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북)정치학 박사/ 사, 부산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전략국가, 조선> 저자

 

기간 진보운동은 이 땅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데 실패했다. 북도 2023년 연말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행해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 ‘근 80년간 지속된 동족 개념의 남북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새로운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순서로 ‘새로운 진보운동을 위한 시론(時論)’ 글을 아래와 같이 연속적으로 기재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필독을 권한다. / 필자 주

1. 총론; 2024년은 ‘새로운’ 진보운동의 원년이 되게해야 한다 
2. 반미자주전선: “미 제국” 반대를 주선으로 해야 
3. 반독재민주전선: 민중정권 수립을 명확히 해야 
4. 조국통일전선: 평화담론에서 통일담론으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뤄져야 
5. 결론: 자·민·통 운동은 ‘여전한’ 진보운동의 강령이다

 

1. 들어가며: 북의 ‘동족’, ‘민족’개념 파기가 뜻하는 것은?

<모순론>이라는 책이 있다. 중국의 정치가이자 혁명가, 이론가인 마오쩌둥(이하, 마오)이 1937년에 쓴 책이다. 

주장의 핵심은 연관된 사물의 상호관계 공통의 특성, 즉 보편성을 인식하면서도 사물의 차이를 드러내는 특수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구체적 사물에 대한 어떠한 면밀한 연구도 거절하며 일반적인 진리를 허공에서 떨어지는 어떤 것으로 보고 그것을 파악할 수 없는 순전히 추상적인 공식으로 만들어 버려 인류가 진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북의 이번 ‘동족’, ‘민족’ 개념 파기도 마오의 이 <모순론>적 인식이 필요할 듯하다. 본질적 의미와 특수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했을 때 다음과 같은 인식이 가능하다. 첫째는, 정치적 주장으로서 ‘동족’, ‘민족’ 개념은 사라졌지만, 이것이 역사적(혹은, 민족사적) 담론체계로 존재하는 ‘동족’, ‘민족’ 개념까지 사라졌다고 인식하는 것은 (인식적) 오류라는 입장이 가능하다. 둘째는, (북의 입장에서는) 조국통일운동 노선상에서의 ‘동족’, ‘민족’ 개념은 없애버렸지만, 이것이 자신들의 국가지도 이념인 주체사상과 조선노동당(이하, 당) 강령에 존재하는 ‘조선반도(한반도)’라는 그 의미까지 사라지게 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는 해석의 엄밀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해서 북이 이번 제8기 9차 당 전원회의와 제14기 10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동족’과 ‘민족’ 개념을 없앴다하여 이것을 두고 북 자신들이 당을 만들고 나라를 건국하면서 내세웠던 주체혁명위업 완성 그 자체의 의미까지 포기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전혀 ‘옳은’ 이해가 아니다.

그 관점에서 마오의 인식문법이 필요한데, 그 관점은 다름아닌 ‘본질적 의미와 특수한 의미’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변혁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첫째는, 통일운동에 있어 심각한 인식장애를 형성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변혁운동 선상에서 심각한 좌·우경 편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예는 이렇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한국을 겨냥해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했고,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 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두 문장에 존재하는 맥락적 간격을 어떻게 메울까, 하는 문제를 우리는 잘 풀어내어야만 한다.

연결하면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는 절대 ‘민족’, ‘동족’ 개념을 공유하지도, 그리고 남북이 반세기 전인 1972년 7·4 공동선언을 통해 확인한 3대 조국통일 원칙과 1991년 12월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개념을 사실상 폐기, 통일을 재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나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즉 북의 사유체계를 따라가 보면 그런-“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과는 더 이상 ‘동족’, ‘민족’ 개념을 공유할 수 없으니, 이때의 주체혁명위업 완성은 “점령, 평정, 수복, 편입”의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영토완정” 방식이라는 말이고, 다른 말로는 한반도에 자신들의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로 1국 1체제를 만들어 내는 완전한 자주독립국을 건설해 내겠다는 의지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인식이동이 가능했다. 

