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도가 한미FTA 4차협상을 저지하고자 하는 원정시위에 대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물들고 말았다.

24일, 협상장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10여분간 무차별적인 진압이 벌어졌다. 이날 충돌로 시위대 8명, 경찰 4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현재까지 파악되고 있다.

이날 경찰의 진압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시위대와 경찰이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30분간 진행되다가, 물대포 발사와 동시에 선두에 있던 경찰 200여명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두르며 튀어나왔다. 경찰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던 시위대 일부는 방패에 맞아 쓰러졌고, 그 위로 전경들의 군홧발 세례가 이어졌다.

보통 맨손으로 몸싸움을 벌이는 시위대를 해산할 때는 물대포만 사용하는 게 관례인데, 이날 경찰은 마치 사전 약속이라도 한 듯 물대포와 함께 밀어 부친 것이다.

집회 경험이 많은 참가자들도 이러한 진압방식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경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전진 공격하는 방식을 전경들의 속어로 일명 ‘쪼개기’라고 하는데, 이는 죽봉과 같은 무기를 든 선봉대와 본대를 분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작전은 시위대가 크게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찰 측에서도 최종 저지선이 무너질 수 있는 급박한 우려가 예상될 때 외에는 이러한 작전을 펼치지 않는 게 통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날 시위대의 상황은 달랐다. 죽봉을 든 선봉대도 없었고, 시위대는 맨몸이었다. 흥분한 농민들이 컨테이너박스 1조(1단 2층)를 쓰러뜨렸지만, 또 다른 1조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범국본 측은 농민들이 컨테이너박스를 쓰러뜨리기 전 정리집회를 진행할 의사를 밝혔으며, 일부 참가자들의 반발로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재차 일어났지만, ‘최종 저지선이 무너질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정리집회에서 범국본 오종렬 공동대표는 이날 상황을 두고 “돌발상황”이라고 정리했다. 주최측도 이날 시위에 경찰 진압 수위가 이 정도로 거셀지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진압경험이 없는 경찰이 상황판단을 잘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시위대와 경찰이 몸싸움을 할 때마다, 전경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맨몸으로 밀어 부치는 시위대를 향해 방패를 휘두르는가 하면, 대치 이후 시위대가 연좌농성에 들어가도, 전경들은 앉아 있는 참가자를 방패로 내려찍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서 1만 여명이 경찰이 모여 있다 보니, 제 각각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시위대와 함께 몸싸움을 하다가도 한쪽에서는 방패를 땅에 수직으로 세우고 막기만 하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방패를 휘두르며 진압에 나선다. 저지선을 유지하기 위해 일렬로 정렬해 있다가도 반쪽은 뒤로 후진하지만 한쪽은 움직이지 않고, 서로 엇갈린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경찰은 시위진압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상황에 따라 대처하지 않고 무조건 강경진압으로 대응했다. 이날 전경들은 시위대 방송차량에 수십 명이 달라붙어 운전석 창문을 깨고 운전자를 방패로 공격하기도 하고, 방송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주최측 관계자까지 공격을 가했다.

이날 경찰의 진압에 대한 여론의 시선도 곱지 않다. 시위에 대해 비판적이던 주요 언론들도 대부분 경찰의 폭력진압에 중점을 뒀다. 방송사도 ‘이례적으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의 진압봉을 뺏어 진압에 대응한 것에 대해 일부 언론은 ‘폭력시위를 유도한 경찰 진압 방식’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경찰의 폭력진압은 시위대에 분노에 불을 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전날 차가운 바닷가에 줄지어 뛰어들며 비폭력적 방식으로 시위를 전개했던 ‘원정투쟁단’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정리집회에서 전농 문경식 의장은 “경찰이 농민, 노동자에게 선전포고를 해왔다”며 “이 분노를 가슴에 담고 11월 22일을 준비하자. 경찰이 방패와 진압봉으로 폭력을 사용한 만큼 우리는 죽창도 들고 쇠스랑도 들고 싸움에 나가자”며 “이후 사태에 대해서는 경찰이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제주 원정시위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한미FTA에 대한 전체적인 형국이 나쁜 가운데, 정부가 악수(惡手)를 두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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