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58년 개띠 노동자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분노하면서도 낙심하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는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진전한 데 따른 역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힘인 듯하지만 사실은 몰락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시작되었으나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고, 낡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으려고 완강히 버티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에 쐐기를 박고,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나가야 합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삶이 존중받을 때 세상은 제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일을 위해 신돌석씨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들이 모여서 반드시 역사가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고 전진해 갈 거라고 확신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응원과 질책을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3. 9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고 잤다. 패트병 커다란 것 두 개를 샀는데, 모자라서 하나를 더 사왔다. 평소 같으면 아내가 질색했을 텐데 어제는 그냥 모른 척했다. 그리고는 아내도 주량을 훨씬 넘어서도록 마셨다. 오랜만에 둘이 여행을 온 것도 그렇고, 어제 야구를 이긴 것도 술이 당기게 하였던 것 같다. 젊은 날 같으면 밤을 새기도 했을 텐데 역시 나이는 못 속였다. 1시가 넘어서자 졸음이 쏟아져서 잠이 들고 말았다.

5시쯤 깼다. 신돌석씨에게 요즘 일상적인 일이다.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에 꼭 한 번씩 깬다. 소변이 마려워서다. 그리고는 잠이 안 올 때도 있고, 다시 잘 때도 있다. 다시 자도 7시를 넘기지 않고 깬다. 그러다 보니 피곤이 쉬이 가시지를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은 거의 그런 것 같았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걱정해야 무엇하겠는가?

뒤척이는 소리 때문인지 아내도 깼다. 신돌석씨더러 온천욕을 하고 오란다. 아내는 며칠 전에 다친 데가 있어서 온천욕을 할 수 없었다. 이곳은 이전에 그 유명했던 유성온천이 있는 곳이다. 유성은 이제 대전광역시 유성구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이 호텔 2층에 온천욕을 할 수 있는 사우나가 있다. 사우나를 간 지 꽤 오래 되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첫 해에 간 사우나가 마지막인 듯하다.

공사를 해서 집에서 자기가 어려워 아내와 함께 갔는데 며칠 뒤 바로 그 사우나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식겁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는 사우나에 가지 않았다. 이발도 사우나에서 하다가 이발소를 찾아가서 하게 되었다. 이제는 자유롭게 사우나도 할 수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아내에게 좀더 자라고 하고 2층에 있는 사우나로 갔다. 호텔 외부에서도 손님이 많이 들어오는 듯하였다.

온천욕 하니 결혼식 하던 날이 생각난다. 동거 시작하고 7년쯤 지났을 때 이제 결혼식을 올리라는 주위의 권고가 있었다. 1990년 말부터 수배를 당하고, 잡혀서 잠깐이지만 징역도 살고 나왔으니 이제 결혼식을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사람들이 권유하였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 늦게까지 뒤풀이를 했다. 그때만 해도 신랑 발바닥 때리는 것이 혼례 뒤 뒤풀이에서 꼭 해야 할 의식처럼 여겨졌다.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장난기가 심한 사람이 있으면 신랑은 그날 아주 초죽음이 되기도 하였다. 결혼식 피로연에 왔던 사람들은 주로 당시 같이 노조를 만들었던 사람들, 같은 조직에 속했던 사람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등이었다. 노조를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은 노조가 깨지면서 이리저리 흩어져서 몇 명 남지 않았다. 그 뒤 그 사업장에 다시 노조가 재건되었지만 이전에 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비합법 비공개 조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모르다가 조직이 깨지고 나서 오히려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 뒤 이리저리 엮이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많지만 같은 지역이 아니면 대부분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학생 출신들이 많았고 그들 사이에는 학연과 징역 인연이라는 끈끈함이 있어서 신돌석씨와 가까워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같은 조직이면서 같은 지역인 사람들은 그래도 가까운 편이었다.

역시 가장 친한 사람들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해고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내도 같은 지역에서 핵고되었기 때문에 아내의 하객과 겹쳤다. 이들이 결혼식에 제일 많이 왔고, 뒤풀이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이들 중 절반은 노동자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학생출신이었다. 지금은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우습지만 당시만 해도 둘 사이는 엄격한 차이가 있었다. 대학을 나왔느냐 아니냐, 학생운동을 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보면 되었다.

노동자 출신들은 대체로 운동이란 걸 처음 해봤고 서로 알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나서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나서기 시작하면 과격한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간단한 폐백 뒤에 뒤풀이를 하는 식당에 갔다. 가자마자 신돌석씨는 양발이 묶인 채 발바닥을 맞기 시작했다. 아내는 새색시가 아닌 신부답게 그러건 말건 한쪽 자리로 가서 같은 직장 출신의 해고자들과 술을 마셨다.

