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이 19일 끝났다. 외교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협의 거듭 제안에 이어진 양국 정상회담이어서 일본군 '위안부' 언급 여부가 주목됐다.

그러나 결론은 '걸림돌', '대국적 견지'라는 어딘지 듣기 거북한 발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켜갔다. 그리고 한.일 자유무역협정 협력, 대북공조 강화 등 서로 듣기 좋은 말잔치만 벌어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걸림돌' 발언을, 외교부의 노력에도 일본정부가 꿈쩍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거기에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대국적 견지'란 단어를 쓰며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논의하고 지혜를 짜낼 수 있는 개인적 신뢰를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떻든 양국 정상들의 발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대국적 견지에서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양국 정상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힘이 센 나라의 입장에서 장애물'로 취급한 셈이다.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한국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에게 구체적인 외교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정부의 부작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즉, 한국정부가 문제해결에 나서라는 판결이다.

물론 외교부가 헌재 판결 이후 일본에 양자협의를 요청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헌재의 판결은 외교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헌법준수'를 철칙으로 삼고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헌재 판결을 무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걸림돌'로 만들고 이 걸림돌을 어떡하든 치워버리고 싶은 심정만 드러냈을 뿐이다.

거기에 노다 총리는 '대국적 견지', 즉 '힘이 센 나라 입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무시해도 좋다는 심경을 토로해 버렸다. 그의 '대국적 견지'가 '더 큰 일을 해야할 나라'들이 '뭐 다 지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느냐'라는 말로 들리는 것은 기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리라.

과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대국적 견지에서 걸림돌'로 치부받아야 할 사안일까?

양국 정상들이 만남을 준비하는 시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고령의 나이를 이끌고 서울 광화문 앞에 섰다. 이들의 요구는 '돈'이 아니었다. 존재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라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착하고 순진한 할머니들이기에 경찰이 구호도 외치면 안 된다고 하자 조용히 광화문 앞에 있었다. 풍선 날리면 잡아간다니까 풍선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노다 총리 일행이 자신들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해방 66년이 지나도록 해결받지 못한 기다림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픈 몸 투성이인 이들은 그 짧은 기다림을 견디며 노다 총리 일행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피켓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노다 총리 일행은 할머니들을 피해 길을 돌아 좁디좁은 삼청동 길을 거쳐 청와대로 들어갔다. '대국적 견지'와 사뭇 다른 태도였다.

분노한 할머니들은 청와대로 가자고 했지만 결국 삼청동 앞에서 경찰과 맞딱뜨렸다. 보통 집회에서 행진이 막히면 폭력이 오간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구호를 외치며 길을 비켜달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할머니들은 나약한 존재였을까. 아니다. 비폭력 정신은 바로 할머니들의 상징이었다. 오히려 자신들을 가로막은 경찰들을 상대로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길을 나선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 경찰들, 여경들이 성폭력에서 해방되는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에서 나아가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을 너무나 절실히 원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피해자들에게 한.일 정상들은 '대국적 견지에서 걸림돌'이란 해괴한 단어로 상처를 던졌다.

그야말로 이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을 ‘걸림돌’로 치부함으로서 스스로 법치국가임을 망각했고, 노다 총리는 '대국적 견지' 운운했지만 실지로는 '소국'임을 자처한 한.일 정상회담이었다고 평가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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