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전 평양 보통강려관으로 캔버스 등 화구를 든 사람들이 무리지어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 피렌체예술아카데미 소속 미술가인 에우제니오 체치오니(Eugenio Cecioni) 씨에게 열흘간 미술강습을 받는다. [사진-통일뉴스 방북취재단]

<통일뉴스>의 단독 방북취재 이틀째인 지난 11일 오전. 캔버스 등 미술 작업 용품을 든 20여명의 남자들이 보통강려관 로비로 들어왔다.

3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무리를 지은 이들은 로비를 돌아 커다란 회의실로 몰려 들어갔다. 북한의 문화.예술 분야를 취재하기 위한 평양 방문이였기에 그들을 쫓아들어 갔지만, 예정에 없던 탓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이들을 인솔해 가던 북 관계자는 "정물화 강습을 받으러 온 것이다"라고 짧게 말했고, 강의를 받는 학생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여기 저기에서 왔다"고만 했다. 저 마다 미술용품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가는 북측 사람들 사이로 서양의 중년 남성이 눈에 띠였다. 통역관이 옆에 있는 것을 봐서는 이 서양인이 강사인 듯 했고, 통역관은 이를 확인해 줬다.

에우제니오 체치오니(Eugenio Cecioni, 57). 이탈리아 피렌체예술아카데미 소속 미술가인 체치오니씨는 북한문화연구소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이번이 두 번째 방북이라는 이 서양 미술가가 생각하는 북한의 미술은 두 가지 단어로 함축된다. 전통과 철학.

체치오니씨는 "북한의 미술은 매우 깊이가 있다"며 "이탈리아, 유럽 등은 철학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기교적인 작업에 치중하지만 내 눈으로 보기에 북한은 그림에서 보여지는 철학적인 의미가 더 깊다"고 평했다.

또 "현대적인 미는 없지만, 전통미를 고수하고 그 안에 철학이 가미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에선 중국의 미술과도 비교가 됐다.

"2년 전 베이징을 방문 했을 때, 중국 미술은 성공적이었으나 전통미가 사라지고 많은 중국인들이 유럽풍으로 바뀌었다는 느낌을 가졌다. 북한 미술이 현대적인 미는 없지만 전통미를 고수하고 그 안에 철학이 가미되어 있다고 본다."

북한의 미술작품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체치오니씨. 19일까지 열흘간 평양에 머물며 미술 강의를 한다는 그를 방북취재 마지막 날인 13일 보통랑려관에서 만났다.

▲ 이탈리아 피렌체예술아카데미 소속 미술가인 에우제니오 체치오니(Eugenio Cecioni). 그는 평양에서 열흘간 미술 강의를 한다고 했다. [사진-통일뉴스 방북취재단]

□ 통일뉴스 : 평양은 어떻게 오게 됐나?

■ 에우제니오 체치오니 : 여기서 많은 미술을 보고, 전통을 보고, 조선미술을 알고 싶어서 왔다. 그리고 남한도 그렇지만 여기서는 그림이 유럽에 알려진 것보다 더 진전되어 있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어떤 새로운 미술 분야였다. 북한미술에 대해서는 책으로만 접했을 뿐이라 직접 와서 경험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정확하게 누가 나를 초청했는지 알 수 없다. 이탈리아 외교부와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나의 소속단체에 연락했으며 외교부를 통해 왔다. 북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고 단지 가르칠 뿐이고, 북한미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색채를 사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그려지는지 알고 싶다. 오기 전에는 단지 중국과 비슷하다고 생각만 했다.

□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 적이 있나?

■ 이번에는 방문하지 않았지만 2년 전에 방문했었다. 방문 당시에 정말 인상적이었다. 작업도 하고 작품을 팔 수도 있는 매우 훌륭한 공간이었다. 현대미술, 고대미술 등등 다양한 것을 접할 수 있었다.

만수대창작사는 조선미술을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곳으로 알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미술이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그들이 미술을 어떻게 접하는지는 눈으로 확인하지 못해 알 수가 없다.

