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호(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대전충북지부 사무국장)


`남북노동자 5.1절 통일대회`가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당시 행사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해 주고 있어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참가의 결단

남북 노동절 공동행사가 최종 결정되고 그 역사적 현장에 꼭 함께 하고 싶은 개인적 열정에 며칠 밤을 뒤척였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간다`는 결연한(?) 의지를 수 차례 다짐했지만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출범하고 처음 맞이하는 노동절행사를 실무적으로 책임져야 할 지부 사무국장으로서 남북공동행사 참가문제는 결코 만만치 않은 난제였다.

속으로만 끙끙 앓는 사이 지부 대표자동지들의 은밀한 모의(?)를 통한 결단이 내려졌다. 아직도 반공과 반북의 사상적 공세에서 자유롭지 못한 조합원동지들에게 생생한 북녘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전달하여 통일운동의 대중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것, 부시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 회귀하는 현재의 통일정세를 남북 노동자들의 대규모 자주적 교류를 성사시켜 화해와 협력, 통일의 정상궤도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사무국장을 북으로 특파한다는 결정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드디어 지부의 특명을 부여안고 북녘으로 가게 된 것이다.

속초항에서의 투쟁

운명의 4월 30일! 드디어 날이 밝았다. 뜬눈으로 지새운 탓인지 입안이 껄끄러웠지만 정신만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대전과 충남, 충북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33명의 동지들이 모여 속초로 향하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안에서 감지되는 약간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그간 노동운동의 단결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어렵사리 결정된 북녘행에 또다시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김대중 정부가 민주노총 이규재 통일위원장의 방북을 불허하고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통일위원장의 방북이 성사되지 않으면 불참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속초항에 도착한 방북단들은 냉전의 유물인 국가보안법과 그것도 사건 처리를 2년이나 지연시켜 이규재 통일위원장의 방북을 불허한 정부에 대해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속초항에서는 이 문제를 책임질만한 당국자는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예견된 사태에 대한 민주노총 방북단 대표자들의 긴급논의가 진행되고, 밖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방북단들이 항의집회를 진행하면서 회의결과에 관심을 기울였다.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와 `통일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김대중정권의 본질을 폭로하고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과 연계시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며 철수를 주장하는 동지들과, `민주노총 중집 결정 이전에 북의 직총과 한국노총 민주노총 3조직간에 합의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대회를 반드시 성사시킨다는 취지에 근거하여 방북을 해야 한다`와 `부시정권의 대북 강경책으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이를 조국의 통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민족대단결에 기초한 남북 민중들의 투쟁이 절실할 때이고 특히 노동자 대중들의 대규모 교류인 노동절 남북공동행사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참가를 주장하는 동지들 사이에 많은 논의들이 오고갔다.

누구도 책임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조건에서 많은 시간이 지나갔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한국노총 동지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이규재 통일위원장이 방북단 앞에 비통한 표정으로 연설을 시작하였다.

"이번 노동절 남북공동행사는 반드시 성사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동지들은 금강산으로 가셔서 많은 성과를 안고 돌아와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을 위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지겠습니다"

연맹과 지역별로 다시 토의를 진행하여 이번 행사의 의의를 공유한 가운데 대회를 성사시키기로 최종 결정하고 이번 결정의 책임은 통일담당자들이 공동으로 받아안기로 결의하였다. 일부 연맹이 철수하였지만 방북단의 대다수인 290여명의 민주노총 동지들과 230여 한국노총 동지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조국통일의 장정에서 반드시 의미있는 성과를 가져오겠다는 결의로 금강산으로 향하는 `설봉호`에 몸을 실었다.
    
장전항, 그리고 북측 세관원

설봉호에서 민주노총은 긴급 통일위원회를 개최하여 방북기간동안 민주노총을 대표할 방북대표단 단장 권한대행을 선정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한 부담으로 선뜻 단장 권한대행을 제안하기 어려웠으나 민주노총 중집위원으로 있는 정인숙 여성위원장과 염성태 민주노총 인천본부 본부장이 흔쾌히 공동대표 역할을 수락하여 주었다.

