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협력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5월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달 이후 두 번째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제목을 편의상 지난해와 구분하기 위해 <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 Ⅱ>로 한다. / 편집자 주

양각도호텔 김향희 봉사원

▲양각도호텔 회전전망칸 식당의 김향희 봉사원.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양각도호텔 꼭대기 층의 회전전망칸 식당에 김향희 봉사원을 만나러 갔다. 어제 잠시 들른 회전전망칸에서 김향희 봉사원과 오늘 만나 함께 사진을 찍자고 약속을 한 터였다.

김향희 봉사원은 지난해 평양에 왔을 때부터 나와 이름이 비슷하다며 인사를 주고받은 사이인데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없어 약속을 한 것이다.

원래 호텔 봉사원들은 격일로 근무하기 때문에 못 만나고 가나 했는데 다른 사람과 근무를 바꿔줘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온단다.

지난해 5월부터 양각도 호텔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그녀는 ‘아리랑’ 공연 때문에 손님이 많이 늘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다”며 내게 “담 번에도 꼭 오시라”고 말하는 발랄하고 웃음 많은 21살의 아가씨이다.

중학교 5학년 때 직접 집단체조 공연에서 무용을 하기도 했다는 그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애인이 없다.

“아직도 애인이 안 생긴 거야? 얼굴도 예쁜데 왜 안 생기는 거지?”
“아직 나이가 어리니 걱정 않습니다.”

“원래 그렇게 걱정 않다가 나이 금방 먹는 거야. 나도 그 나이에 전혀 걱정 안했는데 어찌 저찌 하다가 금방 서른 된 거라구.”
“......”(웃음)

“향희씨 이름도 비슷한데 우리 언니 동생 맺자.”
(역시 웃으며) “그것은 좀... 언니 동생 말고 이모 조카 하면 어떻습니까?”

뎅~머리를 한 대 맞았다. 너무 한 거 아냐?
“그건 너무 하지! 나도 이모는 안 해!!!”

즉석카메라를 꺼내 그녀의 독사진을 찍어주고는 나와도 함께 사진을 찍어 건넸다.

그러나 사진을 찍어주신 분이 카메라를 잘못 조작, 우리의 사진은 그저 검게 나왔고 향희씨가 너무 바빠 사진을 더 찍지는 못했다.

검게 된 사진에 분명 그녀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언니이건, 이모이건 간에 남녘에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김양희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또 양각도 호텔에 가게 되면 “양희 선생님 오셨습니까?”하고 반갑게 맞겠지.

내가 향희씨를 비롯, 영철이, 리동혁, 로승일 안내원 등 북녘 사람을 알아가면서 ‘일교차가 큰데 평양의 그들이 감기에 걸리진 않았는지’하는 사소한 걱정부터 2.13합의처럼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굵직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자주 볼 기회가 오겠구나’ 또는 반대로 ‘어렵겠구나’ 하는 맘이 드는 등 평양이 그저 머리에서만 떠오르는 도시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도시가 되었듯, 스물 하나의 그녀에게도 서울이 정말 반가운 도시가 되었길 바란다.

2007년 5월6일
양각도호텔에서의 예배

▲ 한상렬 목사를 비롯한 일행이 일요일을 맞아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서는 일요예배를 드렸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이른 아침부터 양각도호텔의 2905호실에는 특별한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전주 고백교회의 한상렬 목사를 비롯, 전주 임마누엘 교회의 고민영 목사, 천호동 하늘샘교회의 김종수 목사, 전주 고백교회의 박철영, 한상희 집사 부부가 일요일을 맞아 평양 한 복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거룩한 주일을 맞아 경배를 드린다는 한상렬 목사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민족에게는 통일을 주는 예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수 목사는 기도를 통해 “이념도 종교도 지역도 마다않고 언제나 하나됨을 위해 주님은 모든 장벽을 뚫고 갔다. 주님의 마음으로 겨레하나의 성원들은 평양을 방문, 통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를 가진다. 이 땅이 물질로 인해 비굴하거나 민족자존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며 남과 북이 하나로 됨에 이념과 지역이 나뉘지 않도록 우리와 민족에게 소중한 지혜로 인도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민영 목사는 “평양에서의 예배는 생애에서 잊혀 지지 않는 기록이 될 것”이라며 “중학교 1학년 때 6.25 전쟁이 났고 광주 5.18 당시에도 술 취한 진압군들이 사람을 때려죽이는 모습을 많이 봤다.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죽이는 것이다. 모습, 생각 등이 서로 다름에 있어도 같이 살라고 하느님이 만든 것으로 세계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게 살라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도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했다. 남북이 분단이 되면서 서로 이념을 인정하지 않아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한국 역사는 불행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린 것처럼 평화와 통일이라는 십자가를 각오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민족을 살리는 것은 통일뿐이다. 이 예배가 통일의 시초가 될 것이다. 문익환 목사를 비롯, 사죄의 삶을 살고 있는 한상렬 목사가 십자가를 지고 있다. 주의 성령이 어서 오길 바라며 이 죽음에서 승리하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한상렬 목사는 “비가 오는데도 아이들이 아리랑 공연 하는 것을 보며 이것이 민족의 저력이구나 했다”며 “민족의 저력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녘에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는데 이들은 교회에 방문하고 싶지만 따로 개별행동을 하기보다는 겨레하나 방북단과 함께 움직이기 위해 다른 이들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양각도호텔에서 예배를 본 것이다. 30번 방북했다는 한상렬 대표도 평양에서의 이런 예배는 처음이라고.

