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국제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이 지속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전이 가세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더욱 얼어붙었습니다. 몇 년간 아무런 변화 없이 꿈쩍도 하지 않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의 답답함에 아쉬움을 보내면서, [2023년 송년특집]을 ①한반도 주변 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 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핵무력의 급속한 질량적 강화

북한이 12월 18일 오전 발사한 고체엔진 신형 ICBM '화성포-18'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이 12월 18일 오전 발사한 고체엔진 신형 ICBM '화성포-18'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지난 9월 26~27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 제4장 58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무기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내용을 명기해 국가 핵무력정책을 '헌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지난해 9월 '핵무력정책'을 '법제화'한데 이어 1년만에 '헌법화'까지 한 것은 핵무력 고도화를 기반으로 '우리식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분명한 의사표시이자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공화국의 핵무력건설정책이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써도 다칠수 없게 국가의 기본법으로 영구화된 것은 핵무력이 포함된 국가방위력을 비상히 강화하고 그에 의거한 안전담보와 국익수호의 제도적, 법률적 기반을 튼튼히 다지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촉진시킬수 있는 강위력한 정치적무기를 마련한 력사적인 사변'이라고 밝혔다.

'안전담보'와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이 정책 결정의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현 단계 핵무력강화의 중대과제는 '핵무력의 급속한 질량적 강화', 즉 △기하급수적인 핵무기 증산 △핵타격수단 다종화 실현 △여러 군종에 강력한 실천배치라고 말했다.

북은 올해에만 △잠수함(신포급 8.24영웅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SLCM)발사(3.12)  △핵무인수중공격정(해일-1,2형) 수중기폭실험(3.21~23, 3.25~27) △전략순항미사일(화상-1,2형) 발사훈련(3.22) △고체연료 사용 신형 ICBM '화성포-18'형 발사(4.13, 7.12, 12.18) △전술핵공격잠수함(김군옥영웅호) 진수(9.6)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용 고체연료 엔진 실험(11.11, 11.14) △정찰위성(만리경-1호) 발사(11.21) 등 새로운 무기체계의 실험, 개발을 진행했다.

3월 27일 핵무기연구소에서 진행된 '핵무기병기화사업 지도' 현장을 알리는 과정에는 각종 전술핵무기에 탑재할 소형화, 규격화, 대량 생산 가능한 핵탄두와 함께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인 '핵방아쇠'를 과시하듯 보도하기도 했다.

신냉전·다극화 인식.. 중·러와 연대 강화

북한이 이처럼 핵능력 고도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지난 2년간 급변하는 국제관계 구도를 '신냉전 체계 전환과 다극화 흐름 가속화'로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반제자주의 깃발을 선명하게 들고 '혁명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대외활동을 폭넓고 전망성있게 벌이겠다'는 것을 대외정책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이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협으로 느끼는 러시아·중국과의 연대를 한층 강화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김 위원장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분야를 중심으로 경제, 문화 등 다방면적인 협력에 합의한 뒤 앞서 두차례 실패했던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기도 했다. 아직 최고위급까지는 아니지만 중국과도 고위급 회담을 이어가며 핵 및 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를 거부하는 우호세력이자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국가로서 도움을 받고 있다.

그와 반대로 북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는 미국과 일본, 이에 협력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핵협의그룹'(NCG) 가동과 핵전략자산의 준 상시배치, '침략적 성격이 명백한 대규모 핵전쟁 합동군사연습'을 벌이는 '실제적인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해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한미일 협력에 앞장서는 한국에 대해서는 연초부터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대한민국》', '괴뢰'라는 '조롱'과 '비아냥'섞인 표현으로 호칭하며 일찌감치 선을 긋고 있다. 

2021년 벽두에 열린 당 제8차대회에서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밝힌 북한은 장기전 성격의 '정면돌파전'을 결심한 뒤 연초에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미·대남 투쟁원칙'을 천명하면서 이같은 기조를 3년째 심화, 확대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연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이미 "우리의 핵무력은 전쟁억제와 평화안정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시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며 핵교리를 명시적으로 변경했다. 또 "남조선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 현 상황은 전술핵무기 다량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나라의 핵탄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남측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했다.

