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남과 북, 해외에 ‘민족미술공모전’을 제안한다

제1회 ‘코리아통일미술전’에서 만난 최계근(북, 왼쪽) 김용태(남, 중앙) 홍영우(해외, 오른쪽), 1993년 10월, 동경 긴자. 왼쪽 끝에 걸린 한라산 밑에 피난하는 제주민을 그린 유화가 제주도 강요배 화백의 『한라산』 작품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제1회 ‘코리아통일미술전’에서 만난 최계근(북, 왼쪽) 김용태(남, 중앙) 홍영우(해외, 오른쪽), 1993년 10월, 동경 긴자. 왼쪽 끝에 걸린 한라산 밑에 피난하는 제주민을 그린 유화가 제주도 강요배 화백의 『한라산』 작품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민족사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한국(남)과 조선(북)이 대치 및 공존하는 남⸱북국시대이다. 지금 중국의 동북 3성이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어도 그곳의 현대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발해의 옛 미술은 신라나 백제의 옛 미술과 함께 지금 우리 민족미술사의 본류에 속한다.

즉 현대 남과 북의 미술은 통일의 미래에 현재 분단시대의 미술사를 논할 때 우리 미술사의 본류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우리 시대를 판단하는 시대정신이다. 이에 나는 미래의 문화예술세대를 위하여 분단된 남과 북이 함께하는 ‘민족미술공모전’을 제안한다.

1. 통일운동이 아닌 평화운동

일제 식민지시기에 독립운동이란 단어가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에서 통일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통일운동이란 단어 자체를 거부한다. 극우는 극우대로 극좌는 극좌대로 말하는 통일과 운동의 의미는 다르다. 나는 통일운동을 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나의 삶 자체를 평화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가득하게 하려 한다.

내가 사는 제주도는 ‘통일의 섬’이 아니라 ‘평화의 섬’이다. 통일운동은 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려 한다. 그러나 평화는 모든 충돌을 거부한다. 평화는 화해이며 상생적 공존을 의미한다. 상생적 공존을 위하여 남북 간의 교류와 교역이 필요하며 상호 간에 적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평화를 기반으로 한 화해와 교류 및 교역, 상생적 공존을 추구하면 결국에 남과 북은 화합하게 되어 있다. 최선의 화합이 곧 통일이다.

2. 평화운동의 첫걸음

평화운동의 첫걸음은 민족 감성의 공통성을 찾는 일이다. 남과 북은 오랫동안 떨어져 각기 변화하여 왔으므로 다른 점도 많다. 그러나 역사가 같고 언어가 같으며 음식과 풍습이 같다. 일부 사고방식의 차이는 극복이 가능하다.

나는 남북문화예술의 교류를 통하여 민족 감성의 공통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남북이 분단된 지난 78년의 역사는 짧지만, 우리 민족이 함께한 지난 5,000년의 역사는 훨씬 더 길다. 나는 지난 30여 년 이상이나 남⸱북의 현대미술을 보아왔다. 이외에도 중국이나 일본의 미술과 미주나 유럽의 현대미술도 보아왔다.

남과 북의 미술에 흐르는 공통적인 민족 감성은 분명하게 살아 있다. 이러한 한국미술과 조선미술이 각기 갖고있는 시대적 장단점을 간파하여야 한다. 각기의 장점을 살리고 각기의 단점을 고쳐서 세계의 미술시장에 함께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세계는 남과 북의 미술을 크게 주목할 것이다.

3. 남과 북의 미술은 세계로 함께

『쇠장』, 재일본 조선화가 인민예술가 홍영우 화백의 작품. 나는 2005년에 홍영우⸱고삼권 화백의 2인전을 서울과 제주에서 진행하도록 주선한 바 있다. 이제는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셨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쇠장』, 재일본 조선화가 인민예술가 홍영우 화백의 작품. 나는 2005년에 홍영우⸱고삼권 화백의 2인전을 서울과 제주에서 진행하도록 주선한 바 있다. 이제는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셨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남과 북의 미술은 세계로 함께 나가자. 나는 그 일차적 방법론으로 남과 북에, 그리고 해외동포들에게 ‘민족미술공모전’을 제안한다. 평화와 민족사, 사람 사는 모습을 주제로 한 비정치적인 작품을 공모하자. 대상도 주고 우수상도 주며 입선도 시키자. 아니 정치성이 있는 작품을 출품해도 좋다. 작품의 감상과 호응도는 관람자에게 맡기자. 해외의 미술계는 정치성 있는 작품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

이 공모전의 시작점이 꼭 남측이나 북측이 아니어도 좋다. 중국이나 유럽이라도 좋고, 백두산 아래 첫 동네 삼지연시라도 좋고,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서귀포시라도 좋다. 북에서도 남에서도, 필요하다면 해외에서도 입선작을 함께 전시하자. 이로써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 민족화합을 향한 민족적 외침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하자. 국제 정치권에서는 한반도 냉전을 강요해도 우리 시민들의 염원은 탈냉전임을 예술작품으로 선언하자. 이에 나는 뉴욕 UN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생각한 바도 있다.