이규재 통일위원장의 방북불허에 대한 투쟁으로 예정보다 7시간이나 지연되어 속초항을 출발한 설봉호가 칠흑같은 망망대해의 어둠을 뚫고 북으로 항해한지 4시간이 흐르자 멀리서 장전항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장전항이다. 북녘땅이 저기구나` 여기저기서 감회에 젖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설봉호가 장전항에 닻을 내렸다. 민주노총 참가단은 설봉호에서 숙박을 하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일부는 현대가 해상에 지어놓은 해금강 호텔에 머물기로 하였다. 운 좋게 해금강 호텔에서 숙박하는 조에 속한 나는 민주노총 동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북녘 땅에 감격의 첫발을 내딛었다.

부동자세를 한 군복차림의 앳된 병사가 세관 앞에 서 있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 나오는 앳된 북한군 병사의 모습 그대로다. 처음으로 대면한 북녘동포의 모습이지만 낯설지 않고 정겹기만 하다. `말을 걸어볼까, 그래도 될까` 고민하는 사이 앳된 병사 옆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세관에서 검색이 시작되었는데 이전의 남측 관광객과는 달리 거의 형식적 통관절차만 진행되었다. 남측 노동자 참가단에 대한 북측의 배려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진과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세관원의 눈초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사진과 참가단의 모습을 번갈아 확인하는 세관원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참가단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 때 세관을 통과하던 한 동지가 "반갑습니다" 한마디를 던지자 그 날카로운 눈을 가진 세관원이 환하게 웃었다. 티없이 맑은 웃음이었다. 방금전까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긴장시켰던 사람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맑고 고운 미소였다. "반갑습니다" 한 마디가 반세기를 이어온 남북의 갈등과 대립을 허무는 순간이었다.
 
해금강 호텔의 맛사지

세관을 통과하여 호텔에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로비에서 공연중인 필리핀 악단들과 무희였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가 퇴폐와 향락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라지만 금강산에서까지 자본주의의 저질문화를 본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호텔 방에 비치된 안내서에 버젓이 쓰여있는 `지하 맛사지 클럽`에 대한 홍보책자였다. `객실출장도 가능` 이란 문구를 보며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자본의 거침없는 탐욕에 새삼 우리의 과제를 되새겨 보았다. 방북 첫날밤의 흥분이 자본의 탐욕으로 반감된 채 우리는 속초항에서 준비한 간단한 소주로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노동절의 아침이 밝다

세계 노동자들의 핏물로 아로새겨진 노동절, 그 의미 있는 날에 반세기를 대립과 갈등으로 살아온 남북의 노동자들이 드디어 만나는 날이다. 만남으로 하나되는 감격의 날, 하늘도 감격한 듯 극심한 봄 가뭄에 시달리던 북녘의 산하에 아침부터 단비를 뿌려주었다.

북녘의 노동자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숙소를 출발하여 행사장인 `김정숙 휴양소`로 향했다. 현대아산 관광가이드의 차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길 건너편에 나있는 도로는 북한인 전용도로이고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남한 관광객 전용도로입니다."

길 건너편 북한인 전용도로는 차의 왕래는 거의 없었고 밭일을 나가는 촌부의 낯익은 모습과 옹기종기 모여 어디론가 향하는 어린이들의 모습만이 정겹게 다가왔다. 날씨가 흐려 바로 앞에 펼쳐진 금강산의 전경이 아득하기만 하다.