단지 낮에만 만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미술의 대중화 부분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호랑이 그림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남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 북한 미술가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 매우 높다. 매우 완벽하다. 매우 매우 높다. 나는 이미 만수대창작사에 방문했고 많은 그림들이 있는데, 내가 추측하건데 매우 훌륭한 작품들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 작가들이 작품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모르고 그들과 함께 작업할 수 없기에 정확하게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작품이 매우 훌륭하고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의 그림은 유럽작가와 비교하여 매우 인상적이다. 그들은 거대한 사고와 방식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그 규모도 큰 것 같다. 오늘날 이들의 미술과 작업은 좀 더 현실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유럽에서는 조금 어려운 영역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점에서 그들의 창작능력은 매우 훌륭하다고 본다.

□ 선우영, 정창모와 같은 유명 작가를 만난 적이 있나?

■ 그들을 알지만 만나 본 적은 없다. 만수대창작사나 박물관에서 그들의 작품을 접해보았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이름을 듣고 그들의 작품을 보았기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통해 하고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이번 평양방문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나?

■ 오일 페인팅(유화)이다.

□ 학생들은 누구인가?

■ 일 대 일로 대화를 하거나 그들의 일상을 직접 만나 대화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군지는 모른다. 단지 추측컨대 평양미술대학 학생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26살부터 60살까지로 구성돼 있고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는 그들의 그림방식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기에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있는 작가들인지 알 수가 없다. 일 대 일로 만나서 이야기 나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 평양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점수를 준다면.

■ 내가 가르치는 사람 중에서, 그들을 매일 만나지만 김영민이라는 사람의 그림에 훌륭한 점수를 주고 싶다. 나는 여기서 영어로 말하기에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고 더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미술창작에 전념하는 것을 느껴 매우 인상적이다.

□ 처음에 북한의 미술이 중국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중국의 미술과 비교했을 때 북한 미술은 어떤가?

■ 중국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답을 준다면 중국 미술은 전통적이고 유럽적이고 개방적이며 현대적이다. 베이징 같은 곳을 보면 그렇다. 2년 전에 방문했을 때 중국 미술은 성공적이었으나 전통미가 사라지고 많은 중국인들이 유럽풍으로 바뀌었다는 느낌을 가졌다. 북한 미술이 현대적인 미는 없지만 전통미를 고수하고 그 안에 철학이 가미되어있다고 본다. 중국과 조선은 사상적으로 비슷하지만 미술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 이탈리아나 서구와 비교해서 봤을 때 북한의 미술이 어떻다고 보나?

■ 북한의 미술은 매우 깊이가 있다. 더 많은 미술들이 전통적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내 생각에는 여기는 훨씬 더 깊이 있어 보인다. 북한에서는 많은 작업을 하고 또한 작품이 훌륭하다. 그러나 누구도 그 작업을 볼 수가 없다. 이탈리아, 유럽 등은 철학적인 일을 하지 않고 기교적인 작업에 치중하지만 내 눈으로 보기에 이곳은 그림 속에서 보여주는 철학적인 의미가 더 깊다고 본다.

거리를 다니거나 주변을 보면 알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탈리아와 남한은 많은 부분에서 현대적이고 조선미술은 전통과 철학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 서울도 방문한 적이 있나?

■ 없다. 여기에 오느라 서울을 방문할 겨를이 없었고, 평양에서 서울로 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기에 서울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매우 흥미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 남한의 미술은 접한 적이 있나?

■ 잘 모른다. 이탈리아에서 서울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작업을 본 적은 있다. 그들의 미술은 발전적이고 전통적이며 역동적이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 남한과 북한 미술에는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

■ 전에 남한을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남한 미술이 발전적이고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술은 대화이다. 미술은 정치가 아니다. 남북 미술이 일부 영역에서 다소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술은 서로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이다. 서로 함께 작업하고 창작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

■ 매우 어려서 시작했다. 14살쯤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유화만 그리나?

■ 아니다. 나는 오일이지만, 에칭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노력하는 중이다.

□ 다시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 있나?

■ 모른다. 다음에 방문할 계획이 정해져 있지 않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탈리아 정부와 북한 정부가 음악, 미술 교류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의 다음 방문이 언제 성사될지 모르지만 조만간 다시 또 오고 싶다.

단지 작품을 보는 것에 끝나지 않고 함께 미술을 작업하고 싶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고 학생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유럽에 조선미술을 알리고 싶고, 이곳에도 유럽미술을 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거나 일 대 일로 가르칠 수는 없지만, 서로 그림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들의 일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술은 수학과 다르다. 수학은 구체적인 정답이 있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다. 미술은 서로의 교감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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