4.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가들은 교류하여야!

『DMZ』, 김용태. 현재 이 작품의 원작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세계를 돌다가 어디에 틀어박혔는지…? 사진으로 만 남아 있는 이 작품을 작고하시기 전 해에 판화 소품으로 되살려냈다. 100부를 찍었는데, 정작 서명한 것은 몇 점 안 된다. 작고하신 후에 11/100을 내가 구매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DMZ』, 김용태. 현재 이 작품의 원작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세계를 돌다가 어디에 틀어박혔는지…? 사진으로 만 남아 있는 이 작품을 작고하시기 전 해에 판화 소품으로 되살려냈다. 100부를 찍었는데, 정작 서명한 것은 몇 점 안 된다. 작고하신 후에 11/100을 내가 구매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남과 북,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가들은 교류하여야 한다. 미술 음악 연극 및 영화 무용 문학 체육 등, 각 분야에서 교류하여야 한다. 다름을 확인하기 위한 단편적 교류가 아니라, 같음을 찾아내고 함께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한 무한 교류가 필요하다. 상호간의 직접적 교류가 불가능하다면, 세계의 어느 한구석을 빌려서라도 간접적 교류라도 추진하여야 한다.

이러한 문화예술가들의 교류는 기업인들의 교역으로까지 확대하여야 한다. 합작이나 합영기업도 만들고 자원 수입도 추진하고 지역 개발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통탄스럽게도 그 절호의 기회를 우유부단하게 흘려 버렸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는 다시 미국과 일본에 멱살 잡혀 있다. 그것을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풀어 나갈 수 있다.

필자의 이 제안은 1993년 동경과 오사카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코리아통일미술전을 뛰어넘는 제안이다. 실현이 어렵더라도 이 냉엄한 신냉전의 시기에 이러한 제안의 음성이 나오는 것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겨울일수록 따사로운 봄볕이 그리운 법이다.

5. 맺음말

『백두산』, 최계근, 조선화, 1999년. 최계근은 북의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백두산』, 최계근, 조선화, 1999년. 최계근은 북의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나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동포와의 문화교류를 위하여 경기도 파주시나 강원도 고성군의 DMZ에 ‘한민족 디아스포라 공원’이 세워지고, 거기에 추모공원과 전시장을 포함한 컨벤션 센터가 세워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수구 정부가 들어서고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하여 그 희망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를 위하여 ‘평화의 섬’ 제주가 이러한 평화지대(Peace Zone)가 되기를 희망한다. 제주가 평화운동의 성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제주도의 문화예술계가, 우선하여 미술계가 확장적으로 변혁하여야 한다. 지금의 제주도 상황으로는 어림없는 변혁의 추진이다.

그러나 제주에 평화주의를 신봉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늘어난다면, 문화예술계의 변혁은 이루어 진다고 본다. 나는 민간에서의 점진적인 한반도평화운동이 급진적인 남북통일운동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날이 온다고 믿는다.

6. 붙임 말

제주 4.3을 소재로 한 오페라 ‘순이 삼촌’을 유튜브에서 연거푸 세 번을 본 해외 출신의 어느 제주도민 성악가는 “제주도 성악가들의 가창 수준이 이제는 매우 높아져 있다. 안중근의 ‘영웅’처럼 오페라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에 나는 “미술도 뛰어난 화가들이 많다”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이들 문화예술인을 효율적으로 묶어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묶어 세우는 것은 그들에게 기회와 계기를 만들어 주면 이루어진다.

‘평화의 섬’을 신조로 하는 예술행사인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예술축제로서 승화시켜야 했다. 그러나 한심하게도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미술가들과 세계미술가들의 소통을 하나도 구현하지 못하였고, 제주도민들이 갖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시대정신마저 찾지를 않았다. 그리고서도 제주 미술계를 잘 모르는 외지인을 내세워 변명의 여지를 찾는다고 한다. 나는 다시금 말한다. 제주도 문화예술계는 미래를 향한 큰 그림을 그리자. 청장년 문화예술계 인재들에게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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