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최근 한반도 정세의 변화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부시다. 지난 4월 북-중, 5월 북-일 정상회담에 이어 6월 들어 남북미를 둘러싼 각 관계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커다란 굉음을 내며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는 가히 빛의 속도라 할만한데, 아직 그 크기와 영향력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다.

통상 한반도 정세는 남한, 북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관계, 한미관계, 남북관계 간의 삼각관계로 표시된다. 올해 들어 이미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지난 4월 중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에 따른 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5월말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따른 북-일 정상회담에서 감지되었다.

전자에서 북한과 중국은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새 시대에 맞는 관계를 설정했다. 후자에서 북한과 일본은 2002년 ‘9.17평양선언’을 재확인하고 양국 수교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로써 한반도 정세는 어떠한 변화가 와도 흡수할 수 있는 기초체력를 갖추고 또 새로운 변화를 향한 정지작업을 마친 느낌이다.

한미관계, 금기시된 주한미군 감축문제와 한미동맹 역할변경 논의

한미관계는 50년 넘게 요지부동이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한미관계는 불평등관계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 한미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최근 그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 골자는 주한미군의 감축문제와 한미동맹의 역할변경이다. 한미 양국은 이번 7일부터 서울에서 제9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열어 미국 정부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른 주한미군 감축 협상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앞으로 주한미군의 감축 시기와 규모, 단계별 감군 절차, 안보불안 해소를 위한 보완대책, 주한미군의 역할 및 기능 조정, 주한미군 해외이동시 사전협의 제도화,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여부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대통령도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집단안보체제’를 언급하고 ‘협력적 자주국방’을 재강조했다. 무언가 한미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닥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한미관계의 변화나 발전은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에 비해 가장 더뎌 왔다. 그런데 이제 금기시되던 문제들을 다루게 된 것이다. 한미관계의 변화는 바람직하지만 이는 현재의 불평등한 관계가 평등한 관계로 바뀔 때 바람직한 것이지 형식만 바뀌거나 개악이 되면 바르지 못하다. 이제 본격화되는 한미협상을 통해 새로운 한미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남북관계, 놀라운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

지금 남북관계는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느낌이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 실천의 견인차인 장관급회담을 중심으로 해 ‘좌 경제회담 우 군사회담’을 갖추게 되었다. 6월 4일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 방안에 합의한 데 이어 5일 경추위에서 ‘올해안 개성시범단지 조성공사 완료 및 10월 경의선.동해선 도로개통’ 등 7개항에 합의했다.

여기서 특히 놀라운 것은 남북의 장성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또 뭔가를 합의했다는 것이다. 원래 장성급회담은 북미간에 있어왔다. 즉 북미 장성급회담으로 불렸다. 그런데 남북 장성급회담이 생긴 것이다. 북미간의 전유물(?)이 남북간의 공유물로 바뀐 이 놀라운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한미연합사 체제에서 남북 장성급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건 하나의 경이로운 ‘사건’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건 합의서에서 ‘쌍방은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불법적으로 조업을 하는 제3국 어선들을 단속.통제하는데 상호협력하기로 한 점이다. 여기서 ‘제3국’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는 낮은 차원의 남북공조, 민족공조를 의미한다. 이처럼 낮은 차원의 민족공조가 차후 한반도에 부당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을 ‘제3국’으로 겨냥하는 높은 차원의 민족공조로 발전해 나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미관계, 이른바 ‘북핵문제’ 해결에서 미국측의 변화 기대

그간 부시 행정부 들어 교착상태를 넘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북미관계에도 최근 일말의 변화가 예상된다. 아직 진위가 명확히 나오고 있지 않지만 6월 말경 제3차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핵문제 해법과 관련, 미국이 한국의 북핵 3단계 해법을 수용하고 나아가 유엔 안보리에 북핵문제를 상정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것이다.

한국이 지난 2월 2차 6자회담을 앞두고 제의한 해법은 3단계다. 1단계는 북한의 핵포기 용의 표명과 관련국의 대북 안전보장 용의 표명 교환(‘말 대 말’), 2단계는 북한의 핵동결 착수와 관련국들의 상응조치(‘행동 대 행동’) 그리고 3단계는 북한의 핵폐기와 이에 따른 검증절차 완료와 관련국들과의 포괄적 관계개선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른바 '북핵문제' 해법과 관련 미국은 그간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북 ‘선핵포기’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CVID)의 핵폐기 원칙에 변화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이 가시고 북미관계에 긍정적 변화가 올 수 있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변화의 시대를 민족주체적 입장에서 맞이하자

이 변화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속단할 수도 없고 속단해서도 안되지만 반도의 남쪽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들어서게 한 KTX(고속철도)의 출현만큼, 한반도에서 거대한 변화가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변화는 기대와 우려를 모두 담고 있다. 변화를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민족주체적 입장에 서야 한다.

먼저, 한반도 문제의 주체는 남과 북이다. 따라서 남북관계에서는 남북이 민족화해 입장에서, 그리고 한미관계와 북미관계에서는 한국과 북한이 각각 민족주체적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실천을 한 차원 높이는 단계로, 한미관계는 한국의 자주권 확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북미관계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해 양국이 관계정상화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에 그쳐서는 안된다. 남과 북은 한반도 문제의 주체인 동시에 상호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한반도 문제에 거의 60년 전부터 ‘제3국’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과 북은 북미관계와 한미관계에서 북과 남이 각각 미국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서로 측면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남북이 한반도 문제에서 주체라는 것을 ‘제3국’과 전세계에 심어줘야 한다.

호랑이 등에 얹힌 채 끌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 수 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최근 한반도 정세에 정신을 차려 대응하자. 이 변화의 주체는 우리 민족이다. 남과 북 우리 민족이 변화의 주도권을 쥐고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남북이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라는 민족주체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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