             ⦁ 동족, 민족 → “두 국가관계”, “제1 적대국”
             ⦁ 연방·연합 방식의 통일 → “영토 완정”

이로부터 우리는 또한 다음과 같은 인식을 해내어야 한다.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것은 더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생각합니다.” (전원회의)

해석하면 이렇다. ▷첫째, ‘주적’을 철회한 ‘대한민국’. ▷둘째, ‘외세(구체적으로는 “미 제국”)’로부터 자주권을 회복한 ‘대한민국’. ▷셋째,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을 포기한 ‘대한민국’, 그렇게 이 3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그 어떤 ‘대한민국’과도 이제껏 자신들이 취해왔던 평화적 방식으로의 한반도) 통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며, 그래서 비평화적 방식에 의한 “영토완정”을 이뤄내겠다는, 보다 적극적, 혹은 공격적 의미에서의 주체혁명위업 완성 전략을 선뵀다, 그렇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북의 이번 천명은 북이 이 땅 한반도에 존재하는 민족모순, 분단모순 해결이라는 당면한 과제를 부정했다거나 민족문제에 대한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의 해석은 전혀 옳지 않다. 

대신, 북의 이번 천명은 북 자신들의 주체혁명위업 의지가 소멸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변증법적 인식을 거쳐 좀 더 적극적, 공격적 방식으로 확장됐고, 단지 소멸한 것은 위 3가지-자신들을 향해 ‘주적’을 철회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외세(구체적으로는 “미 제국”)’로부터 자주권을 회복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대한민국’과는 절대 ‘동족’, ‘민족’ 개념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의 성립이다. 

2. 담론의 재구성: 왜 평화담론이 아닌, 통일담론이어야만 하는가?

그래서 일각에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통일담론’ 폐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변증법적인 의미에서의 ‘통일담론’을 더 세게 제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다른 데 있지 않다. 북이 이번 전원회의와 시정연설에서 선보인 ‘동족’, ‘민족’ 개념은 (불가역성이 아닌) 가역성의 정치 논리에서 작동되는 인식적 범주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민족과 동족’ 개념을 거세시키면서도 그 조건을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으로 국한한 것이 그것을 잘 의미한다. 그래서 이를 주체사상과 당 강령으로 존재하는 주체혁명위업 완성 의미가 있는 ‘민족통일’ 관련 인식 체계 모두를 지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하다.

즉 “민족대단결”의 기치와 “민족자주”의 원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뭔 말인지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북이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과는 ‘동족과 민족’ 개념을 공유하지 않기로 하면서 평화적 방식에 의한 ‘통일의 원칙과 방안, 그리고 그 이행을 담은 각종 남북합의’ 등을 다 지웠지만, 진작 당 규약에 있는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은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물론, 최종적으로는 제9차 당대회를 지켜보아야만 한다.)

관련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면 그 의미는 보다 더 또렷해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4년 시정연설에서 “헌법에 있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삭제해야하며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는 했지만, 진작 제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삭제했으면서도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강조, 필자)”라는 내용은 그대로 살려놨다. 왜 그랬을까? 그건 다음과 같은 당 규약 전문에 그 해답의 비밀 열쇠가 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

첫째, 여기서 말하고 있는 ‘전국적 범위’는 남과 북을 일컫는다. 둘째, 맥락적으로 볼 때 ‘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가 건설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에서의 분단체제, 전시체제는 극복되어 남반부가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이 이뤄져야만 한다. 셋째, 그렇게 ‘첫째’, ‘둘째’가 합해져야만 북 자신들의 최종적인 궁극적 지향점, 즉 주체혁명위업의 마지막 단계인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가 전국적 범위에서 완성될 수 있다. 이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렇다면-통일을 해야 할 이유가 그렇게 존재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을 절대 “상상의 공동체”만으로 간주할 수 없다. 여전히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이고, 다만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적대적인 관계로 되었던 것은 일제 식민 지배에서 해방될 때 우리 민족의 힘이 약해 외세, 특히 “미 제국”이 38° 이남에 대소 전진 기지 겸 반공주의 보루로 삼고자 영구 분단을 획책하고, 대북 적대시 정책을 펼친 결과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북에 의해 정의된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 즉 “미 제국” 추종 세력인 반민족적인 정치 세력들, 그리고 이들 세력과 연합한 자본이 이 분단체제, 전시체제를 지속시켜 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비정상성은 우리 민족 스스로가 원한 비정상성이 아니다. 그래서 이 비정상성은 반드시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민족대단결”의 관점에서 분단극복을 해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민족자주”가 보장되는 자주독립국을 이뤄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2024년은 ‘새로운’ 진보운동의 원년이 되게해야 한다‘(<통일뉴스>, 2024.2.7.)에서 다음과 같이 ‘민족과 통일’ 개념의 상관성을 설명해 내었다. 

