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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민족일보 다시보기 <108>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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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2  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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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자유 위해
-반공특별법안을 반대한다 -


김용호


○...... 결코 얻어들은 풍월이 아니라 「법은 법 없는 사회를 그 .........○

○...... 이상으로 한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따라서 그야말로 .....○

○...... 이상주의적 견해일지는 모르지만 국민 개개인의 고도적인 .....○

○...... 도덕적 자율이 가능하다고한다면 아마 모든 법조문은 사   .....○

○...... 실상 사문화하리라고 생각 된다.

 

가령 엄격한 자율정신 밑에서 모든 국민 중 한 사람도 살인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형법에 있어서 살인죄의 조문은 전혀 소용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법이론엔 어두운 필자이긴 하지만 요컨대 법이란 국가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권력적인 규제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규제로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법」이 많다는 것은 그 국민을 위한 행복의 표상은 아닌 것이며 반대로 불행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번 집권당인 민주당은 이른바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여 반공특별법안을 제시하고 이의 국회통과를 기약하고 있다.

무슨 명분을 세우는 듯 신문광고까지 하여 「국민의 비판」을 앙청(?)했으니 2.4파동 당시의 「무술」보다는 훨씬 그 방법이 신사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신사적인 방법이 한대 얻어맞는 것보담 더 께름직해서 국민의 한사람으로 견딜 수가 없다.

막상 <젊은이의 피>로써 정권을 넘겨주어 1년이 다가오는 오늘 하는 짓이 고작 이런 것뿐인가 하고 생각하니 분반하기 전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불행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야당시절에 그렇게도 대언장어하던 민주당이 집권 후 오늘에 이르러 국가의 안전에 자신을 읽고 국민의 자유에 흠집이 난 것을 겨우 깨달은 것만은 천만다행한 일이요. 가상할 일이거니와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우리들 국민들의 잘못일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민주당정권의 정치적 빈곤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병인의 진단조차도 정확하게 못한다면 벌써 의사될 자격은 상실한 것이며 「돌파리」로 전락할 밖에 없다.

사실 우리들 국민들은 민주당이 「명의」가 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자유당의 「돌파리」아닌 「의사」가 되어주길 바랐고 또한 그러리라고 믿었다.

믿은 도끼에 발 찍힌다는 속담이 있거니와 지금 우리들 국민의 심정은 바로 이것인 것이다.

입안자는 입법의 필요성을 역설고창하여 「2.4파동 당시 이후의 정세변화」를 무슨 방패인양 내세우고 있다.

그리하여 「.... 거우 무제한으로 보장된 자유를 악용하여 공산세력의 교란활동이 욱심하여져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자유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확실히 위기에 처해있다. 「무제한으로 보장된 자유」때문에 우리들 국민은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절량할 자유, 굶주리는 자유, 주야로 강절도가 날뛰는 자유, 생활고에 자살하는 자유, 취직할 수 없는 자유, 부정축재를 하고도 빠져나올 수 있는 자유, 물가가 「달라」값이 상승하는 자유... 수없는 「무제한의 자유」를 우리들 국민은 민주당 집권이후 얻은 것이다.

이처럼 무제한의 자유를 얻은 국민이 어느 곳에 있으며 어느 강산이 이처럼 자유로울 것인가

거기에 다 이제 「국민주권을 침해받을 자유」까지 가지라는 것이다. 좀 더 세분하면 「생각 않는 자유」 「말하지 않는 자유」 「보아서는 안 되는 자유」 「들어서는 안 되는 자유」를 모두 무제한 가지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민주당은 「자유」의 수호자들인가 「자유」라는 개념이 이만치 편리한 구실의 도구라면 「자유 아니면 죽음을」하던 그 구호 밑에선 아예 민주주의가 싹트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 소베레인티(SOVEREIGNTY)가 유린되고 불행하고 무제한 제한되는 그런 「자유」를 우리들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범국민적인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권을 수임 맡은 민주당의 무제한의 자유를 우리들은 거부할 자유를 언제나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헌법에 명시한 바와 같이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재민」인 것이다.

