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남북관계를 보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하는 회한을 금할 수 없다. 특히 당국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긴장상태로 가고 있는 데에는 남측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북측은 남측에 새 정부가 들어서자 대화에 나설 것을 일관된 침묵으로 기다려 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대북 무시전략으로 일관하면서 사실상 대화의 문을 닫아버렸다. 우리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가 왜 북측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주도적으로 북측을 이리저리 이끌 그 어떤 유인책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오히려 상황은 북측이 주도하고 있다. 현실은 지난 김영삼 정부 때처럼 북측이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쓰면 남측은 꼼짝없이 당할 판이다.

무릇 대화란, 첫째 상대편이 있는 것이고, 둘째 그간 신뢰 구축 과정에 근거해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 두 가지에서 모두 결정적 하자를 범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이명박 정부는 대화의 상대방인 북측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제시하는가 하면 게다가 방미중에 불쑥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북측이 불편한 심기 때문이라도 거절하는 것은 당연하다. 후자의 경우 그간 남북관계는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라는 두 개의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이 두 합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북측이 괘씸해 할 것도 당연하다. 북측은 대화를 원하는데 남측이 ‘북측과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니 북측도 매체를 통해 대남 험담을 쏘아대는 판이다.

물론,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새로운 방식,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끌고 싶은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게 상대편을 폄하하거나 또는 지난 신뢰관계를 통째로 무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영영 끊겠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미 남북이 합의한 6.15와 10.4선언을 존중하고 계승하겠다고 밝히는 것이다. 이를 건너뛰고 북측과 대화를 하자고 뭔가 다른 것을 제안하는 것은 일종의 ‘보여주기’일 뿐이다. 소도 웃을 일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철지난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제안이나 “남측을 통하지 않고는 미국과 관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는 식의 언술로 주변만 빙빙 돌 게 아니라 직방으로 6.15와 10.4선언 존중을 표시해야 한다.

이러던 참에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29일 국회에서 “(6.15선언, 10.4선언 등을) 상호 존중의 정신 아래 남북간 협의를 통해 실천가능한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소 미흡하지만 그리고 뒤늦었지만 우리는 김 장관의 이 발언이 지난 3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부 업무보고 발언과 비교할 때 다소의 변화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오죽하면 대북통(對北通)으로 날린 정형근 의원조차 나서겠는가? 정 의원은 30일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바탕으로 6.15, 10.4선언의 정신 존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6.15, 10.4선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김정일을 인정하지 않고 대화도 안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이)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남북관계가 언제고 닫혀있을 수는 없다. 결국에는 남측이 6.15와 10.4선언에 대한 명확한 표시를 해야 한다. 나중에 하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6.15와 10.4선언의 존중과 계승 입장을 명확히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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