첫째는, 평화 개념을 우리 민족의 실천적 담론체계 안에서 들여다봐야 한다면서, 즉 우리 한반도에는 어쩔 수 없는 숙명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지정학적 운명이라는 것이고, 같은 논리로 분단은 통일이라는 민족적 숙명을 갖게 한다, 해서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통일담론 체계 안에서의 평화 개념만 성립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볼 때는 ‘분단극복 없는 평화 없고, 종국에는 통일로 평화가 완성될 수밖에 없는 인과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둘째는, 북의 이번 천명을 민족적 통일담론으로부터 이탈로 인식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우리 민족의 통일론은 서구의 ‘종족’ 개념에 의한 통일론도 아니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렇게-‘동족’과 ‘민족’ 개념을 없애고, ‘주적’ 관계로 전환 시켰다고 해서 공고성으로서 실체화된 ‘같은 핏줄,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지역공동체’ 개념의 민족개념이 절대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이로부터-‘첫째는’과 ‘둘째는’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보다 더한 발언을 했다손 치더라도 남과 북은 여전히 같은 민족공동체의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변혁적 관점에서 볼 때는 정치 논리에 따른 개념적 규정으로서의 ‘가역적’ 정의가 ‘불가역적’ 영역의 민족담론을 뛰어 넘어설 수 없음도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평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생각해 보면 이는 금방 알 수 있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은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것은-궁극적 의미에서의 평화가 불가능했던 것은 이제껏 우리가 평화를 생각할 때 ‘분단’ 구조, 즉 분단 구조를 깰 생각보다는 그 분단의 토대 위에서만 ‘평화’를 지향해 내었기 때문이다. 

결과, 지금까지 평화도, 통일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세월만 근 80여 년을 흘려보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통일을 외면한 평화 타령만 해야 하겠는가? 그 어느 때보다-북이 ‘민족’, ‘동족’ 개념을 없앤 이 시점에서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사건 하나하나가 발생할 때마다 분단체제와 전시체제에 기생된 ‘얼음장 위의 평화’는 왜 불필요한 정쟁과 남남갈등을 그렇게 심하게 유발시키는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원인 모두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분단으로 인한 갈등과 대립 때문이다. 인식을 분명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 시기의 연평도 공무원 피살사건도,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 때 발생한 사건들, 예를 들면 NLL과 관련된 사건들 모두는 남북, 북미 간 (평화 기운은 고사하고) 아주 위험스러운 군사적 충돌, 혹은 긴장과 대립만을 격화시켰을 뿐이다. 비례해 남쪽 사회 역시 너무나도 첨예화한 정쟁과 남남갈등만 이어졌다. 

또 다른 예를 들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 내에서는 그 원인을 둘러싸고 진실 여부에 대해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경우도 지금까지 재개해 내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하고 정쟁으로 하세월 하고, 국민도 덩달아 자신들의 성향과 이념에 따라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분단, 전시체제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북에 대한 인식은 절대 믿을 수 없는 적대국가로 남겨질 수밖에 없고, 남과 북 모두는 불필요한 군비경쟁으로 인한 국방예산의 낭비와 군사적 충돌 위험만을 계속 배가시켜 나간다.

해서 비교적 매우 분명하다. 평화와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한반도에서의 분단체제, 전시체제이다. 세분화하면 첫째, 남과 북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휴전 상태라는 것이고, 둘째, 정전체제에 바탕 둔 한미동맹 체제는 늘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위협을 조성할 뿐이라는 사실이고(한미합동 군사훈련 및 전략자산 무기 도입 명분 등), 셋째, 이로부터-미통일 상태의 한반도는 늘 군사적 긴장과 적대가 온존할 수밖에 없는 분단 생태계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바로 이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평화체제 수립은 이 분단체제, 전시체제의 완전한 극복을 전제할 수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즉 종전과 평화협정, 통일은 이렇게 한 묶음으로 연결된 신경망과 같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요인이 그렇게 변증법적으로 해소되어야만 비로소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는 들어올 수 있다. 