방북단을 태운 버스가 금강산 자락 입구에 있는 온정리 마을을 통과하는데 약간 야윈 소와 페인트칠을 못해 콘크리트의 원색을 드러낸 건물(김정숙 휴양소, 금강산 여관 등 우리가 본 대부분의 북측 건물들은 원유를 아끼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다고 함)을 제외하고는 우리 농촌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마을 정경의 흡사함은 차를 향해 고사리 손을 흔들어 주는 어린이들의 모습, 이른 시간임에도 밭일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모습과 어울려 `남북은 한겨레 한 핏줄`이란 말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10여분 남짓 북녘의 산야를 달린 버스가 드디어 행사장인 김정숙 휴양소에 도착했다. 북쪽에는 가장 경치가 좋은 명산과 명승지 등에 노동자를 비롯한 근로대중을 위해 170여 곳에 휴양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 중 남북노동절 공동행사가 치러질 김정숙 휴양소는 묘향산 휴게소 등과 더불어 북한 4대 휴양소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김정숙 휴양소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웅장미를 갖춘 건축물이었다. 더구나 휴양소를 둘러싸고 있는 금강산이 안개에 휩싸여 그 신비로움을 더해 우리의 경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잠시 그 절경에 넋을 빼앗긴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오를 정비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깃발을 앞세우고 7천만 남북민중의 염원을 담은 `조국통일` `민족자주`의 휘호가 하늘높이 솟아있는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북측 여군군악대의 환영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운동장에 도열하여 우리를 열렬히 환영하는 북측노동자들과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상봉을 가졌다. 남북 노동절 공동기념행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감동의 남북 노동절 공동행사

3조직의 깃발을 필두로 지도부, 남북축구 선수들이 입장하고 기념식이 진행되었다. 남북노동절 공동행사를 축하하는 세계 각국의 축하 전문이 낭독되고 3조직 대표연설이 있었다. 공히 이번 행사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조국의 통일을 달성하자는 내용이었다. 그중 쉽지 않은 결단으로 민주노총 방북대표단 단장 권한대행을 맡으신 정인숙 동지의 연설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이번 방북이 결코 헛되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다시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식이 진행되는 중간, 북녘의 노동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더 많이 보고, 말하고 싶어하는 남측 노동자들의 작은 반란(?)이 시작됐다. 대열 뒤편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음료수를 준비하고 있던 북한 봉사대와 사진을 찍고, 북측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걸며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알차게 쓰기 위한 힘겨운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북한에서도 노동절은 휴일인가요?"
"북한에도 노동조합이 있나요?"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남측 노동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북녘의 노동자들은 빙그레 미소로 답하거나 어느 대목에선 거침없고 솔직한 답변을 해 주었다. 기념식이 끝나고 북측에서 준비한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북측의 고유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들의 공연은 낯설기도 하고 잊고 지냈던 우리의 가락을 듣는 것 같아 정겹기도 하였다.

노래공연이 무르익을 무렵 드디어 일은 터졌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갖는 대중적 행사로 사전준비에 따라 치밀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했던 남북 실무단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흥에 겨워 감격에 겨워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어깨춤은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어깨동무로 이어졌고 다시 통일을 갈망하는 통일열차로 이어졌다.

서로의 허리를 잡고 `조국통일`을 연호하며 연단 앞을 지나자 통일열차는 금새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참가자 전원이 하나가 되는 장관이 되었다. 잠시 당황했던 사회자도 감격에 겨운지 연신 감격의 구호를 연발했다.

남북의 노동자들이 서로의 허리를 잡고 통일열차가 된 순간, 이미 `통일은 됐어`란 문익환 목사님의 절규처럼 통일은 그렇게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통일열차의 감격에 이어 평양교예단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야외에서의 공연으로 간단하게 진행되었지만 익히 알고 있듯 북측 교예 공연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점심시간, 사회자가 남측 노동자들은 버스로 이동하여 식사를 하고 북측은 이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는 발표가 있자 참가자들 속에서 "같이 먹자"란 구호가 터져 나왔다.

