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유리거울 같다"는 금언이 있다. 유리거울이 한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될 수 없듯이, 신뢰도 한 번 잃게 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상호 신뢰가 없으면 무엇인가를 약속하거나 작당(作黨)하기가 어렵다. 한쪽이 파기하거나 배신하면 대사(大事)를 그르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웃은 물론 형제간에도 신뢰문제를 따진다. 하물며 국제관계에서, 더구나 그 관계가 적대적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 국제관계에서 대표적인 적대관계에 놓여있는 나라가 북한과 미국이다. 양국은 이른바 ‘북핵문제’를 놓고 군사적으로 대립해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지난 베이징 3차 6자회담(6.23-26)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안(案)을 갖고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은 성과적이지 못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협상을 할만한’ 양측 사이에 그 어떤 ‘신뢰’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처럼 3차 6자회담이 던진 화두는 공교롭게도 ‘신뢰’문제였고, 이는 최근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제3자에 의해 재확인됐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과 미국간에는 “상호 신뢰 부재가 여전히 뚜렷한 상황”이라면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6자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객관적 입장을 지켜왔다. 제3자의 눈에도 그렇게 비친다면 일단 ‘맞다’고 봐야 한다.

◆ ARF에서 2년만에 북한 백남순 외무상과 미국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만났다. 이 회담에서 백 외무상은 파월 장관에게 "북한은 미국을 영원한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양국관계 전망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정책 철회 여부에 달려있다"는 뜻을 전했고, 파월 장관은 "이념과 체제가 다르더라도 중요한 분야에서 협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덕담 차원을 넘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러나 ‘신뢰’는 말이 아니고 행동이다.

◆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북한은 ‘선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미국은 ‘선 핵 포기’를 각각 주장해 왔다. 그러나 상호 신뢰가 없기에 어느 쪽도 먼저 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백남순 외무상은 "북-미간에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핵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은 동시행동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서로 손에 든 총을 ‘동시에’ 내려놓는 수밖에 없다. '동시행동'보다 더 명확하고 쉬운 신뢰구축의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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