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학교' 포스터. [출처-http://blog.naver.com/ourschool06]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우리는 학교로 가요.
통학길이 멀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조선사람
우리의 학교가 기다립니다. 기다립니다.”
- 영화 속 노래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중에서-


대량의 홍보도, 많은 상영관도 없이, 그리고 다큐멘터리로서는 어쩌면 길다고 할 수 있는 2시간여의 러닝타임으로 관객을 찾은 ‘우리학교’는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영화를 본 사람들의 두 엄지손가락을 번쩍 추켜세우게 하는 힘을 가진 영화이다.

나 또한 영화를 본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밖에서 만난 사람들의 촉촉해진 눈과 발그레한 얼굴을 떠올리면 다시 코끝이 시큰해진다.
무엇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은 걸까?

단순히 총련계 재일동포의 일상과 분단된 민족의 민족의식을 보여 준 것으로는 영화를 본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요동치게 하고 자발적으로 이 영화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두 키워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순수한 공동체

재일동포들은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를 ‘우리학교’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도쿄에 있는 조선학교도 ‘우리학교’이며 오사카에 있는 조선학교도 ‘우리학교’인 것이다. 영화 속 우리학교 홋가이도의 ‘우리학교’는 명칭만의 ‘우리’가 아닌 진정한 교육 공동체로서의 ‘우리’ 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혹독한 훈련을 하고 후보 선수 한 명 없는 상황에 머리까지 삭발을 한 채 출전한 축구 경기에서 강팀을 만나 패한 아이들의 눈물은 자신의 명예나 장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 모두를, 우리 학교를 대표해서 동무들과 동포를 위한 경기에서 패한 미안함 때문이며 초급 부 1학년 신입생이 기숙사 생활에 힘들어 할까봐 1년 동안 같은 방에서 친 부모처럼 돌보아 주는 선생님과 졸업식에서 12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며 눈물 흘리는 아이들과 선생님.

우리 학교의 아이들은 카메라를 보며 이 학교를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일본 학교에서 오토바이나 타고 소년원에나 드나들었을 것이고 이 학교를 오게 되어서 진정한 행복이 무언지 알았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참 낯 설은 풍경이었다. 교육이 돈으로 평가되고, 넘치는 사교육 열풍에, 학벌이기주의, 왕따와 학교 폭력 등으로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우리네 교육현실에서 이런 순수한 마음의 공동체가 어떻게 낯설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낯설음을 너머 이들이 부럽기도 했고, 너무나 극과 극의 교육 현실에 내몰리고 있는 우리네 (대한민국) 아이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낯설고 생경한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는 걸 보면 우리 민족은 진정한 공동체를 늘 그리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희망

아이들이 ‘우리학교’에 다니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극우단체들의 폭력과 협박에 공부대신 불침번을 서기도 해야 하며, 조선학교를 다닌 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자신의 장래에 대한 어떤 보장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삶을 당당히 선택하고 민족의식을 기르기 위해 노력한다.
추운 겨울에 남학생들과는 달리 저고리를 입어야 한다고 불평하면서도 저고리가 용기를 내게 해주고 조선민족임을 상기시켜 준다고 활짝 웃고,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이 훨씬 편하면서도 조를 만들어 생활 속에서 조선어쓰기를 약속한다. 아이들은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마음으로 타국 땅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어렵게 다녀온 북한으로의 수학여행 이후에 북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들은 그동안 말로는 북한을 우리의 반쪽이라 부르면서도 실상은 물질적인 잣대로만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이렇게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동포들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 때문이다.
희망은 이런 것이리라.

아이들의 서로를 지켜주려는 진심어린 마음을 보면서 나는 부끄럽게도 점점 희미해져가는 민족에 관한 희망을 보았다.

3년여를 같이 지내며 말투마저 닮아갔다며 그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김명준 감독 또한 이들과 같이 지내며 다시 확인한 민족에 대한 희망으로 감사하지 않았을까.

물론 영화의 감동을 푸는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전적으로 나만의 감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닌 들 어떠랴. 단지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난 행운으로 족하다.

‘우리학교’
크게는 민족에 대한, 작게는 우리와 나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희망을 느끼고 싶은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강추’하고 싶다.

적어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온전히 담긴 화면과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만으로도 먹먹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