이 주권은 어떠한 교언영색의 술수도 거부할 기본적이며 단호한 자유를 향유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깊이 믿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내각책임제인 것이다. 책임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보면 ① 맡아서 해야 할 임무라고 일목요연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 내각이 「맡아서 해야 할 임무」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또한 간단하고도 명료한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자유」를 위하여 그 맡은 바 일을 다해야하는 것이며 「국민이 원하지 않는 자유」를 없애야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이요. 당연한 맡은 바 임무를 다할 자신이나 역량이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 어떠한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인가는 명약관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빠안히 알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정권욕에만 사로잡힌다고 한다면 우리들 국민은 자유당의 죄과를 심판할 수 있을지언정 민주당은 비판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초록동색이기 때문이다.

이미 반공특별법안의 부당성은 사계(이 분야)의 권위자들이 구체적으로 해부하여 각지에서 논한바 있기에 평론하지 않거니와 비단 이러한 법안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책은 좀 더 범국민의 양식이 납득하는 방향으로 민주당은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할 때가 왔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민주당을 아낀다. 아낀다는 의미는 민주당의 모든 정책이 우리들 국민의 행불행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비꼬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 정권이 탄생하였을 때 우리들은 얼마나 새로운 희망으로 산 보람을 느꼈는가. 자유당의 무궤도적인 탄압에 과감히 투쟁하여 「국민편」에 선 그 혁혁한 투지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주권의 수임자인 민주당이 「국민과 함께 있지 않고」 도리어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 편」에 서라고 한다면 문제의 초점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정말 우리들 국민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자유」를 갈구하고 있다.

이 비원에 가까운 우리들의 갈구를 모른척하고 지나친 말로 배반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아하! 이 해답은 좀 더 뒤에 돌려두기로 하자.

(필자=시인, 단대교수)

문화

   
▲ 문화[민족일보 이미지]

文化

 
國家의 安全과 國民의 自由 爲해

-反共特別法案을 反對한다 -

 

金容浩

 

○...... 決코 얻어들은 風月이 아니라 「法은 法없는 社會를 그 .........○

○...... 理想으로 한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따라서 그야말로 .....○

○...... 理想主義的 견해일지는 모르지만 國民 個個人의 高度的인 .....○

○...... 道德的自律이 可能하다고한다면 아마 모든 法條文은 사   .....○

○...... 실상 死文化하리라고 생각된다

 

가령 엄격한 自律精神밑에서 모든 國民中 한 사람도 殺人할 可能性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刑法에 있어서 殺人罪의 條文은 전혀 所用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法理論엔 어두운 필자이긴 하지만 요컨대 法이란 國家와 社會 秩序를 유지하기 위한 政治權力的인 規制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最小限의 規制로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法」이 많다는 것은 그 國民을 위한 幸福의 表象은 아닌 것이며 반대로 不幸의 尺度가 되는 것이다.

이번 執權黨인 民主黨은 이른바 「國家의 安全과 國民의 自由를 確保함을 目的」으로 하여 反共特別法案을 제시하고 이의 國會通過를 기약하고 있다.

무슨 名分을 세우는 듯 新聞廣告까지하여 「國民의 批判」을 仰請(?)했으니 二四波動 當時의 「武術」보다는 훨씬 그 方法이 신사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紳士的인 방법이 한대 얻어 맞는 것보담 더 께름직해서 國民의 한사람으로 견딜 수가 없다.

막상 <젊은이의 피>로써 政權을 넘겨주어 一년이 다가오는 오늘 하는 짓이 고작 이런 것뿐인가 하고 생각하니 噴飯하기 전에 國民의 한사람으로서 不幸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野黨시절에 그렇게도 大言壯語하던 民主黨이 執權後 오늘에 이르러 國家의 安全에 自信을 읽고 國民의 自由에 흠집이 난 것을 겨우 깨달은 것만은 천만다행한 일이요. 可賞할 일이거니와 그렇다면 그것은 果然 우리들 국민들의 잘못일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民主黨정권의 政治的貧困性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病因의 診斷조차도 정확하게 못한다면 벌써 醫師될 자격은 상실한 것이며 「돌파리」로 轉落할 밖에 없다.

사실 우리들 國民들은 民主黨이 「名醫」가 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自由黨의 「돌파리」아닌 「醫師」가 되어주길 바랐고 또한 그러리라고 믿었다.