아내가 그럴수록 발바닥을 치는 사람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세게 쳐댔다. 아내 자리를 향해 신부 어디 갔냐고 고함을 지르며 마구 쳤다. 신돌석씨는 처음에는 아파도 참으면서 곧 끝나겠지 했는데 계속되자 은근히 화가 났다. 때리는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아내한테도 언짢아졌다. 아무리 헌 신부라도 그렇지 신랑이 이렇게 두들겨 맞는데도 술만 마신단 말인가? 그러다가 그 화마저 가라앉으며 거의 발바닥에 감각이 없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그때였다. 저쪽 한구석에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상을 뒤엎었다. 야 이 새끼들아 즐겁자고 하는 자리에서 이게 뭔 짓이여. 아내의 고함에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아내가 벌떡 일어나서 신돌석씨에게 다가왔다. 때리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아내가 묶인 발을 풀기 시작했다. 발바닥을 맞으면 정력에 좋을텐디. 때리던 사람 중 하나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묶인 발을 풀고 있던 아내가 그쪽을 향해 노려 보았다.

우리는 첫날밤도 아니고 애가 둘씩 있으니 그깟 정력 필요없은께 정 필요하믄 니들끼리 치더라고. 아내는그렇게 한마디 한 뒤 묶인 발을 마저 다 풀고 비틀거리는 신돌석씨를 끌고 나갔다. 나가면서 신돌석씨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화상아 그런다고 그걸 그냥 맞고만 있냐. 도대체 언제 철들래. 허긴 그랬다. 아내는 그때 이미 철이 들었고 신돌석씨는 아니었다. 그 길로 달려간 곳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었다. 예정에 없던 신혼여행을 간 것이다.

저녁 8시가 조금 안 되었다. 마지막 차가 온양행이었다. 그래서 온양으로 신혼여행인지 구혼여행인지를 갔고 난생처음 온천욕이란 걸 해봤다. 다음날 백마강도 가고 갑사도 갔다. 동학사까지 넘어가려했는데 비가 와서 포기했다. 신돌석씨로서는 의미있는 여행이었는데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나이에 온양으로 신혼여행 가는 사람도 다 있냐고 하였다. 그때는 노동자도 대부분 제주도로 갔다. 아니면 설악산이었다.

얼마 뒤부터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었지만 해외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돈이 있어야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신혼여행이라면 너도 나도 해외로 갔다. 코로나 때문에 주춤해지기 전까지 그랬다. 신돌석씨는 왜 온양으로 신혼여행을 갔냐는 말을 들으면 자세히 설명하기 싫어서 그냥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때는 그랬을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우나에서 온천욕을 끝내고 방으로 올라갔다. 아내가 일어나 있었다. 2층 사우나 건너편에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이 있었다. 거기로 가자고 했다. 힘찬이가 점심 때 보자고 했었다. 아침은 일단 둘이서 해결해야 했다. 식당에 가니 우거지사골해장국이 있었다. 구 천원이었다. 가성비가 괜찮았다. 호텔은 물론이려니와 요즘 만원 아래 식사는 찾으려야 찾기가 어려운데 여기서 구천 원짜리를 본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다시 올라가서 쉬고 있는데 힘찬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자기가 점심에는 어려울 것 같단다. 저녁식사를 대접하겠으니 그 동안 대전 시내 구경을 하시란다. 그러면서 추천한 곳이 엑스포 타워였다. 대전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카페가 있단다. 거기 고급호텔이 있는데 그리로 못 모셔서 죄송하단다. 그 옆에는 같은 그룹인 백화점이 있는데 두 군데만 들러도 많이 보실 거란다.

자꾸 미루니 좀 짜증이 났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냥 올라가겠다고 하려는 것을 아내가 말렸다. 이럴 때는 엄마가 아빠보다 자식의 마음을 확실히 느긋하게 다루어준다. 힘찬이가 어린 시절 용돈을 받아서 쓸 때도 엄마는 잊어버리는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빠한테 주라고 했는데 신돌석씨는 번번이 때를 놓쳤다. 부성애보다는 확실히 모성애가 진한 것이다. 동물 중에는 부성애가 아예 없는 종도 많이 있단다. 물론 인간을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

좀더 쉬다가 점심 가까운 시간에 백화점에 갔다. 신돌석씨는 백화점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가봤자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가격이 기가 막혔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비싼 가격으로 유지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신돌석씨가 사는 도시에도 커다란 백화점 둘이 나란히 있는데 신돌석씨가 아는 사람들은 거기를 애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쇼핑몰, 아울렛 등에 가곤 했는데 그런 데들은 대기업이 진출하면 거의 문을 닫거나 한산해지곤 하였다.

식사를 하려고 백화점 지하 푸드코너에 갔다. 아내가 간단히 먹자면서 어묵을 사먹잔다. 그런데 어묵 다섯 개에 하나 더 추가했는데 18100원이나 했다. 일단 산다고 받아 놓은 것을 계산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침에 먹은 우거지사골해장국보다 더 비쌌다. 그런데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어묵을 사들고 자리가 없어서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떤 여자가 자기네가 세 자리를 잡아 놓았으니 한 자리를 쓰란다. 고마운 사람이다.

