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평화기행
[지은이] 이시우   [펴낸곳] 창작과비평사

어디로 떠날까?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해마다 되풀이되는 고민에 새로운 답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처럼 해수욕장이나 휴양지로의 `떠남` 만이 아니라 뭔가 의미있는 `만남`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변화의 시발은 뭐라 해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촉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경제적, 지적 성장을 축적한 우리 사회의 변화흐름이 이 같은 붐을 일으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러나 최근 또 하나의 새로운 변화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바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작년 촛불시위를 비롯한 숨가쁜 한반도 정세의 전개가 우리사회에 새로운 인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좋든 싫든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을 필두로 국토순례나 휴전선 155마일 대행진, 금강산 도보순례 추진 등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이러한 시점에 발간된 사진작가 이시우의 『민통선 평화기행』은 휴전선을 맞대고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온 우리에게 분단 현장이라는 또 하나의 `만남`을 제시한 `평화와 통일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사진작가 이시우는 남들이 눈을 돌리지 않았던 분단의 문제를 치열하게 담은 사진시집『비무장지대의 사색』과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를 이미 99년에 펴내 이 분야에서는 그 진정성을 평가받은 바 있다.

이번에 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펴낸 『민통선 평화기행』은 그간 그의 사색과, 연구, 실천을 총 정리해 339쪽의 사진과 글에 고스란히 담았다. 원래는 두 권의 책으로 낼 계획이었으나 압축적으로 한 권에 담았다고 하니 그 작업량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변적 상황보다는 이 책의 진수는 역시 책속에 담긴 알맹이들일 것이다. 철원, 강화, 연평도.백령도, 파주, 양구, 연천, 고성 등 분단 경계 지역을 답사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각 장을 펼쳐드는 순간 독자들은 우선 분단 현장과 함께 저자의 깊은 `사색`과 만나게 된다.

예의 사진 한 장의 설명에도 배어있는 작가의 깊고 예리한 사색들에 독자들은 금방 매료되고 말 것이다. 허리가 끊긴 철길의 침목과 못 하나에 대한 사진 설명은 이러하다.

"금강산 침목에 새순들이 노래한다, 그러나 침목은 풀에게 제몸을 맡긴 채 침묵하고 있다"
"못은 90년 동안 철로를 부여안고 자신을 박아놓았다. 때론 포화와 싸우며, 때론 무관심과 싸우며, 무엇보다 자신과 싸우며"

구석기 유물, 뾰족한 돌조각 하나를 놓고도 "돌의 결에서 외로움과 싸워 이긴 열망을 발견한다. 마침 『한비자』의 비유가 일리있다. `이(理)란 이미 이루어진 사물의 결(文)이다`"고...

종교와 사상, 문화와 역사, 생활과 과학 어느 것이랄 것도 없이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아우르는 그의 사색의 폭은 여느 사진작가나 시인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를 갖추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사상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홍익평화`이다"
"새벽은 불빛에서 오는 게 아니라 어두운 하늘로 살며시 걸어온다. 우리는 불빛에 의지하다 밤하늘로 걸어오는 새벽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뿐만 아니라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오래고 정성스런 발품으로 일구어낸 분단현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심미안은 이미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축성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이룩된 인간적 신뢰들 역시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날인가는 아침부터 이장댁 스피커에서 `회심곡`이 구슬피 흘러나왔다. 지뢰 피해자 한 분이 돌아가셨단다. 상주는 그래도 돌아가기 전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당신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해했다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나 독자는 역시 책장마다 마주치는 그의 깊은 사색과 해박한 지식 못지 않게 그의 일관된 주제의식과 `연구`에 대해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가 고인돌에 빠져든 것은 바로 이 기울기 때문이었다. 모델이란 것이 있다. 연구하자 하는 사물의 모델을 실제와 가장 유사하게 만들어가면서 사물의 법칙을 밝혀내는 방법론이다. 과학과 미학을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방법에 호감을 갖는다. 고인돌도 모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나는 전문가들의 그 `근거 없는 확신`을 접하고 직접 증거를 찾기로 했다. 1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와 일본의 미군기지를 두루 살폈지만, 발품을 판다고 해서 잡힐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인가 보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작가 이시우가 처음으로 밝혀낸 것 중의 하나인 진해항에 미군 핵잠수함이 기항한다는 사실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일본인의 책과 미 해군 공식자료 등을 검토하고 미 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의 보완과정을 거쳐 직접 진해항에서 눈으로 목격함으로써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이시우의 노력의 결과에 대해 기존 언론매체들의 반응은 매우 인색했다. 진해항에 미군 핵잠수함이 기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다뤄준 매체들은 거의 없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기성 주요 매체들이 이 책을 앞다투어 격찬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 할만하다. 아니 이 책은 이미 그런 벽을 넘어설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민통선 평화기행`의 결정판일 수는 있어도 완결판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권이라는 제한된 지면에 모든 것을 담다보니 작가의 넓은 사고폭이 정제되어 전개된 느낌보다는 들쭉날쭉하게 읽혀지는 대목이라든지, 충분한 사진과 그림에 의한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점 등이 그것이다.

또한 다소 현학적인 저자의 인식체계와 서술방식은 책읽기에 다소 문턱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며, 아직 덜 확인되거나 주관성 섞인 주장이 반대편의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거부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한켠에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제한성이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비견되는 `평화 통일 답사기`로 기꺼이 평가하고 주변에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구는 이제 이 책을 통해 `사색하는 만큼 느낀다`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의 놀랄 만한 식견과 깊은 생각, 용기를 한꺼번에 만났다"며 "`놀랍다`는 말 이외의 다른 말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는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평가는 너무나 적절하다.

독자들은 늦봄 문익환 목사의 통일에의 `꿈`이 6.15이후 시대의 이시우에게서는 `철마는 날고 싶다`는 현실성을 지닌 역사적 상상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철저한 사색을 거쳐 상상력을 발휘해 발견해내는 통일에의 꿈 한 자락이 오늘도 그의 발걸음을 분단 현장으로 재촉하는지도 모른다. 사색하는 자만이 꿈꾸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만도 그는 이미 이론가이자 실천가로서 자신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어쩌면 그의 이번 책은 시작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책머리에서 그가 "나는 처음 출발했던 그 어둠의 자리를 잊지 않고 있다. 어둠 내린 공단의 거리와 빗물에 얼룩진 천장을 이고 사는 한 지뢰피해자의 좁은 방을 기억한다"고 선언했듯이.

이번 여름휴가에 이 한 권의 책을 나침반 삼아 분단 현장을 만나러 땀흘리며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새 지평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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