"같이 먹자, 같이 먹자"

참으로 가슴 절절한 구호가 아닐 수 없었다. 조금 부족해도 남북의 노동자가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자는 요구, 잠시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 요구는 일순간에 전체를 하나로 묶는 구호로 되었고 이 속에서 남북의 노동자는 또다시 짙은 연대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식사가 다른 곳에 배치가 완료된 상태이고 마음의 허물을 다 털어 버리기까지는 조금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준비된 식사장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남측 참가단은 적십자회담 장소로 사용됐던 `금강산 려관`으로 이동하여 잔디밭에서 북측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불고기, 닭튀김 등 맛깔스런 반찬에 룡성맥주까지 곁들인 점심은 북측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고, 북녘의 노동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없었던 이유를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축구경기, 그리고 북의 어느 노동자와의 대화

점심식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남북 혼성팀의 축구경기가 진행되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는 가운데 스탠드에 모인 남북의 응원단에게 주최측에서 구분한 남북 참가단의 자리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운동장에서는 남북의 노동자가 하나되어 공을 차고, 스탠드에서는 남북의 응원단이 서로 섞여 응원하는 모습은 `승패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남북 노동자들이 하나되는 것이 중요하지요`란 사회자의 방송과 딱 맞아떨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축구경기를 응원하던 중 우리는 점심시간에 아껴두었던 비장의 무기인 룡성맥주를 꺼내 주변에 있던 남북의 노동자들에게 한 잔씩 돌렸다. 같이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막막해하던 남북의 노동자는 술잔이 돌자 금새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터진 북녘 노동자들과의 대화는 곳곳에서 때론 웃음으로 때론 심각한 얼굴로 쉴새없이 진행되었다. 나 또한 술잔을 나누며 알게된 북의 참가자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다.

"반갑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000에서 왔습니다"
"저는 민주노총에서 온 진경호입니다"
"민주노총 얘기는 많이 들었고 가끔 TV에서 투쟁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갔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신문이나 방송에서 북녘동포들이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일 없습니다"

아차 싶었다. 그러나 그 때 그 친구는 숙연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다 아실텐데 그 얘기는 그만 합시다"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내친김에 평소의 궁금한 점을 거침없이 쏟아 부었다.
"근데 한 가지 꼭 물어볼게 있었는데요. 실례가 되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라겠습니다. 3일 굶어 남의 집 담 안 넘는 사람 없고 나랏님 원망 안 하는 사람 없다던데 몇 년씩 계속되는 식량난으로 나랏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나요?"
"인민이 어려웠던 건 50년 넘게 공화국을 잡아먹으려고 무자비하게 덤비는 미제의 경제봉쇄 때문이었습니다. 거기다 엄청난 홍수로 논밭이 다 쓸려 갔구요. 제가 사는 마을도 논에 발목이 넘는 깊이까지 황토가 쌓여 있었으니까요"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당시 우리 마을에도 노인네 몇 분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저도 많은 시간을 식량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장군님을 원망해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쪽잠을 주무시며 영하 수십도의 혹한에도 현지지도를 나가시어 인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장군님의 모습, 그 좋던 풍채가 야위고 거칠어진 모습을 TV로 보면서 우리 인민들은 많이 울었습니다.
인민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보며 수령과 당, 인민들이 더욱 더 일심단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서로에 대한 믿음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문득 김정숙 휴양소에 카다랗게 걸린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란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땐 남쪽 인민들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만한 남쪽에서 어찌 그리 무심할 수 있는지. 저희 공화국에서는 남쪽이 84년인가 홍수가 났을 때 주석님께서 친히 쌀을 지원하기로 하시고 우리가 조금 어렵더라도 남쪽 인민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보내자고 하셨습니다. 그때 우리는 남쪽으로 좋은 쌀을 보내기 위해 전 인민들이 쌀알 하나하나를 고르는 심정으로 지원미를 보냈는데....."

