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된 혁신세력만이 인민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

=반민주악법반대성토대회의 대성공을 축복하며=

 

(1)
통일사회당 및 사회당을 비롯한 39개의 혁신계정당 청년 학생단체가 주최한 「반민주악법반대성토대회」가 22일 하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렸으며,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사시간이상이나 연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뿐 아니라 성토대회에 뒤이어 시작된 횃불 「데모」에 호응했다는 사실은 많은 정치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고 보아야겠다.

첫째로는 「4.19혁명」이후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인민대중들의 안타까움을 풀어주지 못하던 혁신계의 정당 및 청년, 학생단체가 비록 조직적 통합은 이루지 못했을망정 「반공임시특별법」의 입법을 강행하려는 것과 같은 공동의 투쟁목표에 대하여 그 행동을 통일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 우리는 만강의 찬사와 경의를 표명하고 싶다.

벗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적일 수 없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사소한 의견대립, 감정적 반발 및  일부의 소영웅주의적 고집 때문에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서로 헐고 뜯기까지 하던 혁신계의 영수들과 학생, 청년단체대표들이 한 연단에 모여앉아 악수를 나누고 말과 웃음을 주고받으며 반민주악법제정을 반대해야겠다는 각자의 열의와 각오를 피력하는 것을 보고 들을 때 온몸이 흐믓해지며 「4.19」이후 1년 동안이나 쌓이고 쌓였던 마음의 체증이 풀리는 듯함을 느낀 사람은 비단 성토대회 현장에 모였던 서울시민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한가지 나라와 겨레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으로서의 욕심을 말한다면 혁신계의 정당 및 청년, 학생단체들이 이번의 공동투쟁을 계기로 조직적인 통합을 이루어 달라는 것이다. 하나가 될 수 없거든 최소한 둘 정도라도 뭉쳐주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인민대중의 귀여움과 믿음을 받을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랄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2)
둘째로 자신들의 반독재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월혁명이라는 정치적 변동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권력을 잡은 장면보수정권이 그 자리에 앉은 지 채 일년도 못되는 지금 완전히 민심에서 이탈되고 말았다는 것을 이번 성토대회는 역력히 보여주었다.

물론 민주당정권이 민의와 동떨어진 정치를 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7.29총선거」에서 너무나도 의외의 대승리를 거둔 바로 그날부터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권을 잡기 위한 신・구파간의 추잡한 싸움은 덮어두고라도, 정실에 흐르고만 인사행정, 자유당정권 때의 그것을 무색케하는 관료들의 부패와 민주당 정객들의 금융적 부정, 졸렬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한 대유엔・대미 및 대일외교,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중석판매권을 에워싼 백만불인지 이백만불인지에 이르는 「커미션・스캔달」에 전내각과 전집권당이 관련되다시피 하는 따위의 국가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헐벗고 굶주리는 자유밖에 누릴 것이 없는 인민대중들은 민주당 알기를 자유당만도 못하다고 보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였던 것이다.

혹자는 22일 하오의 성토대회에 모였던 청중과 「데모」에 참가했던 시민들의 수효가 전체시민의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므로 반민주악법을 반대하는 국민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피상적인 견해인 것이며, 이미 두 차례나 반대성토와 「데모」를 감행한 대구시의 예와 앞으로 부산과 마산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번지게 될 정부규탄의 원인과 성격을 집권자들은 똑바로 보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민의를 옳게 보고 현명하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 이승만 독재정권이 하던 식으로 민의를 적대시하고 심지어는 그 뒤에 공산당의 조종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작하려고 했댔자 이미 각성된 인민대중은 결코 이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정당한 비판이 분노에 찬 공격으로 바꾸어질 따름일 것이다.


(3)
세째로, 이번 성토대회는 이 나라의 혁신세력이 보수세력에 대립되는 정치학 개념상의 정치세력일뿐만 아니라, 한일합방이후 반세기이상이나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누란의 위기에 빠져있는 조국을 구출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일부 응큼한 보수반동세력이 모함하는 것과 달리 이 땅의 혁신세력의 주류는 절대로 소아병적 좌익분자가 아닐뿐더러 능히 이북의 공산세력과 싸워서 이기고도 시민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거나 신민당이거나 이 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가나다」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을 「반공임시특별법」과 「데모규제법」과 같은 반민주악법의 입법을 강행하려 들음으로써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이들이 인구 겨우 이천만명이 넘는 실업자와 이백만명가까운 절량농민을 낼 정도의 기막힌 경제적 핍박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인민대중이 다 알고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시급한 통일문제에 대하여 한결같이 부정적이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들은 스스로가 일컫는 「민족주의자」로서의 자격마저 상실하고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나라의 혁신세력은 단순히 민주적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소수의 이상주의자들이 모인 정치세력으로서만 머물 수 없는 것이며 양심적이고 정직하고 애국적인 전체인민대중들의 「정당한 울분」을 풀어주고 그 이익을 대변해 줘야할 민족사적 사명을 띤 정치세력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 사설/통합된 혁신세력만이 인민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민족일보 이미지]

統合된 革新勢力만이 人民의 利益과 權利를 保護할 수 있다.

=反民主惡法反對聲討大會의 大成功을 祝福하며=

 

(一)
統一社會黨및 社會黨을 비롯한 三十九個의 革新系政黨 靑年 學生團體가 主催한 「反民主惡法反對聲討大會」가 二十二日下午 서울市廳앞 廣場에서 열렸으며, 數萬名에 達하는 市民들이 四時間以上이나 演士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뿐아니라 聲討大會에 뒤이어 시작된 횃불 「데모」에 呼應했다는 事實은 많은 政治的 意義를 가지는 것이라고 보아야겠다.