예배 모습 취재를 마치며 ‘한국 교회가 민족을 살리는 일은 통일뿐이다’며 통일의 십자가를 지고가자는 이들의 기도가 평양 곳곳은 물론 남녘 교회, 나아가 민족 모두의 가슴에 퍼져 나가길 기대해본다.

묘향산 가는 길, 차안에서의 대화

▲묘향산 가는 길, 인적이 뜸한 외각도로에서 자전거로 달리는 주민들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오늘은 묘향산 일정이 잡혀 있다. 평양부터 묘향산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나 걸리기 때문에 이동하는 동안, 그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과 편안히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내 옆에는 이번 방북단의 유일한 20대 막내, 대구경북 통일연대의 권태상(29세)이 앉았다. 현재 경북대 대학원 북한학과 1학기생인 태상이는 학교를 다니면서 통일연대에서 일해 아직은 직함이나 직책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통일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고 싶어서 평양을 방문했다는 그는 지난 2005년 평양에 방문에 이어 2번째 방북이다.

2005년 당시 “처음이니 보내줘요”하고 집에 졸라 방북을 했고 이번엔 “마지막이니 보내줘요”하며 학교에서 꼭 가야한다고 말하고 왔단다.

지난해에도 졸랐으나 ‘미사일 핵실험’ 등으로 정세가 엄혹했을 때라 집에서 ‘돈 있어도 안 보낸다’고 해 이번에야 올 수 있었단다.

학교에서 북녘을 대하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번에 경남대로 지원할 생각이라는 그에게 이번 평양 방문 소감을 물으니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 중간에 평양을 방문하고 온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으니 ‘일본에서 온갖 차별을 받으며 나쁜 마음을 가졌었는데 조국을 다녀오니 내 마음이 꼭 빨래 빤 것처럼 순수해지는 것 같다’는 내용이 나와요. 저도 꼭 빨래를 빤 것처럼 깨끗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경기본부 고은아 사무국장과 대구경북통일연대 권태상 활동가.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자리를 옮겨 겨레하나 콩우유사업본부 탁무권 운영이사에게로 갔다.

윤이상 평화재단, 한겨레평화재단, 양심수후원회 등에서 10년 동안이나 활동을 한 탁무권 이사는 아버지의 고향이 보통문 근처로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 보여드리고 싶어 지난해 오려고 한 것인데 이제는 너무 위독하셔서 사진을 보여드려도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북녘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외부 요인인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이라고 하는데 마치 암세포가 있어도 몸이 건강하면 이길 수 있지만 몸이 약해지면 병에 걸리는 것처럼 내부가 얼마나 건강한지가 관건이다”고 지적한 그는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에서 생기를 볼 수 있고 생각한 것보다 사회 전반에 활력이 넘쳐 북녘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궁금했던 세계에 와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며 “특히 아리랑 공연은 북녘의 장점을 집약한 것으로 대단했다”고 평했다.

재일 총련 학생들의 귀여운 낙서

▲ 도쿄조중고 학생들이 버스의자 뒤에 몰래 남긴 낙서.[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버스 안에 쓰인 귀여운 낙서들을 발견했다.