연평도 공무원 피격사건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교훈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려 한다면 분단체제, 전시체제로는 늘 위와 같은 그런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분단체제 극복 없는 평화 없다”라는 한반도 상황의 구조적 문제인식을 해내어야 한다. 어떻게? 분단되지 않은 국가에서라면 전쟁의 반대는 평화, 혹은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 맞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주의적 시각의 국제관계학이나 평화학에서 말하고 있는 일반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된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국제관계학이나 평화학에서 말하고 있는 일반론적인 개념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즉 ‘실천적’ 담론체계 안에서 평화를 고민해야 하고, 그러면 필자가 2021년 발간한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는 책에서 서술하고 있듯 분단된 우리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관련된 인식은 국제관계학이나 평화학이 아닌, 분단된 땅에서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 아니라, 분단(강조, 필자)”이라는 결론을 내와야 한다.

그래서 늘 우리는, 특히 변혁운동적 관점에서는 ‘전쟁과 평화’가 아니라, ‘분단과 평화’를 생각해 내어야 하고, 이는 북의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진정한 평화를 내오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분단극복(=통일)을 이뤄내겠다는 각오와 결심이 필요하다. 더 철저하게 분단극복이 전제된 실천적 담론체계로서의 평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정리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분단극복을 통한 평화여야 하고, 분단이 극복된 결과로써 존재하는 평화여야 한다. 또한 분단문제와 연동되지 않는 평화담론은 근원적으로 통일문제를 외면하게 되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반통일 논리를 내포하는 분단 고착론에 기댄 평화공존론이자 양국체제론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장준하 선생은 이렇게 일갈한다.

“모든 통일은 좋은 것이며, 공산주의는 물론 자유민주주의나, 평등, 자유, 번영, 복지 등의 이념을 포함해서, 모든 도덕, 모든 진리, 모든 선이 통일과 대립되는 것일 때는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한낱 거짓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일보다 나은 분단이란 있을 수 없다.” (코리언 스트릿 저널, 1989년 5월 11일 자 재인용)

너무나도 적확하다. “통일보다 더 나은 분단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이 상관관계만큼 분단과 평화, 통일의 상호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명제가 그 어디에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3. ‘더’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북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극우집단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도보수 민주당에 대해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하고, 결과 민족대단결 관점에서도 민주당을 배제시킨 이유는 위와 같은 장준하 선생의 관점과 정신에 멀어진 민주당 때문임도 분명하다.

"역대 남조선의 위정자들이 들고나온 '대북정책', '통일정책'들에서 일맥상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의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이었으며 지금까지 괴뢰 정권이 10여 차례나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며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전원회의)

그래놓고 위 “1. 들어가며: 북의 ‘동족’, ‘민족’ 개념 파기가 뜻하는 것은?”에서 못다한 얘기를 좀 해보자.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에 이어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한 것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진보·보수를 떠나 대체적인 인식문법이 남과 북은 이제 ‘같은’ 민족에서 결별, 별개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상은의 <정세와 노동> 제199호에 기고한 ‘적대적인 두 국가, 그리고 …’라는 글에서 그러한 인식이 잘 드러난다. “두 국가”라는 규정, 특히 헌법에서 “북반부”라는 규정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은, 허다한 불안 요인들을 안고는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평화를 향한 일보전진이랄 수 있다. “북조선”·“남조선” 하며, 실제로는 국경선인 ‘휴전선’ 이남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영토시(視)했던 태도를 바꾸어, 이북만이 조선이고, 이남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한’·‘북한’이라고 부르는 것, ‘북조선’·‘남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을 있는 대로 반영하는 정명(正名)이 아닐뿐더러, 지양해야 할 대결적 언어 아니던가!”