연초부터 예사롭지 않은 군사적 긴장 고조를 예고한 것이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우리의 구상과 결심대로, 우리가 정한 시간표대로'...장·중·단기 종합 발전계획

2023년 제8기 제6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 제시 과업과 수행결과 [출처-통일연구원]
2023년 제8기 제6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 제시 과업과 수행결과 [출처-통일연구원]

북은 제6차 전원회의에서 2023년 한해 국가사업의 총적 방향을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기 위한 전인민적인 투쟁을 더욱 확대발전시켜 5개년계획완수의 결정적 담보를 구축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압축하면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 수행의 결정적 담보를 구축'하여 '위대한 전환의 해, 변혁의 해로 만들자'는 것을 국가사업의 목표로 정한 것이다. 

인민경제 각 부문에서 12개 중요목표를 정해 무조건 점령하고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정비보강 계획을 기본적으로 끝내는 것을 경제사업의 중심과업으로 강조했다. △알곡 △전력 △석탄 △압연강재 △유색금속 △질소비료△세멘트 △통나무 △천 △수산물 △살림집 △철도화물수송량 등 2023년에 무조건 점령해야할 12개 중요고지를 점령해야만 8차 당대회 이후 3년차에 접어든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도약을 이룰 수 있고 국가경제의 안정적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실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2023년에 단기적으로 인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제적 변화를 달성하면서도 생산력 하락을 막고 내구력을 키우기 위한 중기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정비보강 계획도 기본적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인데, 이들 중·단기 목표의 지향점은 203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 강국건설에 도달하려는 중장기 전략 수행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구상인 셈이다.

실제 도달 가능한 계획일까?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8월 겨레하나 평화포럼 발표에서 "북한이 장기적 성장과 발전의 토대가 되어야 할 역량과 자원을 당장의 성과를 위해 소모적으로 '당겨쓰는' 현상을 질타하는 등 장기적 성장을 막을 수 있는 '단기와 장기의 상충관계'라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주목한다"며, "과제는 산적해 있고 해야 될 일들은 많으며, 정책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핵심은 인적 및 물적 역량이 얼마나 빠르게 이를 충족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짚었다.

특히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새시대 농촌혁명강령 실현'이라는 안건을 중심으로 당 제7차 전원회의가 개최되어 눈길을 끌었다. 농업문제 단일 안건으로 당 전원회의가 개최되자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외부의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그보다는 12개 중요고지의 첫번째 고지인 알곡생산목표 점령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농업부문이 자체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당, 전국, 전민이 총동원되어 올해 알곡생산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으로 제시됐다.

△5개년계획 기간에 이상기후현상에 대비하기 위한 관개체계 완비 △기계공업부문과 농업부문에서 농기계부문을 혁신적으로 개건 △간석지 개간과 경지면적 확대 △농업과학기술발전 수준 고양 등 농업발전 목표와 과제가 제시되었고, 이후 △황주긴등 물길공사와 청천강-평남관개물길공사, 강령호 담수화 공사 완공 △많은 영농물자와 농기계 보장 등 성과를 거두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구체적인 북 내부 상황과 관련해 국내 곡물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세계식량계획(WFP)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하는 북한의 연간 식량총수용량 550만톤에 비해 여전히 75만~85만톤의 식량이 부족하여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 쌀 가격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되고 환율 변동폭도 그다지 크지 않아 식량난으로 비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비현실적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또 제재 장기화와 오랜 국경봉쇄, 코로나 등 재해로 인해 산업연관이 퇴행하는 등 경제위기 또는 성장 한계를 점치는 견해에 대해서도, 체질화된 자력갱생에 과학기술이 접목되고 중·러 등 우호적 대외관계 환경으로 인해 그다지 심각하게 볼 일은 아니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북한은 주요 정책집행 상황을 중간 점검하기 위해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소집된 당 제8차전원회의도 정해진 목표와 과제를 무조건 수행하는 엄격한 규울확립과 경제의 자립적 토대를 구축하는 사업에서 미진함이 있다는 지적을 통해 인민경제 각 부문의 분위기를 일신했다.

