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은 함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에 들어서는가? 그렇다면 그 목적지는 당연히 양국의 관계정상화일 터다. 다행히도 북미는 지난 1~2일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 의미있는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름 아닌 북한은 연내 모든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 프로그램을 전면 신고하며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에 정치경제적 보상조치를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다음날인 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조미 쌍방은 연내에 우리의 현존 핵시설을 무력화(불능화)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을 토의하고, 합의하였다”면서 “그에 따라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우리나라를 삭제하고 적성국무역법에 따르는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것과 같은 정치경제적 보상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고 설명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미국측 일부에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는 시기상조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외교적 수사이거나 북일관계를 고려해 일본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한편 전례에서 볼 때 북한이 외무성대변인을 통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언급할 정도라면 일단 사실이라 봐야 하고, 다른 한편 상식적으로 봐도 북한이 ‘핵 불능화’를 주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북미가 ‘핵 불능화 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을 주고받는다면 이는 실질적 의미에서 양자간 최초로 ‘말 대 말’ 원칙을 넘어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북미 사이에 있어 지난 2.13합의가 서로 마주 겨냥하고 있던 총부리를 ‘내려 총’한 것이라면 이번 제네바 실무그룹회의에서의 합의가 곧 가시화된다면 이는 북미가 관계정상화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전인미답의 길에 첫 발짝을 내딛는 ‘동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북미 어느 쪽도 이 길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적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제 비로소 6자회담이 제 자리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북미 양자회담이 정착화되고 있다. 북미 양자회담의 위력은 이미 지난 1월17-18일 베를린회동에서 증명된 바 있다. 당시 베를린 양자회담 직후 진행된 6자회담에서 2.13합의가 나왔듯이, 이번 제네바 실무그룹회의 이후 이번 달 중순에 예정된 6자회담에서 중요한 합의를 이룰 공산이 크다. 그 주요 내용은 물론 이번 제네바 실무그룹회의에서 이룬 북미 양자합의에 근거할 것이다. 북미관계가 이끌고 6자회담이 이를 추인하는 안정적인 형태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간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던 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한 단계 높아지면서 한반도 통일문제와 6자회담에 탄력을 주는 둥 전반적인 한반도 정세가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일본은 5-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예전과 달리 성의있는 분위기 속에서 6자회담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그룹회의를 가졌으며, 남과 북은 다음달 초로 예정된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일정이 명확히 가시권에 들어오고 또 한반도 정세가 이토록 예측가능한 적이 많지 않았다.

이처럼 6자회담이 안정화되어 가고 있고 동시에 한반도 정세가 정상화를 찾을 공산이 커짐에 따라 북미는 관계정상화의 길에서 어느 쪽도 이탈하기가 쉽지 않게 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북미는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에 탄 것이 아니라, 어느새 한 방향을 향해 달리는 열차에 동승(同乘)한 격이 되었다. 이제 열차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어느 쪽도 하차하거나 중도반단하기가 쉽지 않다. 달리는 열차의 목표는 북미관계정상화이다. 전인미답의 길이지만 열차가 탈선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 도착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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