과연 그런가? 필자는 좀 다른 해석을 해본다. 그것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에 이어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는 것이 남과 북은 이제 ‘별개의 국가’라는데 그 방점이 있다라기보다는 북 스스로가 정의하고 있듯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과 ‘종전협정’에 이르지 못한 현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지적한 것과 같다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남과 북이 서로 적대관계로의 전환선언 됐다는 것이 전상은의 주장처럼 남과 북은 이미 ‘현실적으로’ 두 국가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선언이 과거와 “아무런 근본적 변화도 없”고 “‘종전협정’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킬 뿐”이고, 심지어 “그 자체로서는 평화를 향한 일보전진”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 “전쟁이 터지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상황”을 반영해서 나온 심각한 정세인식이라는 측면을 보다 더 중시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몇 가지 사례들만 봐도 이는 금방 알 수 있다. 2023년 한 해에만 하더라도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42회나 실시됐으며 여기에 일본도 10회가 넘게 참가했다. 여기에 아시아판 나토 정책의 일환이자 필히 대북 적대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반중 포위의 탈리스만 세이버(Talisman Sabre) 훈련과 태국의 코브라 골드 훈련 등 미국과 한국이 동북아 밖에서 진행한 훈련도 그 수를 헤아리기 겁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4년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듯 한반도에서 더더욱 일촉즉발의 전쟁책동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한미 연합훈련이 2월 24일까지 총 13차례, 48일 동안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고, 이 56일 가운데 한미, 한미일 군사훈련이 48일 실시, 한미 군사연습이 10회, 한미일 군사연습이 1회, 한미일 포함 다국적군 훈련이 2회였다. 더해서 2024년 올해 한 해만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최소 130여 차례 기획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구체적으로는 이미 1월 30일 미2사단과 한미 연합사단이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2024년 올 한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소요를 종합하고 훈련 내용을 조율하기 위해 ‘연합훈련 협조회의’를 진행했는데, 보도에 따르면 이 회의에는 한국과 미국의 군 주요 작전 계획 담당자 80여 명이 참여, 한미 양국이 올해 계획된 130여 건의 연합훈련 일정을 조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이 <통일뉴스>에 기사화될 때쯤에는 한미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 연습이 지난해보다 야외기동훈련이 2배 넘게 늘어난 규모로 3월 4일부터 14일 동안 이뤄졌을 것이다.

“지상과 해상, 공중은 물론 우주자산 등도 활용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훈련이 이뤄집니다… 특히, 지난해 23번 진행된 야외 기동훈련도 올해는 48차례로 2배 넘게 늘었습니다. 미국의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같은 전략 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이번 훈련에는 호주와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12개 유엔사령부 회원국도 함께 참가합니다.”(홍지호, “오늘부터 ‘자유의 방패’ 훈련 시작…기동훈련 지난해 2배” <MBN News>, 2024. 3. 4.)

보듯 매번 이러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돼 왔기 때문에 북은 그동안 민족·동족 관계로 이해하고 인내해 왔던 조치들을 과감하게 전면 재검토했고, 그 결론으로 ‘대한민국’을 적대국가로 대적하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북은 한발 더 나아가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내용도 담아냈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는 한국의 헌법 조항에 대응해서는 자신들의 헌법에 북반부 규정을 삭제하고 주권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국이 임의로 그은 해상 북방경계선(NLL)을 불법·무법으로 규정해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하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 분쟁이 남북 간에 북방경계선을 둘러싸고 일어난 충돌 정도였다면, 이제는 이러한 충돌이 곧바로 전면전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초유의 계기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북의 이번 결정은 남과 북이 ‘두 국가 관계로 전환되었다’는데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존재했던 두 국가 관계를 하루빨리 끝장내겠다는 의지로 봐야 한다, 이다.

그런데도 남쪽은 노무현 정권 이후부터 대체로 보수는 통일, 민주 진영은-민주당 세력 중심의 진영은 평화, 그리고 진보는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해 왔다. 좀 더 들여다보면 보수의 통일에는 자본주의 체제로의 통일론이 있었고, 민주당 중심의 민주 진영 평화에는 분단고착화론에 기댄 평화공존론, 그리고 진보의 평화와 통일에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노력은 있었다 할 수는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온탕과 냉탕만 오간 민족대단결이었다. 

결과, 보수의 통일에는 평화가 빠졌고, 민주의 평화에는 통일이 빠졌고, 진보의 평화와 통일에는 통일논의를 추동해 나갈 힘이 없다. 그러니 같은 민족으로 이 같은 상황을 어찌 (북이)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있었겠는가? 