첫째로는 「四.一九革命」以後 離合集散을 거듭하여 人民大衆들의 안타까움을 풀어주지 못하던 革新系의 政黨 및 靑年, 學生團體가 비록 組織的統合은 이루지 못했을망정 「反共臨時特別法」의 立法을 强行하려는 것과 같은 共同의 鬪爭目標에 對하여 그 行動을 統一시킬 수 있었다는 點에 對하여 우리는 滿腔의 讚辭와 敬意를 表明하고 싶다.

벗은 될 수 있을지언정 決코 敵일 수 없는 處地에 있으면서도 사소한 意見對立, 感情的 反撥 및  一部의 小英雄主義的 固執때문에 서로 和睦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서로 헐고 뜯기까지하던 革新系의 領袖들과 學生, 靑年團體代表들이 한 演壇에 모여앉아 握手를 나누고 말과 웃음을 주고받으며 反民主惡法制定을 反對해야겠다는 各自의 熱意와 각오를 피력하는 것을 보고 들을 때 온몸이 흐믓해지며 「四.一九」以後 一年동안이나 쌓이고 쌓였던 마음의 체증이 풀리는 듯 함을 느낀 사람은 비단 聲討大會 現場에 모였던 서울市民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確信한다.

한가지 나라와 겨레의 將來를 걱정하는 사람으로서의 慾心을 말한다면 革新系의 政黨 및 靑年, 學生團體들이 이번의 共同鬪爭을 계기로 組織的인 統合을 이루어 달라는 것이다. 하나가 될 수 없거든 最小限 둘 程度라도 뭉쳐주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人民大衆의 귀여움과 믿음을 받을 수 있는 政治勢力으로 자랄 날이 永遠히 오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二)
둘째로 自身들의 反獨裁鬪爭을 通해서가 아니라 四月革命이라는 政治的 變動期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權力을 잡은 張勉保守政權이 그 자리에 앉은지 채 一年도 못되는 지금 完全히 民心에서 離脫되고 말았다는 것을 이번 聲討大會는 瀝瀝히 보여주었다.

勿論 民主黨政權이 民意와 동떨어진 政治를 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七.二九總選擧」에서 너무나도 意外의 大勝利를 거둔 바로 그날부터 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政權을 잡기 위한 新・舊派間의 추잡한 싸움은 덮어두고라도, 情實에 흐르고만 人事行政, 自由黨政權때의 그것을 無色케하는 官僚들의 부패와 民主黨 政客들의 金融的 不正, 拙劣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한 對유엔・對美및 對日外交, 그리고 最近에 이르러서는 重石販賣權을 에워싼 百萬弗인지 二百萬弗인지에 이르는 「커미션・스캔달」에 全內閣과 全執權黨이 關聯되다 시피하는 따위의 國家體面이 땅에 떨어지는 事件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헐벗고 굶주리는 自由밖에 누릴 것이 없는 人民大衆들은 民主黨 알기를 自由黨만도 못하다고 보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였던 것이다.

 
或者는 二十二日 下午의 聲討大會에 모였던 聽衆과 「데모」에 參加했던 市民들의 數爻가 全體市民의 몇「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므로 反民主惡法을 反對하는 國民은 小數에 지나지 않는다고 强辯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皮相的인 見解인 것이며, 이미 두차례나 反對聲討와 「데모」를 敢行한 大邱市의 例와 앞으로 釜山과 馬山을 비롯하여 全國的으로 번지게 될 政府糾彈의 原因과 性格을 執權者들은 똑바로 보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眞正한 民意를 옳게 보고 賢明하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過去 李承晩獨裁政權이 하던 식으로 民意를 敵對視하고 심지어는 그 뒤에 共産黨의 조종이라도 있는 것처럼 造作하려고 했댔자 이미 각성된 人民大衆은 決코 이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正當한 批判이 憤怒에 찬 攻擊으로 바꾸어질 따름일 것이다.


(三)
세째로, 이번 聲討大會는 이 나라의 革新勢力이 保守勢力에 對立되는 政治學槪念上의 政治勢力일뿐만 아니라, 韓日合邦以後 半世紀以上이나 外勢의 支配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累卵의 危機에 빠져있는 祖國을 救出해 낼 수 있는 唯一한 政治勢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一部 응큼한 保守反動勢力이 모함하는 것과 달리 이 땅의 革新勢力의 主流는 절대로 小兒病的 左翼分子가 아닐뿐더러 能히 以北의 共産勢力과 싸워서 이기고도 市民의 基本的 權利와 自由를 保護해 줄 수 있는 唯一한 勢力이기 때문이다.

民主黨이거나 新民黨이거나 이 나라의 保守主義者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西歐式 自由民主主義의 「가나다」도 實踐할 수 없다는 것을 「反共臨時特別法」과 「데모規制法」과 같은 反民主惡法의 立法을 强行하려 들음으로써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이들이 人口 겨우 二千萬名이 넘는 失業者와 二百萬名가까운 絶糧農民을 낼 程度의 기막힌 經濟的 핍박상태를 解決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人民大衆이 다 알고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시급한 統一問題에 對하여 한결같이 否定的이며 消極的인 態度를 取함으로써 이들은 스스로가 일컫는 「民族主義者」로서의 資格마저 喪失하고만 것이다.

이렇게 볼때 이 나라의 革新勢力은 單純히 民主的 社會主義를 建設하려는 小數의 理想主義者들이 모인 政治勢力으로서만 머물 수 없는 것이며 良心的이고 正直하고 愛國的인 全體人民大衆들의 「正當한 울분」을 풀어주고 그 利益을 代辨해 줘야할 民族史的 使命을 띤 政治勢力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민족일보> 1961년 3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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