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앤타이・아메리카니즘」의 본질

- 미국의 대한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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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소규모의 것이긴 하지만 「앤타이・아메리카니즘」(반미감정)이 일부한국사람들-특히 지식청년 및 학생들-사이에 번져가고 있는 듯하며 이곳에 와 있는 외국기자들이나 미국무성관리들도 이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들린다.

지난 3월 22일 서울에서 있었던 「반공임시특별법안」 및 「데모 규제법안」을 규탄하는 성토대회와 「데모」에 대하여 그 뒤에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보도하여 많은 기자들의 비난을 받은 바 있는 「뉴욕・헤랄드・트리뷴」의 「에드가・?・클라크」기자는 서울에서 「뉴욕」의 본사에 보낸 특파기사에서 「한・미 두나라 사이의 친선관계가 그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다」고 논하고, 한국사람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번지고 있는 이유로서 주한미군기관에서 일하는 한국종업원들에 대한 대우가 나쁘다는 것, 한・미행정협정이 아직 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이 한국통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남한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들을 들고 있다.

우리는 이 「클라크」특파원의 매우 피상적인 견해에 대하여 굳이 논평하는 것을 삼가겠거니와, 「앤타이・아메리카니즘」이 미국의 원조와 후견과 보호를 다른 어느 자유국가보다도 많이 받아왔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에서조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근본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한국을 에워싼 국내외 정세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한국사람들 사이에 번져가고 있는 이른바 반미사상의 성질을 옳게 파악하고 그 원인을 현명하게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보다 한・미 두 나라의 양식있는 사람들에게 더 험한 일은 없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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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한국사람들로서는 미국사람들이나 소련사람들이나 또는 다른 어떤 외국사람들과도 특별히 친해야 한다거나 밉게 지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를 삼십육년동안에 걸친 일본의 식민제국주의에서 해방시켜줬고, 또 1950년 6월 25일의 「공산군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미국정부나 그 국민들을 미워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정부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의 은인이며 우리에게 막대한 원조를 베풀어 준」 나라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미 두 나라의 집권자들은 이 단순한 진리에 대해 너무나도 무식했거나 의식적으로 무시하려는 태도를 취해 온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서냉전전략의 필요상 한국정부의 「무비판적 지지」를 얻기에 급급한 미국정부는 많은 「정치적 끄나풀」이 붙은 군사원조와 경제원조를 한국의 집권자(그것이 이승만독재정권이건 무능・부패한 장면정권이건)에게 베풀어 왔으며, 한편 자기들의 계속 집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미국의 원조를 얻는 대가로 한국의 집권자들은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미국에 대한 무비판적 충성심 또는 우호관계」를 강요해왔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소련과 북한의 공산정권과 그 밑에서 신음하는 「북한인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옳다. 그러니까 「북한인민」들은 같은 「해방의 은인」인 미국을 「제국주의의 표본」으로만 보도록 교육받아 왔으며, 이와 반대로 자유대한의 백성들은 역시 같은 「입장」이어야 할 소련을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나쁜 욕설로만 부르도록 배워 왔던 것이다.

이것이 「8・15」해방 후 16년 동안을 꿰뚫어 온 「한・미관계」의 전부였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방적이고 일그러진 국제관계의 강요가 남북의 한국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것을 강요해온 미・소 두 나라에게도 백해무익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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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남한에 번지고 있다는 「앤타이・아메리카니즘」은 미국의 대한정책을 보다 비판적으로 보려는 이 땅의 지식청년 및 학생들의 생각이 집중적으로 표현된 말이라고 보고 싶으며, 이런 비판적인 태도는 환영은 받을지언정 결코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반미사상」이 가장 많은 곳이 다름 아니라 미국의 영향력이 가장 세게 미친 영국, 서독, 불란서와 같은 서구의 민주국가들과 극동에서는 일본, 대만, 「필리핀」같은 자유국가들이며, 이와 반대로 「반미사상」이 가장 문제되지 않는 곳이 바로 인도, 「에집트」 및 「버마」와 같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이른바 중립국가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미 두 나라의 정부당국자들이 앞으로 취해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미국이나 소련이나 그 밖의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적개심」이나 「강요된 우호관계」를 갖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조 말엽에 강대국들의 비겁한 배신과 양보로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일본에게만 독점시킨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동서냉전이 시작한지 16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미국이나 소련이나 그 밖의 어느 한나라가 독점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또 실현불가능한 일인가를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한정책이 동서냉전에 있어서의 승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사람들을 반세기 이상에 걸친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통일된 민주적이며 경제적으로 부흥된 독립국가를 이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번져가는 「앤타이・아메리카니즘」의 「딜레마」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 「앤타이・아메리카니즘」의 본질 [민족일보 이미지]
 
▲ 「앤타이・아메리카니즘」의 본질-아래로 펼침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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