아내가 어묵만으로 요기가 되겠냐고 하면서 김밥 두 줄과 오뎅국을 더 사왔다. 각각 6천 원과 3천 원이었다. 백화점 15층인가에 있는 식당가를 가려고 하다가 돈을 아낀다고 지하 푸드코너로 온 것인데 이건 뭐 바가지를 쓴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무엇을 사러 온 사람들일까? 아니면 백화점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일까?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식사를 마치고 엑스포 타워를 찾아가는데 검색을 해보니 백화점과 연결되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백화점 6층에 가니 영화관이 있다. 거기서 아무리 찾아도 엑스포 타워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안내소에서 물으니 여기서 가는 길은 없고 내려가서 다른 길로 가야 한단다. 좀 황당했지만 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헤매게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도 상술인가? 아니면 미숙함 때문에 그런 것인가?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알바를 하는 듯한 젊은이에게 물으니 여기서 통하는 길은 없고 6층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이건 뭐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났지만 그 친구한테 항의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백화점 입구로 나와서 젊은 여직원이 있어서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문밖으로 나가는 방법과 통로를 따라 죽 가서 좌회전한 뒤 우회전하면 바로 앞으로 나온단다. 어쨌든 이 건물과 같은 건물은 아니었다.

여직원이 말한 대로 나가 보니 엑스포 타워가 있는 호텔 건물 앞으로 나왔다. 애당초 두 건물이 주차장이 다른 데 있었다. 차를 몰고 와서 네비가 가르쳐 준 곳이 이상해서 백화점 주차장으로 들어간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39층짜리 호텔 건물 앞에 섰다. 인터넷에서 이 건물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는 카페가 있다고 들었다. 백화점과 카페는 한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신돌석씨는 평소에 그 카페를 가지 않으려 애를 쓰는 곳이다.

원래 미국 카페로 아메리카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그림을 상징으로 쓴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것을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인수하였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볼 수 있는 카페다. 게다가 그 회장이란 자가 좀 건방진 데가 있어서 비호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카페는 넓고 커피맛도 괜찮다. 물론 커피 애호가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가장 일찍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안 찾을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9층에 갔더니 카페가 아니었다. 파스타점이 있었다. 다시 안내판을 보니 38층이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왼쪽으로 공간이 있었는데, 유리창으로 바깥을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의자들이 죽 놓여 있었다. 전망대라고 씌어 있었다.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어서 앉을 곳이 없었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옮겨 가면서 바깥 구경을 하였다.

대전 시내도 아파트 천지다. 바로 밑에는 강이 흐른다. 작은 강인데 하천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바로 그 하천 건너편에 KBS가 보이고, 과학 단지들이 보인다. 원래 있던 곳도 있는 것 같고, 지금 한창 공사중인 곳도 있다. 누가 설명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기능은 없는 것 같다. 거기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니 카페가 있었다. 여기도 전체가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그 앞에 자리들이 있고, 안쪽으로도 자리가 있었다.

마침 창쪽에 자리가 생겨서 앉앗다. 1인시위해서 수고한다고 어떤 어르신이 카톡으로 선물을 보낸 것이 있었다. 커피 두 잔과 카스테라 두 개였다. 그걸 시켜서 받은 뒤 창밖을 보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른쪽에는 4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혼자서 창밖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왼쪽으로는 젊은 여자들 넷이 와서 수다를 떨었다. 그 옆으로는 연인인 듯한 남녀가 있었다.

3시쯤 되어서 힘찬이가 왔다. 여기 조금 더 있다가 자기가 대전 시내 구경시켜 드리고 맛있는 저녁을 사드리겠단다. 됐다고 너무 늦기 전에 그냥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기가 서운해서 안 된단다. 하루 더 묵고 가시란다. 아내는 벌써 힘찬이의 말에 기울어져 있다. 신돌석씨도 못 이기는 척하고 그러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힘찬이가 자기가 사는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약간 서운하기는 하였다.

힘찬이에게 여기가 대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냐고 물으니, 번화한 것까지는 아닌데 가장 핫한 곳일 수는 있다고 하였다. 이어지는 힘찬이의 말에 신돌석씨는 화들짝 놀랐다. 어제부터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맗하지 않는가. 자기는 아빠를 존경한단다. 하지만 아빠가 하는 일이 얼마나 현실과 부합하는지는 회의가 든단다. 거대한 공룡인 재벌이 개미들을 놓아 먹이고 있는데, 그 개미들은 이제 더 이상 합창을 하지 않는단다.

개미들은 각자도생하는 것에 만족하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여기도 그 중 하나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는 재벌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가 수도 없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놀 때까지 놀아보는 것이 개미들의 삶이다. 그러다가 줄줄이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데도 당장은 그것을 좋아한단다. 공룡과 개미의 실체를 모르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힘찬이의 말이었다.

공룡과 개미라. 개미가 더 이상 합창을 하지 않을까. 신돌석씨는 그 개미들에 대해, 개미들의 놀이터에 대해 좀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돌석씨가 처음 노동운동을 했을 때는 이런 데 오는 사람들을 부르주아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합창할 수 있는 조건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일까? 신돌석씨는 힘찬이가 안내하는 대로 저녁식사를 하러 가면서 숙제 하나가 주어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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