여기서 나는 반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측이 식량난으로 고생할 때 남쪽에서는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열심히 진행했습니다. 비록 양적으로 많이 부족했겠지만 수많은 남녘의 동포들이 북녘 동포들을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남쪽 민중들의 절절한 마음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말이라고 막 뱉어나서...."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북한동포돕기 운동에 자신의 결혼반지를 냈다는 이유로 이적혐의를 옭아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한 남측 검찰의 씁쓸한 행태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평소의 궁금증으로 시작된 대화가 내 자신이 받아들일 만한 선을 넘어서 많은 혼란이 왔다. 잠시 서로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이내 화제를 바꿔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는 사이 축구경기가 끝나고 있었다.

남북노동자 합동예술공연

축구경기가 끝나고 남북 예술단의 합동공연이 진행되었다. 오전 공연에서 이미 익숙해진 북의 창법이 얼콰해진 술 기운에 젖어 그 신명을 더했다. 남북의 창에서나 듣던 북한 사회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반나절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정서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짐을 느꼈다.

남쪽이라면 큰 일 날 제목인 `여자는 꽃이라네`가 흥을 더 해 주었고 `김일성 추모곡`을 부를 때는 북측 참가단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흐느낌이 흘러 나왔다. 한국노총 문예일꾼 동지들의 공연과 민주노총 문예대표로 참가한 노래패 희망새의 공연이 이어졌다. 특히, 희망새의 공연은 남북 노동자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한 곡을 더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어서 `휘파람`으로 남쪽에도 유명한 북쪽의 공훈배우 오송희의 화려한 무대가 남북 참가자들의 넋을 빼앗아 버렸다. 이전에 부른 북한의 가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을 사로잡는 무대매너와 미성은 가히 압권이었다. 오송희는 이후 남측 참가단의 엄청난 사인공세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짐을 느낀 남북의 노동자는 처음 대면할 때의 몇 갑절의 절절함으로 다시 하나되는 통일열차를 만들어 냈다. `조국통일`을 목놓아 외치며 서로의 맞잡은 허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대로 통일되는 날까지 함께 하고픈 열망으로 가득 찬 남북의 노동자는 이미 한마음이었다. 모든 행사가 끝났다.
   
통일의 열망을 확인한 배웅식

`이렇게 어울리니 너무도 좋은 걸`
어느 노동자의 탄식처럼 진한 감동을 주었던 남북노동자의 어울림은 통일에 대한 열망과 분단의 아픔을 서로 확인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북녘 노동자들 사이를 남측 참가단이 나서며 일일이 악수를 하였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꼭 다시 만납시다"
"조국통일! 반드시 이루어 냅시다"

이별의 아쉬움과 통일에 대한 스스로의 결의가 한 걸음 한 걸음 이어지면서 남북 노동자들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이내 환송대열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리도 정겹고 살가운 동포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 말인가?
도대체 왜 우리는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도대체 우리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조국의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수많은 회한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헤어지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마치며

참가와 철수를 놓고 벌인 수많은 논쟁을 뒤로 하고 `설봉호`에 탑승한 동지들은 금강산으로 향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짐은 남북노동절 공동행사를 거치면서 이번 남북공동행사가 얼마나 의미있고 소중했나를 체험하는 장으로 전변되었고, 이는 남북 노동절 공동행사를 마치고 진행한 참가자들의 평가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물론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 참가자들이 너무 경색되어 있다`는 일부 참가자들의 평가도 있었지만 대대수의 참가자들은,

`남북 노동자들이 부딪히면 하나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북한 노동자들의 통일에 대한 가슴 절절한 열망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녘의 동포들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헤어질 때 맞잡은 손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절감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통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후 통일 일꾼으로 열심히 투쟁할 것을 결의하는 평가의 장으로 되었다.

이제 남북노동절 공동행사를 통해 남북간 노동자들의 대규모 교류의 물꼬는 터졌다. 한 번 터진 물줄기는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법. 이제 분단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자가 앞장서고 반통일 매국세력을 제외한 전 민중이 어깨걸고 조국통일의 위대한 장으로 힘찬 진군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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