진보는 힘이 없었고, 반통일세력은 노골적인 수구보수 세력들만이 아니었다. 평화를 얘기하지만, 분단체제와 전시체제에 기생해 권력만 탐하는 보수중도세력인 민주당도 반통일세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양 세력에게는 그렇게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이들 모두는 분단과 평화가 양립 가능하다는 허구적인 논리로 온 국민의 시선을 유혹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였다. 친미와 분단에 기생한다는 측면에서는 양 세력이 이렇게 동일했고, 다만 주권자인 국민들은 민주당 세력들에 대해 그들의 반(反)통일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들에 의해 설파된 평화공존론이 마치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담론인양 착각했을 뿐이다.

잠깐, 참고로 평화공존론과 마치 동전의 양면관계인 양국체제론도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여러 각도에서 이를 설명할 수는 있으나 지면 관계상 세 가지 측면에서만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은, 당위적 측면에서의 설명이다. 전혀 복잡하지 않다. 아주 간단명료한 인과론적인 결론 하나만 알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한반도가 안고 있는 지정학적 숙명 문제, 즉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각축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숙명 문제이다.

같은 논리로-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각축할 수밖에 없다면 남과 북, 이 분단문제 또한 필연적으로 민족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과 지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논리로 귀착된다. 또 지정학적 숙명이 국운을 도약시킬 수 있는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역량과 힘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민족문제 역시 분단으로 인해 늘 주권의 불안정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같은 민족끼리 대립과 갈등을 지속시키기보다는 통합과 통일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도모해 준다는 인식도 가능하다.

두 번째,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국가로 될 수 있느냐, 없느냐도 결국 이 통일문제와 연관되는데 설명으로는 이렇다. 세계적인 투자 귀재 짐 로저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전 재산을 북에 투자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 <세계경제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라>(2013년 국내 출간)에서 그는 "통일한국은 경제 강국이 돼 일본을 앞설 것입니다. 통일에 반대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이라며 골드만삭스의 ‘2040년대 통일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8만6천 달러로 세계 두 번째 국가가 된다’라는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남북경제 합작이야말로 꺼져가는 한국경제의 엔진을 재가동하는 길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반면 분단의 지속은 소모적인 남북 간의 체제경쟁으로 인해 엄청난 국력 낭비는 물론, 계속되는 이산가족의 고통, 남북 간 동질성 약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장애 발생. 이뿐만 아니다. 분단은 대한민국에 ‘엄청난’ 민주주의 왜곡을 발생시켜 주권재민의 제약과 함께 국민 고통(민주시민 의식 제약) 유발, 분단경험 세대와 전후 세대의 인식격차로 인해 국민 통합은 어렵고, 개인별·계층별 가치관에 따른 이념논쟁, 숭미사상 및 친미세력의 정치세력 생태계 지속 등은 계속하여 대한민국을 자주권 없는 ‘대한미국(美國)’으로 존속하게 할 것이다.

