 소환할 만큼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북이 1960, 70년대를 소환하고 있다. 

‘강한 정신력, 높은 창조력으로 실질적 성과를'

북은 당시의 성과들이 자력갱생과 간고분투, 높은 창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자력갱생과 간고분투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모든 고난을 이겨내겠다는 높은 정신력을 의미한다. 북은 이와 같은 강한 정신력과 과학기술에 기초한 높은 창조력이 결합하여 1960, 70년대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북은 과학자, 기술자들이 어려운 조건과 부족한 자금, 설비 탓만 하지 말고 악착같이 연구해서 1960, 70년대의 과학자, 기술자들처럼 단 하나라도 실제적인 성과를 내라고 촉구한다. "학술지에나 실리고 이론으로만 남아 있게 될" 연구가 아니라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북의 과학기술계는 12개 중요고지를 필두로 한 경제 부문별 핵심 과제 해결에 그 어느 때보다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경제 부문별 목표 달성을 강조하는 북의 선전화들(조선중앙통신, 2023.1.6.)
2023년 경제 부문별 목표 달성을 강조하는 북의 선전화들(조선중앙통신, 2023.1.6.)

생산현장의 "기술신비주의 타파" 강조

북은 공장, 농장 등 생산현장을 향해서도 과학기술에 기초한 높은 창의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위해 "기술신비주의" 극복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술신비주의는 과학기술을 잘 알고 발전시키는 것은 과학자, 기술자 같은 소수의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고 노동자, 농민 같은 비전문가들은 할 수 없다는 관점을 의미한다. 

만약 생산현장의 간부, 노동자, 농민들이 기술신비주의를 갖고 있다면 과학기술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기술혁신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다. 반대로 1960-70년대에는 많은 생산현장이 기술신비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혁신이 가능했고, 이를 2023년에도 재현하자는 것이 북의 주장이다. 

북의 입장에서는 과학기술계가 수년째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현장의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해서 작은 것이라도 혁신하고 개선하는 것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그래서 북은 원격 재교육을 통한 각급 단위 간부들의 과학기술 역량 제고, 과학기술에 재능 있는 노동자・농민의 발굴 및 핵심 기술인력으로 육성, 원격교육대학・과학기술보급실을 활용한 전반적인 현장 기술 수준 제고, 생산현장과 대학・연구기관의 적극적인 협력 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김책공대의 경제간부 원격재교육 시스템(로동신문, 2021.2.25.)
김책공대의 경제간부 원격재교육 시스템(로동신문, 2021.2.25.)

2023년 1, 2월 로동신문에 1960-70년대, 기술신비주의 타파를 언급한 기사가 각각 50편 이상 실렸다.

그만큼 북은 1960-70년대처럼 강한 정신력과 과학기술에 기초한 높은 창조력으로 각종 난관을 극복하고 올해 목표를 달성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원격강의를 수강 중인 김정숙평양제사공장 노동자들(조선의 오늘, 2020.7.14.)
원격강의를 수강 중인 김정숙평양제사공장 노동자들(조선의 오늘, 2020.7.14.)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박사.

대학에서 미생물학, 대학원에서 북한 과학사를 전공했고,

북의 과학기술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의 '과학기술 강국' 구상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2018) 등이 있고,

공저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선택―10년의 변화 10개의 키워드』(블루앤노트, 2022), 『김정은의 전략과 북한』(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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