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 밀착에 쐐기를 박기 위해 싸움을 붙이는 고단위 술책

 

미중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와중에 바이든 정권이 느닷없이 화해의 손짓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6월 18-19일, 블링컨 국무장관이 방중하고 중국측 외교 실세들과 시 주석을 차례로 만났다. 트럼프에 의해 미중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나, 그의 뒤를 이은 바이든은 미중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갔다. 5년 만에 미중 외교수장이 만나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말자는 데에 일단 합의했다. 콧대 높은 미국이 중국에 대화를 간청하게 된 배경에는 다방면에 걸쳐 중국에 가한 전방위 제재 압박에 되레 미국이 역풍을 맞아 신음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돼서다.

이번에 양측이 합의한 핵심 내용은 ∆고위급 대화 재개,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양국 간 경제 교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북한 문제가 블링컨에 의해 제기됐다는 것이다. 미 국무는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해 북한이 핵 미사일 발사에서 벗어나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도록 하라는 주문이다. 이에 대해 중국측은 각자 책임을 다하는 게 순서라고 응수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6/20)에서 “각국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할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고 해서 북한의 우려와 미국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지적, 강조했다.

블링컨도 대북 압박과 관련해 중국의 약속은 없었다고 CBS에 출연해(6/19) 밝혔다. ‘공은 평양에 가있다’는 대북제안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은지가 3년째다. 무슨 매력적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진 않고 무작정 대화타령만 하고 있다. 이것은 문제를 풀자는 게 아니라 선전선동 홍보로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호도하려는 비열한 잔꾀라고 해야 맞다. 북한에 수용이 불가능한 제의를 해놓고 대화타령을 해대기는 윤석열 정권도 마찬가지다.

블링컨은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한미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방어 자산 배치와 군사연습 같은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실토했다. 이것은 북한 핑계를 대고 온갖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걸 정당화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전형적 실례라 하겠다. 그 대표적 예가 성주 사드 기지다. 이어서 그는 그런 조치들이 중국을 향한 건 아니지만, 중국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슬쩍 교묘한 말장난 잔꾀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 결사 저지에도 윤 정권은 지상 최대 규모의 한미, 한미일 다국적 군사훈련을 시도 때도 없이 벌였고, 벌이려 한다.

북한을 빙자한 다국적 군사훈련, 최첨단 무기 반입, 전략자산 전개라지만, 중러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안보 우려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신중히 고려돼야 한다. 나토 동진 확장과 러시아 안보가 충돌해 우크라이나 미러 대리전이 벌어진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제2 우크라이나전이 재연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중러가 지역의 안정과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며 합동대응을 펼칠 가능성을 절대 배제할 수 없는 없다는 점을 재강조하고 싶다. 더구나 나토 주술에 걸린 젤렌스키와 한미동맹 주술에 걸린 윤석열이 너무나 빼닮아서 전쟁 우려를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매번 북핵 타결 최종 순간에 깨버리는 고약한 버릇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 자기가 판을 뒤엎고는 북한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놀라운 기술에 현혹돼 북한이 문제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합의 선언을 ’행동 대 행동’(단계적 동시적) 원칙에 의거해 이행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 그런데 늘상 미국은 북한이 뭔가를 숨긴다며 불신하고 약속 위반을 식은 죽 먹듯이 해대는 게 진짜 문제다.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을 예로 들자. 이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남북미 3국 실무진이 2019년 스톡홀름 별장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하노이 북미선언’ 초안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웬걸, 트럼프가 볼턴을 시켜 선비핵화를 요구하는 노란봉투를 내밀고 그만 판을 엎어버렸다. 그리고는 트럼프가 도망가듯 쏜살같이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제외교 관례에 따라 준비된 초안에 북미 두 정상이 서명을 하고 월남정부가 마련한 만찬에서 북미 정상이 축배를 들면 역사적 하노이 회담이 끝나게 돼있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판을 깨리라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는 18년 ‘북미선언’ 정면 위반인 동시에 선언 자체를 깡그리 부정한 비열한 작태다. 3국 회담 준비팀이 빚어낸 선언에 서명을 거부한 트럼프는 쫓기는 듯이 줄행랑치고 말았다. 이런 무뢰한 외교참사는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핵 관계 정상화 전과정을 ‘버라이어티 쇼’라는 연극으로 승화시켜 재선전략에 활용하는 공작을 남몰래 꾸민 것으로 믿어진다. 바꿔 말해, 선언 이행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재선용 선전물 제작에 혼신을 다했을 뿐이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우리 속담에 정확하게 비유가 된다. 트럼프는 이 ‘쇼’에 문-김 두 정상을 등용해 최대한 이용했고, 남북 두 정상은 처절하게 모욕만 당한 꼴이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북측은 ‘비핵화란 영원히 물건너 갔다’며 비핵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이에 반해, 문 대통령은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미국 눈치만 보다가 임기를 끝내고 말았으니 얼마나 무능 무기력한가를 짐작케 한다. 트럼프 뒤를 이은 바이든이 비핵화 관계 정상화에 티끌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하노이 회담을 결렬시킨 전임자를 대신해 최소한 유감이나 사과를 하는 게 대국 지도자로서의 도리이고 예의인데, 사과는커녕 지상 최대의 무력시위로 대북적대정책 수위를 최고조로 상승시키고 있다. 당연히 제시돼야 할 새로운 대북정책이라는 것도 반년이 지나서야 내놨다. 융통성 있고 합리적이라는 소리만 요란했지, 세상에 공개는 않고 평양에만 전달한 걸로 보인다.