세 번째, 평화와 통일의 상관관계 문제이다. 즉 한반도에서의 분단극복은 반드시 평화와 통일이라는 두 수레바퀴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평화라는 한쪽 수레바퀴로만, 또 통일이라는 한쪽 수레바퀴만으로도 절대 굴러갈 수는 없다. 온전히 두 바퀴가 상호 평형을 맞춰 정상적으로 굴러가야만 분단극복은 물론, 진정한 평화도 다가올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레바퀴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려면 그렇게 굴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과, 앞 “2. 담론의 재구성: 왜 평화담론이 아닌, 통일담론이어야만 하는가?”에서도 확인했지만 분단극복은 평화를 함의하는 통일을 지향하게 할 수밖에 없고, 분단극복과 연동되지 않는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이다. 더 연관하면 ‘통일 진전없는 평화 없고, 평화 진전없는 통일 없다’이다. 다시 말해 이는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만이 진정한 평화도 뒤따른다’라는 인과론적 결론과도 같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명백히 이해해야 한다. 왜 무력에 의한 통일을 반대해야 하는지 말이다. 첫째는, 통일 그 자체의 의미 때문이다. 즉 본령과 관련된 문제이자 이는 다시 우리가 통일을 이뤄내서 무엇을 궁극적으로 획득해 낼 것인가, 하는 그런 목적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먼저, 통일의 본령 문제는 우리 민족이 민족대단결을 실현해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자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다음, 목적 부분은 통일을 통해 우리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위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방식의 통일이 이러한 본령과 목적에 하나도 부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지정학적으로 파생되는 문제이다. 한국전쟁이 증명하듯 한반도는 한미일 해양세력과 북중러 대륙세력이 부딪치는 곳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존재하는) 하위체제가 분단체제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3일 전쟁’이 가능하겠는가? 불가능한, 즉 지정학적으로 어느 한쪽의 완전한 일방적 승리는 불가능하고, 피를 흘리든 흘리지 않든, 또는 흡수든 적화든 순탄하게만 진행될 수 없는 지정학적 특성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셋째, 제3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즉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위 ‘둘째’로부터 필연적으로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결말은 우리 민족을 포함 전 세계의 공멸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이 존재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 우려가 아니다. 이미 현실적으로는 미국과 북은 분단 이후부터 근 80여 년간 대결과 전쟁을 준비해 왔다.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북은 생화학무기에다 핵무기까지 보유, 더해서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개발을 완료했다. 그런 북에 대해 미항모의 북 해상접근이 가능하겠는가? 본토 핵위협을 미국이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여기에다 비록 “미 제국”에 작전권 통제권이 저당 잡혀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도 세계 5위 정도의 군사력을 갖춘 군사 대국임은 분명하다. 실제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 무기를 직접 만들 능력이 있고, K9자주포와 5세대 전투기 K21은 가성비 최고로 평가받는다. 특히 현무미사일은 성능과 사거리에서 중국과 일본을 압도한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핵잠수함개발 착수는 물론 핵무기도 미국만 허용한다면 기술로는 반년이면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조건과 상황에서 남과 북이, 또는 북과 미국이 전쟁을 한다면 이는 어떤 결과이겠는가? 한미일동맹과 북중러동맹의 군사대결을 떠나서, 남북 각각이 보유한 무기만으로도 공멸은 자명하다. 거기다가 한미일동맹과 북중러동맹의 군사대결까지 가면 그것이 바로 3차 세계대전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보충 설명] 제1차 한국전쟁도 3년간 이어졌지만, 현재까지도 휴전 중이다. 우크라이나전쟁도 발발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끝나지 않고 있다. 가자-이스라엘 전쟁도 압도적 무기의 이스라엘과 “미 제국”이 한편이 되어 있지만 쉽게 끝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 2021년에는 세계 최강 “미 제국”이 2001년부터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반군’ 섬멸 작전이 실패해 거의 야반도주에 가까운 철수를 결정해야만 했다. 무엇을 말해 준다고 하겠는가? 그래도 ‘3일 전쟁’이 가능한가? ‘민간인 희생 최소’가 가능하겠는가? 

이 지점에서 바로 우린 다음과 같은 한 인물을 소환해야만 한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다. 

“나는 제3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어질 무기가 어떤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서는 나무막대기와 돌멩이를 들고 싸우게 될 것이다.” 

의역하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로 싸울 3차 세계대전은 인류를 공멸시킬 것이고, 인류문명은 다시 원시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뜻을 내포, 그런 전쟁-3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한반도에서의 제2차 전쟁이라고 한다면 그런데도 무력으로라도 통일하자, 그렇게 우리가 주장할 수 있을까? 절대 우린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첫째는, 좋으나 싫으나 남과 북이 합의한 대로 6·15공동선언 방식으로 통일을 일궈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통일 반대 세력을 압도적으로 제압해 낼 수 있는, 즉 전민족 대단결을 실현해 내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두 조건에 딱 부합하는 방식은 우리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힘(역량)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에 있다. 중심축으로는 전민항쟁을 일궈낼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우리 민족 ‘하나되기’ 위한 역사에서 경천동지(驚天動地)는 그래야만 한다. <계속>

 

김광수 필자 약력

저서로는 가장 최근작인 『전략국가, 조선』(2023)을 비롯하여 『김광수의 통일담론: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2021), 『수령국가』(2015),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 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거쳐, 지금은 부경대에서 ‘강사’ 직위를 갖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민생민주부산시민행동 건설 주도(제안자) 및 상임집행위원/전 6.15부산본부 공동대표·공동집행위원장·정책위원장/전 민주공원 관장/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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