새로운 군중동원 방식으로 '전인민적 애국운동 중시사상'이 제시되면서 △사회주의애국탄증산운동 △전 사회적 원군 및 탄원열품 △애국미헌납운동 △애국적기금운동 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를 통해 여성들의 역할을 부각한 것도 이 무렵이다.

오직 자체의 힘으로..

북한의 대표적인 시멘트생산공장인 순천세멘트연합기업소. '1호 크링카분쇄기 주감속기대' 보수를 정비보강사업의 주된 과제로 달성한 뒤 소성로와 크링카분쇄기를 '만가동'(완전가동)하여 지난 수십년 기간 동안 하루 최고생산 실적을 기록해, 전년 동기대비 수천톤의 시멘트를 더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의 대표적인 시멘트생산공장인 순천세멘트연합기업소. '1호 크링카분쇄기 주감속기대' 보수를 정비보강사업의 주된 과제로 달성한 뒤 소성로와 크링카분쇄기를 '만가동'(완전가동)하여 지난 수십년 기간 동안 하루 최고생산 실적을 기록해, 전년 동기대비 수천톤의 시멘트를 더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이달 하순 당 전원회의 소집을 예고한 북한은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노동신문]은 12월 20일자에서 "새로운 5개년 계획 수행의 결정적 담보를 구축하기 위한 올해의 투쟁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였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오직 자체의 힘으로 걸음걸음 부닥치는 난국을 결연히 타개하며 우리 당의 구상과 결심대로, 우리 당이 정한 시간표대로 새시대에로의 진군을 가속화하여왔다"는 자평을 내놓았다.

△12월 18일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포-18'형 발사 △첫 정찰위성 '만리경-1'호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 등 핵무력 강화와 함께 △무연탄을 이용한 고품질 마그네샤클링커 생산 성공 △평양시 강동지구 종합 축산농장 건설 △평강군민발전소와 세포군민발전소 등 성과를 열거하면서 '그 어떤 요행수나 외부의 도움이 아니라 오직 자체의 힘으로' 이룬 성과임을 내세웠다.

11월 19일자 [노동신문]은 12개 중요고지에서 새로운 생산공정을 세우거나 약한 고리를 착실히 보강하면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하는 성과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립경제의 쌍기둥이라 부르는 금속부문과 화학공업부문에서는 △김책제철연합기업소(김철)에 건설된 '새형의 에네르기(에너지)절약형 산소열법 용광로' △무산광산연합기업소에서 김철까지 연결된 대형장거리정광수송관 △황해제철연합기업소(황철)에 건설된 '새로운 중주파 유도로(교류의 유도작용을 이용해 금속을 녹이는 전기로)' △12월5일청년광산의 '결정망초생산공정' 확립이 주요 성과로 소개됐다.

전력공업부문에서는 △화력발전소의 터빈날개 교체와 공기예열기함 교체 및 보수를, 수력발전소에서는 △발전설비 보수와 퇴적물 준첩 △발전소운용 효율 증대 등을 통해 올해 정비보강 목표를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건설건재공업부문에서 천내리세멘트공장의 크링카 냉각설비와 고온공기연소기술에 의한 내화벽돌 생산공정, 대안친선유리공장의 자동차시창유리생산공정 생산능력 확대 등이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었고, 기계공업과 철도운수, 채취공업, 임업, 경공업부문을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정비보강 성과들이 연이어 이룩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자체 역량과 한계를 모두 확인한 바탕위에 선 '자령갱생'의 힘이 있고 북한에 우호적인 대외 환경의 변화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필요한 시급한 문제들은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2025년까지 정책을 잘 추진하고 나면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 생산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와 계획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 즉 제재완화, 교류협력 등도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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