믿은 도끼에 발 찍힌다는 俗談이 있거니와 지금 우리들 국민의 심정은 바로 이것인 것이다.

立案者는 立法의 必要性을 力說高唱하여 「二四波動當時 이후의 情勢變化」를 무슨 방패인양 내세우고 있다.

그리하여 「.... 거우 無制限으로 保障된 自由를 惡用하여 共産勢力의 攪亂活動이 욱심하여져서 국가의 安全과 국민의 自由가 危機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확실히 危機에 처해있다. 「無制限으로 保障된 自由」때문에 우리들 국민은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絶糧할 自由, 굶주리는 자유, 晝夜로 强窃盜가 날뛰는 자유, 生活苦에 自殺하는 자유, 就職할 수 없는 자유, 不正蓄財를 하고도 빠져나올 수 있는 자유, 物價가 「달라」값이 상승하는 자유...數없는 「無制限의 自由」를 우리들 국민은 民主黨 執權이후 얻은 것이다.

 
이처럼 무제한의 自由를 얻은 국민이 어느 곳에 있으며 어느 江山이 이처럼 自由로울 것인가

거기에 다 이제 「國民主權을 侵害받을 自由」까지 가지라는 것이다. 좀 더 세분하면 「생각 않는 自由」 「말하지 않는 自由」 「보아서는 안 되는 自由」 「들어서는 안 되는 自由」를 모두 無制限 가지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民主黨은 「자유」의 守護者들인가 「自由」라는 개념이 이만치 편리한 구실의 道具라면 「自由아니면 죽음을」하던 그 口號 밑에선 아예 민주주의가 싹트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 소베레인티(SOVEREIGNTY)가 유린되고 불행하고 無制限 制限되는 그런 「자유」를 우리들은 원하는 것이 아니라 實로 汎國民的인 진정한 自由를 원하는 것이며 따라서 政權을 受任맡은 民主黨의 無制限의 自由를 우리들은 拒否할 自由를 언제나 留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憲法에 명시한 바와 같이 「民主共和國이며 主權在民」인 것이다.

이 主權은 어떠한 巧言令色의 術數도 拒否할 기본적이며 단호한 自由를 享有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깊이 믿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內閣責任制인 것이다. 責任이란 무엇인가? 辭典을 보면 ① 맡아서 해야할 任務라고 일목요연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現內閣이 「맡아서 해야 할 任務」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또한 간단하고도 명료한 것이다. 「國民이 원하는 自由」를 위하여 그 맡은 바 일을 다해야하는 것이며 「國民이 원하지 않는 自由」를 없애야한다는 것이다.

이 基本的이요. 당연한 맡은 바 임무를 다할 自信이나 力量이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 어떠한 結論을 내려야 할 것인가는 명약관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빠안히 알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政權慾에만 사로잡힌다고 한다면 우리들 국민은 自由黨의 罪過를 審判할 수 있을지언정 民主黨은 비판할 자격조차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草綠同色이기 때문이다.

이미 反共特別法案의 부당성은 斯界(이 분야)의 權威者들이 구체적으로 해부하여 各紙에서 논한바 있기에 評論하지 않거니와 비단 이러한 法案뿐만이 아니라 모든 施策은 좀 더 汎국민의 良識이 납득하는 방향으로 民主黨은 獻身的인 노력을 경주할 때가 왔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民主黨을 아낀다. 아낀다는 의미는 民主黨의 모든 정책이 우리들 國民의 幸不幸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비꼬는 것이 아니다. 民主黨 政權이 탄생하였을 때 우리들은 얼마나 새로운 희망으로 산보람을 느꼈는가. 自由黨의 無軌道的인 彈壓에 과감히 투쟁하여 「國民편」에 선 그 혁혁한 鬪志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主權의 受任者인 民主黨이 「국민과 함께 있지 않고」 도리어 國民들로 하여금 「그들편」에 서라고 한다면 문제의 焦點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정말 우리들 국민은 「國家의 安全과 國民의 自由」를 갈구하고 있다.

이 悲願에 가까운 우리들의 渴求를 모른척하고 지나친 말로 배반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아하! 이 解答은 좀 더 뒤에 돌려두기로 하자.

(筆者=詩人, 檀大敎授)

<민족일보> 1961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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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11-23 12:01:30
되새겨 보는 우리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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