2006년 12월1일 도쿄조고 강성우 박룡의, 2006년 12월26일 도쿄조중 문애화 이바라기 김혜원 등. 안내원에게 물으니 “아무래도 총련 학생들이 평양에 왔다가 낙서를 하고 간 것 같다”고 전한다.

태상이가 말한 ‘우리학교’ 영화를 보면 일본에서 민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차별에 힘들어 하다가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저고리도 마음껏 입을 수 있는 평양에 도착할 때 너무 감동해 발부터 닿는 것이 아니라 손부터 닿으며 땅에 입을 맞추려고 하는 장면이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감동적인 평양 방문 중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면서 비록 몸은 일본으로 가면서도 “나 이곳에 왔으며 마음만은 이곳에 두고 간다”는 징표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이 차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즈음하여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의 애국지성을 모아 마련한 조청애국호 재일본조선청년동맹 1989년 7월’이라는 글귀가 적힌 북녘의 보물 같은 차.

이렇게 낙서를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몰래 이름을 적어 놓았을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쿄조중고 학생들! 너희들 평양에만 글을 남긴 것이 아니라 여기 통일뉴스에도 이름이 올랐다. 몰래 이름을 써 놓으면서 가졌던 마음 변하면 안 된다. 알겠지?

▲ 버스에는 재일본조선청년동맹 학생들이 평양을 방문 당시 새겨놓은 표지가 있다.[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나무에 거름 잘 주고 오셨습니까”

차가 섰다. 두 시간 넘게 가다보니 중간쯤 담배도 피고 공기도 마실 겸 한차례 쉰다. 볼일도 보라는 시간이긴 하지만 휴게소 같은 것은 없다. 이곳은 평양 외각이라 그런지 차도 잘 다니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는 곳인데 그런 것을 만들 필요도 없다.

다만 어쩌다가 묘향산을 가는 남녘의 손님들만이 화장실이 없는 낯선 곳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북측 분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았다는 말에 여자 다섯이서 건너편 야산으로 뛰어들었다.

저 멀리 들에서 일하는 사람이 손가락만큼 작게 보이는데도 “혹시 저 사람이 보지는 않을까?” 고민한다. 절대 우리를 쳐다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막상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볼일을 본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경험이다.

게다가 여럿이서 나란히 앉아 볼일을 볼지, 아니면 마주보면서 볼지, 대체 엉덩이를 어디다 둘 지도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너무 급했었는데도 막상 이곳에서 볼일을 보려니 쉽게 나오질 않는다고도 했다. 나 역시 3번째 묘향산 방문으로 이곳에서만 3번째 경험을 하는 것이고 그 전에 학생 때 농활 등을 가서, 또 가끔 등산을 가서도 어쩔 수 없이 트인 공간에서 볼일을 봐 이런 일이 10번도 넘음에도 불구하고 익숙치는 않다.

그런데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류시화 작가가 인도여행을 하고 쓴 책에 비슷한 장면이 있다.

인도음식을 맛있게 먹고 시골 완행열차를 탄 작가는 갑자기 배탈이 나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우긴 했지만 허허벌판 나무도 한그루 없는 곳이었다고. 차 안에 있는 인도인들은 모두 창 밖에서 허둥지둥 대는 작가를 보며 ‘대체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이었고 그는 아무리 뛰어다녀도 광활한 벌판에서 몸을 숨길만한 곳이 없자 결국 지팡이처럼 베베 마른 나무 뒤에서 볼일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점잔을 빼고 “이놈의 나라는 어찌 볼일도 맘 편히 못 본다”며 “위생적인 화장실이 하나 없냐” 했더니 인도인들이 하는 말.

“우린 다 맘 편히 볼일을 보는데 대체 넌 왜 허둥대고 그 앙상한 나무 뒤에서 볼일을 보는 거냐? 볼일 보는 것이 얼마나 신성한 일인데 드넓은 대지에서 맑은 공기 쐬면서 일을 보는 게 우아한 일인가, 아니면 사방 막아놓고 좁은 화장실에서 자기가 싼 똥냄새 맡아가며 일보는 게 우아한 일인가.”

차에 오르니 일행들이 놀리느라 “나무에 거름 잘 주고 오셨습니까” 한다.

지금은 좀 어색하더라도 이담에 묘향산 가는 길에도 휴게소가 생기고 간이 화장실이라도 생기면 해보고 싶어도 절대 못해보는 경험을 한 것이다.

북녘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숲에서 우아하게 신성한 볼일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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