블링컨 국무가 “공은 평양에 가있다’고만 말했지, 그놈의 공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길이 없다. 북측이 일체 대응 않고 수용하지 않는 걸로 봐서 ‘싱가포르 선언’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안이 분명한 것 같다. 이번 블링컨의 ‘영향력 행사’ 발언 속에는 미국이 북미 대화에 관심이 있는 듯이 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 또, 언젠가는 핵 미사일 책임을 중국에 묻겠다는 신호라 볼 수 있다. ‘영향력’ 발언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할 점은 북중 밀착에 쐐기를 박자는 술책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북중을 갈라 쳐 서로 분열 반목해 싸우게 하려는 계략일 수 있다. 이건 미국의 주특기라서다.

북한이 중국에 예속된 위성국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은 비단 블링컨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미국 지배계층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이들은 미국이 윤 정권을 좌지우지하듯 중국도 평양을 제멋대로 요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당당한 핵보유 주권국가로 어느 대국과도 합동훈련을 않고 비동맹 자주 노선의 길을 걸으며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긍지 높은 나라라는 걸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존엄과 자부심이 강한 북한이 속국으로 취급되는 것에 대해 펄쩍 뛰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즉각 북한 외무성의 한 관리는 블링컨의 발언을 맹비난 공격하고 나섰다.

블링컨 미 국무의 방중은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미국이 가장 희망했던 미중 양국 간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군사적 소통 창구 개설의 꿈이 무산됐다. 지난 6월 19일, CBS와 AP통신은 중국이 호응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건 미국의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대중국 전방위 압박에 대한 중국의 항의의 표시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블링컨의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와 대만 독립 반대 발언으로는 중국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마 결정적 요인은 대만 주변에서 벌이는 다양한 미 군사활동과 첨단무기 반입이라고 보인다.

미국이 대만 문제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는 게 중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제 코가 닷 자나 빠진 주제에 제집을 먼저 닥달하는 게 우선순위가 돼야 하는 데, 세계를 갈라 쳐 줄세우기를 하고 전쟁 조장에 광분하고 있다는 게 북중러의 일치된 견해인 것 같다. 6월 21일, 평양의 정영학 국제평론가는 ‘도발자의 수치스러운 구걸행각’ 제하의 논평에서 “중국을 압박하던 미국이 되레 역풍을 맞아 치명타를 입고, 초조 불안하던 블링컨 미 국무가 황급히 방중길에 올랐다”고 했다. 어렵사리 블링컨 국무의 방중으로 대화 물꼬를 텄으나 다음날 바이든이 사고를 쳐서 소동이 났다.

시진핑 주석을 ‘독재자’라 표현해 중국이 펄쩍뛰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 일극체계는 가버렸고 지금은 공생공존, 상부상조 정신으로 세계 평화 번영을 추구하는 ’다극화 시대’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바이든은 아직도 미국이 국제헌병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죽고 죽이는 서부활극시대를, 밖에서는 편을 갈라 전쟁과 경제제재로 전세계를 기아와 공포에 떨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바이든이라면서 전 세계가 성토하고 있다. 진정 미국이 철지난 패권적 흉심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세계 평화 번영을 위해 정도를 걷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까!

 

 

이흥노 / 재미동포,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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