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영국 외무성이 추가로 보내온 나머지 문서는 미국 하원의 청문회 자료다. 이미 알려졌듯이, 1988년 2월 4일 미국 하원의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는 KAL858기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다시 말해 이와 관련된 내용은 이미 공개됐다고 할 수 있는데(국내 언론에도 보도됨), 영국 외무성이 자료를 보내기 전 미국 정부와 왜 굳이 협의를 해야 했는지 이해가 좀 되지 않는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 청문회 문서는 분명히 의미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사건과 관련해 청문회를 가진 곳은 미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스티븐 솔라즈 위원장에 따르면, 이 청문회의 첫 번째 목적은 사건과 북쪽의 연결관계를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기기 위함이었다. 그에 따르면 정황상 사건 발생 뒤 즉각적으로 북의 개입을 의심했던(immediately suspect) 것은 자연스러운(natural) 일이었다(1쪽).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북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남쪽의 공식 수사결과와 미국 및 다른 국가들의 도움으로 그는 뒤집을 수 없는 증거가 나왔다고 믿었다.

KAL858기 사건 미국 하원 청문회

청문회에는 두 명의 증인이 나왔는데, 먼저 당시 윌리암 클라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였다. 그는 이 사건이 북의 지도부가 문명의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해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쪽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북쪽에 서울올림픽 경기의 일부를 치를 수 있게 하려 했는데, 북은 여기에 KAL858기를 폭파시키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비판한다. 이에 반해 남쪽은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자제력과 정치력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속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은 클라크 차관보의 진술서다. 북쪽이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기 9개월 전 사건을 일으킨 것은 경기를 방해하기에 부족했다는(insufficient) 것이다(9쪽). 이는 미국 중앙정보국 비밀문서에 나타난 북쪽의 동기에 대한 의문과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바로 올림픽 경기를 방해하기에는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는 것이다. 다만 클라크 차관보는 만약 이 사건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북쪽은 그 뒤로 더욱 자유롭게 테러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또한 친필지령에 관한 부분도 주목된다. 그는 독립적인 증거의 확보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다(will most likely never obtain independent evidence)(9∼10쪽). 동시에 지령에 대한 김현희의 자백이 분명히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사건과 관련된 절대적인 증거가 바로 김현희의 진술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주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당시 클레이튼 맥매나웨이 국무부 테러담당 부대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목표는 북쪽의 미래 테러행위를 막는 것이다. 맥매나웨이 부대사는 청문회를 통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의 조사 내용을 공개하는데, 바로 미국 관리들이 김현희에게 사진들을 보여주자 그녀가 두 명의 북쪽 인물을 지목했다고 한다. 한 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함께 묵었던 한송삼이고, 다른 한 명은 비행기 폭파 지령을 전달했던 이용혁이었다.

한편 속기록에 나온 내용과는 별개로, 맥매나웨이 부대사의 진술서에 따르면 미국은 KAL858기 사건을 계기로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전 폭발물 및 다른 무기를 검출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진술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서울올림픽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협조하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두 증인의 진술이 끝난 뒤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여기에서 그동안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하나 지적하자면, 짐 리치 의원은 북쪽에 제재를 가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쪽이 ‘외교관 등 국제적 보호 인물에 대한 범죄 예방 및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Crimes Against Internationally Protected Persons, Including Diplomatic Agents)’을 위반했는지의 문제를 제기한다(24쪽). 왜냐하면 탑승객 가운데는 당시 강석재 이라크 총영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위 내용을 포함한 토의가 진행된 뒤 바로 결의문 채택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진다. 솔라즈 위원장은 보통 결의문 관련 논의는 이제까지 다른 사람이 진행해왔지만 이 사건만큼은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말문을 연다. 왜냐하면 그는 30여 년 전 북쪽에 갔던 존 글렌 의원 이후 북을 방문했던 유일한 의원이기 때문이다(글렌 상원 의원은 한반도전쟁 당시 미국의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솔라즈 의원은 1980년 북쪽을 방문하여 당시 김일성 주석과 4시간을 함께했다며, 김영남 외무상과 만난 일도 언급한다.

이 결의문 논의를 끝으로 1시간 정도 진행됐던 청문회는 모두 마무리된다. 참고로, 2011년 공개됐던 미국 국무부 비밀문서에 따르면 스티븐 솔라즈 의원은 1988년 1월 5일 한국에서 청와대 관계자와 면담을 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솔라즈 의원에게 북쪽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짐 리치 의원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아울러 이 기간에 리치 의원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주도적으로 이끌게 된다.

영국 외무성의 사과와 그 의미

▲ 영국 외무성이 추가로 공개한 문서 중 미국 하원 청문회 관련 자료 표지. [자료제공 - 박강성주]
이번에 영국 외무성이 추가로 공개한 문서를 보며 느낀 점은, 일단 미국 자료의 중요성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영국 외무성의 사과다. 외무성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문서 전달이 몇 년이나 늦어진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를 해왔다. 그리고 이를 공식 문서에도 기록으로 남겨주었다.

정보공개 청구 과정과 그 맥락은 다르겠지만, 나는 실종자(및 가족)들과 한국 정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사건을 대통령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했던 이른바 '무지개 공작'에 대해 국정원(과거 안기부)은 사과를 한 적이 있는가? 내가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는 공식 수사결과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와는 다른 문제다. 공식 발표대로 사건의 책임이 온전히 북쪽에 있다면 이 문제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해진다. 그런데 누가 사과를 해야 하느냐와는 별개로, 비극의 핵심은 정작 그 사과를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지금, 여기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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